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3
‘적들이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그전에 먹이를 어떻게 요리할지 생각해 보자.
현재 내가 있는 곳은 C단지 3번 아파트.
형식은 복도식 아파트로 층마다 복도가 있고, 한 층에는 집이 6개씩 있어서 총 6가구가 거주 가능하다.
아파트 층 구조는 발전기나 공용 세탁 시설 등의 필요 설비가 있는 지하를 제외하고 총 6층까지 있다. 엘리베이터는 없고 복도 양 끝에 있는 계단으로만 이동 가능하다.
‘구조는 저쪽도 확인하고 들어오겠지.’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안드로이드가 있어서 구조를 모른다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안드로이드에게 아파트 데이터를 입력하면 끝이니까.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약점이 있어.’
안드로이드는 매우 똑똑하지만 정해진 프로그램에 맞춰서 움직이기 때문에 자율적인 사고능력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에게 어떤 건물을 지키라고 하면 접근하는 사람이나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적은 어렵지 않게 배제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지하에 폭탄을 심거나 공중에서 폭격하거나 하는 변칙적인 공격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실제로 내가 해적선의 냉각기를 산성피로 녹여서 망가트렸을 때도 안드로이드는 공격이라고 인지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의 부족한 사고능력을 보조하는 것이 다른 인간이다. 적들은 필시 안드로이드와 강화복을 입은 경찰들을 섞어서 투입할 거다.
‘메가콥 플레이어는 헐크 뮤턴트랑 인간, 안드로이드 균형을 잘 맞추는 게 실력의 척도였지.’
게임에서 메가콥이 무난하게 강력한 종족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그 유연한 플레이 방식에 있다. 플레이어 본인의 유전자를 개조해서 컬트처럼 무쌍 플레이를 하거나, 아니면 ‘고용’ 특성을 활용해 아웃스페이서처럼 다수의 병력을 지휘하는 플레이 등등.
‘이곳은 우주요새가 아니라서 헐크 뮤턴트는 없을 테니 인간, 안드로이드 조합일 거고.’
문제는 저쪽의 무장 상태.
안드로이드는 최근 가우스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경찰도 비슷한 무기를 든다고 가정한다면, 가우스 소총과 함께 강화복을 입고 올 가능성이 높다.
‘돈이 많은 도시니까 중급 강화복 이상으로 입고 오겠지.’
내가 있는 곳이 만약 지구(地球)나 화성이었다면 플라즈마 무기와 상급 강화복을 제식장비로 갖춘 정예병들과 싸워야 했겠지만 이곳은 그 정도까지 고도화된 무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래도 마냥 쉽지는 않겠네.’
레이저 무기는 나에게 손상을 줄 수 없지만 가우스 소총은 얘기가 다르다.
가우스 소총의 주 탄환인 텅스텐 탄약까지는 육체 강화 타입 덕분에 방어해낼 수 있다.
그러나 가우스 소총의 진가는 다양한 적에 맞춰서 탄환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관통력을 강화한 특수탄이라면 내 외피도 충분히 뚫는다.
‘적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빨리 끝내야겠네.’
보조기관으로 아파트 내부 어디 지점에서 적들을 노릴지 계산하는데, 내 눈에 26호랑 아드하이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얘들도 맹수인데.’
씨 데몬이나 갤러곤이나 고위험군 NPC에 속하는 생물들이다. 하나는 준보스 취급이고, 하나는 별명이 무려 드래곤이다.
둘 다 아직 새끼에 불과하지만 경찰을 사냥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을 거다.
‘26호는 최근에 성장했으니 사이킥 파워를 쓰는데 크게 어렵지 않을 거야. 아드하이는 갤러곤이니까 자기가 공격당하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거고,’
둘 다 급소만 정확히 노릴 수 있다면 약한 초능력으로도 적을 쉽게 죽일 수 있다. 어딜 노려야 하는지는 내가 가르쳐 주면 된다.
[즈즈즈 즈즈즈즈(얘들아 이리 와봐)]
나는 녀석들을 불러 모았다.
-
우주도시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이 찾아왔다.
별빛으로 장식된 검은 장막이 도시 전체에 내리깔리는 중, 주거 지구만은 장막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평소와 달리 주거 지구에는 마치 유흥 지구마냥 인간이 만든 빛이 가득했다.
무장트럭 위에 달린 경광등, 경찰들이 입고 있는 강화복 위에 장착된 헤드라이트, 각종 전자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현란한 빛들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것은 빛뿐만이 아니었다.
경찰들의 무전기 소리, 무장한 안드로이드의 굵직한 발소리,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등 주거 지구보다는 유흥 지구에서 더 익숙할 것 같은 소리가 아파트 단지 내를 가득 채웠다.
“이봐 윌리엄! 자네 정신 나갔나!”
항만지구보안팀장이 윌리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묵묵히 자기 강화복을 점검하고 있던 윌리엄은 무심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 봤다.
“왜 그러십니까?”
“겨우 브로커 끄나풀 하나 잡겠다고 무장경찰을 부르다니 무슨 짓이야! 이렇게 되면 일이 커지는 거 몰라?”
윌리엄은 항만지구보안팀장이 뚱뚱한 뱃살만큼 탐욕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 뒤룩뒤룩 찐 지방 중에 브로커 S가 바친 크래딧도 적지 않게 껴있다는 사실도 또한 알고 있다.
“게다가 아무 상관도 없는 물자보관팀을 수색하다니! 이건 명백한 월권행위야!”
낮에 아파트를 떠난 윌리엄은 그동안 모아 뒀던 브로커 S에 관한 정보를 바로 상부에 전달했다. 항만지구보안팀이 아니라 더 위쪽, 지구총괄보안팀에 말이다.
덕분에 물자보관팀은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 때문에 완전 난리가 났다.
브로커 S, 아니 샌더가 긴급 체포되고 그와 연결고리가 있는 자들도 줄줄이 유치장에 갇혔다.
물자보관팀의 샌더는 자기가 체포된다는 사실에 충격이 컸는지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였고, 현재는 의식 불명에 빠진 상태였다.
강화복 점검을 마친 윌리엄은 마지막으로 가우스 소총의 특수탄들을 체크하면서 말했다.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뭐?”
“저희들 중 아무도 그 사실을 항만지구보안팀에 보고하지 않았는데 팀장님께서는 물자보관팀이 수색당한 것을 어떻게 아셨죠? ”
“그, 그건….”
“그리고 팀장님께서 착각하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S, 아니 샌더와 결탁한 자는 단순히 끄나풀이 아닙니다.”
“뭐?”
“그 자가 샌더를 호위하는 군인 출신 경호원을 죽였습니다.”
“뭐라고? 난 그런 소리 못 들었어!”
“당연히 못 들었겠죠. 보고는 제가 아까 전에 지구총괄보안팀에 바로 올렸으니까. 그쪽에서도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기에 제 지원요청에 응한 겁니다.”
“뭣?! 지금 자네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나? 이건 하극상이야!”
“하극상?”
그 말에 윌리엄이 상관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는 늑대처럼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상부에서 당신이 브로커랑 결탁했다는 것을 모를 줄 알았나? 당신은 이제 끝났어.”
“히, 히익!”
윌리엄은 더 이상 전(前) 상관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새하얗게 질린 그를 내버려둔 채, 윌리엄은 브리핑 중인 무장경찰들에게 다가갔다.
아파트에 돌입할 인원은 강화복으로 무장할 경찰 12명에 전투형 안드로이드 6체였다. 경찰들 각각 가슴팍에 101번부터 112번까지 적혀 있었고, 안드로이드들에는 머리에 M이라는 글자와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안드로이드들 중 M01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안드로이드가 윌리엄을 맞이했다.
“난 항만지구보안팀의 형사팀장 윌리엄이다. 반갑군.”
“반갑습니다. 형사팀장 윌리엄 님. 전 지구총괄보안팀 소속 안드로이드 M01입니다. 저는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지만 지금은 제가 작전을 주도하고 있으니 제 지시를 따라주셔야 합니다.”
“알았다.”
간단히 통성명을 나눈 뒤, M01은 무장한 경찰들에게 작전을 마저 설명했다.
목표는 샌더와 거래하는 조직원 체포와 증거 수집.
조직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그가 샌더와 교류하기 전에 찍힌 사진과 몽타주를 공유해서 경찰과 안드로이드 모두가 알고 있었다.
또한 3번 아파트 내 생존자에 대한 정보도 이미 공유한 상태.
윌리엄이 다른 경찰들과 함께 돌입할 준비하는데 M01이 그를 불렀다.
“형사팀장님께서는 모르시겠군요.”
“뭐가 말인가?”
“상부에서 무장경찰분들에게 신형 강화복을 지급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전에 비해 업그레이드되었으며, 내장된 치료제, 강화제의 효과도 강화되었습니다.”
“그건 기쁜 소식이군.”
“또한 기존 장비에 추가로 소형 사이킥 실드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보라색 버튼을 눌러 주세요.”
윌리엄이 단말기의 버튼을 누르자 그의 왼팔에서 반투명한 타원형 방패가 튀어나왔다.
“가르멜다 가문에서 컬트와 교류해 만든 초능력 장비입니다. 이번 이사회를 축하한다는 의미로 그쪽에서 며칠 전에 보냈습니다.”
“고맙군.”
그걸로 대화는 끝났다.
이제 남은 일은 돌입하는 것뿐이었다.
‘일이 잘 풀리겠어.’
적들도 경찰들이 신형 장비로 무장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또한 지구총괄보안팀의 무장경찰들은 군인이라 해도 좋을 만큼 전투 경험이 많은 자들이다. 그 위에 전투형 안드로이드의 지원까지 있다니.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게임이었다.
“돌입하겠습니다. 마스크 온.”
그 말과 함께 모든 경찰들이 강화복에 장착된 마스크를 착용했다.
“먼저 1층 복도부터 수색하겠습니다.”
M01의 지시에 맞춰 경찰과 안드로이드들이 1층 복도를 다 뒤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비어 있었지만 다 그렇지는 않았기에 거주자 몇 명이 안드로이드들에게 잡혀서 밖으로 끌려 나왔다.
“1층 클리어. 2층으로 갑니다. 혹시 모르니 각 층별로 3명씩 인원을 남기겠습니다.”
바로 2층 수색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통신기 너머로 잡음이 들렸다.
「치, 치직, 여기 저…억, 치직」
“M06?”
“무슨 일이지?”
“안드로이드 1체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어느 지점이지?”
“1층 105호입니다. 1층에 대기 중인 M04, 111번 즉시 확인 바람.”
「111번. 확인하겠다.」
「M04. 확인하겠음.」
M01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M4로부터 무전이 왔다.
「M04. 보고. M06의 동력 부분이 파괴됨.」
“공격 방식은 파악 가능한가요?”
「M04. 강한 물리력으로 파괴된 것만 확인 가능. 자세한 사항은 분석 필요.」
윌리엄은 그 말에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1층은 그를 포함해 13명의 사람과 6체의 로봇이 샅샅이 뒤졌다. 적이 몰래 숨어들만한 공간은 없었을 터.
“특이사항 발견 시 다시 연락 바랍니다. 저희는 다시 수색을 개시하겠습니다.”
「111번. 알겠다.」
「M04. 확인.」
그렇게 다시 수색을 시도하려는 찰나, 맨 앞에 서 있던 101번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101번?”
“…….”
그는 마치 허공에 몸이 강제로 고정된 듯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의 목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익숙한 모습에 윌리엄이 소리쳤다.
“미친! 사이킥 공…!”
그 말이 끝나기 전 101번의 목이 뚝 소리가 나며 360도 회전했다. 목이 완전히 부러진 경찰이 망가진 인형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적습이다!”
“모든 무장경찰은 사이킥 실드를 활성화하십시오. 안드로이드들은 주변을 경계….”
“으아아아악!”
그때 뒤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급히 고개를 돌린 윌리엄의 눈에 허공에 매달려 있는 112번 경찰의 발이 보였다.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아파트 외벽을 타고 내려와 경찰을 끌고 가고 있었다.
“사격 개시!”
그 모습을 본 경찰과 안드로이드들이 맹렬히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을 끌고 그대로 사라졌다.
윌리엄과 무장경찰들이 급히 복도 벽에 붙어서 위쪽을 쳐다봤지만 보이는 것은 새까만 암흑 뿐이었다.
“끌려간 사람은 112번이야!”
“확인하겠습니다. 112번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치직, 아아악, 치지지직, 악, 치지지지지」
잡음 중간에 고통에 찬 비명이 섞여 나오는 것을 듣고 윌리엄이 이를 악물었다. M01은 기계답게 아무런 감정 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112번 생존했다면 대답 바랍니다.”
「치지지지직」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습니다. 112번. 생존했다면 응답 바랍니다.”
「치직, 여긴 4층. 놈이 나를 끌고 갔다.」
“4층. 확인했습니다.”
간신히 대답이 돌아오자 경찰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론 112번의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 같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지만 죽은 것보다는 나으니까.
“인원을 둘로 나누겠습니다. 102번부터 105번, 팀장님과 저, M02는 2층을 수색, 나머지는 4층 수색 진행하겠습니다.”
들어온 지 30분도 안 돼서 경찰 1명, 안드로이드 1체가 당했고, 경찰 1명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동요 없이 경찰들에게 지휘를 내리는 M01 덕분에 분위기는 악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경찰들과 달리 윌리엄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치기 힘들었다.
이곳에 경찰들만 데리고 온 것이 사실 잘못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리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가 겁쟁이라서 그런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112번이 끌려갈 때 그는 분명 봤다.
경찰을 붙잡고 있던 팔이 4개였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