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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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왜애애액!”
뒤늦게 도착한 병사들은 피바다가 된 상황실을 보고 경악했다. 전투 경험이 적은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구토를 했고, 장교들은 상관의 시신을 보고 침통해 했다.
“병신 새끼들! 왜 이제 와!”
“죄, 죄송합니다!”
유성이 그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 모습에서는 좀 전까지 구석에 숨어 벌벌 떠는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승무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 선장치고는 참 뻔뻔한 모습을 보이는 유성이었다.
“당장 여기부터 정리해!”
“…알겠습니다.”
병사들의 얼굴에 불만이 서렸지만 상대는 상관, 그것도 배의 선장이었다. 병사들은 군말 없이 함교에 깔린 시신들을 수습했다.
‘젠장, 몇 명이 죽은 거지?’
하필 항해에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습격당했다. 게다가 놈은 이 많은 사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들만 골라 죽였다.
‘연구팀장, 기술팀장, 취사팀장, 항해팀장, 위기관리팀장…몽땅 다 죽었잖아!’
특히 기술팀장과 위기관리팀장이 죽은 것은 뼈아팠다.
함선의 유지, 보수를 전담하는 기술팀장, 전투를 전담하는 위기관리팀장.
둘 다 해적과 싸울 때 필요한 인재들이었다.
그는 죽어도 모를 것이다. 괴물이 일부러 그 사람들을 먼저 제거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상태로 해적을 만나면 절대 못 살아난다.’
유성은 전투에 완전 문외한이었다. 이 연구선이 전투용 전함을 기반으로 만든 배이긴 하지만 그는 군인이 아니었다. 그저 중고 함선을 구입한 부자에 불과했다. 일반인인 그가 싸우는데 도가 튼 해적들을 상대로 훌륭하게 지휘할 수 있을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병사 지휘를 담당할 새로운 위기관리팀장을 뽑는 것이 나았다.
“…병사들 중 누가 제일 직급이 높습니까?”
“접니다. 선장님.”
“이제부터 그쪽이 위기관리팀장입니다. 병사들을 지휘해서 함선을 지키기 바랍니다.”
졸지에 몇 단계나 승진한 장교였지만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도 해적과의 전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팀장이 된 이상 내색할 수 없었기에 그는 말없이 경례하고 물러났다.
유성이 새로 팀장을 임명하긴 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괴물은 배 안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고, 해적은 이틀 뒤 조우할 예정이니까.
그냥 약속을 파투 내고 도망칠까 생각해봤지만 항로를 계산해 줄 항해팀장이 죽어버렸다. 유성도 선장이니 직접 항로 설정을 할 수 있지만 세부적인 조정까지 능숙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상대는 이쪽의 위치를 훤히 아는 상황. 어설프게 도망쳐봤자 해적들이 금방 뒤쫓을 것이다.
‘씨발, 그냥 다 버리고 도망칠까?’
사실 탈출선을 타고 도망쳐봐야 유성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빚쟁이가 되거나 노블캐피탈의 추격을 받거나. 어느 쪽이든 달가운 결말은 아니지만 유성은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현실 도피하는 그의 귀로 병사들의 대화가 들렸다.
“이거 일반 권총하고 다르게 생겼네?”
“팀장님 무기 같은데.”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을 본 유성이 눈을 부릅떴다.
“어이 거기!”
“예?”
“들고 있는 거 이리로 가져와.”
병사들이 가져온 물건은 플라즈마 피스톨이었다. 그들에게 피스톨을 받은 유성은 잔량부터 확인했다.
‘60%. 좋아.’
에너지가 절반 이상 남아 있으니 호신용으로 충분히 쓸 만하리라. 총신에 살짝 금이 가 있었지만 유성은 군인이 아니었기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유성은 병사들을 돌려보내고 엉망이 된 함교를 멍하니 지켜봤다.
그런 그의 곁으로 의료팀장이 다가왔다. 좀 전까지 병사들과 함께 시신을 수습했던 터라 그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살아난 사람은 있습니까?”
“제일 먼저 공격받은 임시연구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망했습니다.”
“뭐라고요? 웨이 선임연구원이 안 죽었습니까?”
“회복실에 넣어 뒀습니다. 운이 좋게도 그는 괴물의 신경독에 면역이더군요. 하지만 시각, 후각, 미각 기관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습니다. 살아난다고 해도 평생 튜브를 끼고 살아야 할 겁니다.”
“…….”
운이 좋다는 말과 달리 웨이의 상태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정도로 참혹했다. 말만 들어도 끔찍했기에 유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의료팀장, 뭐 방법이 없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괴물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해적도 남아 있습니다.”
“…….”
의료팀장은 타인을 치료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지, 남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다. 유성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 답답해서 그냥 물어본 것이다.
“…차라리 스페이스독에 투항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뭐?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메가콥에서 저희를 가만두겠습니까?”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유성이 헛웃음을 지었지만 의료팀장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스페이스독은 약탈을 일삼는 해적 집단이다 보니 그들을 좋아하는 세력은 드물었다. 온갖 종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 때문에 스페이스독의 구성원의 목숨은 날파리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에게는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 늘 부족했다. 항해와 전투에 꼭 필요한 전문 인력, 이를테면 의사 같은 직업 말이다.
그리고 의료팀장은 이 배에서 가장 뛰어난 의사다.
‘이 양반이 자기만 살려고.’
스페이스독은 어느 카르텔을 막론하고 부유층을 생포하면 머릿가죽부터 벗긴다. 이 배에서 가장 부자인 유성은 카르텔 두목의 인피 가면 컬렉션에 추가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아랫사람들이나 잘 다독이시길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크흠.”
헛기침하는 의료팀장을 유성은 서늘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당장 발에 불이 떨어졌는데 누구 하나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없었다. 남아서 상황실을 정리하는 병사들,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장교들, 머리에 딴생각만 가득한 의료팀장. 모두 믿을 수 없었다.
그나마 신뢰할 만한 했던 인물은 목 없는 시신이 되어 들 것에 실려 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유성은 한숨을 내쉬며 상황실을 나섰다.
모두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지옥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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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자들은 대부분 제거했어.’
유성이 남긴 했지만, 그는 나의 대적자가 되기에 한참 모자란다. 머리가 제일 잘 돌아가던 아놀드가 죽었을 때, 승무원들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선내 최고 기술자도 내 손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 말은 즉, 함선을 운용하는 기계에 문제가 생겨도 고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AI가 문제를 보고하더라도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
그사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둥지의 확장.’
환풍 통로뿐만 아니라 함선 내의 주요시설들도 슬슬 장악할 때가 왔다. 적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병기고나 실험실 같은 높은 수준의 보안 AI를 갖춘 곳부터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 시설들을 내가 직접 파괴할 생각은 없다. 대신 둥지를 새로 깔아서 시설을 오염시킬 생각이다.
‘포자에서 나오는 점액은 인간에게 유독하니까.’
나는 깜찍한 포자를 쓰다듬었다. 포자가 나의 애정 어린 손길에 화답하듯 걸쭉한 액체를 뿜어냈다.
점액이 단단하게 굳으면 일반적인 도구로는 부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일부만 파괴하면 순식간에 재생한다. 화염방사기 같은 무기로 뿌리부터 파괴하지 않으면 절대로 못 없앤다.
이렇게 유용한 둥지를 그동안 하나만 뒀던 것은 만드는데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해츨링 상태에서는 하나만 마련할 수 있고, 유체 상태에서는 1개에서 2곳이 더 추가된다.
즉 현재 내가 가질 수 있는 둥지의 개수는 총 3곳. 냉각실에 둥지가 깔려 있으니 2곳을 새로 정할 수 있다.
‘어디에 깔까.’
일단 1순위는 식당이다. 먹는 행위는 인간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니까. 식당에 둥지를 깔면 안에 보관된 식료품들을 오염시켜서 적의 보급을 차단할 수 있다.
문제는 나머지 둥지를 어디에 까느냐다.
‘병기고 아니면 실험실인데.’
병기고에는 플라즈마 런처가 보관되어 있다. 나를 끝장낼 수 있는 무기니까 당장 제거하는 게 맞다. 만약 내가 일반적인 에이모프라면 그렇게 행동했겠지.
‘나는 런처를 훔칠 거지만.’
플라즈마 런처는 엄청나게 무겁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은 혼자 들 수 없지만 나는 에이모프다. 강인한 4개의 팔이라면 충분히 들고도 남는다.
신체 구조상 인간처럼 능숙하게 쓸 수는 없지만 사용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큰 문제는 없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아놀드가 했던 말이 걸렸다.
그가 섬기는 자, 시현 유진.
뭐하는 작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적과 연관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어쩌면 해적 사이에 섞여서 이곳에 올지도 모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이쪽도 쓸 만한 카드를 최대한 긁어모아놔야 한다.
‘병기고에서는 런처만 획득하고, 둥지는 실험실에 깔자.’
실험실을 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는 다량의 유전자 샘플이 보관되어 있으니까.
메가콥을 포함해 몇몇 종족들은 유전자를 정제하는 기술을 지니고 있다. 생물의 엑기스만 모아 추출하는 거라 내가 먹어도 포식 효과가 발동된다.
이렇게 보면 유전자 샘플만 노리는 것이 편할 것 같지만 이 방법에는 큰 단점이 있다.
‘확률이 많이 낮지.’
일반 생물을 먹어서 특성을 얻는 확률과 비교하면 10% 미만이다. 시체를 먹어서 포식 효과가 발동되는 확률도 높지 않은데 거기서 더 낮아지니 어지간해서는 특성을 얻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실험실에 있는 샘플을 다 먹어도 많아봐야 5개?’
그래도 신체 관련 특성 2개만 확보하면 육체 강화 타입을 얻을 수 있다. 초능력 강화 타입도 특성 1개만 더 있으면 되지만 이 배에서 사이킥 파워와 관련한 특성을 더 얻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거기다 샘플 말고 사이오니움도 있지.’
사이오니움이 있으면 아성체의 능력을 끌어다 쓸 수 있으니까 해적들과 싸울 때 필요하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움직여볼까.’
지금이면 승무원들이 식사할 때다. 실험실에다 먼저 깔도록 하자.
나는 그 길로 바로 실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험실은 전에 비해 훨씬 어수선했다. 병사들은 모두 수색에 동원되어서 지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삼엄한 보안 수준은 여전했지만 기술팀도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신경 쓸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실험실에서 잠깐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안녕!」
‘응?’
입에서 막 점액을 내뱉으려는데 누가 나를 불렀다. 실험실에 있는 버블아메바 26호였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파장으로도 활기찬 기색이 느껴진다. 나는 머리 뒤의 초능력 기관으로 녀석에게 회답했다.
[즈즈 즈즈즈(기분이 좋은 듯)]
「응! 안 아픔!」
‘오늘은 실험이 없었나?’
다시 생각해 보니 선내가 이 모양인데 연구원들이 출입할 가능성은 낮았다. 아마 다들 실험은 그만두고 각자의 방에 숨어 있겠지.
‘그러면 좀 더 대담하게 나가 볼까?’
나는 조금씩 실험실 위로 이동했다. 내부에 설치된 AI가 진동을 감지하고 붉은빛을 내뿜었다. 지금쯤이면 함선AI가 이상을 감지하고 기술팀과 보안팀에 전달했을 거다.
「뭐함?」
[즈즈(기다리는 중)]
「?」
얼추 30분 정도 기다렸는데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보조기관으로 주변 구역을 모두 살펴봤지만 접근하는 인간은 없었다.
확실하다.
선내의 보안체계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더 이상 숨죽이며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환풍구를 부수고 실험실의 바닥에 발을 디뎠다.
[즈즈즈즈(오랜만이네)]
「응.」
오랜만에 보는 26호는 건강해 보였다. 늘 새하얗게 질린 상태로만 봤지만 오늘은 버블아메바 특유의 분홍빛이 선명했다.
쾌할하게 구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문득 고민이 된다.
‘데려갈까?’
26호는 이 함선에서 나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유일한 생물이다. 만약 유용한 유전자를 가진 존재였다면 고민 없이 잡아먹었겠지만, 녀석은 버블아메바다. 영양분이 극도로 결핍되어 뭐든 먹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녀석을 죽일 일은 없다.
‘여기에 계속 있으면 굶어 죽겠지.’
연구원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버블아메바는 우주의 해파리답게 독성에 면역이니까 둥지에 두거나 내가 데리고 다녀도 큰 문제가 없다. 먹이야 칼로리바나 사람 고기를 주면 될 거고.
[즈즈즈즈(나가고 싶어?)]
「나가? 어딜?」
[즈즈 즈즈즈(실험실 밖으로)]
「응! 나가고 싶어.」
즉답이었다. 그걸로 26호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나는 녀석에게 조심하라고 신호를 준 뒤 실험관을 깨뜨렸다. 안에 있던 액체와 함께 쓸려 나갈 뻔한 녀석을 손으로 잡아줬다.
오랫동안 약물 속에 잠겨 있었던 녀석은 갑자기 신선한 공기를 쐬는 것이 어색한지 움츠러들었다. 움츠러든 녀석은 몸을 부풀렸다가 줄어들었다가를 반복하다 마침내 익숙해졌는지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자유의 맛이 제법 마음에 들어났나 보다. 녀석이 기뻐하며 내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작은 팔로 녀석을 살짝 쓰다듬고 바닥에 잠시 내려놨다.
[즈즈즈즈(기다려 봐)]
「뭐 해?」
[즈 즈즈즈(둥지를 만들 거야)]
나를 구경하는 녀석을 두고, 나는 점액을 실험실 여기저기에 뿌렸다.
26호는 내가 하는 짓거리가 신기한지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맛이 궁금했는지 점액의 일부를 삼켰지만, 독성 면역이라 멀쩡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던 실험실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함선에서 가장 오염된 공간으로 변모했다. 반투명하던 점액이 굳으면서 흉측한 검갈색 줄기로 변했고, 곳곳마다 있는 포자로부터 역겹고 불쾌한 액체를 쏟아 냈다. 그 모습은 실험실이라기보다는 저주받고 부패한 늪을 연상시켰다.
‘이걸로 실험실은 끝났어.’
오는 사람이 없던 덕분에 금방 크게 확장시킬 수 있었다. 환풍 통로의 둥지보다 훨씬 크게 만들다 보니 급격히 배가 고파졌다. 나는 실험관들을 깨부수고 안에 있는 뇌나 장기들을 끄집어냈다.
‘맛은 영 아닌 걸.’
사람에 비하면 맛이 영 아니었다. 맛을 즐긴다기 보다는 영양 공급에 의의를 둬야겠다.
맛없는 햄버거를 먹는다고 생각하며 뇌를 베어 물고 있는데, 26호가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녀석도 배가 고플 것 같아서 조금 떼어 주니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배를 대충 채우고 냉동고를 살펴봤다. 안에는 대량의 유전자 샘플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샘플들을 쓸어다가 그대로 입에다 처넣었다. 벽에 달린 보안벨이 미친 듯이 울어댔지만 무시했다.
눈앞에 반투명 텍스트 박스가 몇 차례 떠올랐지만 무시하고 먹는데 집중했다. 반쯤 먹었을 때 내 보조기관이 사람의 접근을 알려왔다.
‘이제야 오네.’
다가오는 사람의 기척은 총 2개였다. 한 명은 보폭이 일정한 것을 보니 군인이고, 다른 한 명은 민간인이다. 아마 연구원이겠지.
한 분대가 몰려와도 모자랄 판에 2명이라니. 코웃음을 치고 싶었지만 에이모프는 불행히도 코가 없다.
나는 먹던 것을 중단하고 냉동고를 나왔다.
“헉?!”
“이, 이게 뭐야!”
입구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오염된 실험실을 보고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지원요청을 해도 모자랄 판에 얼타고 있다니.
멍청한 행동의 대가는 죽음뿐.
나는 검갈색 가지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군인한테 먼저 달려들었다. 그가 화들짝 놀라며 레이저 소총을 내게 겨눴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보조기관이 저자의 움직임과 총구의 방향을 한순간에 계산해냈으니까.
예상대로 레이저는 빗나가 엉뚱한 곳을 맞췄다. 반면 내 꼬리는 빗나가지 않았다. 생체 단검이나 다름없는 독침이 그의 늑골을 부수고 폐를 갈기갈기 찢었다.
“커헐!”
병사는 피를 한차례 토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병사를 즉사시킨 나는 연구원에게 다가갔다.
“히, 히이익! 살려 줘!”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아랫도리에서 노란색 액체가 흘러나오고 역한 암모니아 냄새가 보조기관에 감지되었다.
아랑곳 안 하고 그의 목을 따버리려는데 어깨 위의 26호가 흥분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즈즈(왜 그래?)]
「아픈! 아픈!」
‘아프다고? 아.’
26호의 어휘력이 부족해서 순간 헷갈렸다.
이 사람도 버블아메바 실험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 같았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까 녀석도 분노한 것이리라.
‘버블아메바도 사람을 죽일 수 있지.’
녀석의 크기는 얼추 농구공보다 조금 더 큰 정도다. 다시 말해 인간의 머리 정도는 충분히 녹여서 먹을 수 있다.
나는 꼬리 끝으로 연구원을 살짝 찔렀다. 신경독이 그의 몸에 퍼지면서 그는 움직이지 못하는 가구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그의 머리 위에 26호를 올려놨다.
“!”
내 뜻을 이해한 26호가 몸을 활짝 펼쳐서 연구원의 머리를 덮었다.
한 번에 즉사한 군인이 불쌍할까, 머리가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다 죽은 연구원이 불쌍할까.
어차피 죽는데 과정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26호가 식사하는 동안 나도 병사의 시체를 뜯어먹었다.
그 뒤로 새로 오는 방문자는 없었다. 나는 첫 번째 복수를 완수한 26호를 어깨에 올려 둔 다음, 다시 실험실의 둥지로 돌아갔다. 우리의 뒤에는 머리만 백골이 된 연구원의 시체가 홀로 남았다.
이후 실험실에서 모든 볼일을 끝마친 나의 눈앞에는 새로운 반투명 텍스트 박스가 떠 있었다.
「특성화 가능한 ‘타입’ 1개가 존재합니다.」
「‘육체 강화 타입’을 해금하시겠습니까?」
목표를 달성한 나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