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3화 (34/400)

Ep.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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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거실을 가득 채운 거대한 고치를 바라봤다.

그녀와 함께 다니는 어린아이는 알이 된다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알의 크기가 아니었다.

덩치가 갑자기 커지지 않나, 고치가 되지 않나.

아직 젊은 그녀라서 그런 걸까? 아이가 어떤 생물인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녀가 살면서 봤던 어떤 동물도 이렇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역겨운 액체의 감옥 속에서 나올 때, 그녀는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린아이를 지킬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까지 아이를 지키는 일보다 아이에 의해 보호받는 일이 더 많았다. 그 점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린아이는 배가 많이 고픈지 매번 먹이를 보챘지만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만약 그녀에게 힘을 주는 촉수가 좀 더 강했다면 달라졌을까?

만약 그녀의 덩치가 더 컸다면 달라졌을까?

심란한 기분 속에서 그녀는 고치를 어루만지기 위해 촉수를 뽑았다. 촉수가 고치에 닿는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촉수 끝을 타고 그녀의 몸에 흡수되었다. 영양가가 높은 먹이를 먹은 것처럼 포만감이 차오르고 힘이 끓어올랐다.

그녀는 고열량 에너지에 중독된 듯 고치에서 촉수를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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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좀 다르네?’

해츨링에서 유체가 될 당시, 나는 알속에서 주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육체와 연결된 감각이 모두 끊기고 나는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손을 내려다보니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의 손이 나를 반겼다.

복장도 내가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 들어오기 전에 입고 있던 옷과 똑같았다.

‘여기는 내 심상 세계 같은데.’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위협적인 요소는 없었다. 빛 한 점 없는 새까만 공간만이 한없이 멀리 퍼져 있을 뿐.

‘어두운 곳이야 익숙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다툴 때마다 나는 언제나 침대 아래나 벽장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곳에서 귀를 막고 웅크리고 있으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옛날 생각이 나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나는 고개를 털어서 불필요한 생각을 떨쳐냈다.

‘얼마나 남았으려나.’

게임에서 아성체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6시간.

현실에서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유체가 될 때도 게임과 큰 차이가 없었으니 이번에도 비슷할 거다.

‘제작진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들었을까?’

에이모프 운영에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진화에 이 정도로 심한 페널티를 부여하다니.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24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PK가 일어나는 게임에서 6시간 동안 무력화된다는 것은 버그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심각한 결점이다.

게다가 에이모프는 협력이 불가능해서 진화할 때 동료한테 지켜달라고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지 않는 이상, 대부분 진화 도중에 걸리고 만다.

‘아예 에이모프만 잡으러 다니는 플레이어도 있으니까.’

특히 나 때문에 에이모프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애꿎은 에이모프 유저들이 공격받기도 했다.

많은 에이모프들이 진화에 실패해 분노의 샷건을 치며 접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나도 진화 도중에 에이모프 사냥꾼들한테 걸려서 많이 죽었다.

진화에 실패한다고 딱히 페널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숨을 장소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 몹시 번거로울 뿐. 게다가 긴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하니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그래서 진화를 방해한 사냥꾼들은 다른 때보다 더 무섭게 괴롭혔다.

‘돌이켜 보면 나도 좀 심했지.’

예전에 어떤 사냥꾼이 나한테 당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커뮤니티에 올린 적이 있었다.

당시 반응은 아주 폭발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 대한 원망과 비난이 어마어마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는 둥, 진짜 에이모프 아니냐는 둥, 애 잡겠다는 둥 별별 이상한 소리가 난무했다.

‘쩝.’

어둠만 가득한 공간이 주는 마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꾸 불필요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시간이 생겼으면 낭비하지 말고 유용하게 써야 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으니 나가면 무엇부터 할지 정리해야겠다.

‘걸으면서 생각해 볼까.’

나는 한 발자국 발걸음을 옮겼다.

수면 위에 발을 올려놓은 것처럼 파장이 퍼져나간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검은 공간 위를 정처 없이 걸었다.

‘진화하면 먼저 먹어야 할 것이 옆집하고 5층에 사는 볼프들부터 정리하면 변신 종족은 어느 정도 해결될 거고….’

진화한 뒤 무역중심지를 어떻게 공략할지 고민하는데, 검갈색의 무언가가 나타나서 나를 가로막았다.

‘응?’

검은 공간에서 나타난 그것은 유체 에이모프였다.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내 몸에 남아 있는 에이모프의 잔재라고.

내가 심상 세계에 빠져들면서 에이모프의 본능도 함께 들어온 것 같다.

놈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지만 딱히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친숙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녀석에게 손을 뻗었다. 으르렁거리며 위협하던 녀석은 입을 다물고 얌전히 머리를 숙였다.

녀석의 머리에 내 손이 닿는 순간, 나는 깨어났다.

‘여긴?’

눈을 뜨자마자 나를 가로막는 것은 얇은 벽이었다.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피막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몸에도 감각이 돌아왔다.

현재 나는 아기가 뱃속에 있듯이 몸을 웅크리고 팔로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긴 꼬리는 허리띠처럼 둘둘 말려 있는 상태였다. 전투용 팔을 풀고 몸을 일으키자 비닐이 뜯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피막이 찢어졌다.

뜯어진 고치 위에 선 내 앞에 텍스트박스가 나타났다.

「종족: 미확인 적대적 우주생물

상태: 아성체

목표: 생존하라(진화 2회 성공).

보유 특성

-육체 관련(타입 적용 중): 날개, 키틴질 외피, 재생력(융합), 신경독샘(융합), 괴수 골격, 산성피, 각력 강화, 의태 기관(융합), 톱날 촉수, 오염 기관, 가시뼈 발사 기관

-초능력 관련: 포식자 감각(융합), 괴물의 촉수(융합), 인간성, 투시, 초능력 내성

타입: 육체 강화 타입

*열람하지 않은 신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메시지?’

진화했다고 메시지가 온 적은 처음이다. 게임에서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나는 의아함 속에서 열람을 수락했다.

「신규 시스템 ‘초월’ 시스템이 해금되었습니다! 안내 사항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신작이라 하더니 변경점이 존재하나 보네.’

지난번 사이오니움을 먹었을 때는 이런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식으로 진화해야 해금되는 새로운 시스템 같았다.

확인을 선택하자 텍스트창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초월’ 시스템: 보유 중인 특성 중 3개 이상의 특성을 융합해 새로운 ‘유일’ 특성으로 변화시킵니다. 새로 확보한 특성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특성입니다.

사용 가능한 특성 목록: 키틴질 외피, 괴수 골격, 각력 강화

*추신: 무조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의해서 선택하길.」

‘초월 시스템이라.’

원래 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 특성 융합은 1대1로만 가능했다.

그래서 특성에 의존하는 종족은 게임이 장기화될 시, 본인도 무슨 특성을 가졌는지 기억하기 힘들었다.

나 역시 엔딩을 볼 때쯤 갖고 있던 특성이 500개가 넘는 바람에 일일이 다 기억하느라 애를 먹었다.

모프박이인 나조차 치를 떨 정도로 엿 같은 시스템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개편할 줄이야.

‘어떻게 할까.’

게임이었으면 바로 받았겠지만 여기는 현실이다. 잘못된 판단은 큰 위험으로 이어진다.

내가 모르는 시스템이 새로 생겼다면 추신에 있는 말처럼 세심하게 판단한 뒤 결정해야 한다.

‘유일 특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메리트야.’

스페이스 서바이벌에는 특성마다 등급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쓰냐에 따라 특성의 효율이 천차만별로 갈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융합된 특성이 일반적으로 좀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도일까.

그런데 그 중에서도 다른 특성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특별한 특성들이 존재한다.

소위 ‘유일’ 특성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장비로 치면 유물급과 동급으로 얻기는 힘들지만 성능이 매우 좋은 특성들이다.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일 특성은 매우 강력하지만 단점이 하나 있다.

일반 특성들은 캐릭터가 죽어도 그대로 남아 있지만 유일 특성은 죽으면 아예 사라진다.

유일 특성을 얻고 싶으면 처음부터 다시 얻어야만 한다. 그렇다 보니 특성을 운용할 때 매우 조심스럽게 운용해야 한다.

‘근데 여긴 현실이니까 단점이 아니네?’

어차피 현실에서 죽으면 끝이다. 유일 특성이 사라진다는 점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특성 수가 줄어드는 것은 리스크야.’

유일 특성 자체의 단점보다 내가 고려해야 할 부분은 특성 수 자체다.

현재 내가 보유한 육체 관련 특성은 11개. 이 중 3개가 빠지면 육체 강화 타입의 조건인 10개를 채울 수 없다.

먼저 유일 특성부터 받고 나중에 육체 관련 특성을 모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타입이 중간에 해제된다고 해서 특성 페널티는 사라지지 않아.’

현재 초능력 강화 타입은 타입 페널티로 6개가 된 상황. 여기서 내가 다시 육체 강화 타입을 재획득하면 어떻게 될까?

불합리하게도 페널티가 추가되어 필요 개수가 6개에서 12개로 늘어난다.

‘…초월 시스템은 보류하자.’

육체 관련 특성은 비교적 얻기 쉬운 편이다.

솔직히 유일 특성이라고 하니까 많이 끌리긴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한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이 유용할 터.

초월 시스템을 활용할 시점은 내가 육체 관련 특성을 충분히 확보한 뒤가 될 것이다.

나는 텍스트창을 해제하고 고치에서 걸어 나왔다.

‘확실히 키가 많이 자랐네.’

넓고 큰 연구선에 있다가 이런 좁은 집에 오니까 몸체가 커진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몸에 붙은 고치 조각들을 털어내고 있으니 26호가 다가왔다.

「와!」

[즈즈즈즈(잘 있었어?)]

「전에 봤던 큰 애기네? 이번에는 안 돌아가?」

[즈 즈즈즈 즈즈즈(응. 그때는 잠깐 변한 거)]

녀석은 신기하다는 듯 촉수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응? 촉수?’

그러고 보니 26호의 모습이 전과 달라졌다. 사람 머리보다 약간 작던 몸도 더 커졌다. 게다가 몸에서 촉수가 두 가닥 돋아나 있었다.

[즈즈즈즈즈(그거 뭐야?)]

「이거? 새로 생겼어!」

[즈즈(언제?)]

「애기가 알에 들어갔을 때 만지니까 생겼어.」

그렇게 말하고 녀석이 촉수를 살짝 털자 보라색 에너지 파장이 잠깐 흘러나왔다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씨 데몬.’

저 촉수는 아마 톱날 촉수. 내 것에 비하면 작고 귀엽지만 나는 안다.

저 안에 날카로운 면도날 같은 가시가 숨어 있다는 것을.

저 촉수로 누군가의 얼굴을 훑으면 살점이 그대로 뜯겨져 나가겠지.

그보다 나는 궁금했다.

‘왜 갑자기 진화했지?’

별다른 계기는 없었을 터. 내가 고치에 들어간 동안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보조기관으로 주변을 감지해 봐도 특별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내가 진화 중일 때 알을 만졌다고 했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내가 진화하면서 발생한 에너지의 일부를 녀석이 흡수했을지도 모르겠다.

버블아메바에서 씨 데몬 간의 관계도 밝혀지지 않은 마당에 진화 조건을 내가 알 리 없으니 추측일 뿐이지만.

「이제 애기를 지킬 수 있어!」

자신감에 차서 그렇게 말하는 26호. 나는 기특하다는 뜻을 담아 녀석을 쓰다듬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정말이었네.’

한때는 녀석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직은 약해 보이지만 씨 데몬이라면 전력에 도움이 될 거야.’

내가 봤던 씨 데몬의 크기는 20m가 넘고, 촉수도 수백 개나 된다. 게임에서도 준 보스 취급을 받던 거대 괴수가 나를 따른다면 굉장히 도움이 되리라.

유전자 정수를 양보할 생각은 없지만 필요 없는 먹이를 넘겨 주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다.

[즈즈 즈즈즈 즈즈(그럼 밥 먹으러 가자)]

「좋아.」

방금 진화를 마쳐서 그런지 공복감에 속이 쓰릴 지경이다.

녀석도 배가 고팠는지 나의 말에 즉답했다. 하긴 6시간이 넘도록 샌드위치 하나만 먹었을 텐데 배가 고플만도 하겠지.

나는 26호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집 문을 열었다.

식욕을 자극하는 먹이가 옆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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