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2화 (23/400)

E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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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라면 신나게 떠들며 약탈을 즐길 시간. 하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뒤에서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고 있는 엘첸 때문이다.

삽시간에 소중한 전함을 잃은 엘첸은 어떻게든 화를 삭이고 이성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부하가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두, 두목.”

“뭐야?”

“생물 탐지기에 사람이 걸렸습니다. 선장실에 있다는 데요.”

“그런데?”

“그, 문이 막혀 있어서 뚫어야 할 것 같습니다.”

“씨발새끼야 넌 오줌 쌀 때도 나한테 허락 받고 싸냐?”

“아, 아닙니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부하는 동료들과 함께 문을 뚫을 준비를 했다.

철거 담당이 등에 메고 있던 플라즈마 커터를 풀어 조립했다. 그는 조립한 플라즈마 커터를 문 앞에 고정하고 기계에 연결된 단말기를 조작했다.

커터가 작동하며 녹색 광선을 쏘기 시작했다. 고도로 응축된 에너지 덩어리가 두께 50cm가 넘는 무거운 문에 구멍을 냈다.

자욱한 연기가 복도에 깔릴 때쯤 선장실의 문이 뚫렸다. 해적 한 명이 안을 살피려고 고개를 들이밀었는데 안쪽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켁!”

“이런 씹! 모두 숨어!”

머리에 구멍이 난 해적이 쓰러지는 것을 시작으로 선장실 안에서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해적들은 벽 뒤에 엄폐한 뒤 각자 들고 있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들이 반격하려는데 엘첸이 나섰다.

“비켜. 좆밥새끼들아.”

유전자 개조 덕분에 그의 피부는 플라즈마 런처에 직격하지 않는 이상 흠집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졌다. 탄환의 폭우 속에서 엘첸은 산책이라도 나온 듯 여유롭게 걸어갔다.

그가 녹아내린 문의 구멍을 잡고 힘을 주니 50cm 두께의 강철 문이 밀가루 반죽마냥 휘어졌다. 무시무시한 괴력을 선보인 그는 선장실 안에 들어가 학살을 시작했다.

“아아악!”

“괴, 괴물!”

엘첸의 주먹이 바람을 가를 때마다 승무원들은 고기 덩어리가 됐다. 부하들은 두목이 날뛰는 동안 적을 향해 엄호 사격을 가했다.

선장실에 있던 승무원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되었고, 딱 한 사람만 남았다. 엘첸이 끝장을 내기 위해 가까이 가자 그가 소리쳤다.

“자, 잠깐! 하, 항복하겠습니다!”

“항복? 우리 드바라 카르텔은 그런 거 안 받는데.”

“난 이 배의 의료팀장입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에 엘첸이 주먹에 힘을 뺐다.

“의사?”

“네, 네.”

“선장은 어디 가고 의사가 선장실에 있지?”

그러고 보니 그가 박살 낸 사람 중에 선장은 없었다.

“그 빌어먹을 개…크흠, 선장님께서는 탈출선을 타러가셨습니다.”

“탈출선? 선원들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무사히 빠져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의료팀장은 꽤 배신감이 들었는지 덜덜 떨면서도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자 엘첸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전함은 망가졌고, 시체의 행방을 알 사람은 탈출선을 타러 가 버렸다. 엘첸은 의료팀장을 죽여 버릴까 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어이. 똑똑한 놈.”

“예, 옙?”

“너 의사니까 시체가 어디 있는지 알겠네?”

“어, 그, 그렇습니다.”

“그 뭐냐 노블캐피탈 시체가 여기 있다고 하던데 어디 있어?”

“…….”

키사라기 유진의 시체가 어디 있는지는 의료팀장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말했다간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는 거짓말했다.

“괴, 괴물이 갖고 있습니다!”

“또 그 새끼야? 괴물 주제에 시체를 뭐하러 들고 있는데?”

“놈은 사람을 먹습니다.”

그 말은 엘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뜻이었다. 엘첸은 혀를 차고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야. 의사 양반께서 그러시는데 괴물이 시체를 갖고 있단다. 몰려다니면서 일일이 뒤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까 흩어져서 찾는다. 알겠냐?”

“넵!”

“그 새끼 보통내기가 아니니까 최소 6인 이상으로 다닐 것.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통신기로 보고할 것. 어기는 새끼는 내가 직접 대가리 깬다.”

“옙! 두목!”

“거기 너. 너는 나랑 같이 찾는다.”

“옙.”

부하들은 힘차게 대답하고 흩어졌다.

의료팀장은 뛰어가는 그들을 보며 이제라도 말해야 하나 싶었지만 엘첸이 무서워서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어이, 의사 양반.”

“예?”

“해적이 되고 싶다고 했지? 잘 됐군. 마침 의사가 부족했는데.”

“아, 아아 네.”

“혹시 유전자 개조 쪽에도 조예가 있나?”

“네? 그, 그럼요! 얼마든지 맡겨만 주십시오!”

엘첸이 계속 말을 거는 바람에 의료팀장이 말할 기회는 사라졌다. 덕분에 괴물이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다는 정보는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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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네.’

승무원들이 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사실 두목이 헐크 뮤턴트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헐크 뮤턴트는 육상전에서 전차나 이족보행병기를 파괴하는데 투입된다. 일반 승무원이 그런 괴물에게 흠집이라도 내면 다행일 거다.

두목은 승무원 중 한 사람만 빼놓고 나머지는 몰살시켰다. 여기서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대충 누가 살아남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의사겠지.’

스페이스독은 사망률이 높은 집단이다. 범죄자, 전쟁고아, 빈민, 은퇴한 군인, 용병 등등 온갖 사람들이 수시로 유입되고, 또 수시로 죽어 나간다. 회전율이 높은 집단이다 보니 의사 같은 존재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아무튼 의료팀장이 해적이 되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다. 어차피 이 배에 생존자를 남길 생각은 없으니까.

선장실에서의 접전이 생각보다 빠르게 종료됐으나, 다행히 적들은 내 예상대로 움직였다.

‘역시 흩어지는군.’

두목과 부하 한 명을 빼고 나머지 인원은 6인씩 그룹을 지어서 수색에 나섰다.

해적의 무장이 일괄적이지 않다 보니 다들 뭘 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점은 적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거다.

‘거의 정규군 수준인데.’

배에서 인섹트맨을 잡아먹을 때도 녀석은 끝까지 저항했었지. 연구선에 있는 병사들처럼 평균 이하가 아니라 정규군 수준으로 상정해도 좋으리라.

‘저쪽도 적당히 퍼진 것 같은데 슬슬 움직여볼까.’

둥지를 나서려는데 26호가 나를 따라왔다.

「애기야 같이 가.」

[즈즈(안에 있어)]

「싫어.」

[즈즈(왜?)]

「나도 도울 거야.」

아빠를 도우려는 아이처럼 구는 26호였다. 녀석을 들어다가 둥지 위에 올려놨지만,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따라왔다.

26호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기색이어서 나는 적들의 전력을 다시 계산해봤다.

‘두목하고 수상한 녀석을 제외하고는 어렵지 않아.’

해적하고는 질릴 정도로 많이 싸웠다. 적들의 무장 상태는 정확히 모르지만 뭘 들고 나와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앞으로 26호와 함께 다니려면 녀석도 전투 경험이 필요하다. 내가 지켜 주지 못할 순간이 올 수도 있으니까.

‘26호도 전투를 겪어봐야 해. 직접적인 도움은 안 되더라도 발목을 잡게 할 수는 없어.’

결정을 내린 나는 녀석의 동행을 허락했다.

[즈즈 즈 즈즈즈즈(적 무서우니까 조심)]

「응! 애기도 조심!」

녀석이 폴짝 뛰어서 내 어깨에 올라탔다. 이래나 저래나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어디부터 갈까.’

그룹의 수는 총 4개. 각각 목적지는 병기고, 식당, 화물칸, 실험실이다. 약탈로 먹고 사는 이들답게 목적지에서 그들이 뭘 원하는지가 확연히 보인다.

‘병기고 쪽부터 정리하자.’

병기고에 있는 무기는 둥지로부터 나온 줄기 때문에 대부분 고장이 났지만 멀쩡한 것도 있다. 놈들이 챙기면 귀찮아진다.

나는 26호와 함께 병기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기고에 가까워지니 놈들이 내 감각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6명의 해적들이 병기고에 진입하기 위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무슨 식물인데 문 위까지 자라지?”

“야, 플라즈마 커터 설치하려면 저것들 다 없애야 해.”

철거를 담당하는 녀석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이 모두 마체테를 뽑아 들었다.

저게 일반적인 식물이었다면 저들의 판단도 나쁘지 않았을 거다.

‘문제는 일반 식물이 아니라는 거지.’

상대의 정체를 모른다면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해야 했다. 그러지 않았기에 저들은 파멸의 구덩이에 제 발로 걸어가고 있었다.

“합!”

조직원이 마체테를 크게 휘둘러 포자를 베어냈다. 포자가 터지면서 안에 있던 점액이 밖으로 비산했다.

“씨발?! 이게 뭐야?”

“큭큭, 좆물 같이 생겼네.”

“너도 묻었어 병신아.”

점액질이 묻은 놈이 욕설을 내뱉었고, 옆에 있던 동료가 저속한 말을 지껄이며 낄낄댔다. 놈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고함과 비명으로 변하는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으, 으어어어억?!”

“내, 내 얼굴! 아아악!”

“무, 뭐야?”

얼굴에 산성 점액이 묻은 해적은 피부와 근육이 녹아내리면서 턱뼈가 떨어져 나갔고, 손가락에 신경독 점액이 묻은 동료는 온몸이 마비되어 쓰러졌다.

저들이 좋은 기회를 줬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먹도록 하자.

나는 육중해진 몸을 이끌고 녀석들을 향해 돌진했다.

“어? 놈이다!”

“괴물이 나타났다!”

“씨, 씨발? 우리가 본 거랑 다르게 생겼잖아!”

당연하지. 저들이 상황실에서 본 영상은 내가 육체 강화 타입을 얻기 전에 찍은 것이었으니까.

농성하는 사람들을 잡아먹느라 한 번 더 상황실에 가기도 했지만, 그때는 연막을 뿌려서 모습을 감췄었다.

다시 말해 적들은 나에 대해 모른다는 뜻. 그리고 정보가 부족한 상태로 전투에 임하는 것은 매우 큰 리스크다.

나는 근처에 서 있던 해적을 들이받았다.

“커헉!”

녀석이 입에서 내장조각이 섞인 피를 토했다. 배 안을 까보지 않아도 녀석의 속이 엉망진창이 됐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반쯤 시체가 된 놈을 꼬리로 쳐 날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사이 정신을 차린 해적들은 무기를 꺼내들어 내게 쏴댔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자들답게 행동이 빨랐다. 연구선의 병사들이었으면 기습에 넋이 나가서 아무 짓도 못했을 거다.

붉은색의 에너지 덩어리들이 화망(火網)을 이루어 내 키틴질 외피를 두들겼다.

‘타입을 얻기 전이었으면 위험했겠지.’

현재 나의 외피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두껍다. 짙은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으로 빛나는 외골격은 머리와 가슴뿐만 아니라 팔다리까지 보호하고 있다.

그야말로 우주시대에 재림한 풀 플레이트 아머의 기사, 그것이 나의 모습이다. 중무장한 기사의 랜스 차징이 중세의 탱크라고 불렸던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놈들의 공격을 무시하며 달렸다. 굉음과 함께 내 앞에 서 있던 해적은 그대로 핏덩어리로 화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는 위쪽 팔에서 촉수를 뽑았다. 톱날 촉수가 독니를 가진 독사처럼 뻗어져서 놈들의 허리를 휘감았다.

“크엑?!”

“아갸갹!”

그들의 허리가 톱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찢어지고 그 안에서 내장이 흘러내렸다.

“주, 죽어!”

동료들이 처절하게 죽어 나가는 꼴을 보고 해적 한 명이 정신줄을 놓고 내게 달려들었다.

놈의 종족은 인섹트맨. 신체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나니 근접전이라면 할 만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다만 세상일이 그렇듯 놈이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녀석이 휘두른 마체테는 내 꼬리에 의해 허무하게 두 동강이 났다. 나는 녀석을 끝장내려고 했지만, 어깨에 있던 26호가 녀석에게 뛰어들었다.

“꾸르르륵!”

갑자기 분홍색 반투명한 비눗방울 같은 게 자기 얼굴에 달라붙자 인섹트맨은 당황스러워 했다. 하지만 놈은 이어지는 엄청난 통증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26호가 녀석의 더듬이를 녹여 버렸기 때문이다.

녀석이 인섹트맨 특유의 뾰족한 손톱으로 26호를 쥐어뜯으려고 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26호가 모처럼 사냥 중인데 다치게 내버려 둘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꼬리로 녀석을 살짝 찔러 신경독을 주입시켰다. 녀석은 누가 옆에서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인섹트맨은 26호에게 맡기도록 하고 남은 한 명을 처리해야겠다. 철거를 담당하던 녀석은 나한테 덤벼드는 대신 통신기로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여, 여기 괴물이 나타났어!”

나는 놈의 뒤로 다가가 4개의 팔로 몸을 꽉 붙잡았다.

“히, 히익?! 빠, 빨리 지원을…컥”

놈이 말을 다 끝내기 전에 나는 턱을 크게 벌려 놈의 머리를 씹어 버렸다. 에이모프 특유의 무시무시한 치악력이 딱딱한 두개골을 으스러트리고 내용물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뭐야? 거기 어디야?」

나는 철거 담당의 뇌를 빨리 삼키고 목 안쪽의 특수 기관을 활성화시켰다.

“그륵, 케흠, 아무것도 아니야.”

「뭐?」

“내 착각이야. 여기 아무 일도 없어.”

「뭐 이 미친 새끼야? 착각할 일이 따로 있지 통신기로 장난질을 해?」

“미안.”

나는 적당히 대답하고 통신기를 껐다. 병기고 그룹은 이걸로 정리되었다.

‘통신기는 챙겨둘까.’

교란 전술로 써먹기 좋을 것 같으니까. 설마 해적인데 관등성명 같은 걸 요구하지는 않겠지.

통신기를 들고 26호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아직 식사 중이었다. 나랑 싸울 때도 그랬지만 인섹트맨의 강한 생명력은 득보다는 실이 더 큰 것 같았다. 죽지 못하고 움찔거리며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다 안쓰러워질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살려줄 생각은 없지만.’

26호가 녀석을 끝장낼 때까지 나는 다른 시체들을 처리해야겠다. 시체들을 하나둘씩 처리하는데 그중에 스타유니언 출신도 있었다. 내가 촉수로 허리를 잘라버린 자 중 하나였다.

“끄, 끄윽, 사, 살려 줘….”

사이보그답게 그는 상하체가 분리되는 부상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그는 애타게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스타유니언은 인간의 나약한 육신은 기계로 대체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이보그 종족이다. 인간 상태에서 유전자를 개량해서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하는 메가콥과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나쁜 놈들인 건 똑같지만.’

스타유니언은 그들 말고 다른 종족에게도 자기들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 하는 놈들이다. 무슨 말이냐면 놈들은 포로로 잡은 타 종족을 기계로 개조한다. 포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내 앞의 해적도 개조된 인간이라 그런지 내장 사이에 섞여 있는 기계 부품들이 보였다.

나는 살려달라며 울먹거리는 그의 머리를 짓밟아 부쉈다. 인공 뇌가 으스러지며 스파크가 튀었다.

‘기계지만 먹어도 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눈에 보이는 부품들을 따로 빼서 살점만 남기고 입 속에 넣었다. 누가 반은 기계 아니랄까 봐 녀석의 맛에서는 스파크가 튀는 느낌의 신맛과 기름의 텁텁한 맛이 났다.

‘…뭐 개성적인 맛이네.’

생긴 것에 비하면 먹을 만했다. 나는 사이보그의 시체를 마저 집어먹었다.

손가락에 묻은 석유가 찜찜해 손을 털고 있는데 반투명 텍스트 박스가 나타났다.

「‘유체->아성체’ 진화 조건 중 일부가 충족되었습니다.

제1지성체 10/10(달성완료) 제2지성체 1/10(미달성)」

‘오?’

기대하지 않았는데 반가운 소식이었다. 설마 했는데 사이보그도 게임과 마찬가지로 별개의 종족 취급이었다.

‘이 배에 12명이 있었지?’

연구선 안에 있는 사이보그를 다 잡아먹으면 바로 다음 단계로 진화가 가능하다.

이렇게 빨리 아성체로 진화할 길이 열릴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애기야 뭐가 그리 신나?」

[즈즈즈 즈즈(그런 게 있어)]

식사를 마친 26호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녀석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어깨 위에 올렸다.

누군가는 우주의 재난이라고 부르는 스페이스독.

그런 두려운 존재가 나에게는 선물을 잔뜩 싸 들고 온 산타할아버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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