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6
‘여자?’
평범한 인상의 여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골목길로 오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라스의 동료는 여자였다. 로이드라는 이름만 봤을 때는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하긴 여자라고 업소에 가지 말라는 법은 없지.’
외모만 봤을 때는 꽃 한 송이 못 뽑을 것 같지만 업소에 가면 또 모른다. 사람 척추를 뽑고 다닐지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도대체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는 건데?”
“대놓고 할 얘기는 아니잖아.”
“하긴 그렇긴 하지. 그런데….”
로이드가 내게 다가왔다. 방금까지 반갑다는 표정을 짓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퇴직했다면서 아직도 그러고 있냐?”
“응?”
“이거 작업복 아냐?”
내 몸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나한테는 의태 기관의 페로몬이 통하지 않으므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모른다.
‘게임 속에서 의태 기관을 쓰면 대상이 죽기 전의 모습대로 나오는데….’
내가 라스를 잡아먹었을 때, 그는 옷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였다. 작업복을 입은 상태로 술에 취해 쓰러졌으니까.
로이드의 말을 들으면 현실에서도 게임처럼 대상이 죽기 전의 모습으로 모방하는 것 같다.
‘의태 기관은 옷도 모방하니까.’
의태 기관이 유전자 정보를 습득해서 그걸 바탕으로 환각 페로몬을 만드는 것은 맞지만, 전적으로 유전자 정보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보조기관, 시각 같은 다른 감각이 보낸 정보도 취합해서 훨씬 정밀한 환각을 만든다.
옷, 신발, 단추, 주름 등의 시각적 정보를 모아서 의태 기관에게 보낸 뒤, 의태 기관이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구성한 몸 위에 덧씌워서 환각에 반영한다. 그래서 다른 복장을 환각에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섭취한 대상이 입고 있던 복장만 환각에 적용할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네. 옷이 상황에 맞지 않으면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어.’
게임에서는 상황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개념이 없다. 도시에 들어왔다고 전투용 장비를 갈아입는 플레이어는 많지 않으니까.
그래서 의태 기관으로 구현하는 환각 효과를 불쾌한 골짜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사람은 있어도 입고 있는 장비가 수상해서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여긴 현실이니까 이런 점이 다르구나. 앞으로 주의해야겠어.’
만약 로이드가 지적하지 않았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나는 그녀에게 대충 둘러댔다.
“아니 입을 옷이 마땅히 없어서.”
“쯧, 옷 좀 제대로 챙겨 입어라. 퇴직까지 한 새끼가…응?”
혀를 찬 그녀는 이어서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냄새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너 브로커에 대해 잘 알지?”
“여기서 얘기하게?”
“술집은 듣는 사람이 많아서.”
“뭐 떠벌리고 다닐만한 내용은 아닌가.”
고개를 주억거린 그녀는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브로커와 거래 관련 정보는 이 안에 들어 있어. 하루가 지나면 파일 열람이 불가능해지니까 참고하고.”
“까다롭네.”
“아무래도 좀 그런 일이니까. 브로커의 연락처는 내가 통신기로 찍어서 보내줄게.”
그녀가 통신기를 꺼냈다. 좁고 어두운 골목이 작은 기계 장치의 빛에 의해 환해졌다.
그녀는 연락처를 입력하고 전송을 누르니 내 손에 있던 통신기가 부르르 떨렸다.
‘S?’
라스의 통신기에 브로커의 이니셜과 전화번호가 메시지로 와 있었다. 만약 누구 한 명이 체포될 것을 대비해서 일부러 이니셜로 서로를 지칭하는 듯했다.
“이걸로 끝이야. 이제 술이나 먹으러 가자.”
“그래.”
통신기 화면을 보고 있는데 그녀가 장난스럽게 내 팔을 툭 쳤다.
“새끼 니가 웬일로 술을…어?”
사람의 몸과 전혀 다른 촉감에 그녀가 흠칫 놀란다.
의태 기관으로는 시각적으로는 속일 수 있지만 촉각까지는 속이지는 못한다. 상대가 나를 만지면 내 본래의 몸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아마 그녀가 나를 쳤을 때, 이질적인 촉감으로 알아차렸을 거다.
골목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자가 라스가 아니라는 것을.
“너, 너 무, 뭐야?!”
로이드가 말을 더듬으며 뒤로 물러난다.
브로커에 대한 정보와 연락처는 받았으니 그녀는 이제 쓸모가 없다.
나는 긴 꼬리로 도망치려고 하는 그녀를 휘감았다.
“도와…웁!”
그녀가 비명을 지르기 전 전투형 팔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기를 붙잡은 것이 혼란스러운 듯했다.
눈에 보이는 자가 라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도 알지만 페로몬 효과는 여전히 유효하다. 촉각은 자기 몸을 붙잡은 것이 여러 개의 팔과 꼬리라고 인식하겠지만, 시각은 계속 나를 라스로 인식할 것이다. 아마 팔도 2개만 보이고 그 외는 보이지 않아서 투명한 무언가가 자기를 잡고 있다고 느끼겠지.
“우, 우우우….”
제발 살려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로이드. 평범했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과 콧물로 얼룩졌다.
불쌍해 보이는 꼴이지만 내 결정은 변치 않는다.
꼬리에 힘을 주자 그녀의 허리가 으스러졌다. 그녀의 눈에 생기가 사라지고 고개가 꺾였다.
‘시체는 여기서 처리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로이드의 시체를 먹었다.
로이드의 맛은 평범 그 자체였다. 맛이 없다고 보기도 그렇고 좋다고 보기도 그런 애매한 수준. 솔직히 라스네 옆집의 샌드위치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맛이었다.
‘이제 로이드로 변할 수 있어. 다음은….’
브로커를 연락해야겠지. 집에 가서 USB를 확인하고 만날지 말지를 결정해야겠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핏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핥아먹은 뒤, 다시 비밀통로로 돌아갔다.
「먹이 냄새.」
[즈즈즈 즈즈(밥 먹고 왔어)]
「내 거는?」
‘아.’
다음부터는 26호가 먹을 것도 좀 남겨놔야겠다.
-
항만 지구 물자보관팀에서 근무하는 샌더에게는 부업이 있었다.
메가콥의 높으신 분들의 고상한 취향을 맞춰드리기 위해 신기한 생물들을 제공하는 일이다.
간단히 말하면 밀수, 즉 범죄였지만 샌더는 딱히 잘못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능력이 있는데 활용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지.’
지극히 메가콥 출신다운 사고방식 아래에서 그는 자기 직위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을 골랐다.
업무상 밀수동물관리팀과의 교류가 잦았기에 샌더는 그쪽 팀장에게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의했고, 저쪽에서도 흔쾌히 수락했다.
밀수동물관리팀에서는 압류된 생물의 정보를 샌더에게 넘기면 그가 물자보관소의 서류를 조작해서 다른 행성에 이송시키는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1년이 넘도록 두 부패한 공공기관의 야합이 이어졌다. 어느덧 샌더는 경찰과도 커넥션을 갖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브로커가 되었다.
이사회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수 있을 정도로 크래딧을 벌었을 거다.
‘젠장. 그 빌어먹을 이사회 때문에 기회가 안 생긴단 말이지.’
어제를 기점으로 이사회가 열리기까지 남은 기간은 30일. 덕분에 도시 전역의 치안 수준이 확 올라가서 생물을 몰래 운송하는 것이 극히 힘들어졌다.
‘개자식들. 내가 돈을 얼마나 갖다 바쳤는데 그걸 못 뚫는다고?’
항만지구장이 직접 내린 엄명이었기에 공무원들도 어쩔 수 없었지만 샌더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이봐, 샌더. 퇴근 안 해?”
“난 더 이따가 갈 거야.”
“그래? 수고.”
다른 직원이 퇴근하는 것을 확인한 뒤, 샌더는 가방에서 개인용 노트북을 꺼냈다. 그가 노트북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화면에 밀수용으로 빼돌릴 생물 목록이 출력되었다.
‘이게 다 돈인데.’
목록에는 전부 ‘예정’으로 체크되어 있었다. 원래라면 오늘 오전 다른 행성으로 출발하는 배에 적재를 끝마칠 계획이었지만 감시가 저렇게 엄하니 그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항만 지구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다 보니 졸지에 나가는 물건까지도 감시망에 들어가게 되어서 그와 같은 브로커도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덕분에 진작 이송되었어야 할 생물들이 항만 지구의 컨테이너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하루 밖에 안 지났음에도 손해가 어마어마했기에 샌더는 혀를 찼다.
그때 샌더의 통신기가 울렸다. 통신기 화면에는 L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쯧. 요즘 분위기 안 좋다고 말했는데.”
L이 보낸 메시지 내용은 길지 않았다. 아웃스페이서 거래 요청이었다.
‘이걸 사는 사람이 있다고?’
샌더는 의외의 요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기로 아웃스페이서는 매우 위험한 생물이었기에 매매하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
물론 밀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항만 지구에 냉동 보관된 아웃스페이서도 밀수동물관리팀이 압류한 생물이었으니까.
다만 압류 이후 지금까지 샌더에게 아웃스페이서를 거래하겠다고 요청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의문에 빠져 있는 사이, 또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흠. 행정 지구에 있는 컬트가 구매한다라.”
보통 샌더가 거래를 중재하지만 이번에는 저쪽에서 고객을 구했나 보다.
‘아마 밀수동물관리팀장의 알선이 있었겠지.’
나름 유능한 자라고 생각했는데 행정 지구의 컬트들과 인맥을 틀 줄이야. 샌더는 작게 감탄했다.
컬트라면 아웃스페이서를 구하는 이유도 납득이 갔다. 컬트들은 희귀한 동물이나 신기한 유물을 모으는 것을 아주 좋아하니까.
‘행정 지구라니 다행이군. 외부로 이송할 필요가 없으니.’
다른 행성에 보내는 건이라면 거절하려고 했는데 지구 내에서 옮기는 정도면 큰 문제가 없다.
샌더는 만날 장소와 시간, 그리고 요구 크레딧 액수를 적어서 L에게 보냈다.
장소는 늘 그래왔듯이 항만 지구의 컨테이너 하역장에 있는 크레인 옆이었다. 시간도 전과 동일하게 밤 10시로 정했다.
한두 번 해 본 일도 아니고 나머지는 저쪽에서 알아서 하리라고 믿고 관심을 끊으려는데 다시 답장이 왔다.
“…시간을 새벽으로 옮기자고?”
샌더의 이맛살에 주름이 잡혔다. 항상 시간은 이쪽에서 정했고 저쪽에서 시간을 변경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가 빠진다면 밀수 자체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에 언제나 이쪽이 갑, 저쪽이 을이었다.
‘그런데 왜?’
한창 감시가 빡빡해지는 시기에 저쪽에서 거래를 요청한데다가 갑자기 시간도 옮긴다? 딱 봐도 수상해 보였다.
샌더는 잠시 고민하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기에서 신호음이 울리다가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이 무슨 생각이지?”
「예?」
“시간을 바꾼다니 이런 적이 없었잖아.”
「아. 그건요. 제가 야근이 있어서….」
“야근?”
샌더는 갑자기 웬 야근이냐고 물어보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얼마 전 어떤 얼간이가 마운틴크롤러 새끼를 밀수하려다가 걸려서 난리가 났다고 동료가 얘기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마운틴크롤러 때문에?”
「네. 그것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네요.」
“쯧, 애쓰는구먼. 그럼 아예 다른 날로 옮길까?”
「저쪽에서 최대한 빨리 받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 아무튼 알겠네. 새벽 1시라고 했지? 그때 보자고.”
상황을 전부 이해했기에 샌더는 통화를 종료했다.
아웃스페이서를 몰래 빼돌리라면 보관서류와 이송서류도 같이 조작해 놔야하기에 그는 업무용 PC를 켰다.
조작 작업을 하던 중 그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컬트라고 해도 새벽에 거래한다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한번 의심이 들면 계속 의심되기 마련이었다. 딱히 저쪽의 요구가 이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샌더는 불길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보험이 필요해.’
갈등하던 그는 통신기를 다시 손에 쥐고 번호를 눌렀다.
“어, 난데. 나와 같이 좀 가줘야겠어. 어. 어. 장소는 알지? 새벽 1시까지 나와.”
연락한 상대는 그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경호원들의 리더였다.
샌더가 하는 일이 위법적인 요소가 많다 보니 위험한 상대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경호원들을 대동해서 상대를 만나러 갔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허튼짓하면 뒈질 줄 알아라.’
샌더의 경호원 그룹 멤버들은 전직 군인, 경찰이라서 하나 같이 탁월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게다가 장비에도 크래딧을 아낌없이 투자한 덕분에 경호원 전원이 하급 강화복에 레이저 장비로 무장하고 있다. 여태까지 샌더에게 위협적으로 나온 고객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그가 고용한 인간병기들을 보여주면 꼬리를 말곤 했다.
하물며 매일 밀수동물 똥이나 치우는 사람이라면? 경호원을 보고 오줌이라도 지리지 않으면 다행일 거다.
모든 일이 그의 통제 아래에 있다. 샌더는 안심하고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