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4화 (15/400)

Ep. 14

나는 둥지에 감각을 링크시켜 함선 전역에 퍼뜨렸다.

함선의 구조와 내부 인간들의 움직임이 내게 빠짐없이 전달되었다. 보조기관은 주인의 의지에 부합하기 위해 저들의 움직임을 재빠르게 분석해냈다.

우주 속을 떠돌아다니는 우주선을 생물로 가정한다면 나는 무기질로 이루어진 생물의 뇌에 기생하는 존재나 다름없다. 함선에서 일어나는 일을 배의 주인만큼 잘 알고 있으니까.

보조기관이 선장과 팀장들이 함교로 모이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보고했다.

‘아마 함교에서 지휘를 할 심산이겠지.’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냉각실 위의 둥지에서 계획을 짜고 있다.

‘어떻게 대응할까?’

먼저 적들의 출발 지점부터 따져 보자.

성인 남성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큰 환풍구는 몇 개 없다. 농업구역 환풍구, 격납고 환풍구, 병기고 환풍구 이렇게 세 군데가 가장 크고, 나머지는 1m를 조금 넘거나 그 이하의 크기다.

다만 한 곳에 모여 출발할 가능성은 낮다. 수색 속도가 떨어지게 되니까.

‘반대로 세 곳 전부에서 동시에 출발하기에는 운용 인원이 너무 적어.’

그러니 두 군데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6인이라. 많은 인원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숫자도 아니야.’

어차피 환풍 통로 자체가 대규모 인원으로 공략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적은 인원이라는 단점을 좋은 장비로 보충하는 식의 소수정예 전략으로 나서는 것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거겠지.

‘중급 강화복을 입고 올 것 같은데.’

모델은 불명이지만 아놀드가 입은 것과 동급이거나 그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 정면에서 싸운다면 나도 피해가 적지 않을 거다.

‘갈림길 다음 통로 너비가 줄어드는 구간이 있어.’

시설에 따라 통풍이 잘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 있는 반면, 그럴 필요가 없는 곳도 있다. 냉각실 같은 곳은 공기 순환 설비가 잘 갖춰져 있어서 환풍 통로도 넓지만 대부분은 이렇지 않다.

‘좁은 통로는 인간이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아.’

성인 남성이 몸을 수그려야 될 정도의 높이다. 기어 다니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전투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무기 사용이 힘들다는 것도 문제지만 자세가 불편하므로 강화복의 효율도 살리기 어렵다.

‘거기서 기습한다.’

계획의 큰 뿌리는 얼추 세워졌다. 세부적인 부분은 적들의 무장 상태와 움직임을 보고 조율해야겠다.

마침 저들도 준비가 다 된 것 같다. 놈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저들이 발을 디딘 곳은 내 예상대로 두 군데. 활주로 환풍구, 병기고 환풍구였다.

‘그럼 손님을 맞이하러 가 볼까.’

둥지와의 링크를 해제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밤, 나의 둥지를 노리는 자들은 모두 죽는다.

-

「여기는 A1. A팀 작전 개시합니다.」

“B1 보고하라.”

[여기는 즈즈, B1. B팀 작전 개시합니다. 즈즈」

“B1. 전파 상태가 좋지 않으니 점검하라.”

「즈즈즉, B1. 알겠습니다.」

함교 상황실.

상황실 한복판에 있는 홀로그램에는 병사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6칸으로 나눠져서 송출되고 있었다. 병사들의 강화복에 장착된 전술 카메라로부터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송받은 결과였다.

위기관리팀장 아놀드는 수뇌부들과 함께 병사들이 환풍구에 돌입하는 것을 지켜봤다.

‘키사라기 아가씨를 죽인 존재, 아마 놈이겠지.’

원래라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계획 자체에 변동 사항은 없지만 놈이 어떤 변수가 될지 몰랐다.

놈은 키사라기 유진을 포함해 8명을 죽인 위험생물.

다른 사람들은 물자관리팀장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는 단언할 수 있었다.

물자관리팀장은 괴물에게 진작 살해당했다.

‘괴물. 변수는 최대한 제거한다.’

이 배는 스페이스독, 아니 그의 주인 시현 유진에게 도달하기 전까지 어떠한 차질도 생기면 안 된다.

아놀드의 주인은 원대한 계획을 준비하는 중이다. 계획이 성공한다면 메가콥의 역사가 바뀔 것이다.

유성의 배가 C-08의 해적들에게 넘어가는 것. 그것이 주인이 세운 대계의 첫 단추다.

‘네 녀석은 오늘밤이 끝나기 전 죽을 것이다.’

차가운 시선으로 홀로그램 영상을 노려보고 있는데 현장으로부터 보고가 올라왔다.

「A1. 앞에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B1. 이쪽도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즈즈」

「B3. 즈즈즈. 전파 상태가 좋지 않다. 정비하고 따라가겠다. 즈즉」

“여기는 상황실. B3. 정비가 완료되는대로 바로 합류하도록.”

선내의 혈관 같은 곳이라 그런지 통로는 미로나 다름없었다. 때마침 A, B팀 모두 갈림길을 맞닥뜨렸다.

“경로가 복잡하다. 모두 조심스럽게 움직이도록.”

“여기는 상황실. 느려도 좋으니 꼼꼼히 수색하도록 한다.”

「A1. 알겠습니다.」

「B1. 알겠습니다.」

맵에 떠 있는 6개의 하얀 마크 중 5개가 명령을 받고 천천히 수색하면서 움직였다.

“음?”

화면을 보고 있던 아놀드는 이상함을 느꼈다. 정비 중이라던 B3의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B3 카메라 확인하도록.”

“알겠습니다. 여기는 상황실. B3. 카메라 상태를 확인하라.”

「…….」

“B3. 여기는 상황실. 반복한다. 카메라 상태를 확인하라.”

「괜찮습니다.」

그 말과 함께 다시 화면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살짝 어지럽게 흔들렸지만 곧 다른 병사들처럼 안정을 되찾았다.

“B3. 수신 상태는 어떠한가?”

「괜찮습니다.」

B3이 보고한 대로 더 이상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의 마크가 다른 B팀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B2. 뒤에 오는 B3와 합류해서 이동하라.”

「B2. 알겠습니다.]

화면에 떠 있는 B3 마크가 B2 마크에 가까워졌다. 둘이 겹쳐지려는 순간, 통신기로부터 비명 소리가 났다.

“B2! 무슨 일인가!”

「으, 으아아악! 놈이 나타났다! 놈이…뚝」

“B3. B2와의 연락이 끊겼다. 상황 보고하라.”

「놈이 B2를 끌고 갔습니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설명하라.”

「갑자기 덮쳐서 확인이 불가합니다.」

B2의 카메라는 어둠뿐이었다. 통신기도 망가진 것인지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상황실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선장과 팀장들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며 웅성거렸고, 통신병은 계속 B2와 연락을 시도했다.

다들 당황하는 동안, 아놀드는 검은 화면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끝냈다고?’

무려 중급 강화복을 입은 병사들이 아무 대응도 못하고 당했다. 숙련된 암살자라도 저렇게 빠른 시간에 해치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여태까지 조금 위험한 야생 동물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판이었다.

적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날렵한 살육자다. 괴물의 능력을 재설정한 아놀드는 통신병에게 지시했다.

“모두에게 전달하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바로 발포하라고.”

“네. 팀장님.”

통신병이 아놀드의 명령을 전달했고, 통신기에서 긴장한 병사들의 대답이 들려왔다.

A팀은 괴물 수색을 진행 중이었고, B팀의 B1과 B3는 사라진 B2를 쫓고 있었다. 화면으로 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였지만 B2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각개격파를 당하겠군.’

결국 아놀드는 B2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통신병이 아놀드의 말을 B팀에게 전달했다.

“여기는 상황실. B3. B2 수색을 중단하고 B1과 합류하라.”

「알겠습니다.」

“B1. B3와 합류한 뒤 B2 수색을 개시하도록.”

「B1. 알겠습니다.」

B3의 마크가 B1에게 향했다. 화면 속 두 마크 간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서로의 모습이 보이기까지 몇 발자국 남았을 때, B1으로부터 무전이 날아왔다.

「B1. 뭔가 소리가 들립니다.」

“여기는 상황실. 정확하게 어떤 소리인가?”

「B1. 잘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갈림길이라서 정확히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B3. 최대한 빨리 B1에게 합류하라. 반복한다. 최대한 빨리 합류하라.”

「알겠습니다.」

긴장되는 상황. 상황실의 정적을 깬 것은 B1의 목소리였다.

「B1. 소리의 정체는 B3입니다. 지금 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휴우.”

그 말에 누군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던 아놀드도 안심했다.

“휴. 여기는 상황실. B1. B3와 합류했으면 보고하라.”

「…….」

“B1?”

「B3이 적에게 끌려갔습니다.」

“뭣?!”

B1의 비보에 상황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항상 냉정했던 아놀드도 예상을 뒤집어엎는 상황이 계속되자 침착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는 통신병을 밀어내고 헤드셋을 썼다.

“팀장이다.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라.”

「워낙 순식간이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바로 코앞인데 못 본다는 것이 말이 되나?”

「죄송합니다.」

벌써 두 명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B1이고 B3고 못 봤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으니까 아놀드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헤드셋을 내던진 그는 안절부절못하는 통신병을 두고 생각에 잠겼다.

‘옆에 있었으면서 모를 수가 있나? 게다가 B1과 B3 모두 영상에 아무것도 안 잡혔어. 괴물을 고의로 피해서 촬영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아니. 잠깐.’

아놀드는 문득 무서운 가정을 떠올렸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다시 헤드셋을 썼다.

“팀장이다. B1. 관등성명을 대라.”

「네?」

“반복한다. B1. 당장 관등성명을 대라.”

「…….」

B1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아놀드가 뭘 확인하려는지 알아차린 수뇌부들도 얼어붙었다.

「치직, 들켰네? 뚝」

B1의 통신 채널은 그대로 끊겼다. 카메라 앞에 검은 손이 나타났고, 이어서 화면도 끊겼다.

「여기는 A1.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

「여기는 A1. 상황실 대답 바랍니다.」

A팀의 팀장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상황실을 가득 채웠지만 아놀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일단 B팀은 끝났고.’

나는 B1의 강화복에 달린 신호기를 밟아서 부쉈다. 내 옆에는 머리 없는 시체 3구가 놓여 있었다.

원래는 갈림길 뒤에 나오는 좁은 통로에서 치는 것이 계획이었다. 습격을 준비하기 위해 적들을 앞질러 가던 중,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바로 초능력 기관을 활용하는 것.

버블아메바와 대화하던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

나는 초능력 기관이 만들어내는 특수한 파장을 통해 녀석과 대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파수로 소통하는 무선 통신 장비도 교란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꽤 잘 통했다.

내가 쏘아낸 파장 때문에 제일 후방에 있던 B3의 장비에 잡음이 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기계를 손보기 위해 일행에서 떨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그 뒤부터는 쉬웠지.’

전투용 팔에 의해 머리가 통째로 뽑혀져나가는 순간에도 B3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내가 새로 얻은 융합 특성인 ‘신경독샘’의 효과 때문이었다.

신경독샘을 몸에 지니게 되면 손톱, 발톱, 이빨, 거기에 체액들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들이 극독으로 변한다. 이 독에 당하면 쇼크가 오거나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어서 아무 행동도 못 하게 된다.

보기에는 강력한 디버프 특성 같아 보이지만 게임에서는 비주류 특성이었다. 워낙 초월적인 신체 능력을 지닌 생물이 많다 보니 빛을 못 봤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지.’

특별한 개조를 받은 인간이 아니라면 신경독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 혼자 있다가 당하면 죽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말이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나는 ‘흉내 내기’ 특성을 이용해서 B3인 척하며 다른 팀원들에게 접근했다.

다들 열심히 경계하기는 했지만 설마 아군이라고 하며 오는 자가 에이모프일 줄은 몰랐겠지. 그들의 빈곤한 상상력 덕분에 나는 기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다음은 A팀인가.’

손에 들려 있던 B1의 머리를 입에다 털어 넣고 출발했다. 대뇌의 피질이 상큼한 과즙처럼 입안에서 터져 나가자 몸에서 힘이 차올랐다.

오랜만에 전투용 팔 4개가 다리와 힘을 합쳐 좁은 통로 속을 기었다. 기어가는 와중에도 턱 밑의 보조기관은 끊임없어 A팀의 움직임을 체크했다.

위에서 지시를 받았는지 저들은 합금에 묻은 먼지 하나까지 조사할 기세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완전 경계 태세구만.’

B팀은 나에 대해 전혀 모르고 당했지만 저쪽은 아니다. 내가 사람 목소리를 흉내를 낸다는 사실을 알았을 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어디 이번에는 정보를 역이용해볼까?’

아는 것은 힘이라고 많이들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적당히 아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나는 갈림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몸을 숨겼다. 곧 적들이 이곳을 지나칠 것이다.

이어서 어두운 강철 통로에 빛이 내려앉았다. 선두에 선 자의 헬멧라이트로부터 뿜어져 나온 빛이 갈림길을 훤히 비추었다.

“A1.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오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저들은 내가 근처에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모른다면 알려줘야겠지. 나는 B1의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여기야! 나 좀 도와줘!”

“적이다! 사격 개시!”

예상대로 A1은 바로 사격 명령을 내렸다. 팀원 3명이 들고 있던 레이저 건으로 내가 있는 방향으로 레이저를 쏴대기 시작했다.

저들이 내가 있던 자리에 화력을 퍼붓는 동안, 나는 옆의 다른 통로로 빠졌다. 이쪽 길로 쭉 가면 저들의 뒤쪽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6개의 팔다리를 총동원해 적의 후방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사격 중단!”

「여기는 상황실. 적의 상태를 확인하라.」

“A1. 알겠습니다.”

내가 이미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모른 채 A1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른 병사들은 그가 혹시라도 당할까 봐 그의 등만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후방 경계를 소홀히 하는 A3를 덮쳤다.

“으아아악!”

“뒤다! 뒤에 적이 있다!”

“사, 사격 중단하라! 아군이 붙잡혀 있다!”

「젠장! 사격해! 당장 쏘라고!」

내게 붙잡혀 있는 A3의 고통 섞인 비명 소리, 공포에 질린 팀원과 상황실의 아놀드가 내는 고함 소리로 환풍 통로가 꽉 찼다. 나는 이렇게 시끄러운 장소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기에 A3를 마비시킨 다음 물러났다.

「A1! 즉각 사격하라! 명령이다!」

“사, 사격 개시하겠습니다! 사격 개시!”

뒤늦게 적들이 레이저 건을 쏴댔다. 순수하게 에너지로 이루어진 화망이 통로를 가득 채웠다. 내가 날렵하다고 해도 그것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기에 몇 발정도 맞았다.

아프다는 수준을 넘어섰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A2! 상황실에 보고합니다! 부상자 발생!”

「철수는 불허한다! 놈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런 씹! 분대장님, 어떻게 합니까?”

“…젠장, A3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뒤쫓는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데 저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나 좋은 의료키트를 갖고 왔을지 모르겠지만 내 신경독을 해독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적들이 잠깐 정비 시간을 갖는 사이, 나도 몸 상태를 점검했다.

‘키틴질 외피 덕분에 큰 부상은 없어. 하지만 아프기는 엄청 아프구나.’

적들이 훈련받은 군인이다 보니 내가 맞은 부위는 흉부와 머리였다. 강화복의 효과로 명중률이 보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강화복 보정 때문에 전화위복이 됐어.’

일반 동물이었으면 좀 전의 공격으로 죽었겠지만 나는 에이모프다. 에이모프 유체의 몸 중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가 정면 이마 부분과 흉부를 감싼 외골격 부분이다.

게다가 현재 키틴질 외피로 더 강화된 상태. 이 두 부위만큼은 함선의 재료인 티타늄 합금만큼 튼튼해서 레이저 무기로는 뚫을 수 없다.

적들이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훈련받은 대로 쏜 덕분에 아픈 것 말고는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만약 저들이 꼬리라든가 팔 등을 쐈다면 위험했을 거다.

‘한 명은 처리했고.’

남은 먹이는 2명. 여기서 또 기습을 당할 것 같지는 않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그러고 보니 저들을 도축하기 어울리는 장소가 있다. 처음 계획을 짤 때 생각해 뒀던 장소. 바로 좁은 통로다.

‘거기로 유인하자.’

나는 손톱을 세워 팔에 작은 상처를 냈다. 검은색 피가 뚝뚝 떨어질 때마다 통로 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것은 거미줄이다. 거미가 먹이를 낚기 위해 펼쳐둔 함정.

아무 생각 없이 따라오던 먹이들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파멸의 그물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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