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5화 (16/400)

E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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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니미! 정신 차려!”

“으그그그극….”

“A3에게 쇼크 발생! 치료제 주입!”

“주입하겠습니다!”

A2가 A3의 손목에 있는 단말기를 조작했다. 그러자 그가 입고 있던 강화복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며 치료액이 착용자에게 주입되었다. 방금까지 거품을 물며 눈을 까뒤집던 A3의 상태가 조금 완화되었다.

하지만 이는 응급치료에 불과했다. 강화복에 내장된 치료액은 최소한의 생명 유지, 진통 기능만 있어 해독 기능이 떨어졌다.

최대한 빨리 임무를 완수하고 A3을 의사에게 데려가야 한다.

생각이 일치한 A1과 A2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A1. A3에게 치료제를 주입했습니다. 임무 속행하겠습니다.”

「여기는 상황실. 허가한다.」

위에 보고를 마친 그들은 누워 있는 A3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어먹을 괴물 새끼 때문에 전우 3명이 죽었다. 놈을 잡아다가 모가지를 뜯어놓지 않고선 제대로 잘 수 없었다.

“A1. 효율적인 제압을 위해 강화제 투입을 요청합니다.”

「…허가한다.」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A1과 A2은 단말기의 버튼을 꾹 눌렀다. 강화액이 주입되고 그들의 얼굴과 목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강화복의 강점은 내장된 AI가 신체활동을 보조해주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병사의 전투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특수 용액이다.

하급 강화복에는 진통제, 중급 강화복에는 두 가지의 화학용액이 탑재되어 있다. 부상을 치료하고 자연 회복력을 돕는 치료제, 근육과 감각을 일시적으로 강화시키는 강화제다.

일반인에게 강화제를 주입하면 주먹으로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향상된다. 강화복을 입은 군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대신 강화 효과가 끝나면 영구적인 근육 손실, 최대 일주일가량 무기력해진다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병사들도 어지간해서는 강화제 투입을 꺼렸지만, 이미 눈이 뒤집힌 그들은 부작용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 씨발 새끼 제가 죽이겠습니다.”

“내가 먼저다.”

그들이 받은 명령은 수수께끼의 위험 생물의 생포였다. 하지만 전우를 잃은 둘의 머리 안에는 놈을 맨손으로 찢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둘은 이를 갈며 통로 위를 걸었다. 놈이 사라졌던 방향을 따라가던 그들의 눈에 특이한 흔적이 보였다. 무언가에 의해 바닥이 녹은 흔적이 띄엄띄엄 이어지고 있었다.

“놈도 부상을 당했나보군.”

“미친. 산성피라니…. 도대체 무슨 괴물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이 보통 살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둘은 긴장 속에서 녹은 자국을 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이제 정말 마음의 준비를 끝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인 남성이 허리를 굽혀야 이동할 수 있는 낮고 좁은 통로가 그들을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좁군.”

“어떻게 합니까?”

“돌입한다.”

이미 강화제까지 투입했다. 그들에게 후퇴란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두 병사는 그대로 통로 안으로 몸을 우겨넣었다.

-

‘오는군.’

거미줄에 먹이가 걸린 것처럼 공기 중에 흐르는 미세한 진동을 보조기관이 잡아냈다. 나의 영역 안에 침입자가 발을 디뎠다. 침입자의 심장 박동은 일반인에 비해 훨씬 거칠었고, 또 빨랐다. 그들의 입에서 짐승의 헐떡임처럼 거친 숨결이 뿜어져 나와 공기 속에 흩어졌다.

‘강화제를 썼구나.’

중급 강화복은 부작용이 심할 텐데 적도 어지간히 화가 났나 보다. 하나 상관없다. 이 음습하고 미로 같은 공간에서 강화제로 향상된 신체 능력은 거의 쓸모가 없으니까.

‘그럼 시작해볼까.’

사냥감을 유인하는데 성공했으니 이제 덫이 필요하다.

나는 상처를 크게 벌려서 많은 피를 바닥에 쏟아 냈다. 산성피가 고이면서 유독한 가스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통로를 가득 채운 기체 너머로 복도의 모습이 보였다. 환풍 통로를 녹이는 걸로 모자라 복도 천장까지 뚫은 산성피는 여전히 기세를 잃지 않고 구멍을 넓혀갔다.

‘이쯤이면 되겠지?’

나는 상처를 수습하고 잽싸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놈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강화복에 부착된 특수헬멧을 쓰고 있었다. 헬멧이 제공하는 방독 효과 덕분에 유독 가스로 가득 찬 통로에서도 무리 없이 움직였다.

그들은 갑자기 자신들을 덮친 가스에 당황한 것 같았지만 노련한 병사들답게 침착하게 행동했다.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걷던 그들은 이윽고 가스의 진원지를 발견했다.

복도의 불빛이 통로를 은은하게 비추는 것을 보고 병사 한 명이 앞에 나섰다.

“여기는 A1. 환풍 통로에 큰 구멍이 뚫렸습니다. 주변에 놈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놈이 복도로 내려간 것 같습니다.”

「여기는 상황실. 복도를 수색할 테니 장소를 말하라.」

“여기는 농업구역 근처….”

통신에 집중하는 A1. 바닥 아래의 복도 쪽을 조사하는 다른 병사.

모두가 딴 데 정신이 팔린 지금이 기회였다.

통로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나는 가젤을 노리는 표범처럼 튀어나갔다. 6개의 다리로 기어가는 나에게 좁은 통로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

강화제 덕분에 민감한 감각을 갖게 된 A2가 즉각 반응한다. 총구가 빠르게 나의 머리를 향하고 불빛을 내뿜는다.

광속으로 날아온 에너지 덩어리가 내 머리 뒤 촉수 끝을 살짝 스쳐 지나간다. 사격이 빗나간 것을 보고 당황해 하는 A2가 보인다.

그럴 수밖에. 내가 왜 전장으로 이 비좁고 불편한 곳으로 골랐겠는가.

적은 불편한 공간의 영향을 받아 견착(肩着)도 미묘하게 틀어졌다. 반면 나의 검갈색 키틴질 외피는 빛 한 점 없이 어두운 이곳에서 보호색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적에게는 불리하게, 반대로 아군에게는 유리하게.

그것이 내가 이곳을 사냥터로 결정한 이유였다.

“큭?!”

그가 자세를 바로 하고 나를 다시 겨냥한다. 충분히 빠른 속도지만, 나는 이미 그의 지척까지 왔다.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 내 어깨 부근의 양손이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죽음을 직감한 것일까. 헬멧에 있는 반투명한 바이저 너머로 그의 확장된 동공이 보인다.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내도록 도와주는 강화복이지만, 목처럼 유동적이고 섬세한 움직임이 필요한 부위까지 보호해 줄 수는 없었다. 손에 힘을 주자 A2의 목이 연약한 나뭇가지처럼 손쉽게 꺾였다.

“으아아아악!”

한 발 늦게 나를 인지한 A1이 괴성을 지르며 나한테 레이저를 갈겨댔다. 나는 목이 덜렁거리는 A2를 들어서 내 몸을 보호했다.

고기가 타면서 생겨난 맛있는 냄새가 보조기관의 끄트머리를 살살 간질인다. 전투의 긴장과 배고픔 속에서 나는 A2의 타다 남은 시체를 A1에게 던졌다.

“씨바아아아아알!”

그가 이성을 잃고 레이저 소총을 난사했다. 가까운 거리였기에 그가 쏜 것 중 몇 발이 내 몸에 꽂혔다.

작지 않은 통증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전의가 끓어올랐다. 꼬리 끝의 날카로운 단검이 그에게 쏘여져 나갔다. 그대로 그의 어깨에 꽂히나 싶었지만 적은 베테랑이었다. 강화된 그의 왼팔이 내 꼬리를 쳐 냈다.

내 꼬리가 목표를 잃고 통로에 부딪치고, 그가 나에게 뛰어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전투용 팔로 막을까 했지만 상대는 강화복을 입었다. 게다가 강화제까지 주입해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간 상황이니 괜한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A1의 주먹을 피해냈다. 단단한 합금판이 주먹질 한 방에 크게 으스러졌다.

‘예상보다 강한데?’

게임에서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대로 싸우다가는 쓸데없는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전략을 바꾸자.’

나는 꼬리를 크게 휘둘러서 그를 물러나게 만든 뒤, 도망쳤다. 뒤에서부터 레이저 탄환이 빗발쳤지만 맞춘 것은 한 발도 없었다.

‘남은 적은 한 명.’

써먹을 만한 것들은 다 써먹었다. 이제 웬만한 속임수로는 A1을 속일 수 없을 거다.

멀리서 A1의 고함 소리가 들린다. 바짝 독이 오른 상태라 기습을 해도 효과를 볼지 의문이다.

‘아. 아직 한 가지 남았나?’

고민하는데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 감각에 잡히는 생명체는 현재 총 2명이다.

날뛰고 있는 A1과 마비 상태인 A3.

A1은 엉뚱한 곳에다가 레이저를 쏴대고 있었다. 녀석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을 동안, 나는 A3가 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좁은 통로를 나오니 천장이 훌쩍 위로 올라갔다. 두 발로 서서 가다 보니 통로 한가운데 누워 있는 A3가 보였다.

“으, 으으….”

응급치료를 받은 A3는 가까스로 전사(戰死)를 면했지만 별로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비가 다 풀리지 않아 말도 못 하고 그저 신음만 내뱉고 있었다.

나는 그의 카메라에 걸리지 않는 방향에서 접근했다. 그와의 거리가 몇 미터 정도 남았을 때, 그가 내 존재를 인지했다.

고통어린 신음에 공포가 서려 있었으니까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으으, 으어어!”

그는 어떻게든 상황실에 이 상황을 알리려고 했지만, 그의 팔다리는 이미 마비된 상태였다. 그는 굼벵이가 개미를 피하듯 몸을 꿈틀거렸다. 나는 겁먹은 굼벵이에게 다가가 발로 그의 등을 밟았다.

「그르르르르」

“으! 으어! 어어!”

A3의 뒷목에 솜털이 바짝 선 것이 보인다. 머리카락은 이미 식은땀범벅이다. 겁에 질린 동물이 울부짖듯 거친 숨을 내뱉는다.

엎드린 자세여서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정신없이 떨리고 있겠지.

공교롭게도 A3는 지금까지 뒤에서만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내가 어떻게 생긴 지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더 무서워하는 것이 아닐까? 가장 큰 공포는 미지로부터 온 공포라고 하니까.

‘어차피 죽을건데 무슨 상관이겠냐만.’

나는 전투용 팔 4개를 그의 옆구리에 쑤셔 넣었다. 보호대가 없는 부분이라 내 손은 쉽게 그의 몸 안에 파고들었다. 등을 밟고 있는 발톱 끝으로 그가 마지막 숨결을 내뱉는 것이 느껴졌다.

A3를 단번에 죽인 나는 옆구리에 박았던 손에 힘을 줬다. 길쭉한 창자를 4개의 손으로 움켜쥐고 거칠게 뽑아냈다.

손에 주렁주렁 걸린 내장을 나는 서둘러 입속에 집어넣었다. 맛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대충 씹어 넘기고 다시 그의 몸에 손을 집어넣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A3의 몸을 방패로 삼기 위해서는 그의 몸속을 비워야했다. 나는 계속해서 그의 내장들을 긁어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네.’

A3의 무게가 절반 정도 줄어들었을 때, 나는 그의 몸을 뒤집었다.

카메라의 렌즈가 반갑다는 듯 붉은빛을 내며 나를 비췄다. 나는 A3 몸에 달린 카메라와 통신기들을 부쉈다.

이걸로 저쪽에서 A3가 습격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거다.

나는 A3의 옆구리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끈적끈적한 핏물과 아직 시체에 남아 있는 온기가 내 전신을 감싸 안았다. 껍데기만 남은 A3의 안에는 생명 유지를 위한 기관들 대신 외부에서 온 포식자로 채워졌다. 미처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삐져나와 있는 꼬리는 둘둘 말아서 시체 아랫부분에 숨겼다.

잠시 후, 밖에서 A1의 발소리가 들렸다.

“A3! 괜찮나! 대답해!”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이미 미라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A3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가 맥박을 재기 위해 손을 뻗는 게 느껴진다. 그는 완전히 방심한 상태다. A3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가죽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상대와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내 팔이 A3의 복부를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맥을 재느라 한쪽 무릎을 굽히고 있던 A1은 내 공격을 그대로 허용했다. 내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허벅지를 할퀴었다.

“큭?!”

그는 뒤늦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하반신을 마비시킨 치명적인 신경독이 위로 전진하고 있었기에.

그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바닥에 쓰러진다. 넘어진 그는 어떻게든 일어나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중추신경까지 걸레짝이 된 지 오래다. 성벽 안에 들어온 목마에 의해 몰락한 트로이처럼 A1은 내부에서부터 파멸해가고 있었다.

“으, 으어, 어어!”

덜덜 떠는 A1의 몸. 그것은 쇼크 때문인 걸까, 아니면 다가온 운명 때문인 걸까.

뭐가 됐든 그에게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거미줄에 걸린 먹이처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였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

시체를 찢고 나온 나는 손에 묻은 피를 핥았다. 설탕을 응축시켜 시럽을 만든 것처럼 원초적인 단맛이 뇌리를 관통했다.

더 즐기고 싶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나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A1에게 다가갔다.

갈비뼈 부근에 나 있는 아래쪽 팔로 그의 어깨를 잡고 위쪽 팔로 헬멧을 벗겼다. 드러난 얼굴은 생각보다 젊었다. 하지만 눈가에 있는 흉터가 그가 여러 전장을 헤치고 나온 전사임을 드러냈다.

그런 역전의 용사조차도 죽음이 두려운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었으니까.

위쪽에 있는 2개의 팔이 그의 머리를 감쌌다. 곧 있을 일을 예감한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태풍에 나무가 뽑히는 소리가 나면서 그의 목이 천천히 뜯어졌다.

비명은 없었다. 신경독은 그에게 비명도, 조금의 움직임도 허용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상태로 목이 뜯기는 고통에 그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목에서 하얀 목뼈가 드러날 때쯤 A1은 죽었다.

혀를 빼물고 있는 그의 머리를 들고 나는 카메라를 노려봤다. 통신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저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이 정도면 내 뜻이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한 나는 카메라를 부쉈다.

거미줄은 환풍 통로에만 깔린 게 아니다.

다음은 저들의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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