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3화 (24/400)

Ep. 23

“끄갹!”

해적 한 명의 목이 내 손에 의해 뽑혔다.

척추의 일부까지 딸려 나온 놈의 머리에서 갈색 피가 줄줄 흐른다.

놈의 종족은 록워커. 암석으로 가득한 행성에서 돌과 금속을 먹고 사는 지성체 종족이다.

설정만 봤을 때는 규소 기반 생물처럼 보여서 SF 매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일반 인간형 생물과 큰 차이가 없다.

피부가 돌처럼 거칠고 단단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안에 피가 흐르는 것도 전부 일반 생물과 똑같다.

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록워커의 머리로 옆에 있던 사이보그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수박 깨기 놀이에 당한 수박처럼 놈의 머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걸로 두 팀 째.’

이번 타깃은 실험실로 향했던 그룹이었다.

병기고에 갔던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방심한 상태로 실험실에 진입했다. 그 결과 내가 왔을 때는 3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3명은 산성 점액에 녹아내려 이미 고인이 된 상태.

‘쩝. 둘이나 잃었네.’

하반신만 남은 사이보그들을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혹시나 해서 다리 한 짝을 떼서 먹어 봤지만 진화 조건으로는 카운트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텍스트 박스는 온전히 내가 죽인 대상만 인정하는 듯했다.

마찬가지로 포식 효과 또한 뜨지 않았다. 내가 죽이지 않은 시체는 포식 효과가 뜰 확률이 굉장히 낮다. 거의 샘플하고 비슷한 수준이니 왠만해서는 안 뜬다고 봐야겠지.

나는 입안에 씹히는 철골을 퉤 하고 뱉었다.

게임에서 에이모프는 기계도 씹어 먹을 수 있지만 현실로 되니까 적응이 안 된다. 닭 다리를 뼈까지 씹는 기분이랄까.

“커걱, 컥, 커어어억….”

옆에서 26호가 사이보그 한 명을 죽이고 있다.

녀석은 감을 잡았는지 나의 도움 없이도 능숙하게 사냥에 성공했다. 사이보그가 녀석을 뜯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26호는 먹이가 질식하도록 식도까지 파고든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이보그라고 해도 베이스는 어디까지나 인간. 숨을 못 쉬면 죽는다.

나는 사이보그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꼬리로 심장을 파괴했다. 내가 먹이를 죽이자 26호가 식도에서 빠져나와 내게 파장을 쐈다.

「애기야 배고파?」

[즈즈 즈즈즈 즈즈즈(이렇게 생긴 애들은 내가 죽여야 해)]

「응.」

[즈즈즈즈(대신 저거 먹어)]

「알았어. 맛있게 먹어.」

26호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이보그는 내가 죽이고 먹어야 카운트가 된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나는 26호에게 록워커를 주고 사이보그 시체를 집어 들었다.

막 입을 대려는데, 전투형 팔로 들고 있던 통신기가 울렸다.

「숨쉬는 새끼들. 보고해라.」

「사, 상황실입니다. 아, 아직 작업 중입니다!」

「화물칸인데 이 새끼들 좆나 부자인 것 같습니다. 가져갈 물건이 개같이 많아요.」

「두목, 여기 식당 완전 좆됐는데요? 먹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병기고 수색 중입니다.”

「실험실로 간 새끼들은 대답 안 하냐?」

병기고에 있던 자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대답한 뒤, 재빨리 사이보그 시신을 한 입 뜯었다. 목 안에 있는 작은 기관의 구조가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변이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변이를 마친 나는 시체 옆에 놓여 있던 통신기에 대고 대답했다.

“실험실 이상 없습니다.”

「응? 너 통신 담당 아니잖아. 왜 네가 들고 있어?」

“어, 그게 통신 담당은 지금 철거 준비 중입니다.”

「…그래? 알았어. 뚝.」

두목은 미심쩍은 목소리로 통신을 종료했다.

누가 두목 아니랄까봐 제법 영리하다. 해적 주제에 이렇게까지 체계적으로 부하를 굴리다니. 보통 헐크 뮤턴트는 유전자 개조의 부작용으로 지능이 떨어지는데 이 두목은 다른 것 같다.

‘내가 모르는 기술로 개조한 걸지도.’

똑똑한 헐크 뮤턴트라. 게임에서 본 적 없는 존재다.

‘그래 봐야 원본이 어디 가겠냐만. 혹시 모르니까 주의해 두자.’

‘포식자 감각’에 이어서 지능 있는 헐크 뮤턴트. 내가 알던 게임과 다른 점이 점점 늘어간다. 긴장되기도 하지만 흥미도 생긴다.

‘그러고 보니 26호도 있네.’

열심히 록워커의 내장을 파먹고 있는 저 분홍색 버블아메바도 게임과 많이 다른 존재다. 마스코트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게임에서는 저렇게 똑똑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버블아메바랑 같이 다니다니. 커뮤니티에서 깜짝 놀라겠네.’

에이모프 자체가 솔로 플레잉에 특화된 존재이기도 하지만 나 자체도 그다지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말이다.

그렇게 잡생각을 하면서 나는 사이보그 시체들을 마저 해치웠다.

새로 죽인 사이보그들의 고기는 레몬 맛이었다.

-

‘수상한데.’

엘첸은 통신기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헐크 뮤턴트가 되기 전 그는 군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패배한 군인. 그는 전투에서 졌다는 이유로 헐크 뮤턴트가 되는 형벌을 받았다.

에저튼 가문에서 그를 데려가지 않았다면 그는 지성 없는 괴물이 된 채 전장을 떠돌다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군인 출신답게 보고 체계 하나만큼은 신경을 썼다.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부하가 가끔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우주의 먼지가 됐다. 몇 번 그러고 난 뒤부터는 보고 체계가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실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엘첸은 왠지 불안했다. 그의 유전자에 섞인 야생 동물들의 피 덕분일까. 참혹한 전장에서 수십 번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왔던 야생의 감이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방금의 통신은 실수가 아닌 함정이라고.

마음을 정한 엘첸은 다시 통신기를 들었다. 수색 중이라고 답한 병기고 쪽 일행을 제외하고 식당과 화물칸으로 갔던 조직원들에게 보내는 통신이었다.

“두목이다. 실험실에 간 놈들이 뭔가 수상해. 모두 준비해서 실험실에 가라.”

「네? 알겠습니다.」

「옙. 두목.」

엘첸은 통신을 종료한 뒤, 의료팀장을 불렀다.

“의사 양반, 이 배에 탈출선하고 엔진실이 어디 있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엘첸은 신중한 자였다. 그의 부하들이 괴물 따위에게 질 리 없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었다. 전장에서 하던 대로 그는 후퇴할 길부터 먼저 찾았다.

‘감히 내 전함을 건드린 새끼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탈출 루트를 확보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엘첸은 놈을 죽일 수 있도록 엔진실에 폭탄을 깔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함선이 핵융합 엔진으로 움직이는 만큼 작은 폭탄으로도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엘첸이 무사히 탈출한 뒤, 원격 조종으로 폭탄을 터뜨리면 괴물은 꼼짝없이 죽는다. 물론 배 안에 남아 있는 부하들도 싹 다 죽겠지만 해적은 언제나 지원자가 넘쳐난다. 부하야 새로 구하면 된다.

‘마늘하고 의사 양반 둘만 데려가면 되겠지.’

자기 두목이 토사구팽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부하는 부지런히 의료팀장을 감시하고 있었다.

셋이 탈출선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도중, 엘첸이 의료팀장을 불렀다.

“의사 양반.”

“예?”

“그쪽은 괴물하고 싸워 봐서 알겠지? 놈한테 약점 같은 거 없어?”

“없습니다.”

의료팀장의 즉답에 엘첸은 눈썹을 찌푸렸다. 두목의 반응이 좋지 않아 의료팀장은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었다.

‘날 무서워하는 겁쟁이가 이렇게 반응한다고?’

의료팀장은 모르겠지만 엘첸은 그가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엘첸이 싫어하는 답을 내놓았다.

그 말은 의료팀장의 입장에서는 괴물이 엘첸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는 것.

엘첸의 정신이 얼음장처럼 가라앉았다. 그는 질문을 바꿔 다시 물었다.

“그럼 놈의 강점이나 특징은 뭐야?”

엘첸이 화를 내지 않자 의료팀장은 조심스럽게 담아두고 있던 생각을 꺼냈다.

“노, 놈은 유령 같은 존재입니다.”

“유령?”

“예. 환한 불빛 아래에서도 사람을 잡아먹고 시체도 남기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저 누가 사라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릴 뿐이었죠.”

“우주선에 유령이 어딨어? 네놈들이 멍청해서 그런 거 아냐?”

“이, 이 함선에는 각종 보안설비들이 있습니다. 저희도 다 파악 못할 정도로 복잡한데 놈은 어떻게 알았는지 이리저리 피해 다니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게 유령이 아니면 뭡니까?”

그 말에 엘첸은 침묵했다. 의료팀장이 말하는 분위기를 봤을 때, 그는 진실만 말하고 있었다.

‘유령이라니. 무슨 개 같은 소리야?’

그렇다면 이 배가 무슨 유령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우주시대에 유령선이라니. 우습지 않은 농담이었다.

엘첸은 잠깐 고민하다가 통신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부하들을 다 모아서 행동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작전을 변경하려고 통신기를 켰을 때.

그때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정체불명의 적은 이미 공세를 개시했다.

-

‘똑똑한 놈.’

높은 지위의 인간들도 속아 넘어간 흉내 내기인데 엘첸은 속지 않았다.

지성체라기 보다는 똑똑한 짐승에 가까운 헐크 뮤턴트라 그런 걸까. 야생의 감으로 함정인 것을 눈치챘나 보다.

‘어차피 늦었어.’

우리는 실험실을 나와 냉각실의 둥지로 돌아온 뒤였으니까.

현재 내 보조기관이 함선에 깔린 나의 영역을 관조하고 있다. 해적들이 투덜거리며 실험실로 이동하는 것이 훤히 보인다.

이번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적들을 공략해볼 생각이다.

나는 둥지에 배를 깔고 누운 뒤, 눈을 감았다. 둥지에 보조기관이 닿자 육체에 한정되어 있던 감각이 서서히 넓어졌다.

피가 혈관을 타고 흐르듯 나의 인지영역이 가지들을 타고 확대된다. 냉각실에서 시작된 감각의 흐름이 의식의 물살을 타고 복도, 다른 방들을 덮어간다.

흔히 마약을 한 자들은 육체의 영역에서 벗어나 초월적인 무언가를 느낀다고들 한다. 지금 느끼는 감각이 그렇지 않을까?

내가 숨을 쉴 때마다 가지들도 숨을 쉬듯 부르르 떨렸다. 가지들이 감싸고 있는 금속판으로부터 느껴지는 차가움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몸에 오한이 들었다.

마침내 보조기관이 연결을 완료했다.

적들은 내 뱃속 안에 돌아다니는 것이 다름없다. 나는 실험실에 가는 길에 있는 신경독 능력을 갖춘 포자들에게 명령했다.

활성화하라고.

뇌에서 몸 안의 신경들에게 명령을 내리듯 보조기관이 나의 명령을 가지들에게 전달했다.

포자들이 명령을 받들어 점액을 일제히 토해냈다.

천장에서, 벽에서, 방에서, 복도에서, 바닥에서, 가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 생물을 마비시키는 극독이 선내 전체에서 쏟아져 내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해적들이 당황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들은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포자를 파괴하고 가지들을 베어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의 육신은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나무토막이 되어 쓰러졌다. 눈치가 빠른 놈들은 포자가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재빨리 피했지만 대다수가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성공이네.’

실패할 줄 알았는데. 둥지에 링크해서 조종하는 능력은 아성체가 된 뒤에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다.

‘게임에서는 말이지.’

현실이라서 혹시 가능할까 싶어서 시도해봤는데 무사히 성공했다.

물론 무턱대고 도박을 건 것은 아니었다. 둥지가 아직 작다는 점, 내가 이미 가 본 곳들이었기에 익숙했다는 점, 포자수가 적었다는 점 등 성공할 요인들이 충분했기에 시도했다. 그리고 내 예상은 훌륭하게 맞아떨어졌다.

‘빠져나간 녀석들은 총 5명.’

반절 이상이 포자의 습격에 당했다. 빠져나가지 못한 7명은 꼼짝도 못하고 바닥에 누워서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다.

나는 둥지에서 몸을 일으켰다. 턱 아래의 가느다란 촉수가 둥지에서 떨어지자 일순간 탈력감이 밀려왔다.

저 무한한 공간을 자유롭게 거니는 영혼이 다시 육신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속박되듯이 말이다.

탈력감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둥지 조종 때문에 소모된 에너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강한 굶주림이 나의 식욕을 자극했다.

[즈즈즈즈 즈즈(배고프니 밥 먹으러 가자)]

「응.」

나는 26호를 어깨에 올리고 실험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쓰러져 있는 해적들이 보였다. 가망 없어 보이는 동료는 가차 없이 버리는 게 딱 해적다웠다.

배고픈데 싸우지 않아도 되니 나야 좋지만 말이다.

나는 쓰러져 있는 해적들을 게걸스럽게 물어뜯었다. 내 이빨이 박힐 때마다 저들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은 마치 갓 잡은 물고기가 펄떡 뛰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저들은 알까? 저항할수록 내 입에 흐르는 침의 양이 늘어나기만 한다는 것을. 내 이빨이 사정 없이 적의 살점을 뜯어냈고, 4개의 팔은 그들의 뼈를 부수고 내장을 끄집어냈다.

워낙 배가 고파서 그런지 기계 부품이 목구멍을 통과해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복도에서 벌어진 소리 없는 연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제 둘 남았어.’

7명 중 5명이 사이보그였다. 지금까지 8명의 사이보그를 잡아먹었으니 앞으로 진화까지 필요한 수는 2명. 아성체로의 진화가 멀지 않았다.

사이보그 한 명의 손가락뼈를 이쑤시개 삼아 이를 쑤시며 도망친 해적들의 흔적을 따라갔다.

그들은 실험실 말고 다른 곳에 숨어 있었다. 승무원들이 자주 이용하던 체력단련실이었다.

‘하필 도망쳐도 이곳으로 도망을 쳤네.’

체력단련실은 넓은 공간이다 보니 사격각이 잘 나올 것이라 생각해 여기를 택한 것이겠지.

문제는 이미 죽은 승무원들도 그렇게 행동했다는 거지만. 평소 전우와 함께 친교를 다지던 곳은 나에 의해 도살장이 된 지 오래다.

부서진 문 안쪽으로부터 겁에 질린 자들이 내뿜는 페로몬과 숨결이 흘러나온다. 들어가자마자 벽과 바닥이 피범벅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게 분명하다.

저 안에서 죽은 사람만 20명이 넘는다. 5명을 더 늘린다고 달라지지 않겠지.

나는 들고 있던 손가락뼈를 어깨 위에 있던 26호에게 건네주고 단련실 내부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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