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7
‘브로커 S. 신중한 사람이네.’
애매하다 싶으니 바로 전화를 거는 것을 보면 조심성이 많은 인간이다. 나와의 대화가 조금이라도 수상했으면 바로 거래를 취소했을 텐데 잘 넘어가서 다행이었다.
‘하긴 조심스러울 만도 하지.’
로이드가 준 USB로 확인해 본 나는 그의 정체가 뭔지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물자보관팀 소속 압류품 관리자, 혹은 항만보안팀의 경비원이야.’
압류된 생물을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배에 실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은 그 둘밖에 없다.
물자보관팀은 항만에 도착한 모든 물자를 관리하니 서류 조작도 수월할 거다.
항만 경비원의 경우 감시카메라를 조작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시국을 생각해 보면 전부 조작하기는 어려울 테니 생물을 옮길 때만 카메라 중 일부를 비활성화하던가 하겠지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물자보관팀에서 일하는 자가 경비원을 매수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그는 고위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바닥도 아닌, 딱 중간관리자의 위치에 있는 자가 틀림없다. 그리고 장기간의 밀수를 들키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자.
간단히 말해 내가 죽이기 쉽지 않은 자다.
상대가 영향력이 있는 자라면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무턱대고 잡아먹으면 골치 아파지지.’
일용직에 가까운 사람들, 이를테면 로이드나 라스와는 다르다. S가 중간관리자라면 관계된 사람이 많으므로 그가 갑자기 실종되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게다가 현재 그가 로비한 거로 추측되는 팀만 해도 벌써 2개가 넘는다.
밀수동물관리팀과 항만보안팀. 이외에도 더 관계된 팀이 있을지도 모른다.
범죄자들은 서로 간의 관계가 끈끈하므로 그가 사라지면 어떻게든 찾으려고 하겠지.
설령 내가 S로 의태해서 정식으로 사직 처리를 밟으려고 해도 팀 내에서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이면 마음대로 사직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직장에서 나를 부르면 대처하기 난감해진다.
‘그렇다고 S를 통해 압류 생물을 빼먹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는 S에게 고객을 구했다고 말했지만 당연히 거짓말이다. 그에게 줄 수수료는 제한되어 있다. 내가 먹은 자들의 크래딧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여기 주거 지구에 거주하는 자 대부분이 그렇듯 일용직이거나 하루 번 크래딧을 유흥 지구에서 탕진하는 자들뿐이다. 옆집 남자는 그래도 보유 크래딧이 좀 있지만 라스는 거의 땡전 한 푼 없는 수준이다.
‘시간 한번 바꾼다고 하니 전화까지 하는 사람이야. 돈이 없다는 것을 알면 바로 손절할 거야.’
어떻게 하면 저자를 별 탈 없이 장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사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운이 많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
‘아웃스페이서의 유전자 정수.’
아웃스페이서의 특성 중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포식 효과로 그 특성을 얻는다면 브로커 S 문제는 수월하게 해결되리라.
‘일단 이번 거래가 끝내면 아웃스페이서를 먹을 수 있어. 그 뒤는 결과를 보고 결정하자.’
브로커와의 거래는 이미 반쯤 성사된 상황. 만났을 때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아웃스페이서가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변함이 없다. 현재 변수가 많으니 이후의 계획은 아웃스페이서를 먹은 다음 다시 세우는 게 낫다.
‘나가기 전에 해야할 일도 많으니까.’
브로커와 관련된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 라스처럼 로이드도 사직 처리를 해놔야 한다.
나는 로이드를 죽인 뒤에 챙겨뒀던 통신기로 밀수동물관리팀에 사직 메일을 보냈다. 다들 퇴근한 뒤라 그런지 팀장으로부터 따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로이드의 퇴사 작업을 마무리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2시를 넘겼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잠들어 있는 26호를 두고 집을 나섰다.
유흥 지구가 아니다 보니 딱히 돌아다니는 주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는 피곤한 얼굴의 경찰과 안드로이드들만 순찰을 위해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지하의 비밀 통로로 숨어들어갔다.
‘컨테이너 하역장이라.’
가는 길에는 카메라가 다수 깔려 있다. 아마 저쪽에서도 불법 거래 때문에 카메라 중 일부는 작동하지 않도록 수를 써놨겠지만 최대한 피해서 가야 한다.
‘보조기관으로 전자파를 감지할 수 있으니.’
맨홀에서 나온 나는 보조기관에 감각을 집중했다. 진화한 뒤 한층 길고 굵어진 턱 아래의 촉수 두 가닥이 내 의지에 따라 꿈틀거렸다.
아스팔트의 잔향을 머금은 새벽의 냄새, 컨테이너의 숲에서 흘러나오는 쇠와 알루미늄 냄새. 바닥에서 미미하게 느껴지는 지하철의 진동, 주야를 가리지 않고 작동하는 거대한 도시의 맥동.
항만 지구에는 여전히 오감을 자극시키는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보조기관이 외부로부터 들어와 감각을 자극시키는 것들 중에서 카메라가 내는 가느다란 실과 같은 전자파들을 뽑아냈다.
‘이 앞에 카메라 3대.’
나는 대여섯 개씩 쌓여 있는 컨테이너 사이를 지나던 중 카메라가 있는 곳을 피해 가며 이동했다. 카메라 중 몇 개는 내가 예상한 대로 작동을 멈춘 상태였다.
‘역시 경비원하고도 커넥션이 있어.’
꺼진 카메라는 주의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이동하다 보니 멀리서 생물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인원은 총 10명. 한 명을 빼고 나머지는 전원 무장한 상태였다.
‘하.’
경계심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동료들을 데려올 줄이야.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나는 의태 기관을 활성화시킨 뒤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컨테이너 크레인에 달려 있는 전등의 붉은빛 아래에 서 있던 10명의 인원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가운데 있는 머리를 빡빡 깎은 뚱뚱한 남성, 브로커 S가 나를 보고 인사했다.
“왔나?”
“저들은?”
“아. 신경 쓰지 말게. 보험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하기에는 다들 인상이 보통 험악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레이저 총구를 나에게 겨냥하고 있었다.
‘무력시위.’
강화복을 입은 인간, 사이보그가 대부분이었지만 딱 한 명 거슬리는 자가 섞여 있었다.
‘볼프가 있네.’
볼프는 변신이 가능한 인간형 지성체로 우리가 흔히 아는 동물의 머리를 지닌 수인 종족이다. 반인반수답게 신체 능력도 인간에 비해 훨씬 뛰어나며 감각도 예민하다.
S가 데려온 여성 볼프는 이미 코를 찡그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의태 기관은 페로몬으로 작용하는 특성. 볼프라고 해도 속일 수는 있지만 위화감은 다른 종족에 비해 심할 거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네.’
볼프와 오래 있어봐야 좋을 일 하나 없었다.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물건은 어딨죠?”
“거래물품은 저기 냉동 컨테이너에 넣어 놨어. 비밀번호는 입금되면 알려주지.”
“네.”
“늘 해봤으니 어떻게 하는지 알지? 여기 계좌를 입력하게.”
그가 내게 노트북을 건넸다. 거기에는 프로그램 하나가 떠 있었다. 개인 크래딧 계좌 입력하면 자동으로 크래딧이 그에게 전달되는 형태인 것 같았다.
나는 옆집 남자의 집에서 그의 개인용 PC에 있던 크래딧 계좌를 확인했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잔액은 솔직히 아슬아슬했지만.’
입금은 무사히 처리되었다. S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노트북을 닫았다.
“이걸로 골칫덩어리 하나가 사라졌군.”
“골칫덩어리요?”
“아웃스페이서 말일세. 어떤 괴짜인진 모르겠지만 이런 위험한 생물을 산다니. 컬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족속이야.”
“그렇죠.”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존재의 뒷담화를 하는 S에게 나는 맞장구를 쳐줬다.
현실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게임에서 컬트와 아웃스페이서는 서로 적대 관계다. 스토리상으로도 그렇고 게임 설계상으로도 그렇다.
아웃스페이서의 최종 목표는 볼텍스원에게 파괴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이를 위해 은하를 뒤덮을 정도로 강력한 사이킥 파워가 필요하므로 컬트들을 잡아먹어서 사이킥 파워를 축적하는 것이다.
사이킥 파워 관련 유전자 정수를 얻어서 군락에 적용시키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아웃스페이서는 몇몇 종류의 특성 사용에 제한이 있다.
‘아웃스페이서는 사이킥 파워를 사용할 수 없으니까.’
볼텍스원에 의해 사이킥 파워 능력을 종족 전체가 빼앗겼다는 설정 때문에 아웃스페이서는 초능력과 관련된 모든 특성을 사용할 수 없다. 딱 하나 초능력 공격에 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빼고는 말이다.
선천적으로 제공되는 내성 덕분에 약한 초능력 공격은 막아 낼 수 있지만, 강력한 사이킥 파워 기술에는 취약하다. 즉 아웃스페이서는 최소한의 초능력 방비 수단만 갖추고 있을 뿐, 여러 종류의 초능력 공격에는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컬트가 아웃스페이서의 카운터지.’
컬트는 그야말로 사이킥 파워의 전문가. 플레이어블 종족 중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초능력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종족이다.
아웃스페이서가 초능력 내성이 있다고 해도 이를 우회해서 공격할 수단을 충분히 갖고 있다.
육체적으로는 허약하지만 다양한 방식의 초능력 공격이 가능한 컬트, 무수히 많은 군단을 양성할 수 있지만 초능력에 취약한 아웃스페이서. 커뮤니티에서는 늘 둘 중 누가 더 유리한지에 대한 토론이 끊이지 않았다.
‘말하는 것을 봐서는 현실에서는 딱히 둘이 적대하지는 않나 보네.’
자세한 부분은 컬트를 직접 만나 봐야 알 수 있을지도.
아무튼 브로커와의 볼일은 끝났으니 여기서 물러나야겠다.
“거래가 끝났으니 가 볼게요.”
“이봐.”
“예?”
“컬트 쪽을 뚫은 사람은 역시 팀장이지?”
“예? 아. 네.”
“그 양반도 보통은 아니라니까. 혹시 내게도 가르쳐줄 수 없겠나?”
“뭘 말이죠?”
“컬트 인맥 말일세. 앞으로 그쪽과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챙겨 주지. 물론 L 당신에게만 말이야.”
확실히 영향력 있는 브로커라 그런지 나에게도 협상하려든다. 오래 대화할수록 속이기 힘든 나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태도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쩝. 아쉽구먼.”
“그럼.”
입맛을 다시는 그에게 인사한 뒤 떠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자가 나를 멈춰 세웠다.
“잠깐. 거기 멈춰.”
“케이트? 왜 그러지?”
나를 세운 자는 역시나 볼프였다. 케이트라 불린 늑대 머리를 가진 볼프가 내게 다가와 코를 킁킁댔다.
“수상한 자입니다.”
“수상하다니? L하고는 몇 번 거래를 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뭔가 감추고 있습니다.”
“감춰?”
그 말을 들은 S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어이. 이게 무슨 말이지?”
“예?”
“케이트는 후각이 다른 볼프에 비해 뛰어나지. 보안팀 분위기가 요상하다던데 설마 끄나풀이냐? 다들 저년 붙잡아.”
S를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이 내게 총을 겨누며 천천히 다가왔다.
‘결국 이렇게 되나.’
내가 알기로 게임에서 볼프는 의태 기관의 효과를 완전히 감지해내지 못한다. 케이트가 특이한 것인지 현실이 되면서 볼프의 감각이 더 뛰어나게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S만 빼고 다 죽이자.’
좋게 풀렸으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부터는 저들이 모두 자초한 일. 나는 꼬리로 옆에 있던 케이트를 찔렀다.
“케흑!”
늑대 볼프답게 희한한 비명을 내지른 그녀가 허벅지에 구멍이 난 채로 쓰러졌다.
그녀는 하급 강화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정도 수준의 강화복은 방어력이 높지 않다. 자체 실드가 내장된 상급 강화복이 아니라면 내 공격을 막기는 어렵다.
“케이트!”
“이 빌어먹을 년이!”
신경독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그녀를 내버려 두고 나는 경호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중간에 8개의 총구에서 발사되는 레이저의 비가 내 몸에 쏟아졌지만 내 몸은 육체 강화 타입과 각종 특성으로 강화된 상태. 당연히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인간에게 전투형 팔을 휘둘렀다.
“꺽!”
‘두 명 째.’
상대의 턱을 박살내서 무력화시킨 나는 옆에 있던 다른 사이보그에게 가시뼈를 발사했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탄환이 사이보그의 머리 뚫고 지나간 것으로 모자라 뒤에 있던 다른 인간의 머리까지 꿰뚫었다.
‘네 명.’
“저년이 위장술을 쓴다!”
“머리 숙이세요!”
“히, 히익!”
시체 두 구가 쓰러지기 전 나는 땅을 박차 공중으로 도약했다. 목표는 적들 중 가장 큰 키를 가진 사이보그. 내가 날아들자 그의 안색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
“끄악!”
그를 덮쳐서 쓰러뜨린 나는 4개의 전투형 팔로 마구 할퀴었다. 얇은 강화복이 나의 예리한 손톱에 의해 맥없이 찢어졌다.
“아아악! 도와줘!”
“이런 씹!”
저들 눈에는 내가 두 팔만 휘두르고 있는데 아군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찢겨나가는 걸로 보이겠지. 사이보그 몸 안에 있던 기계부품과 내장들이 허공에 비산하는 광경을 본 브로커 S가 목 졸린 닭소리를 냈다.
“씨, 씨발! 저희로는 무리입니다!”
“내가 막을 테니 너희들은 VIP 대피시켜!”
얼굴에 흉터가 있는 인간이 다른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 그를 제외한 3명의 경호원이 S를 데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그가 뒤로 물러나며 레이저 소총으로 나를 마구 쏘아댔다. 붉은빛 광탄들이 내 몸에 작렬했지만, 그가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내 몸은 살아 있는 탱크나 다름없다. 플라즈마 무기나 최소 가우스 무기 이상을 들고 오지 않는 이상 내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
레이저 공격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곧 사격을 멈췄다.
“젠장…!”
그는 소총을 버리더니 품에서 작은 막대기를 꺼냈다. 지난번 연구선에 침입한 해적이 쓰던 소닉 블레이드와 동일한 모델이었다.
‘지난번 해적도 그렇고 혹시 같은 조직 소속인가?’
스페이스독에는 은퇴한 군인이나 용병이 많이 들어간다. 행동 방식도 비슷하고 무기도 비슷한 것을 보니 같은 조직에 있다가 은퇴한 뒤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둘 다 내게 죽는 것은 똑같지만.’
“내가 죽더라도 여긴 못 지나간다.”
대단한 직업 정신이지만 봐줄 생각은 없다. 나는 꼬리를 크게 휘둘러 땅 위를 쓸었다.
흉터의 남자가 내 공격을 간파하고 뒤로 뛰어올랐지만 내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가시뼈가 그의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의 동공이 커지고 가시뼈를 막아 내기 위해 급히 소닉블레이드를 세웠다.
순발력은 제법이지만 상대가 안 좋았다. 귀에 거슬리는 금속음과 함께 소닉블레이드가 두 동강이 났다.
“이런!”
나는 짧게 돌진해서 머리로 그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머리에 솟은 굵은 뿔이 연약한 강화복을 뚫고 남자의 장기를 헤집었다.
“괴, 괴물….”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서 뿔에 꿰인 그를 멀리 내던졌다. 옆구리의 절반이 뜯겨 나간 그는 바닥에 나뒹굴기 전에 숨이 끊어졌다.
“우, 우우우….”
홀로 남은 케이트가 전신이 마비된 채로 나를 보며 덜덜 떨고 있었다.
‘볼프라. 마침 잘 됐네.’
볼프는 변신이 가능한 플레이어블 종족에 속한다. 즉, 진화 조건으로 카운트된다는 뜻.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제 로이드로 변할 필요는 없어.’
사직 처리는 끝냈고, 향후 브로커와의 접선 계획은 파탄이 났다.
브로커를 죽이든, 아웃스페이서를 먹어 특성을 얻은 뒤 그를 이용하든 어느 쪽이든 간에 로이드는 필요성을 다했다.
로이드로 변할 필요성이 사라진 이상, 볼프의 유전자를 섭취해도 딱히 문제는 없겠지.
나는 의태 기관을 해제했다. 외피에 있던 작은 구멍에 막이 덮이면서 주변에 퍼져있던 페로몬도 사그라들었다.
“우, 우우우!”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를 본 케이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쳤지만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신경독이 그물이 되어 그녀의 몸을 옥죄고 있으니까.
나는 4개의 팔로 그녀의 몸을 단단히 붙잡은 뒤 입을 크게 벌렸다.
“으우, 우으욱!”
‘그럼 잘 먹겠습니다.’
뱀처럼 크게 벌어진 내 입이 그녀의 머리를 통째로 씹었다. 그녀의 근육이 단말마를 대신하듯 순간 파르르 떨리다가 그대로 풀렸다.
‘음.’
볼프의 머리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저 수북한 털만 제외하면 오히려 맛있는 축에 속할 정도로.
‘고양이 맛하고 좀 비슷하네.’
육즙이 많은 햄버거를 먹는 느낌. 확실히 처음 고양이를 먹었을 때에 비해 역치가 올라간 것인지 그렇게 놀라울 정도의 기쁨을 주지는 않는다.
‘나머지는 이따가 즐기도록 할까.’
아쉽지만 도망친 S와 경호원이 남아 있다. 그들을 처리한 뒤에 먹는 게 좋겠지.
나는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모아 카메라의 감시범위가 닿지 않는 곳에 뒀다.
‘좋아.’
뒷정리를 끝낸 나에게 보조기관이 말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 멀리 가지 못했다고.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