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46화 (47/400)

Ep. 46

「큰애기야 조심해」

「어른」「위험」「조심」

[즈즈즈(너희도)]

미리 얘기한 대로 녀석들을 먼저 보냈다. 이전에도 무리없이 성공했으니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성공할 거다.

‘내가 잘해야 해.’

녀석들도 보냈으니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돌입하는 것뿐.

‘그럼 어느 길로 진입할까.’

당장 이용할 수 있는 루트는 총 세 곳. 양쪽 복도 끝으로 내려가는 길과 복도 쪽 외벽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 있다.

‘복도 쪽은 다 감시하고 있겠지.’

계단에서 복도로 넘어가는 공간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 내 몸도 전처럼 작지 않으므로 진입하자마자 벌집이 될 거다. 육체 강화 타입이 있다고 해도 텅스텐 탄환의 집중 포화를 맞고 무사하기는 힘들다.

‘외벽을 타고 가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이미 한 번 써먹은 방법이라 저쪽에서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혹여 경찰들이 각성제를 투입했다면 강화된 감각 덕분에 내 공격을 금방 인지할 거다.

‘아니면 아까처럼 아래 집을 통해 가 볼까?’

창문을 타고 내려가서 2층에 있는 집에서부터 적을 덮치는 것. 106번 경찰을 몰래 납치할 때 썼던 방법이다.

괜찮은 방법이긴 하나 적이 나의 공격을 읽어낸다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문제가 있다. 공략 동선 자체가 다른 루트에 비해 복잡하다 보니 도중에 안드로이드들에게 들킬 우려가 컸다.

‘시선을 돌려놔야 효과가 좋을 것 같은데.’

괜찮은 방법이 없으려나.

‘아.’

방법을 생각하던 중,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에 온 뒤에 깜빡 잊고 있었네.’

연구선에서 잘 써먹었던 유용한 특성을 다시 써먹어 봐야겠다.

나는 발걸음을 최대한 죽이고 3층으로 내려갔다.

복도의 콘크리트 바닥 너머로 적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전자기기가 흘리는 미세한 전자파, 인공 피부 특유의 고무와 쇠를 섞은 냄새, 추가로 미동도 없는 동체. 그 속에 섞여 있는 땀 냄새, 평소보다 두껍게 부풀러 오른 근육의 움직임,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들.

기계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중주였다.

‘경찰들은 강화제를 썼어.’

넘치는 힘이 열기가 되어 피부와 옷 표면으로 새어나오고 있다.

강화제를 맞으면 신체 능력이 상승하면서 감각도 인간이 아닌 동물처럼 예리해진다. 내가 아무런 준비 없이 내려갔다간 경찰이 바로 나를 감지하고 공격했겠지.

‘다행이야.’

감각이 강화되었다고 해도 사고 능력이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적들은 내가 복도 끝이나 외벽 쪽에서 내가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지 ‘천장’에서 공격해 올 것이라고는 생각 못 하겠지.

적들이 서 있는 위치를 보면 안드로이드가 각각 전방과 후방을 맡고, 인간 5명은 가운데에서 안드로이드와 마찬가지로 전방과 후방을 나눠서 경계하고 있었다.

경찰들 머리 위에 선 나는 길어진 전투용 팔의 손톱으로 몸 곳곳에 상처를 냈다. 외피가 갈라지고 안쪽에서부터 검은색의 피가 흘러내렸다.

‘피가 많이 필요해.’

두꺼운 바닥을 녹이기 위해 나는 회복된 부위에 다시 상처를 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바닥이 어느 정도 녹았다고 판단됐을 때, 나는 상처를 깊게 냈다. 내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복도 바닥 위에 흩뿌려졌다.

‘됐어.’

몇 분 안에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산성피가 그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나는 산성피가 바닥을 제대로 녹이고 있는지 확인하고, 옆에 있던 문을 열고 집 안에 뛰어들었다.

집을 재빨리 가로지른 나는 창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기어 내려갔다.

“이런! 산성 용액이다!”

“모두 조심해!”

적들이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산성피를 보고 당황의 목소리를 낸다.

그동안 나는 이미 아래층의 집 안에 진입한 상태. 복도로 이어지는 집 문이 굳건하게 내 앞을 막고 있다.

나는 온몸에 힘을 실어 그대로 문을 들이받았다.

굉음과 함께 문이 복도 밖으로 퉁겨져 나가면서 앞에 있던 경찰을 깔아뭉갰다. 문짝 사이로 시뻘건 피가 튀어나와 복도를 적셨다.

“으헉?!”

“적의 습격입니다.”

내가 천장과 옆을 동시에 칠 줄은 적도 몰랐겠지. 머리에 M01이라 적혀 있는 안드로이드가 빠르게 나를 인지하고 가우스 소총을 들었다.

총구가 내 쪽을 향하려 할 때, 나는 옆에 있던 경찰의 머리를 잡아서 끌어당겼다. 동료를 쏠 수 없다고 프로그래밍이 된 안드로이드가 잠깐 주춤했지만 곧바로 나를 향해 사격했다.

‘역시 로봇이라 이거지?’

사람을 방패로 쓰고 있음에도 놈은 정확히 나만 골라서 맞추고 있다. 총탄을 맞은 부위에서 시큰거리는 통증이 올라왔다.

그 사이 다른 경찰들도 동요에서 벗어나 진영을 재정비했다. 나한테 붙잡힌 경찰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나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통상탄은 효과가 미미합니다. 모두 관통탄으로 교체하세요.”

놈이 지휘관인지 다른 경찰 2명이 나를 향해 사격하는 사이, 다른 2명이 재빨리 탄환을 전환했다. 경찰이 들고 있던 가우스 소총이 기계음을 내며 관통탄에 맞춰 변형되었다.

‘이런.’

엄폐물이 필요했기에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내 뒤로 관통탄이 벽을 뚫고 쏟아졌다. 그중 하나가 내 꼬리를 뚫고 지나갔다.

‘벽으로도 관통탄은 못 막아.’

맞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피가 흐르는 꼬리를 크게 흔들었다. 검은 핏방울이 흩날리면서 따라 들어오던 경찰의 몸에 묻었다.

“이런 씹!”

“놈의 피에 산성 효과가 있다!”

경찰들이 주춤한 사이 나는 창문을 타고 옆집으로 이동했다. 벽 너머로 경찰들이 화장실과 부엌 쪽을 수색하는 소리가 들렸다.

‘쯧. 관통탄만 보면 게임보다 효과가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읍읍읍!”

꼬리의 상처를 확인하는데 내 손에 붙잡힌 경찰이 빠져나가기 위해 버둥거린다.

강화제 효과 때문에 경찰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지만 머리를 붙잡힌 상태여서 그런지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시키기 위해 손에 힘을 줬다.

“…….”

갈고리 같은 손톱이 헬멧을 긁으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자 경찰은 즉시 얌전해졌다.

‘이 녀석은 좀 더 써먹어야겠어.’

나는 아래쪽 오른팔의 기생 군체를 활성화했다. 단계는 5단계. 샌더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다.

‘게임에서 5단계면 정말 아무 짓도 못했는데 현실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네.’

기생 군체의 구멍으로부터 검은색 실지렁이를 닮은 기생체가 튀어나와 경찰의 몸에 달라붙었다.

“으, 무, 뭐야! 그, 그만둬!”

경찰이 기겁하며 몸부림쳤지만 머리를 붙잡힌 터라 그의 저항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나는 떨어지려고 하는 기생체를 손가락으로 집어 그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기생체가 막 그의 콧구멍으로 기어들어가려는 그때, 폭음과 함께 벽이 무너졌다.

“목표 발견.”

머리에 M02라고 새겨져 있는 안드로이드가 벽을 부수고 나타났다. 근접전에 특화된 안드로이드인지 세 번째 팔을 제외한 양팔에 파일 벙커가 달린 건틀릿을 끼고 있었다.

M02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내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재빨리 전투형 팔로 놈의 손목을 잡았지만 그와 동시에 금속 말뚝이 내 머리에 사출되었다.

금속이 맞닿아 긁히는 소리가 나며 머리의 외피에서 불꽃이 튀겼다. 나는 녀석이 말뚝으로 나를 찌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톱날 촉수를 뽑아냈다.

긴 촉수의 채찍이 M02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빼곡하게 박혀 있는 톱날에 의해 얼굴을 덮고 있던 인공 피부가 모조리 벗겨지고 안에 있는 금속 골격도 크게 손상되었다.

“오류 발생. 지원 바람.”

“지원하겠습니다.”

뒤에서 나타난 M01이 내게 가우스 소총을 갈겨댔다. 아직 회수되지 않은 촉수가 관통탄에 의해 무자비하게 찢겨졌다.

손상된 것은 촉수뿐이지만 팔 전체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나는 반밖에 남지 않은 촉수를 회수하면서 M02의 뒤로 몸을 숨겼다.

“활동 불능. 공격 요망.”

“M02.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M01은 나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M02와 나를 함께 죽일 기세로 총을 쐈다. 나보다 방어력이 떨어지는 M02는 삽시간에 걸레짝이 됐다.

‘이래서 안드로이드는 싫다니까.’

정신적으로 동요하지 않다 보니 내가 주로 쓰는 기만전술이나 기습이 효과가 없다. 나는 기능 정지한 M02을 방패로 삼고, 가시뼈 발사기를 M01의 세 번째 팔에 조준했다.

“이 괴물 새끼가!”

막 발사하려던 찰나 경찰들이 M01을 지원하러 왔다. 부서진 벽의 잔해 너머에서 관통탄의 비가 나를 향해 쏟아졌다.

‘이것만 쏘고 빠져야 해.’

가장 단단한 부위인 머리와 흉부는 무사했지만 다른 곳은 아니다. 내 외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팔다리가 탄환에 꿰뚫리고 있는 중에 나는 간신히 가시뼈를 발사했다.

아래쪽 왼팔 끝에서 발사된 가시뼈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 안드로이드의 세 번째 팔에 들려 있는 가우스 소총을 파괴했다.

“무기가 손상되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주춤거리는 틈에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경찰을 저들에게 집어던졌다. 기생충에 감염된 상태니까 저쪽의 발목을 잡는 역할 정도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거다.

“!”

“모두 사격 중지!”

예상대로 동료가 날아오자 경찰들은 바로 사격을 중단했다. 나는 기생충에게 마구 날뛰라는 사념을 보낸 뒤 집을 빠져나왔다.

“이봐, 괜찮아?!”

“103번! 정신 차려!”

“으, 으으….”

복도로 나온 나는 녀석들이 있을 곳으로 달렸다.

지금쯤이면 모든 일을 끝마친 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

“으, 으아갸가가가각!”

“103번!”

“내, 내 머리가아아아악!”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는 103번. 경찰들이 화급히 그를 붙잡았다. 건장한 신장의 성인 남자의 몸에 강화까지 된 상태이다 보니 진정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제발 진정해!”

“제바아아아악! 누가 좀! 이것 좀 꺼내줘!”

다른 경찰들이 붙잡고 있는 동안 윌리엄이 재빨리 103번의 손목에 부착된 단말기를 조작했다. 강화복에 내장된 치료제가 103번의 몸에 주입되었지만 그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독이 아니라 바이러스 혹은 뭔가 아주 작은 생물이 뇌에 침투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윌리엄의 의문을 답해준 것은 M01이었다. 세 번째 팔이 파괴된 그는 M02가 사용하던 파워 벙커 건틀릿을 수거해 착용하고 있었다.

“…처리할 방법은?”

“전 의료용 안드로이드가 아니므로 처치할 수 없습니다. 바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합니다.”

“젠장!”

윌리엄은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샌더가 도대체 누구랑 거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놈은 헐크 뮤턴트를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다.

무슨 유전자를 집어넣었는지 모를 정도로 공격 수단이 어마어마하게 다양했다. 게다가 더 무서운 점은 놈이 자기 공격 수단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아아악!”

“빌어먹을!”

“M01! 뭔가 어떻게 좀 해 봐!”

“저희는 목표를 추적해야 합니다. 목표는 극도로 위험한 전투 생물로 판명되었습니다. 목표가 다른 아파트에 숨는다면 인명 피해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씨발!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어!”

경찰과 안드로이드가 103번을 두고 어떻게 할지 다투는 사이, 103번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아악! 아, 아아…미, 미, 미안….”

“103번?”

갑자기 103번의 표정이 확 바뀌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서 들고 있던 가우스 소총으로 자기를 붙잡고 있던 경찰을 쏴버렸다.

“커헉!”

“105번!”

복부에 구멍이 난 105번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동료를 쏜 103번은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기묘하게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히, 히히! 지, 진작 이렇게 할걸! 히, 히히히!”

“103번 정신 차려!”

“103번의 상태 불량. 기생물에 의해 조종당하는 중이라고 판단, 제압하겠습니다.”

M01이 103번에게 다가갔다. 정신이 나간 경찰이 M01에게 가우스 소총을 쏘려고 총구를 돌렸지만 한 발 늦었다. M01은 103번의 목뒤를 내리쳐서 기절시켰다.

“제압 완료했습니다.”

“105번! 정신을 놓으면 안 돼!”

“으, 으으으….”

“치료제 투입!”

“제발!”

윌리엄이 서둘러 105번에게 치료제를 투여했지만 솔직히 그가 봐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치료제는 만능이 아니기에 당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105번은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정신을 잃은 105번을 두고 윌리엄이 일어섰다.

배에 구멍이 난 105번, 기절한 103번을 제외하고, 이 자리에 남은 자는 이제 102번과 윌리엄, M01 뿐이었다.

“…M01. 상황이 좋지 않다. 당장 1층에 있는 안드로이드와 경찰을 불러.”

“알겠습니다.”

이대로 셋이서 놈에게 덤벼들면 잘 쳐줘야 공멸, 놈이 뭔가 새로운 공격 수단을 꺼낸다면 그들 모두 전멸할 것이 분명했다. M01도 이번에는 윌리엄의 말에 동의하고 통신기를 연결했다.

“여기는 M01. 1층에 있는 자들은 위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치치지지지직」

“여기는 M01. 반복합니다. 1층에 있는 자들은 위로 올라오세요.”

「치지지직」

“…….”

M01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통신기로 돌아오는 소리는 잡음 뿐.

그 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하나가 아니었어!’

그제야 윌리엄은 깨달았다.

놈이 시간을 끄는 동안, 놈의 동료들이 1층에 대기하고 있던 안드로이드와 경찰을 노린 것이다.

“놈이 양동작전을 펼친 것 같습니다.”

안드로이드의 말이 그의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기계의 말대로 그들은 함정에 빠졌다.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준비한 함정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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