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1화 (32/400)

Ep. 31

‘게임에서도 지겹도록 왔었는데 현실에서도 와보네.’

현재 나는 항만 지구의 어두운 골목길에 있다. 카메라도 없고, 길 자체가 건물들에 가려져 빛이 안 들어오는 곳이다.

품에 안겨 있는 26호가 답답하다는 파장을 쐈다.

「답답해.」

[즈즈즈즈(조금만 참아줘)]

「응.」

쓰다듬어서 녀석을 진정시킨 나는 골목길 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돔 형태의 초대형 스크린으로부터 인공적으로 조성된 밤하늘 아래, 광고판들이 만들어내는 빛들이 어지럽게 난무한다.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나는 이 도시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안다.

‘병든 곳이지.’

메가콥의 수도 역할을 하는 ‘지구’만큼은 아니지만 이곳도 만만치 않은 인외마경이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자가 수두룩하고, 향락에 미쳐서 끔찍한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놈들이 널려 있다.

관광이나 일자리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유입도 많지만 죽어서 나가는 자도 많은 곳. 그곳이 바로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다.

‘그래서 여길 택한 것도 있지만. 그럼 어디부터 가 볼까.’

이 우주 도시는 4개의 지구와 중앙에 있는 행정 지구 이렇게 총 5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동쪽의 항만 지구, 서쪽의 주거 지구, 남쪽의 유흥 지구, 북쪽의 상업 지구, 마지막으로 모든 지구를 총괄하는 중앙 행정 지구가 있다.

이 중 치안이 제일 불안정한 곳은 2곳. 유흥 지구와 주거 지구다.

유흥 지구에는 메가콥의 시민들이 ‘고용’된 노예에게 비밀스러운 욕망을 푸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현실에서 이런 종류의 유흥가가 높으신 분들의 사정으로 감시가 뜸한 것처럼 이곳도 마찬가지다. 감시카메라는 거의 없지만, 대신 전투형 안드로이드가 돌아다니며 범죄자를 잡아낸다.

안드로이드는 까다로운 적이니 지금 당장 유흥 지구에 갈 수는 없다. 내가 가야 할 지구는 다른 곳이다.

‘주거 지구.’

이름만 주거 지구지 실상은 슬럼가에 가깝다. 메가콥 내 중하위 캐피탈이나 이 도시에 일자리를 가진 외계 종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인데 빈말로라도 안전한 곳이라 하기 어렵다. 어느 도시든 그렇겠지만 가난한 자들이 머무는 곳은 치안 수준이 취약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주거 지구의 거주자들은 하루 번 돈을 유흥 지구에서 모조리 탕진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만 사는 자들이 많으므로 옆집의 누가 사라진다고 해도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순찰을 위해 돌아다니는 경찰과 안드로이드만 조심하면 차근차근 성장하는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

‘좋아. 갈 곳도 정해졌어. 그 다음은….’

어떻게 그곳까지 가느냐.

으슥한 길로만 이동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연구선과 달리 우주 도시는 보안설비가 잘 갖춰져 있고 안드로이드들도 많이 돌아다니니까.

사람의 눈에 안 걸리면서도 도시 어디든 갈 수 있는 곳. 나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루트를 정확히 두 개 알고 있다.

‘하수도랑 지하 철도.’

둘 다 우주 도시를 지을 때 함께 만들어진 곳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는 중요한 시설들이다. 물과 이동수단이라는 생활의 필수 요소를 담당하는 시설이다 보니 사실상 도시의 혈관 역할을 한다.

‘게임이었으면 하수도로 가겠지만 현실이니까 힘들지도 몰라.’

우주에서 물을 뽑아낼 수는 없으니까 이곳은 두 가지 방법에 의존해 거주자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있다. 하수를 정수처리해서 재활용하는 방식과 외부에서 정기적으로 물을 공수해 오는 방식으로 말이다.

게임에서는 설정으로만 존재하는 정보지만 여기는 현실이다. 하수도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관리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쉽지만 지하 철도로 가자.’

나는 26호와 함께 자리를 이동했다. 때로는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걷고, 때로는 건물 옥상을 넘나들기도 했다. 중앙의 행정 지구에는 고층 빌딩이 많아 누군가 내 모습을 볼 지도 모르겠지만 이곳 항만 지구에는 높은 건물이 없다. 거리의 사람들은 자기 머리 위로 뭐가 지나가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통로가 분명히 이쯤에 있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역 입구로 걸어 들어갈 생각은 없다. 안드로이드랑 감시카메라가 지키고 있는데 그냥 들어갔다간 바로 큰 소란이 날 거다.

이곳에 잠입한 경험만 수백 번이 넘는다. 늘 같은 루트로 침입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장 자주 사용했던 비밀 통로가 있다. 원래는 철도를 건설하던 노동자들이 이용한 일종의 쪽길이었는데, 철도가 완성된 이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곳이다.

‘이곳만큼은 나밖에 모르지.’

매번 치밀한 감시망을 펼쳐도 내가 자꾸 기어들어오니까, 분노한 플레이어들이 서로 다투던 것이 생각난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어떤 클랜은 내 습격을 못 견디고 아예 근거지를 옮겨 버렸다.

나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앞에 있는 녹슨 맨홀 뚜껑을 4개의 손으로 집어 들었다.

항만 지구의 경계에 위치한 이곳이 바로 나만의 작은 통로다.

-

메가콥의 노블캐피탈 중 티앤씨 가문은 다른 가문들에 비해 유독 기업적인 성격이 강한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티앤씨 가문은 과거 뉴욕이라고 불리는 도시에 있던 보험회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지구의 왕족 티앤씨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한 자리에 서 있으려면 계속 달려야 한다.」

경영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레드퀸 효과가 그들의 생존이념이었다. 유진 가문이 유전자 연구로 지구의 왕이 된 것처럼 티앤씨 또한 가문의 번영을 위해 집중하는 분야가 있었다.

바로 우주 식민지 개발.

낡은 지구와 태양계 대신 신대륙을 개척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파이 내부에서 나눠먹기보다는 파이 크기 자체를 키우고자 한 그들은 인공 거주지 건축, 테라포밍 기술 개발에 막대한 크래딧을 투자했다.

처음에는 태양계 내 우주정거장을 시작으로 화성 테라포밍, 궤도 거주지 건축 등으로 저변을 넓혀갔다.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외우주에 설치된 스페이스 콜로니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다.

태양계와 외우주를 중계하는 무역허브로 계획된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는 직경 60km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우주 거주지다. 현재 시점에는 가장 오래된 스페이스 콜로니지만, 최초의 우주 도시라는 상징성 때문에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오늘날에도 수많은 외계 종족들이 인류가 만든 역사적 건축물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항만 지구에 위치한 밀수동물감시팀 사무소는 오늘도 밀수된 동물들이 내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먼저 퇴근합니다.”

“아니 라스 이 미친놈아! 다들 마운틴크롤러 새끼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인데 먼저 간다고?”

“저 야근 안 합니다. 다들 일 보십쇼.”

“이런 이기적인 새끼가!”

뒤에서 욕설을 내뱉는 팀장에게 라스는 손을 흔들어 주는 걸로 대답했다.

건물을 나선 그의 머리 위에 AI에 의해 조성된 검은 밤하늘이 있었다.

가공된 별빛, 온갖 광고판이 내뿜는 인공적인 빛, 그 빛을 따라 불나방처럼 거리를 헤매는 자들. 라스는 환영과 같은 그 빛 속에 기꺼이 섞여 들어갔다.

‘오늘은 누구랑 놀까나.’

지하철을 타고 유흥 지구에 도착한 라스는 특별유흥업소 앞에 있는 디지털 주문판을 눌렀다. 허공에 홀로그램이 떠오르고 가게에서 제공하는 인력의 얼굴과 신상이력, 서비스 내용이 출력되었다.

이곳은 메가콥이 공식적으로 ‘고용’한 자들이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다. 고객이 어떠한 요구를 하더라도 복종해야 하는 곳. 누군가에게는 지옥이고 누군가에게는 낙원인 곳이 바로 특별유흥업소다.

‘얘가 좋겠네.’

라스는 직장 동료와 비슷하게 생긴 여성을 골랐다. 딱히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 동료도 이곳의 단골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라스는 휘파람을 불며 가게에 들어갔다.

두 시간 후.

라스는 가게 내 화장실에서 피 묻은 손을 닦았다.

팔을 기계로 대체한 그는 가끔 이렇게 기름칠하는 것을 즐겼다.

살아있는 생물의 몸에서 나온 피와 기름 말이다.

물론 피가 마르면 냄새가 나고 녹도 쓰니까 적당히 닦아줘야겠지만.

‘좀 심했나?’

라스는 흘낏 침실 쪽을 바라봤다. 침대 위의 하얀 천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좀 정리하고 갈까 생각했지만, 이어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 흩어진 ‘잔해’들은 가게에서 알아서 청소해 줄 것이다. 그러라고 돈을 주는 것 아니겠는가.

개운한 얼굴로 가게를 나선 라스는 문득 술이 당겼다.

‘한 잔 하고 자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자찬하며 그는 합성주 몇 병을 산 뒤 주거 지구로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그를 반기는 것은 고요함이었다. 네온사인의 향연 때문에 절로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던 유흥 지구와 달리 주거 지구는 조용했다.

상위 캐피탈이었다면 행정 지구에 있는 빌딩과 고급 거주지에서 살겠지만, 라스는 로우캐피탈이었다. 수면캡슐에서 자야하는 논캐피탈보다는 나았지만 주거 지구라고 딱히 쾌적한 편은 아니었다. 칙칙하고 지저분한 아파트에 치안도 별로 좋지 않아 라스네 팀원들은 그곳을 닭장이라고 불렀다.

“니미씹로등! 누가 또 깨먹었네.”

원래라면 가로등의 빛으로 길이 환해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가로등들이 모조리 깨져 있었다. 며칠 내로 복구되겠지만 그때까지 이 어두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라스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라스는 투덜거리며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냈다. 전등 끝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의 앞길을 밝혔다.

자각 자각

유리 조각을 밟는 소리가 주거 지구의 정적을 깼다. 늘 다니는 길인데 그는 오늘따라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게 무슨 냄새야?’

길바닥에서 알 수 없는 불쾌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수도가 터졌나 생각하고 있던 그의 눈에 맨홀 뚜껑이 들어왔다.

평소에 닫혀 있던 뚜껑이 살짝 열려 있었다.

‘씨발 이 병신들은 공사를 할 거면 닫아 두고 다녀야지.’

라스는 손으로 코를 틀어쥔 채 걸었다.

맨홀에서는 이미 한참 멀어졌지만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길 전체가 불길한 냄새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뭔가 잘못됐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스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냄새, 그리고 어둠이 주는 섬뜩함에 그의 발걸음이 본인도 모르게 점점 빨라졌다.

집까지 거의 뛰다시피 하며 걷고 있는데, 길 한복판에 서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씨발!”

기겁한 라스가 욕설 섞인 비명을 질렀다. 그의 비명 소리를 들은 것인지 어둠 속에 있던 자가 고개를 돌렸다.

상대는 젊은 남자였다.

‘씨, 씨발 뒈지는 줄 알았네.’

순간 괴물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라니. 간신히 안심한 그는 남자를 다시금 살펴봤다.

작업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상대는 항만 지구에서 일하는 사람 같았다. 평범한 얼굴의 그는 옆구리에 붉은색에 가까운 공 같은 것을 끼고 있었다.

‘뭐 하는 새끼지?’

라스는 왠지 상대가 꺼림칙했다. 그가 오기 전까지 이곳은 빛 한 점 없는 암흑 천지였다. 그런 곳에서 저 이상한 공 같은 물체를 들고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이라니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뭐 하십니까?”

“집에 가는 길입니다.”

남자가 평탄한 목소리로 답했다. 행동거지에 비해 목소리는 지극히 평범한 느낌을 줘서 라스는 살짝 안심했다.

“크흠, 살펴 가시죠. 난 이만.”

“저기요.”

“응?”

“어두워서 그런데 같이 좀 갑시다.”

남자의 말에 라스는 고민했다. 저 기분 나쁜 남자랑 같이 걷는다니 별로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길이 어두운 것도 사실이었기에 라스는 결국 수락했다.

“…따라오시죠.”

“감사합니다.”

남자가 그의 뒤를 따르면서 둘은 다시 출발했다.

조용한 거리를 걷고 있는데 뒤에 있던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예?”

“사이보그시죠?”

“…그런데요.”

“그렇구나.”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침묵했다.

‘뭐야 씨발?’

메가콥에 사이보그가 있다고 차별하려는 것인가 싶어 라스는 한 마디 하려고 했다. 그가 입을 반쯤 연 순간, 기묘한 냄새가 다시금 그의 코를 찔렀다.

아까보다 훨씬 진하고 기분 나쁜 냄새. 왠지 모르겠지만, 그 냄새는 라스 뒤에서부터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

욕하려다가 관둔 라스는 슬며시 뒤를 흘낏 쳐다 봤다. 남자를 본 순간, 그는 등골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따라오고 있는 남자는 불빛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으며 정확히 라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만 해도 소름끼치는데 라스는 보고야 말았다.

남자의 팔에 끼어있는 붉은 공. 그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말이다.

‘개씨발!’

전에 동료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상위 캐피탈 중 사람의 머리만 살려 둔 뒤 가지고 노는 미치광이들이 있다고.

우연일까.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것, 정확히 사람 머리 정도 되는 크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라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집이 멀지 않았다. 라스는 남자를 내버려 두고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헉, 헉, 헉….”

돌아보니 남자는 어둠 속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한 발자국 앞도 알아보기 힘든 짙은 어둠이지만 라스는 느낄 수 있었다.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말이다.

다행히 라스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뛰다시피 해서 온 것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옷은 땀에 젖어 있었다.

술 마실 기분은 진작 사라졌지만 반대로 목이 말랐다. 라스는 차가운 물방울이 맺혀 있는 합성주의 뚜껑을 땄다.

한 번에 쭉 들이켜니 화끈한 열기와 알딸딸한 느낌이 목구멍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끄윽, 니미 내일 바로 신고해야겠어.”

술기운 때문인지 긴장이 천천히 풀렸다. 그제야 본인의 보금자리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어휴, 좆 같은 동네. 돈 모으면 다른 곳을 가던가 해야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중얼거린 그는 낡은 버추얼 TV를 틀었다. 좁은 방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고, 무서움이 한층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라스는 창가에 다가가 창밖을 살폈다.

그곳에는 암흑만 가득할 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가 버렸네.’

사이보그는 뭐가 그리 급한지 후다닥 뛰어가 버렸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미묘한 불쾌감.’

대놓고 내가 괴물이라는 사실은 모르겠지만 뭔가 다르다는 것은 느끼는 듯 보였다. 감각이 예민한 존재라면 페로몬에 있는 미묘한 화학적 신호를 약하게나마 느낄 거다.

그래도 의태 기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기습을 용이하게 만드는 수단일 뿐. 사람하고 교류할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충분했다.

「쟤 날 보고 무서워해.」

[즈 즈즈즈(왜 그럴까?)]

「몰라.」

사이보그는 나에 대해서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듯했지만, 그의 심장 박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26호였다. 그가 녀석에게 시선을 줬을 때 심장 박동이 최고점을 찍었으니까.

‘26호가 뭐가 그리 무섭다고 그러지?’

힐링, 마스코트의 대명사 버블아메바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물론 26호가 돌연변이이긴 하지만 다른 버블아메바랑 똑같이 생겼으니 무서워할 만한 요소는 딱히 없다.

이 귀여운 녀석이 무섭다니. 이해할 수 없는 사이보그다.

‘그러고 보니 사이보그라고 했지?’

사이오니움 효과가 끝난 뒤 나는 현재 유체로 돌아간 상태다. 아성체로 진화하려면 사이보그 한 명을 더 먹어야 한다.

‘마침 필요했는데 잘됐네.’

그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어느 집에 들어갔는지까지 다 파악했다.

먹이가 도망치며 흘린 잔향이 아직도 공중에서 맴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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