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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41화 (42/400)

E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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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스-01.

수풀과 녹림이 우거진 정원에 시현 유진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무 위에 앉아 지저귀는 작은 새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때 어디선가 하인들이 나타나 음식이 담긴 카트를 끌고 들어왔다.

“아가씨. 식사 시간입니다.”

“…….”

집사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정원의 모습을 한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새하얀 눈과 같은 실험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인들이 간이 식탁을 차리고 위에 음식이 담긴 접시를 하나씩 올렸다.

집사가 정중한 자세로 음식을 소개했다.

“메인디쉬는 메이플 소스를 얹은 오리 로스트입니다.”

스타유니언은 구성원들의 사유재산 소유와 사치를 금한다. 모든 사이보그 인민은 정해진 음식과 영양만을 섭취하도록 기계위원회가 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필품 말고 조금이라도 특이한 식재료는 대도시라고 해도 구하기 어려웠다.

작스-01에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다 요리하는 것만큼 어려운 음식을 그녀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내려다 봤다.

“아가씨?”

“…….”

“아가씨, 이것은 아가씨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입니다.”

그녀도 안다.

스페이스독에 잠입했을 때도 그녀가 이 요리를 얼마나 먹고 싶어 했는지를.

‘그래. 시현 유진이 좋아하는 요리지.’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집사가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아가씨’께서 저희에게 클론 기술의 부작용에 대해 말씀해주시면서 이렇게 요구하셨습니다. ‘아가씨’께서 드시던 음식, 생활 습관, 의복 등 모든 것을 동일하게 맞춰야 한다고 말입니다.”

“…….”

인류가 초광속으로 이동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직 그들이 가지 못한 길은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복제인간 제조였다.

메가콥에서 금지된 복제인간 제조는 유전자 과학 기술이 극에 달한 유진 가문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복사체를 원본과 동일하게 만드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까지 똑같이 만드는 일은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하물며 원본의 기억을 복제인간에게 전송해서 원본과 동일하게 움직이게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신의 영역이었다.

메가콥의 기술로는 불가능했을 일을 시현 유진은 비과학적 영역에 의존해 해결했다.

컬트 스승에게 사이킥 파워를 활용해 영혼과 기억을 옮기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컬트면서도 본명 대신 스스로를 범호라고 칭하는 그 기이한 자는 시현의 아버지 정우 유진의 부탁을 받아 그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싸우는 기술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장비를 활용하는 방법, 심지어 여러 생물의 유전자 종류와 활용법까지 그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의 가르침 중에는 사이킥 파워를 활용해 영혼과 기억을 보호하는 방법과 이동시키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타의에 의해 강제로 그림자가 될 때도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오리기름으로 튀긴 마늘을 포크로 집어 입에 넣었다. 달착지근한 맛과 바삭한 식감이 미각을 자극했지만, 그녀는 아무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이건 내 즐거움이 아니야.’

영혼을 이동시키는 기술은 분명 성공했다. 그녀가 죽기 전까지 갖고 있던 기억이 클론의 몸에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범호는 이런 부작용이 있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라는 듯이 얘기했다.

물론 시현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단순히 사이킥 파워로 영혼만 옮기면 끝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조건만 갖춰진다면 사실상 한 사람을 불멸로 만들어 주는 기술이니까 분명히 그가 모르는 부작용이 존재할 것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스타유니언의 정밀한 가공 기술을 활용, 그녀의 영혼과 기억에 맞춰 클론의 뇌를 재조정하는 기계까지 마련했다. 그 덕분에 현재 그녀는 원본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나마 다른 점은 유전자 개조가 덜 끝났다는 점뿐이다.

또한 그녀는 부하들에게 클론 관리를 어떻게 하고, 영혼이 이식된 클론을 어떻게 대할지 등까지 상세하게 지시해놨었다.

그녀는 어떠한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완벽히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끝마쳐 놨다.

하지만 이 정도로 자기 몸에 이질감이 들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식사 중에도 본인이 아닌 ‘시현 유진’이 좋아하던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 안에서 떠나가지를 않았다.

‘…빌어먹을.’

그렇게 억지로 식사를 마친 그녀는 부하들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이사회가 얼마 안 남았다고?”

“예. 첩보에 의하면 아키라 유진도 관광차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에 방문한다고 합니다.”

“관광이라. 그 늙은이가 이젠 농담도 즐겨하나 보군.”

싸늘하게 내뱉듯 말한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아키라는 편집증적일 정도로 목숨을 소중히 하는 양반이지만 겁쟁이는 아니다. 이사회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두고 지구에 숨어 있을 리 만무하다.

‘아키라는 이동할 때마다 그림자를 둘 이상 대동하지.’

그는 모르겠지만 시현은 그림자들의 약점을 전부 꿰뚫고 있었다. 그녀보다 강한 코드 블랙의 약점조차도 말이다.

극도로 약해진 지금도 그녀는 그녀보다 낮은 코드의 그림자 한 명 정도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페어리윙으로 위장시킨 갤러곤 이송은 어떻게 됐지?”

“제이드의 보고에 의하면 아직 도시에 잘 남아 있다고 합니다.”

“갤러곤이 습격하는 와중에도 그림자가 있다면 그 늙은이는 어떻게든 도망치려 할 거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래의 계획은 그녀가 직접 아키라의 호위들을 제거한 뒤 빠져나가고, 나머지는 분노한 갤러곤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경쟁자인 노블캐피탈과 프라임캐피탈이 아키라를 보호할 리가 없으니 호위만 사라진다면 그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늙은이는 내가 살아있는 지 몰라.’

아무리 노괴가 대단하다고 해도 죽은 자의 클론이 자기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암살자에게 가장 좋은 조건은 희생자가 자기를 노리는 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를 잘 이용하면 몸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진 그녀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리고 우주도시를 파괴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아.’

라일라 쳄벌린을 비롯해 프라임캐피탈의 귀족들을 다수 제거할 수 있는 기회다. 그녀의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해서 미루거나 타인에게 넘길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획은 그대로 진행한다. 제이드에게 변동사항은 없다고 전하라.”

“알겠습니다. 아가씨.”

부하를 돌려보낸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 새끼…!”

그녀가 겪는 고통, 혼란스러움 등은 모두 다 그놈 때문이었다.

그녀는 맹세했다. 자기를 죽인 그 괴물을 반드시 육편으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

샌더가 내게 돌연변이 갤러곤을 바친 지 이틀이 지났다.

나는 갤러곤을 죽이지 않았다.

‘둥지 쪽이 더 좋은 보상이니까.’

갤러곤의 고기를 먹는 것은 도박성이 짙다. 운이 좋다면 강력한 특성을 얻겠지만 운이 없다면 그것으로 끝.

반대로 녀석과 거래한다면 당장 얻는 것은 없지만 다음 단계로 진화한 뒤가 훨씬 편해진다.

‘갤러곤의 둥지는 직접 찾기가 엄청 힘드니까.’

게임을 할 때도 갤러곤의 둥지를 찾느라 개고생을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둥지의 위치를 안다는 것은 메리트다.

물론 녀석이 죽지 않고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겠지만.

「큰애기야. 봐봐.」

내 어깨에 있는 26호가 상념에 빠져 있는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샌더에게 상납 받은 먹이 중 한 마리는 26호에게 넘겼다. 26호를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무 생물이나 먹이는 것은 아니고 내게 유용하지 않은 특성을 가진 녀석이거나 숫자가 적어 포식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종류를 위주로 넘겼다.

때마침 성장 조건을 다 채운 것인지 26호는 촉수가 하나 더 생긴 상태였다. 덕분에 녀석에게 달린 촉수는 이제 3개다.

「큰애기야. 팔이 새로 생겼어.」

[즈즈즈(그러네)]

내가 준 먹이로 성장했다는 것이 기쁜 건지 녀석은 계속해서 나에게 촉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촉수가 하늘하늘 흔들릴 때마다 보라색의 반투명 에너지가 공중에서 빛을 내뿜다가 사라졌다.

‘확실히 전보다 강해지긴 했네.’

나는 26호의 성장 수준을 알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시각적으로 녀석이 강해지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좋은 일이다.

「나」「먹이」「감사」

[즈즈즈 즈즈즈(내가 준 게 아니야)]

「작은어른」「감사」

내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갤러곤, 아드하이가 먹이를 나눠준 26호에게 감사를 표했다.

녀석은 자기를 오드 무리의 일원 아드하이라고 소개하며 내게 무리 이름을 물었지만 나는 딱히 소속된 무리가 없다.

녀석은 어른인 나를 섬기기로 맹세했다. 내가 무리가 없으니 녀석의 이름도 자동으로 무리 이름을 뺀 아드하이가 되었다.

「작은애기도 지켜야 해.」

어깨 위에 있는 26호가 파장과 함께 몸을 빛내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 모습이 어린아이가 가슴을 펴는 것처럼 보여서 나도 모르게 아드하이와 26호를 쓰다듬었다.

‘게임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지.’

신기하면서도 또한 흥미로운 변화다.

홀로 생존하고 진화하는 아웃사이더 종족 에이모프가 벌써 데리고 다니는 생물이 두 마리나 되다니.

게다가 데리고 다니는 동물이 게임에서는 테이밍이 불가능한 갤러곤과 씨 데몬이다.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내 목표는 세 가지였다.

생존하고 사냥하고 진화하는 것.

그리고 승천에 도달하는 것.

지금도 그 목표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이 세계에 녹아들면서 나도 변하는 걸까?’

여태까지 내가 가장 많이 먹은 먹이는 인간이다. 그들의 유전자가 나에게 영향이라도 미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독립해서 생존하지 않고 무리를 짓는다.

동물 중에는 천적의 모습을 본따 생존수단으로 삼는 부류들이 있다.

어쩌면 나 역시 인간과 계속 상대하면서 그에 맞춰 진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에이모프에서 사회를 구성해 사냥하는 포식자로 말이다.

그런 잡생각을 하는 와중에 주거 지구에 금세 가까워졌다.

비밀통로에서 빠져나와 감시망을 피해 몰래 이동한 나는 단지에 들어섰다.

아파트 외벽을 기어오르려고 하는데 내 보조기관에 낯선 이가 감지되었다.

‘응?’

옆집남자의 집 앞에 한 남자가 있었다. 험악하게 생긴 인상에 양팔 모두 문신한 것을 보니 평범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지루한 얼굴로 복도 벽을 발로 툭툭 차고 있었다.

‘경찰은 아닌 것 같고 누구지?’

나는 26호와 아드하이보고 잠깐 숨어 있으라고 한 뒤, 의태 기관을 활성화시켰다.

옆집남자의 모습으로 복도를 걸으니 그가 날 쳐다본다.

“개새끼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그는 내가 안중에도 없는 듯 욕설을 뇌까렸다. 그 모습을 보니 저자는 집주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물어볼까.’

나는 라스의 집에 들어가려는 척하다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입니까?”

“…알 것 없고 들어가 잠이나 쳐 자세요.”

“제 옆집에 볼일이 있으신지?”

그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나를 잠깐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이 집하고 아는 사이야?”

“예.”

“씨발, 그럼 이 집 새끼가 남 애인 뺏고 다니는 새끼인 것도 알아?”

“네?”

“내가 여자 친구를 많이 사랑해서 걔 통신기에 살짝 수를 써놨는데. 일주일 동안 연락이 안 돼서 확인해 보니까 이 집에 있다고 나오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가 통신기 화면을 내게 보여줬다. 거기에는 인터넷 지도가 있었다. 주거 지구를 간략화한 지도에는 정확히 이곳에 빨간색 마크가 박혀 있었다.

“지금도 봐. 안에 있는 게 뻔히 나오는데 없는 척하고 있잖아.”

“그렇군요.”

이건 전혀 예상 못했다.

로이드에게 남자 친구가 있었을 줄이야. 라스와 함께 업소를 즐겨 다니며 퇴폐적인 오락을 즐기는 인간이었기에 애인이 따로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야. 오히려 잘 됐나?’

나는 고민하는 척하면서 몰래 보조기관으로 아파트 단지 전체를 스캔했다. 주변에 경찰이나 안드로이드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의 행동은 정황상 불법. 여자 친구의 실종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홀로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흠. 아마 뭐라도 사러 나갔을 지도 모르죠.”

“아니 내가 언제부터 기다렸는데….”

“그러지 마시고 잠깐 저희 집에서 기다리시죠. 금방 올 겁니다.”

내 말에 그는 내 몸을 훑어 봤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이르렀을 때, 그는 살짝 움찔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것 뭐 상관없겠지.”

의태 기관으로 구현된 나의 체격은 남자에 비해 많이 왜소한 편이다. 내 얼굴이 이상하지만 문제가 생겨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문을 열자 남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복도 저편에 숨어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26호와 아드하이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런 씹, 집 좀 깨끗이 하고 살지.”

“죄송합니다.”

“그리고 니미, 왠 좆같은 냄새가….”

남자는 고개를 내게 돌리자마자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느새 집 문을 26호와 아드하이가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어렸을 때 그런 얘기 못 들으셨나 봐요?”

“어, 어어?”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시면 안 되죠.”

나는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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