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4
체력단련실에 진입하자마자 레이저가 날아왔다.
레이저로는 나를 해칠 수 없다. 빔을 맞으며 유유히 걸어오는 나를 보며 해적이 욕설을 퍼부었다.
“이, 이런 니미럴! 씨발 왜 안 통하는 거야!”
아쉽게도 욕쟁이는 사이보그가 아니었다. 기계로 개조한 부분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니 메가콥 출신의 평범한 인간이었다.
놈은 쓸모없는 레이저 소총을 버렸다. 대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짜리몽땅한 막대기 하나를 뽑아 들었다. 스위치를 누르니 막대기에서 칼날이 튀어나와 한 자루의 검으로 변했다.
그걸 본 나는 걸음을 멈췄다.
‘소닉 블레이드네.’
소닉 블레이드는 초진동 기술이 접목된 무기다. 휴대하기 편하고 절삭력이 뛰어나 메가콥 장교들이 애용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놈은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패기롭게 외쳤다.
“씨발 새끼야! 내가 씨발, 어? 드바라 카르텔의 부선장이야!”
좀 전의 겁먹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역시 해적답다고 할까. 행동에서부터 생각이 짧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소닉 블레이드라면 내 외피를 벨 수 있으나 그것도 나를 때릴 수 있을 때나 해당하는 말이다. 나를 건드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다.
그가 무예에 통달한 사람이면 모를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내 보조기관이 말하고 있다. 놈은 성인병에 시달리기 시작하는 평범한 30대라고. 그의 몸속에는 약탈한 희생자들로부터 뽑아낸 피와 지방만이 가득했다.
나는 부선장에게 뛰어들었다. 놈이 화들짝 놀라며 소닉 블레이드로 내 배를 찔렀다. 동작이 미숙한 것을 보니 안 다뤄본 티가 났다.
‘소닉 블레이드는 내구성이 약해 찌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지.’
놈의 바보 같은 공격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다. 나는 가볍게 피하고 발로 놈의 복부를 걷어찼다. 놈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커헉! 씨, 씨발!”
내장이 파열되었을 텐데 녀석은 손에 든 무기를 놓지 않았다. 놈은 독기 어린 눈으로 날 노려봤다.
‘의외네.’
허세나 부리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제법 끈질기다. 종족을 막론하고 대부분이 치명상을 입으면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이 정도 끈기를 가진 먹이는 아놀드 이후 처음이다.
‘고통 없이 끝내줄까.’
나는 꼬리를 휘둘러 부선장의 손등을 때렸다.
놈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소닉 블레이드를 놓쳤다. 꼬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휘어져서 그의 눈을 관통했다. 꼬리 끝 가시에 의해 놈은 뇌가 파괴되어 더 이상 통증을 느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5명 중 한 명이 죽었다. 이제 남은 해적은 4명. 남은 자들은 겁쟁이인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탈의실 쪽에 숨어 있겠지.
나는 여유롭게 인간의 시신을 뜯었다.
다 먹어 치우고 남은 발목을 입에 넣는 순간, 내 앞에 반투명 텍스트 박스가 나타났다.
「포식 효과 발동! ‘인간성’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인간’의 생물 특성 중 ‘인간성’을 탈취.」
「‘인간성’을 적용하시겠습니까?」
‘인간성?’
한 번도 본 적 없는 특성에 나는 당황했다.
‘인간성이라니. 이게 무슨 특성이지?’
이름만 봐서는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인간적인 감정을 말하는 것인지, 이성까지 전반을 포괄하는 개념인지, 아니면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특질을 의미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받아야 하나?’
스페이스 서바이벌에는 수천 가지가 넘는 특성들이 존재하지만 모든 특성이 보유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헐크 뮤턴트의 광화(狂化) 특성을 보면 육체 능력을 두 배로 강화시켜 주지만,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거나, 혹은 단점이 장점보다 더 큰 특성도 존재한다.
내 경험상 애매모호한 이름을 가진 특성들은 대개 지뢰였다.
‘특성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긴 한데….’
나는 특성의 성격을 유추해내기 위해 내가 죽였던 해적을 떠올렸다. 그에게는 분명 다른 먹이와는 다른 면모가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정신.’
인간성이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불굴의 마음가짐을 말하는 건가?
아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단정 짓기는 이르다.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는 인간찬가와는 거리가 있는 세계. 온갖 악랄한 존재들이 득실거리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사람을 강제로 잡아다가 기계로 만드는 스타유니언, 유전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개조해 괴물로 만드는 메가콥이 인류 문명을 이끄는 세계관이다. 그런 곳에 인간의 가능성 운운하는 특성이 있을 리 없다.
‘어떻게 할까?’
나는 생각을 좁혀보기로 했다. 인간성이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인 물음보다는 단순하게 접근해야 한다. 포식 효과가 발동했다면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특성일 테니까.
‘먼저 얻었을 때의 장점부터 보자.’
아마 인간성은 정신에 영향을 주는 특성일 거다. 그렇다면 어떤 효과를 가졌든 간에 초능력 강화 타입으로 카운트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초능력 관련 특성은 정신이나 염력 같은 것과 관련이 많으니까. 초능력 관련 특성은 확보하기 쉽지 않으므로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이득이다.
‘그렇다면 단점은….’
처음 보는 특성이기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모른다는 것. 만약 인간적인 감정, 가령 윤리나 배려심 같은 것을 강화시켜 주는 특성이면 내게 마이너스다.
나는 다른 생물, 지성체들을 먹어야만 진화가 가능한 에이모프다. 여기서 갑자기 사람 고기를 못 먹게 되면 큰일이다. 성장 동력이 막히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생존 자체에 큰 위험 요소가 된다.
‘리스크가 너무 커. 거절하자.’
특성 획득을 취소하려고 하는 순간, 턱 끝이 징 하고 울렸다.
보조기관이 내게 경고하고 있다. 선택을 재고하라고 말이다.
‘포식자 감각?’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포식자 감각이 발동되었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기다려도 미래 예지 효과는 발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경고는 전적으로 보조기관, 혹은 에이모프에 내제된 본능이 내린 판단이라는 것. 인간인 내가 필요 없다고 하는데 에이모프가 ‘인간성’이 중요하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러나 보조기관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다. 게임에서는 내가 전문가가 맞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아직 미숙하다. 에이모프의 육신이 나를 보조하지 않았다면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이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물었지만 보조기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턱 아래의 촉수는 어떠한 반응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받느냐, 마느냐.’
수락을 유보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수락하지 않고 10분이 지나면 취소로 간주되고 특성이 사라진다. 현실이니까 다르게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굳이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받자.’
고민 끝에 나는 인간성 특성을 얻기로 결정했다.
초능력 관련 타입의 카운트를 채우려는 의도도 있지만, 보조기관이 특별히 내게 권한 특성이다 보니 무시하기 힘들었다. 여태까지 요 작은 촉수가 내게 위험한 선택을 강요한 적은 없으니까. 이번에도 믿어보기로 했다.
수락하자 반투명 텍스트창이 빛을 내뿜고 사라졌다.
그리고 내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뭔가 머리에서 이상한 게 솟아난다거나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죄책감이 밀려온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몸, 내 정신은 평소와 똑같았다.
나는 텍스트창을 다시 활성화시켰다.
「현재 특성화 가능한 타입은 1가지입니다.」
「초능력 강화 타입(3/6)」
예상대로 인간성은 정신 관련 특성으로 분류되었다.
이제 내가 가진 초능력 관련 특성은 포식자 감각, 초능력 기관, 인간성 이렇게 3개가 된다. 앞으로 초능력 관련 특성 3개만 더 모으면 타입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인간성’ 특성의 세부항목을 열람했다.
「인간성: 선택의 순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추신: 당신의 선택에 가치가 있기를.」
‘…애매해.’
설명을 읽어봐도 무슨 효과인지 이해 불가였다. 더 이상 고민해 봐야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나는 텍스트창을 해제했다.
‘타입 조건을 채웠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26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은 기분이 안 좋은지 색깔이 이상했다.
「애기야 괜찮아?」
[즈즈(왜 그래?)]
「움직이지 않아서 이상해.」
내가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걱정했나 보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을 담아 26호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내가 멀쩡해진 것에 안심했는지 원래의 분홍색으로 돌아왔다.
‘누가 누구를 걱정한다는 건지.’
나는 해적이 들고 있던 소닉 블레이드를 챙긴 뒤, 26호를 어깨 위에 올렸다.
체력단련실의 곳곳마다 해적들이 공포에 떨면서 남긴 채취가 아른거리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을 놓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
해적은 탈의실의 라커 속에 숨어서 덜덜 떨고 있었다.
처음에는 레이저 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몇 번 들리고 조용해졌다. 부선장이 해치운 줄 알고 안심했는데 아니었다. 부선장은 실패했고 놈은 살아 있었다.
조금 전 샤워실에 숨은 다른 동료들의 비명이 들렸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그들의 외침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해적은 침을 꿀꺽 삼키고 레이저 소총을 꽉 붙들었다. 그는 왜 자신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해적이지만 그는 남들보다 더 사악하거나 악랄한 짓거리를 한 적은 없었다. 부자의 머리 가죽을 벗기거나 여자들을 범하고 죽이는 짓은 다른 해적들도 다 하는 일. 그는 해적답게 살았을 뿐이었다.
‘수령 주바카여 제발 절 굽어 살피소서….’
해적이 된 이후로 그는 스타유니언 대수령의 이름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는 드바라 카르텔의 해적이지 더 이상 스타유니언의 사이보그가 아니니까. 하지만 죽을 위기가 닥쳐오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젊은 시절에 배웠던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것 같은 발소리가 탈의실의 정적을 깨부쉈다.
문이 닫히고 기분 나쁜 정적이 탈의실에 맴돈다. 식은땀이 등을 적시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 공포가 그의 가슴에 스며든다.
놈은 탈의실 안에 있다. 해적이 튀어나올 것을 기다리는 걸까.
분명 생물일 텐데도 놈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그 비인간적인 모습에 사이보그의 두려움은 한층 더 깊어졌다.
기다려도 해적이 나오지 않자 놈이 움직였다. 쿵, 쿵 하고 발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놈이 라커를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끼익 쾅
해적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놈이 그가 숨은 라커의 옆 칸에 도달했다.
라커의 철망 사이로 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의 외피, 동료들의 피로 이빨을 물들인 야수가 그의 앞에 있다. 놈의 몸에서 짙은 피 냄새가 났다.
놈은 그 앞에서 잠깐 서성이다가 사라졌다.
역한 피 냄새가 멀어지자 사이보그 해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번 약탈이 끝나면 몰래 도망쳐야겠다고. 두목 엘첸이 그를 가만두지 않겠지만 우주는 넓다. 스타유니언의 영역으로 도망치면 제아무리 드바라 카르텔이라도 어찌할 수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굉음이 들리고 그는 복부로부터 강한 통증을 느꼈다.
고개를 숙이니 긴 창이 라커의 문을 뚫고 그의 배를 꿰뚫은 것이 보였다. 창, 아니 놈의 꼬리가 그의 배에서 뽑히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4개의 손이 문을 잡아 뜯어냈다. 놈의 입이 쩍 벌어지는 광경을 끝으로 그의 기억은 끊겼다.
-
‘어딜 숨으려고.’
감히 나의 감각을 속이려고 한 사이보그는 내 전투용 팔들에 의해 사지가 분리되어 죽었다. 놈의 고기를 먹은 것으로 나는 진화 조건을 거의 완수했다.
‘이제 한 명만 더 잡아먹으면 된다.’
이 배에 들어온 12명의 사이보그 중 남은 자는 1명. 둥지에서 확인했을 때는 그는 함교 상황실에 있었다.
‘하필 상황실이야.’
상황실에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자가 있다. 유진 가문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 개조 인간 말이다.
‘그럼 두목부터 정리하고 갈까.’
26호와 함께 체력단련실을 나오는데 내 보조기관이 급히 내게 위험신호를 쐈다. 나는 서둘러 땅을 박차 천장으로 뛰어올랐다.
거의 동시에 거대한 주먹이 내가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합금판이 플라즈마 에너지에 맞은 것처럼 구멍이 뚫렸다.
“여기 있었구나! 이 씹새끼!”
어마어마한 힘을 선보인 상대의 정체는 해적들의 두목 헐크 뮤턴트였다.
덩치가 클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확실히 위용이 대단했다.
3m가 넘는 키에 지방 하나 없이 전부 근육으로 이루어진 듯한 거구, 야생 동물 유전자가 섞여서 목 부근에 있는 붉은색 갈기까지. 그의 모습은 부처를 수호하는 사천왕처럼 무시무시했다.
“씨발 새끼가 내 부하들을 죽여?”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두목의 뒤에는 부하와 의료팀장이 있었다. 생존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해적 쪽에 붙었을 줄이야.
‘마침 잘됐네.’
어차피 두목을 먼저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저쪽에서 먼저 찾아올 줄이야.
헐크 뮤턴트라면 유용한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다. 까다로운 상대를 잡으러가기 전에 유전자 정수를 보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천장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즈즈즈즈(잠깐 숨어 있어)]
「무서움! 위험해!」
[즈즈즈 즈즈즈즈(걱정하지 마.)]
「애기야 조심해!」
나를 걱정하는 26호를 달랜 뒤, 멀리 보냈다. 녀석은 보호색을 이용해 벽과 동화되어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되는지 녀석으로부터 불안해 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움츠러든 상태로 나를 걱정하는 녀석을 보니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에이모프의 몸 구조로는 웃을 수가 없다.
26호가 숨은 것을 확인한 나는 몸을 돌려 두목을 바라봤다.
현재 내 키가 1m 50cm를 조금 넘는데 상대의 키는 대략 내 키의 두 배 정도 될 것 같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완전히 열세라고 생각하겠지.
‘어디 개량된 헐크 뮤턴트라. 실력 좀 볼까.’
나는 유전자 정수의 보고(寶庫)나 다름없는 헐크 뮤턴트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