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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1화 (22/400)

Ep. 21

전함에 잠입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름 보안체계를 갖추고 있긴 했지만, 그 수준이 조악했다. 연구선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해적이니까.’

약탈만 하던 자들이다 보니 남이 자기들을 약탈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진동의 흐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전함의 심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원자로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복도 위를 달렸다.

전함의 복도는 군사용 함선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다른 배의 외벽을 뜯어서 붙인 것인지 벽 곳곳마다 색깔이 달랐고, 약탈품들을 넣은 상자가 복도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쓰레기통이나 다름없는 복도 위를 달리는데, 적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상대편 인원은 둘. 인간 한 명, 인섹트맨 한 명이다.

‘여기서 처리하고 가자.’

나는 근처에 쌓아둔 상자 뒤에서 몸을 웅크렸다.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인간이 내 곁을 지나가려고 할 때 내 꼬리가 그의 목을 정확히 노렸다.

“컥!”

“!”

목이 잘린 시체로부터 피 분수가 솟구쳤다. 한순간에 동료를 잃은 인섹트맨이 그 모습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일반인이었으면 넋이 나갔을 텐데 상대는 역시 해적. 녀석은 당황하는 와중에도 통신기를 빼 들었다.

내가 손바닥을 펼치자 톱날 촉수가 튀어나와 녀석의 손목을 휘감았다. 촉수에 나 있는 뾰족한 톱날들이 무자비하게 그의 살점을 뜯어냈다.

“캬아아아악!”

놈의 팔뚝이 분쇄기에 갈아 넣은 꼴이 됐다. 들고 있던 통신기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인섹트맨 특유의 녹색 피로 범벅된 촉수를 회수하니 표면에 붙어 있던 것들이 내 몸 안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인간과는 또 다른 색다른 맛이 뇌리를 찡하고 울렸다.

‘청포도맛이네.’

인간의 피는 자극적인 맛이 나는데 인섹트맨은 산뜻한 과일 맛이 났다. 맛을 좀 더 음미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나는 몸에 힘을 실어 녀석을 들이받았다. 짧은 돌진이었지만 육체 강화 타입의 효과로 무거워진 무게 덕분인지 무시할 수 없는 파괴력이 나왔다. 나에게 치인 녀석은 그대로 복도에 처박혔다.

“켁!”

녀석으로부터 짧은 비명과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인간이었으면 이미 쇼크사했겠지만 녀석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인섹트맨. 녀석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도망치기 위해 버둥거렸다.

나는 아래쪽 팔로 녀석의 양팔을 고정하고 위쪽 팔로 양쪽으로 갈라진 녀석의 턱을 붙잡았다.

“캬아악! 사, 사려…켁.”

살려달라는 유언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

턱을 잡은 손에 힘을 줘서 잡아당기듯이 뜯어냈다. 녀석은 머리가 쪼개져서 죽었다.

나는 인간 시체는 내버려 두고 인섹트맨의 시체를 서둘러 뜯어먹었다.

‘역시 NPC 종족은 카운트가 안 돼.’

게임 속에서 인섹트맨은 지성체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플레이는 불가능한 외계 종족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성체로의 진화 조건에 따로 카운트되지 않았다.

‘이것만 먹고 빨리 가자.’

다른 때 같았으면 느긋하게 즐기겠지만 해야할 일이 아직 많으니까. 나는 녀석의 고기를 재빨리 씹어 삼켰다.

바닥에 흐른 피까지 싹싹 핥아먹은 뒤, 인간의 시체는 상자 속에 꾸겨 넣었다.

「순찰조, 무슨 일이야? 왜 대답이 없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대답 좀 빨리해 새끼야. 빠져가지고.」

“미안.”

나는 인섹트맨이 죽기 전에 떨어뜨린 통신기에 대충 대답했다. 흉내 내기 특성 덕분에 저쪽은 통신기의 주인이 이미 내 뱃속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짧은 전투를 끝내고 다시 원자로를 향해 출발했다. 가는 도중 새로운 적과 조우하는 일은 없었다.

원자로의 보안도 이렇게 허술했으면 좋았겠지만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자로 주변에 안드로이드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보안에 한 푼도 안 쓰는 녀석들이 갑자기 비싼 안드로이드라니. 아무래도 약탈로 얻은 것들을 여기에 배치한 것 같다.

‘안드로이드는 좀 까다로워.’

파괴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그 뒤가 문제다. 내가 공격하는 순간 녀석은 전함의 중앙AI에게 신호를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전면전을 할 것이 아니라면 안드로이드를 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어떻게 칠까.’

턱 아래에 있는 보조기관이 꿈틀거리며 방어가 약한 부분을 찾아 나섰다.

사람과 달리 안드로이드는 기계다 보니 빈틈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연구선에서 했던 것처럼 천장이나 벽에 붙어서 움직이기에는 안드로이드의 열 추적 장치가 걸렸다.

‘꼭 직접 맞서 싸울 필요는 없지.’

나는 발길을 돌려 원자로 위층으로 향했다. 녹슨 철제 계단과 엉망진창의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누군가의 침실이었다.

침실에서는 퀴퀴하고 역한 냄새가 났다. 침대로 사용되는 매트는 누렇게 변색되었고, 바닥에는 텅 빈 술병이 굴러다녔다.

나는 4개의 손으로 매트를 들어서 치웠다. 아래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깜짝 놀라 후다닥 달아났다.

‘여기쯤이었지?’

나는 매트가 있던 자리에 서서 아래쪽 손으로 포자들을 뽑아냈다.

산성 포자에서 흘러나온 점액들이 바닥을 녹이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가 올라오고 지저분한 철판에 순식간에 구멍이 뚫렸다.

구멍 아래로 원자로의 윗부분이 보였다.

사람이었으면 원자로 위층이 녹아내리는 것을 발견했겠지만 상대는 안드로이드.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활동하는 로봇이었기에 예상외의 상황에는 취약하다.

‘엔진은 이걸로 클리어.’

나는 원자로 위로 포자들을 쏟아 부었다.

-

엘첸 드바라가 해적질을 시작한 지가 벌써 10년.

헐크 뮤턴트가 해적질이라니. 그 누구도 엘첸이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활동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헐크 뮤턴트는 수명이 짧다. 일찍 죽도록 유전자가 조작되어서 2년 안에 죽는다.

하물며 해적은 또 어떤가? 스페이스독 신입의 생존기간이 1개월을 넘지 못한다. 베테랑이라고 해도 1년 넘게 활동한 자는 많지 않다.

그가 에저튼에 의해 개량된 헐크 뮤턴트가 아니었다면 분명 얼마 안 가 죽었을 거다.

설령 살아남았어도 그의 머리가 좋지 않았다면 이처럼 오래 활동하지 못했을 거다.

엘첸은 두 가지 악조건을 모두 뛰어넘었다. 그는 이제 스페이스독 사이에서 원로 소리까지 듣는 인물이 되었다.

그렇게 온갖 산전수전 다 겪은 엘첸도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경은 꽤 충격적이었다.

「지원요청! 함교 상황실이다! 놈이 침입하려고 문을 부수는 중이다!」

「젠장! 보낼 인원이 없다고 합니다!」

「시,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선장님은? 팀장님은 어디 갔어!?」

「팀장님은 아까 죽었잖아! 정신 똑바로 차려!」

「히, 히히. 우린 다 죽었어. 히히히.」

「남은 탄약 있는 사람!」

「놈이 문을 부순다! 모두 전투 준비!」

「빌어먹을! 연막탄이다!」

「놈이 실내에 들어와…아아악!」

「으아아악!」

「살려…악!」

비명을 끝으로 상황실 컴퓨터에 저장된 기록 영상은 끝났다. 홀로그램이 꺼졌지만 자리에 있던 자들 중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배에 들어왔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식물들이 곳곳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은 차치하고,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혹여 습격으로 인해 전부 죽었다고 해도 벽이나 바닥에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핏자국이라든가 탄피라든가.

그런데 이 배에는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 연구선이 유령선이었던 것처럼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엘첸은 습격자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부하에게 명령했다. 기록 영상을 뒤져서 상황을 알아보라고 말이다.

그 결과물이 방금 본 이 영상이었다.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상대로 상황실에서 농성하던 이들은 잔혹한 해적인 그가 봐도 굉장히 처절해 보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몇 차례 전투가 있었는지 그들 중 멀쩡한 자가 거의 없었다. 어떤 자는 팔다리가 한 쪽씩 없었고, 어떤 자는 몸만 멀쩡하지 정신이 나갔다.

영상은 상황실의 문이 뚫리는 것으로 끝났다. 저들이 어떻게 됐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야. 더 앞에 있는 거로 틀어봐.”

부하가 그보다 전에 기록된 영상을 재생했다.

「여기는 상황실. B3. 정비가 완료되는대로 바로 합류하도록.」

「경로가 복잡하다. 모두 조심스럽게 움직이도록.」

화면 속에는 짧은 머리에 근육질의 몸을 가진 군인이 통신병을 통해 명령을 하고 있었다. 군인 옆에는 고급스러운 의복을 입고 있는 자들이 다수 서 있었다.

재생된 영상은 정체불명의 괴물을 처음 조우하고 수색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물이었다.

‘군인은 이 배의 방위를 담당하는 자일 거고. 저기 뒤에 유약하게 생긴 놈이 유성 사뮤엘인가 보군.’

시작은 평이했지만 분위기가 급변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통신기 너머로 병사들의 비명이 들려왔고, 상황실 내 수뇌부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보낸 병력이 전멸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어서 벌어진 일에 엘첸은 진정 놀랐다.

수뇌부들이 아옹다옹하는 사이, 정체불명의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머리를 친다고?’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놈은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를 치면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검은 별바다 위에 떠 있는 백색의 신전이 피로 물들었다.

놈을 간신히 멈춰 세운 자는 병사들을 지휘하던 군인이었다. 그가 품속에서 플라즈마 피스톨을 꺼내 괴물을 공격했다.

괴물은 군인이 가진 무기가 위협적이라는 것을 아는지 좀 전과 달리 몸을 사렸다. 놈은 숨어 있다가 소화기로 연막을 친 뒤, 군인에게 덤벼들었다.

‘역시 지능이 있는 놈이다.’

그것도 아주 높은 지능을 가진 고위험 생물.

유전자 개조 시술을 받으면서 다양한 생물을 접한 엘첸은 저 괴물이 이 우주에서 처음 발견된 생물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왜냐하면 저렇게 위험한 생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메가콥에서 알았다면 진작 잡아 유전자를 추출했을 테니까.

아무튼 괴물과 군인의 싸움은 괴물의 승리로 끝났다. 군인이 잘못했다기보다는 괴물의 운이 좋았다. 병사의 오발 사격은 군인에게 큰 피해를 입혔고, 이는 그의 패배와 직결되었다.

놈은 지원군이 올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군인을 죽이자마자 바로 물러났다.

“…빌어먹을.”

엘첸이 이 일을 맡기로 결심했을 때 제일 걱정했던 것은 노블캐피탈, 특히 유진 가문의 보복에 어떻게 대처할지였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그것보다 이 배에서 무사히 시신을 찾는 것부터 걱정해야 할 것 같다.

“야, 마늘.”

“네, 넵?”

엘첸은 상황실에 있는 마늘을 불렀다.

마늘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홀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엘첸이 부르고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는지 평소의 소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연락이 두절된 게 어제라고?”

“예, 옙. 원래 약속은 어제 만나는 것이었어요. 근데 배가 안 와서 저희가 하루 동안 찾은 거였죠.”

오는 동안 연구선의 인원 내역은 이미 파악했다. 연구선에 탑승한 인원은 222명, 그중 군인이 96명이다. 엘첸보고 이들을 전멸시키라고 하면 한나절 안에 전멸시킬 수 있다.

‘문제는 놈의 정체를 우리가 모른다는 건데.’

영상을 보고 그는 괴물의 강점이 뭔지 금방 파악했다. 놈은 부족한 무력을 지능과 다양한 능력들로 메꾸는 타입이다. 아무 정보 없이 녀석을 공격하는 것은 부하들보고 자살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물론 엘첸은 부하들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인력을 허투로 낭비하는 걸 즐기지는 않는다. 부하들이 죽더라도 놈의 정보를 최대한 끌어내고 죽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군.”

“네?”

“놈은 우리가 온 것을 모를 테니까.”

다들 해적질에 도가 튼 자들이었기에 최대한 조용히 연구선에 침입했다. 놈이 배 전체에 카메라라도 깔아 놓지 않은 이상 그들의 움직임을 인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먼저 놈을 찾아서 조진다. 시체는 그 뒤에 찾는다.”

엘첸이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때, 밖에 있던 부하 한 명이 그에게 달려왔다. 통신기를 들고 있는 그는 뭐에 그리 놀란 건지 얼굴이 창백했다.

“두, 두목! 큰일 났습니다!”

“뭐야?”

“전함의 엔진이 망가졌답니다!”

“뭐!”

그 말에 엘첸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멀쩡하던 엔진이 갑자기 망가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부하는 분노에 찬 두목을 상대로 안 좋은 일을 설명하자니 죽을 맛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숨겼다가 나중에 걸리면 머리통 깨지는 걸로 끝나지 않을게 분명하니까.

부하는 눈을 질끈 감고 얘기를 마저 끝냈다.

“저쪽에서 확인해 보니 엔진이 완전 녹아내려서 회생이 불가능하답니다!”

“이런 씹! 내놔!”

엘첸을 부하로부터 통신기를 뺏었다.

저쪽으로부터 상황의 자초지종을 들은 엘첸은 손에 쥐고 있던 통신기를 으그러트렸다.

“이런 니미럴 호로 새끼가!”

그것만으로 분노가 풀리지 않은 그는 상황실에 고정된 합금 의자를 잡아 종이를 찢듯 찢어 버렸다. 그 모습에 부하들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씨발, 마늘!”

“넵!”

“이 배 굴릴 수 있겠냐?”

“화, 확인해 봐야….”

“아이 씨발.”

“아, 아닙니다. 굴릴 수 있습니다!”

“너, 너, 그리고 너. 마늘을 도와. 나머지는 나랑 그 씨발놈의 괴물 새끼 잡으러 간다. 따라와.”

“넵!”

엘첸은 부하들을 이끌고 상황실을 나섰다.

그는 다짐했다. 놈을 잡으면 머리 가죽을 벗기는 것으로는 결코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

‘오. 화났다. 화났어.’

둥지로 돌아온 나는 그들의 움직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심장의 활동이 두 배로 빨라진 두목은 거친 발걸음으로 배 안을 싸돌아다녔다. 부하들도 그를 도와 열심히 따라다녔다.

‘흩어질 때까지 기다려볼까.’

연구선은 전함보다 구역이 복잡하고 시설도 많다. 게다가 적들은 이곳에 방금 왔다. 낯선 곳을 효율적으로 수색하려면 인원을 나눌 수밖에 없다.

저들은 모르겠지만 이 배에는 아직 생존자가 있다. 선장과 몇몇 수뇌부를 포함해 얼추 20명 정도가 여기저기 숨어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비를 베풀기 위해 남긴 것이 아니다.

‘메가콥은 해적을 아주 혐오하지.’

투항하는 자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적들을 공격할 거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을 때 나는 거기서 떨어지는 열매들을 주워 먹으면 된다.

‘그런데 저 사람은 걸리네.’

상황실에 남아 있는 인간. 평범함을 위장하고 있는 존재는 상황실 안을 돌아다니면서 뭔가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존재랑 같이 있는 자는 3명뿐. 공격하자면 지금이 적기였지만 나는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에이모프 특유의 감이 나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저 존재는 위험한 존재이니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혹시 저자가 아놀드가 말한 주인인가?’

시현 유진.

아놀드가 나랑 비슷하다고 말했던 자였다. 그는 무엇을 보고 나랑 비슷하다고 말한 걸까?

‘아마도 유전자를 개조한 인간 같은데.’

메가콥은 극한의 물질지상주의에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종족답게 생명 연장에 대한 집착이 대단히 심하다. 특히 피라미드 정상에 있는 노블캐피탈은 오래 생존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고 해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메가콥의 유전자 개량 기술이 발달한 것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 덕분이다. 헐크 뮤턴트는 그 부산물에 불과하고 말이다.

‘메가콥 플레이어도 최종 콘텐츠는 유전자 개조지.’

게임에서도 외형만 인간이지 말도 안 되는 수준까지 개조를 해댄 유저들도 적지 않았다. 초능력 개조를 통해 컬트만 사용할 수 있는 유물을 쓴다거나 우주선 없이 혼자 우주 공간에 날아다닌다거나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그렇다고 했을 때, 저 유진 가문의 종자도 인간의 한계를 넘은 수준으로 개조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키사라기는 별 볼일 없었지만 저 인간은 과연 어떨까?’

예상대로 유전자를 개조한 인간이면 지금의 나에게는 벅찬 상대다. 적이 나의 능력을 모르는 것처럼 나 또한 적이 무슨 능력을 가졌을지 알 수 없으니까. 저쪽이 플레이어들 수준으로 개조했다면 아성체로 진화해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을 거다.

‘유전자 개조 인간이라. 오랜만에 싸워 보네.’

이기기 어렵다고 했지 진다고는 하지 않았다.

메가콥 플레이어 중 랭커들도 족족 잡아먹었던 나다. 강적을 보니 위기감뿐만 아니라 흥미도 함께 솟는다.

‘일단 시현 유진으로 추정되는 저 존재는 보류. 먼저 해적부터 정리하자.’

괜히 싸우다가 지원이라도 오면 골치 아파진다. 나는 다시 해적들을 살펴봤다.

때마침 저들은 생존자들이 숨어 있는 선장실에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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