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0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는 알려진 것만으로도 수천 가지가 넘는 논플레이어블 생물종이 존재한다.
플레이어가 탐험할 수 있는 행성만 수백 개가 넘으니 어떻게 보면 적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다른 온라인 게임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다.
게임 속 생물종은 각자의 서식지에 맞춰 고유의 습성을 갖는다. 모두 비슷한 생태계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의 습성을 반영해 만들어진 덕분에 실제 존재하는 생물 같은 느낌을 준다.
지성체 NPC의 경우는 특정 문화권을 모티프해서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이 높은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스페이스 서바이벌도 게임이다 보니 모든 것이 다 현실적인 것은 아니고 예외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갤러곤.
신화 속의 드래곤을 모티프한 만큼 갤러곤은 꽤 많은 부분에서 일반 생물과 다른 습성을 가진다.
각종 보물이나 유물을 둥지에 모아둔다거나 강력한 사이킥 파워로 둥지 근처의 도시를 파괴하는 등의 행위는 일반 동물의 본능과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갤러곤의 이질적인 특성 중에는 새끼와 동족에 대한 집요한 애정도 포함된다.
갤러곤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사자와 비슷하게 무리를 형성해서 함께 지낸다.
갤러곤 무리에는 대개 1마리의 수컷과 7마리에서 8마리 정도의 암컷 갤러곤이 소속되고, 가장 약한 존재인 블루 갤러곤은 무리 전체의 보호를 받는다.
이러한 설정이 게임상에서는 블루 갤러곤의 고유 특성으로 구현되었다.
바로 동족을 소환하는 것.
설정상 갤러곤들은 특유의 사이킥 파워로 서로의 정신이 연결되어 있어서 아무리 동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부를 수 있다.
게임에서는 설정이 소환 기술로 표현되어 블루 갤러곤은 무리의 동족을 임의로 소환할 수 있다.
덕분에 블루 갤러곤 자체는 매우 약하지만, 다른 갤러곤들과 함께 상대해야하기 때문에 매우 까다로운 사냥감에 속한다.
랭커급 플레이어라면 찾기 힘든 갤러곤을 쉽게 잡을 수 있어서 좋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블루 갤러곤이 부른 동족은 정식 생물이 아닌 소환체로 취급되어 아이템이나 특성을 얻을 수 없다.
‘사실 그것 때문에 블루 갤러곤보다는 그 위의 그린 갤러곤이나 화이트 갤러곤을 많이 잡지.’
에이모프로 치면 유체에 해당하는 그린 갤러곤부터는 소환 특성이 사라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만한 상대는 결코 아니지만 다른 갤러곤 떼거리들과 싸우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낫다.
아무튼 게임 속 설정대로라면 현재 나는 매우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게 된다.
내 앞에 잠들어 있는 생물은 아무리 봐도 블루 갤러곤이니까.
‘근데 좀 많이 작네.’
블루 갤러곤의 크기가 못해도 2m가 넘는데 녀석은 50cm를 간신히 넘을 정도로 작은 크기다.
갤러곤이라는 종족을 모른다면 페어리윙이라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아니 착각은 둘째 치고 이걸 어떻게 잡았지?’
아성체가 된 나보고 생포하라고 시키면 절대로 불가능한 목표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블루 갤러곤은 일개 범죄자가 밀수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생물이 아니다.
스페이스독의 상위 카르텔, 아니면 메가콥의 프라임캐피탈급 이상의 세력이 도와주지 않으면 모를까.
‘누군가가 특수무역중심지를 파괴하려 해.’
갤러곤 무리라면 이곳,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를 파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주요새처럼 다수의 함대가 주둔하는 곳이면 방어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딱히 군사력이 강력하지 않으니까.
방위함대가 있긴 하지만 분노한 갤러곤들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나는 내막을 파악하기 위해 샌더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이 생물이 무슨 생물인지 아나?”
“페어리윙 아닙니까?”
내가 옆집남자의 목소리로 물었지만 샌더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갤러곤은 희귀한 생물이니까 모를 수도 있어.’
게임에서도 직접 마주친 플레이어는 상위권 이상의 소수에 불과하고, 하위권의 유저들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스크린샷이나 동영상으로 접할 정도다.
이곳은 현실이니 갤러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다.
“이 생물을 밀수한 자가 누구지?”
“어, 그게 제 기억으로는 제이드? 제이드 러셀이라는 자였습니다.”
“러셀?”
“예. 유치장에 갇혀 있었는데, 얼마 안 가 탈옥했다고 하더군요.”
러셀이라. 낯익은 느낌이 드는게 어디서 들어본 성 같다.
‘아.’
잠깐 고민하던 나는 그 성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해냈다.
‘아놀드 러셀.’
시현 유진의 심복이자 유성의 연구선에 위기관리팀장으로 있던 자다.
나와 싸웠던 시현 유진은 화이트 갤러곤의 유전자를 이식한 덕분에 갤러곤의 발톱 특성을 갖고 있었다.
갤러곤을 직접 사육했을 리는 없으니 그녀의 세력은 갤러곤의 서식지나 둥지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봐야 할 터.
그렇다면 그녀의 부하가 갤러곤을 몰래 들여오는 것도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그 말은 즉 노블캐피탈 유진 가문의 심복이 같은 계층의 티앤씨 가문의 도시를 공격하려고 했다는 뜻이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인데.’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나는 게임에서 자주 겪었다.
메가콥 플레이어들이 가장 기대하는 이벤트.
‘내전.’
설정상 메가콥은 7개의 거대 가문의 지배를 받는다.
노블캐피탈에 속하는 5개의 가문과 프라임캐피탈에 속하는 2개의 가문들은 서로 유일한 지배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는데 가끔씩 무력을 동반한 혈전을 벌인다.
“이 도시에 축제가 있나?”
“예? 혹시 이사회를 말씀하시는 건지…?”
“이사회?”
“예. 다음 메가콥 CEO를 결정하기 위해 프라임캐피탈의 이사들이 모일 예정입니다. 이사회 개최까지는 오늘을 기점으로 23일 남았군요.”
샌더의 말을 들으니 짐작이 갔다.
메가콥의 최고지도자는 선거에 의해 결정된다. 노블캐피탈의 5대 가문이 후보를 내면 프라임캐피탈의 2대 가문의 이사들이 투표를 하는 형태다.
게임에서 메가콥 플레이어는 자기가 소속된 가문이 CEO가 되면 엄청난 이권이 생기기에 어떻게든 자기 세력에서 CEO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아니면 상대가 CEO 후보로 못 나오게 작업을 치든가.’
게임에서도 그런데 현실이라고 오죽할까.
아마도 시현 유진은 이사회가 발표되기 전 부하를 시켜 갤러곤을 밀수시켰을 거다. 이후 이사회 개최에 맞춰 갤러곤을 죽이려고 했겠지.
티앤씨 가문도 일단은 유진 가문의 경쟁자니까 그녀의 행동이 딱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지금은 죽었지만.’
이사회까지 남은 시간은 23일.
실종되었다고 하는 제이드는 아마 이사회가 열리는 날에 맞춰 블루 갤러곤을 죽이기 위해 도시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다.
그의 주인은 이미 죽었지만 계획의 실행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떻게 한다.’
이대로 다시 돌려놓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내가 먹어 치우는 것도 문제다.
갤러곤의 특성은 매우 탐나지만 타이밍이 걸린다. 이사회만 아니었다면 먹은 뒤 바로 다른 행성으로 도주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게 안 되니까.
그렇게 고민하는데 얼어붙어 있어야 할 블루 갤러곤의 꼬리가 꿈틀거렸다.
「애기야 얘 움직여.」
[즈즈즈즈(나도 봤어)]
급히 냉동관을 다시 닫으려고 하는데 갤러곤이 눈을 떴다.
‘아.’
보랏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돌아가며 주변을 훑다가 내 얼굴에서 멈췄다. 그러더니 녀석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이런.’
나는 재빨리 26호를 들고 감쌌다.
「두려움」
어리지만 그래도 갤러곤이기에 강력한 사이킥 사념파가 내 몸을 스쳐 지나갔다.
나에게는 초능력 내성 특성이 있어서 사념파 정도로는 피해를 보지 않는다. 내가 보호한 덕에 26호도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
“흐, 흐억, 거걱….”
안타깝게도 보호자가 없는 샌더는 갤러곤의 사념파에 맞고 말았다. 그는 전기에 감전된 듯 몸을 덜덜 떨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즈즈즈(진정해)]
「검은색」「어둠」「공포」「죽음」
[즈즈즈즈(해치지 않아)]
내 말에 녀석이 사념파를 쏘는 것을 멈췄다.
거짓말은 아니다. 당장 녀석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 잡아먹을 거면 이 도시에서 빠져나갈 기회가 생긴 뒤에 잡아먹어야 하니까.
「너」「어른」「신뢰」「진정」
내 속마음과 별개로 녀석은 나를 믿기로 한 것 같다. 갤러곤의 사념파가 좀 전까지는 일렉트릭 기타 같은 소리였는데 지금은 잔잔한 물결처럼 고요하게 변했다.
‘어른이라고?’
게임에서도 갤러곤은 사념파로만 소통하므로 단어나 개념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화한다. 녀석이 말한 단어를 보면 나를 무리의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 때문인가?’
내 뒷머리에 뻗어 있는 ‘괴물의 촉수’.
부위만 다르지 생긴 것만 봤을 때는 화이트 갤러곤의 촉수와 똑같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까 대화가 되는 것도 괴물의 촉수 때문인가?’
게임에서 갤러곤이 플레이어에게 말을 거는 경우가 있지만, 반대로 플레이어가 말하는 것을 갤러곤이 알아듣지는 못한다.
나도 원래라면 갤러곤과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괴물의 촉수 덕분에 대화가 가능하게 된 것 같다.
‘아무튼 이 녀석, 날 화이트 갤러곤으로 생각하나본데.’
일단 지금은 녀석의 착각을 적당히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좀 전보다 안정된 녀석에게 질문했다.
[즈즈즈 즈즈 즈즈즈(왜 이곳에 왔지?)]
「나」「돌연변이」「고향」「추방」
녀석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돌연변이라서 추방됐다고?’
내가 알기로 갤러곤 중에도 변종이 존재하지만 일반 생물 사이에서 나오는 돌연변이와는 약간 다르다.
변종은 갤러곤 중 사이킥 파워를 과잉 섭취해 기괴하게 변한 괴물로 동족들에게 배척받는다. 신화나 다른 대중매체에 흔히 등장하는 타락한 악룡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변종 같지는 않은데.’
블루 갤러곤이면 새끼인데 사이킥 파워를 과잉 섭취할 일은 없을 터. 덩치가 동족에 비해 훨씬 작은 것을 봤을 때 녀석이 말한 대로 돌연변이라서 추방당한 것으로 보인다.
‘시현의 부하가 헛짓거리를 했군.’
이 녀석이 고향에서 추방된 녀석이라면 동족을 불러도 오지 않을 테니 그들의 계획은 무효가 된다.
‘잠깐, 그러면 내가 먹어도 상관없는 거 아냐?’
동족을 부르는 특성이야 여전히 갖고 있겠지만 불러도 오지 않는다면 굳이 내가 녀석을 안 잡아먹을 이유가 없다.
녀석은 내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알아차렸는지 급히 사념파를 쐈다.
「나」「생존」「너」「약속」「대가」「보물」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살려주면 대가로 보물을 주겠다고?)]
에이모프에게 보물은 유전자 정수지 유물 장비는 필요 없다. 내가 미덥지 않다는 기색을 보이자 녀석은 재차 말을 이었다.
「나」「기억」「용 둥지」「너」「안내」「가능」
그 말에 나는 녀석을 찌르려고 한 꼬리를 내렸다.
‘용의 둥지를 안다고?’
보물은 필요 없지만 용의 둥지는 다르다.
내가 준성체가 된 이후에는 무조건 갤러곤을 잡아야 한다.
성체로 진화하는 데 필요한 조건인데다가 희귀 특성을 얻기 위해서다.
용의 둥지는 갤러곤 무리가 서식하기에 갤러곤 유전자 파밍에 최적화된 곳이다.
‘용의 둥지에 대한 정보는 고급 정보야.’
나는 2개의 보상을 고민했다.
동족 소환에 대한 위험이 사라진 이상, 내가 녀석을 먹어도 큰 탈은 없다.
당장 나는 초능력 관련 특성이 아쉬운 상황이기에 녀석을 먹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물론 포식 효과가 뜬다는 보장은 없지만.’
반대로 먹지 않고 데리고 있을 시, 용의 둥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끼 주제에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갤러곤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녀석의 말은 사실이야.’
녀석은 그저 나의 선택에 맡긴다는 듯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저항하거나 다른 생각을 품는 기색은 일절 없었다.
‘죽여? 말아?’
내 꼬리가 나의 엇갈린 심정을 반영하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렇게 몇 분간 고민하던 나는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