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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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는 언제나 본인이 신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밀수라는 중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믿었다.
다른 이들이 무계획적으로 시작하다가 덜미를 잡혀 유흥 지구의 ‘고용인’이 되는 것을 본 뒤, 그는 밀수를 매우 신중하게 준비했다.
밀수동물관리팀과 미리 유착 관계를 만들어 놓고, 항만보안팀, 심지어 행정 지구의 보안팀까지 줄을 대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 우주 도시 내에 있는 범죄자 중 그만큼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거다.
물론 샌더는 현실적인 사람이었기에 본인이 완벽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감시망이 자신에게 닿기 전, 다른 행성에 이주할 수 있을 만큼 벌면 바로 손을 털 생각이었다.
그런데 목표 달성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그의 꿈을 짓밟았을 줄은 몰랐다.
‘빌어먹을!’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도망치던 샌더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카메라를 끄면서 항만보안팀의 인맥들에게 순찰 반경을 변경해 달라고 했기 때문에 이 주변에는 사람은커녕 안드로이드조차 없었다.
물론 작동하는 카메라가 남아 있지만 거기로 달려가자니 후환이 두려웠다. 새벽에 여러 명의 인원을 데리고 물류 보관용 컨테이너가 가득한 곳에 몰래 침입했다는 사실부터가 밀수를 했다는 의심을 사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메가콥에서 밀수가 중죄라는 사실을 샌더는 잘 알고 있다.
그야말로 외통수.
유흥 지구에서 고통받는 ‘고용인’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아무래도 경찰서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경찰서에 가면 난 끝장이야!”
“하지만 저희들로는 적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보호를 요청하는 게 나을 겁니다.”
“그, 그건…젠장!”
경호원말대로다. 당장 죽는 것보다는 시간을 버는 것이 낫다.
아무래도 그동안 샌더가 지구총괄보안팀에 찔러뒀던 크래딧이 얼마나 효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할 때가 온 듯했다.
경호원 한 명이 후방을 경계하고, 나머지 2명이 샌더에게 바짝 붙어서 움직였다.
하역장에서 나가면 멀지 않은 곳에 경찰서가 있다. 그들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거대한 성벽 사이를 부지런히 이동했다.
“아아아악!”
“!”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샌더가 움찔 떨며 뒤를 돌아봤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경호원이 떨어트린 레이저 소총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뛰겠습니다.”
경호원들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샌더를 잡아끌었다. 샌더의 몸을 거의 반쯤 들다시피 한 그들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저 멀리 하역장을 두르고 있는 철망 펜스 가운데 반쯤 열린 철망 문이 보인다.
저기만 넘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셋은 다리에 힘을 줬다. 샌더도 조금씩 희망을 갖고 있던 중, 옆의 경호원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잠깐!”
“왜 그래?”
“무슨 소리가 들렸어.”
그 말에 샌더도 귀를 기울이니 확실히 뭔가 소리가 들렸다.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옮길 때마다 나는 소리랑 비슷하지만 훨씬 작다고 해야 할까? 망치 같은 것이 쇳덩어리를 주기적으로 내려치는 것 같은 소리였다.
“저기만 나가면 경찰서입니다. 뛰세요.”
“뭐?”
“당장 뛰시라고요!”
경호원의 외침에 샌더는 달렸다. 그 뒤에서 경호원 두 명 모두 레이저 소총을 들고 주변을 경계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경호원들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그의 공포심을 몇 배 이상 끌어올렸다.
미친놈처럼 달리느라 신발도 벗겨졌지만 샌더는 느끼지 못했다. 철망문이 이제 바로 앞이었다. 반쯤 열려 있는 문에 손을 댄 순간, 그는 종아리 쪽이 따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
갑자기 다리가 풀려 그는 철망에 얼굴을 처박았다. 피가 흐를 정도로 세게 부딪쳤으니 당연히 통증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는 어떠한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이게 뭐야?’
그제야 그는 자신이 몸이 완전히 마비되었음을 깨달았다. 통나무처럼 바닥에 쓰려져 있는 그 위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르르르르」
「그것」의 입이 그의 얼굴에 가까워졌다. 침이 뚝뚝 떨어지는 괴물의 입을 보니 샌더는 자기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
「그것」이 짧게 으르렁거리고 샌더의 몸을 집어 들었다.
‘씨, 씨발!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놈이 샌더를 데리고 간 곳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곳, 컨테이너 크레인 아래였다. 놈은 샌더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무, 뭐야?’
「그것」은 샌더를 내버려 두고 냉동 컨테이너에 다가갔다. 아웃스페이서가 냉동 보관된 그 컨테이너였다.
컨테이너의 문 앞에 선 놈은 머리를 단말기에 가까이 댔다.
‘뭐 하는 거지?’
잠시 그러고 있던 놈은 가슴 쪽에 있는 작은 팔로 단말기를 조작하더니 손쉽게 문을 열었다. 이어서 놈은 쿵쿵 소리를 내며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놈이 들어간지 한 시간이 지났다. 놈은 뭘 하는지 들어간 이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제발 누가 좀 도와줘!’
놈이 다른 것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서둘러 도망가야 하지만 그의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저 그는 역한 냄새를 풍기며 그곳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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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나네.’
나는 브로커 S가 지린 체액이 묻은 어깨를 털었다. 위협만 할 생각이었는데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줄은 몰랐다. 너무 세게 찌르면 쇼크사할까봐 일부러 살살 찌르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아직은 죽이면 안 되니까.’
브로커 S는 중요한 인물. 설령 내가 잡아먹더라도 적절한 때에 잡아먹어야 한다.
‘브로커보다 이것부터 처리해야 해.’
현재 나는 아웃스페이서가 보관된 냉동 컨테이너에 들어왔다.
컨테이너 안에는 극저온 냉동관 20개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브로커 S도 있고 여기저기 시체들도 널려 있으니 빨리 아웃스페이서를 먹어 치워야 한다.
나는 맨 앞의 냉동관에 있는 단말기를 조작했다. 관에서 서늘한 공기가 빠져나가며 유리관이 열렸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가재와 낙타거미를 뒤섞은 것 같은 생물이었다.
80cm쯤 되는 크기에 낙타거미를 닮은 몸, 8개의 다리는 모두 몸의 길이만큼 길었고 그 중 2개의 다리의 끝에는 거대한 집게발이 달려 있었다. 얼굴을 보면 윗턱은 길고 뾰족하게 솟아 있어서 마치 낫을 입에 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병졸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냉동관에 있는 녀석은 일벌레. 목록에 아무 말도 안 적혀 있어서 당연히 병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괜찮아. 여왕이 아니면 거기서 거기니까.’
딱히 문제될 것은 없다. 내가 원하는 특성은 아웃스페이서라면 어떤 종류를 먹어도 획득이 가능하니까.
나는 잠들어 있는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뜯어내 씹어먹었다.
‘차갑지만 않으면 참 좋을 텐데.’
녀석은 생긴 것처럼 대게찜 맛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냉장고에 넣어놓은 대게찜을 해동하지 않고 먹는 느낌이었다.
‘아. 게맛살 맛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정감이 가는 맛이었다. 일벌레는 덩치가 1m가 안 됐기 때문에 다 먹는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첫 번째는 꽝.’
앞으로 남은 것은 19마리. 나는 열심히 남은 아웃스페이서들을 먹어 치웠다.
‘…….’
딱 3마리가 남았을 때, 아무리 나라고 해도 초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안 뜨는데.’
원래 포식 효과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까지 안 떴으면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냥 브로커 S를 살려 둘까?’
저자는 밀수를 위해 이곳에 왔다. 메가콥에서 밀수는 중죄이기 때문에 내가 자기 경호원을 다 죽였다고 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을 터. 그랬다간 자기도 의심받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화근을 남겨두는 것은 부담되는데.’
연구선에서는 배 안이다 보니 모든 인간관계가 상명하복의 논리 아래 있어서 예측하기 쉬웠지만 도시는 다르다. 저자가 어떠한 인간과 친하게 지내고, 나를 위협할 수단을 갖고 있을지 나는 모른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네.’
어찌 보면 지금까지 평탄하게 생존해왔을 지도 모르겠다. 게임이었으면 수도 없이 많이 죽었어야할 상황인데 무난히 넘겼던 것을 보면 말이다.
‘유전자 정수를 20마리 안에 얻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게임에서는 똑같은 생물 100마리를 넘게 먹었는데도 어떠한 유전자 정수도 못 얻었던 적이 허다했다.
특히 갤러곤이나 볼텍스원을 상대로 포식 효과가 안 떴을 때는 정말 게임을 접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게임에서도 이런 상황은 많이 겪어 봤으니까.’
나는 아웃스페이서에게 아무것도 안 나올 것을 상정하고 나머지 3마리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녀석을 다 먹었지만, 역시나 포식 효과는 뜨지 않았다.
‘…….’
이제 두 마리.
나는 반쯤 포기했다.
‘그냥 하나 남은 건 그냥 26호한테 갖다 줄까.’
20마리 중 18마리를 먹었는데 안 나왔다면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나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2마리 중 하나의 다리를 이빨로 씹었다.
오독거리는 식감과 안에 있는 탱탱한 살집이 내 미각을 기쁘게 만들었지만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그렇게 일벌레를 다 먹어치웠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포식 효과 발동! ‘기생충’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아웃스페이서 일벌레’의 생물 특성 중 ‘기생충’을 탈취.」
「‘기생충’을 적용하시겠습니까?」
「그르르르르!」
‘됐다!’
마침내 바라는 것이 떴을 때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기생충.
아웃스페이서는 종족 고유 특성으로 다양한 생물 병원체를 몸에 달고 산다. 기생충은 그러한 병원체 중 하나로 상대에 몸에 파고들어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다.
‘물론 아웃스페이서의 기생충은 대상의 행동을 제약하는 수준이지만.’
설정상으로는 대단하지만 게임에서 아웃스페이서의 기생충은 일종의 디버프기로 구현되었다.
기생충 효과에 당한 적은 특성 사용이 제한되거나 장비 사용이 제한되거나 하는 디버프에 걸린다.
사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강력한 특성이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에이모프가 기생충을 얻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염 기관하고 융합하면 강화된 기생충을 만들 수 있지.’
설정에 쓰여 있는 대로 다른 생물을 조종할 수 있는 기생충을 생산할 수 있다. 대신 오염 기관이 사라지고 육체 관련 특성에서 완전히 다른 특성으로 변경되지만, 현재 내가 보유한 육체 관련 특성은 총 11개. 타입 획득 조건인 10개 이상이기 때문에 오염 기관이 빠진다고 해서 타입이 없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기생충과 오염 기관을 융합해서 얻은 특성은 새 타입 조건 해금의 키 역할을 하는 특성이다.
육체 능력과 관련된 육체 강화 타입, 초능력과 관련된 초능력 강화 타입, 거기서 융합한 특성으로 새로 열리는 타입은 감염 강화 타입이다.
감염 강화 타입은 군중제어기 등의 디버프 관련 특성에 영향을 주는 타입이다. 직관적인 효과는 다른 타입에 비해 떨어지지만 기습 위주의 전략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매우 유용한 타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준성체로 진화하려면 타입 4개를 모아야 하니 하나라도 더 많이 모으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내 선택은 오로지 하나.
바로 수락하자 몸이 변이하는 것이 느껴졌다.
오염 기관을 담당하던 아래쪽 오른팔이 굵어지고 안에 알 같은 것이 들어찬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팔 안에서는 새로 생긴 기생충들이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생충’ 특성이 적용되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오염 기관’과 융합 가능.」
「‘기생충’과 ‘오염 기관’ 특성이 융합. ‘기생 군체’ 특성으로 진화!」
「기생 군체: 오염 기관 효과가 소실되는 대신 강화 기생충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강화 기생충은 총 5마리까지 운영할 수 있습니다.
*추신: 이런 역겨운 특성을 좋아하다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현재 특성화 가능한 타입은 2가지입니다.」
「초능력 강화 타입(5/6), 감염 강화 타입(1/4)」
‘좋아.’
원하는 특성을 얻었으니 이제 효과를 실험해볼 차례다.
나는 남은 아웃스페이서 한 마리도 먹어치운 후, 컨테이너 밖으로 나왔다. 마취가 얼추 풀렸는지 바닥을 열심히 기고 있던 S가 나를 보며 경기를 일으켰다.
“히익!”
하얗다 못해 누렇게 변색된 그의 얼굴은 명백히 공포에 질린 자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가 두려움을 느끼기에는 아직 이르다.
진짜 공포는 지금부터니까.
기생 군체를 활성화하자 내 아래쪽 오른팔이 꿀렁꿀렁 움직였다. 마치 뭔가를 토해내려고 하듯 움직이더니 손바닥에 있는 구멍에서 검은색 실지렁이가 튀어나왔다.
“무, 뭘 하려는 거야! 그, 그만둬!”
비명 섞인 울음소리를 내던 S는 내가 다가오자 울기 시작했다. 뚱뚱하던 그의 얼굴은 요 몇 시간 사이 겪었던 정신적 충격 때문인지 반쪽이 되었다.
내 손이 핼쑥한 그의 얼굴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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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 보겠습니다.”
브로커 S, 아니 샌더는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기생충 이식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샌더는 나의 노예다.
‘그래도 24시간 한정이지만.’
24시간이 지나면 기생충은 자동으로 사멸하고 샌더도 죽는다. 기생충이 그의 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죽기 전에 내가 교체해 줘야만 그도 살 수 있다.
샌더도 그 사실을 안다. 내가 없으면 본인도 죽는다는 것을.
‘똑똑한 사람이니 내게 쉽게 저항하지는 않을 거야.’
아마 병원 같은데 가서 적출하려고 하겠지만 그의 생각은 기생충이 전부 읽고 있다. 그가 조금이라도 불경한 마음을 품었다간 기생충이 그의 뇌에 고통을 주는 물질을 분비해서 벌을 주겠지.
‘엄청 아플 거야.’
이미 샌더는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지 겪었다. 어지간해서는 내게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샌더가 보는 앞에서 시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여줬다. 똑똑한 사람이니 내가 무슨 의도로 보여줬는지는 모르지 않겠지.
‘그럼 이제 돌아갈까.’
나는 리더 역할을 하던 경호원을 끼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잠에서 깬 26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와?」
[즈즈즈즈(배고플까봐)]
「와!」
나는 학습하는 에이모프다. 내가 먹이를 들이밀자 녀석이 바로 화를 풀었다.
녀석에게 밥을 넘기고 나는 냉장고에 보관해 뒀던 옆집 남자의 발목을 꺼냈다.
그렇게 우리가 야식을 즐기는 사이 밤은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