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47화 (48/400)

Ep. 47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 녀석들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둘 모두 별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즈즈즈(잘했어)]

「큰애기야. 피나.」

[즈즈즈(괜찮아)]

몸 곳곳에 구멍이 난 나를 보고 26호가 걱정했다. 아드하이가 내 상처를 핥아주려고 촉수를 들이밀어서 나는 재빨리 물러났다.

[즈즈 즈즈즈즈(내 피 위험해)]

「?」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을 앞에 두고 나는 핏방울이 떨어진 바닥을 가리켰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콘크리트가 타들어 가는 것을 본 녀석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

[즈즈(그래)]

적들이 쫓아오기 전, 나는 몸을 점검했다. 촉수는 손상이 심해서 회복하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릴 것 같다. 관통된 부위도 살들이 돋아나서 상처를 메우고 있지만 완전히 치료되려면 10분 정도 필요할 듯하다.

‘부상이 생각보다 심하지만 그래도 작전대로 잘 풀렸어.’

남은 적의 수는 경찰 2명, 안드로이드 1체다. 기생충에게 조종당하는 경찰이 동료를 쏜 덕분에 1명을 줄어들었으니까.

안타깝게도 안드로이드가 금방 대처하는 바람에 그 이상의 성과는 기대할 수 없었다.

‘남은 적은 셋.’

마음 같아서는 우리도 셋, 적도 셋이니까 한 명씩 상대하도록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1층의 적들은 기습으로 해치울 수 있었지만 적도 바보는 아니다. 지금쯤이면 우리가 하나가 아닌 다수라는 것을 알았을 테니 대비해서 오겠지.

‘나야 재생력 특성이 있지만 녀석들은 아니야.’

나와 달리 26호와 아드하이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회복할 수 없다. 총탄에 맞으면 치명적이고, 심하면 죽는다고 봐야 한다.

‘씨 데몬은 재생력의 상위 호환 특성을 갖고 있지만….’

특성을 가졌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없으니 섣불리 싸우라고 시킬 수 없다.

‘괴물의 촉수를 쓸까?’

1층에 있는 적은 다 정리되었고 남은 적은 2층에 몰려 있다. 적들은 나처럼 벽을 타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복도를 통해서 올 터. 괴물의 촉수로 복도에다 사이킥 브레스를 쏘면 적들은 전멸을 피할 수 없을 거다.

‘단점은 돌발 상황에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건데.’

사이킥 브레스를 쏜 뒤, 나는 일시적으로 활동 불가 상태가 된다. 시간은 대략 3분에서 5분 사이.

‘적들도 전세가 불리하니 진작 지원 병력을 요청했을 거야. 괜히 시간을 더 끌다가 적이 늘어나면 그때는 힘들어져.’

새로 지원 오는 병력은 몇 배는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현재 내 실력으로 그들을 모두 전멸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괴물의 촉수를 쓰자.’

마침 적들도 바닥에 떨어진 산성피의 흔적을 쫓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저들을 맞이하기 전, 26호와 아드하이에게 당부했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이번 공격 뒤에 나는 잠깐 약해질 거야)]

「?」

[즈즈 즈즈 즈즈즈(그동안 날 지켜줘)]

「큰애기 또 커지는 거야?」

[즈즈 즈즈즈즈 즈(아니. 이번에는 달라)]

「알았어. 큰애기는 내가 지켜 줄게.」

「나」「이해 불가」

「큰애기는 애기라서 가끔 낮잠을 자.」

「이해」

낮잠이 아니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녀석들을 뒤로 물리고 나는 복도 쪽으로 머리를 내밀어 적들을 확인했다. 적들은 뭐가 튀어나오자마자 관통탄을 바로 쏴 갈겼다.

튼튼한 머리의 외피 덕분에 머리가 벌집이 되는 일은 없었지만 아픔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방탄 대책도 세워야겠어.’

이 도시에서 얻을 수 있을 만한 유전자 정수가 몇 가지 떠오르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다. 딴생각을 지운 나는 벽과 머리의 외피를 엄폐물로 삼아 적들에게 가시뼈로 견제 사격을 가했다.

“씹!”

“저를 엄폐물로 삼아서 사격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알아!”

가시뼈가 날아들자 경찰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사격 무기를 잃은 안드로이드는 파워 벙커로 콘크리트 벽을 통째로 들어낸 뒤 엄폐물로 활용하고 있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나빴다. 사이킥 브레스 앞에서 엄폐물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니까.

나는 괴물의 촉수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촉수가 천천히 움직였다.

‘헉?’

순식간에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방금까지 광택이 나던 외피는 탁하게 변했고, 힘이 넘치던 꼬리는 바닥에 늘어졌다.

‘…소모량이 엄청나.’

몸 전체에 흐르던 에너지가 전부 머리 뒤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다. 발톱, 꼬리, 4개의 전투형 팔, 심지어 가슴 쪽에 있는 작은 팔의 힘까지 있는 힘은 닥치는 대로 끌어 모으는 느낌.

내가 가진 거의 모든 힘을 빨아들인 촉수는 선명한 보라색을 띠었다. 초능력에 대한 감지 능력이 부족한 인간이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사이킥 파워가 촉수 끝에 모였다.

대기가 일렁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축적한 촉수들이 일제히 끝을 내 앞쪽으로 향했다.

“초고위험 사이킥 파워 감지. 당장 이곳을 벗어나십시오.”

“뭣?!”

촉수 끝에서 흘러나온 보라색 줄기가 공중의 어느 한곳에 집중되었다. 적들이 다급히 물러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두운 복도에 보라색의 광채가 은은하게 내리깔리고, 허공에 모인 에너지가 마침내 발사되었다.

순수한 초능력 에너지로 이루어진 열선이 복도를 쓸고 지나갔다. 나의 몸 중 절반을 가려주고 있던 콘크리트 벽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열선이 조금이라도 닿은 곳은 모두 같은 꼴이 되었다.

소리는 없었다. 사이킥 파워는 소음을 내지 않으니까. 그저 파괴된 복도의 잔해가 뒤늦게 무너져 내리면서 소음을 만들어 낼 뿐이었다.

보랏빛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없었다.

안드로이드는 들고 있던 벽과 함께 문자 그대로 먼지가 되었고, 뒤늦게 실드를 활성화한 경찰 한 명은 신체 중 절반이 사라진 상태로 쓰러졌다.

단, 복도에서 외벽 쪽에 서 있던 경찰은 실드로 막다가 아파트 밖으로 튕겨 나간 덕분에 죽지 않았다.

“크윽!”

2층에서 떨어졌지만 강화제 효과 덕분에 경찰은 금방 일어났다. 도망치는 그를 뒤쫓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경탄」「위대한 어린 자!」

사이킥 브래스의 위용에 감탄한 아드하이의 사념을 들으며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비,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건 말도 안 돼! 말이 안 된다고!”

반쯤 부러진 다리를 이끌고 도망치던 윌리엄은 쉴 새 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있을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싶어도 차릴 수가 없었다.

‘군대! 군대가 필요해!’

놈이 신병기라니.

얼마나 우스운 생각인가. 얼마나 오만한 판단인가.

놈은 악마다. 이 도시를 불살라 잿더미로 만들 악마.

태평하게 이사회 따위를 준비할 것이 아니라 방위함대 전부를 주거 지구에 투입해야 했다.

‘미친, 유진 가문 따위가 저런 괴물을 통제한다고?’

그는 완전히 잘못 판단했다. 샌더는 저 괴물과 거래한 것이 아니었다.

필시 그는 노예. 경찰을 지배했던 기생물 따위에게 당한 것이리라.

“희생자가 얼마나 나와도 상관없어! 놈을 죽여야만 해!”

정신이 완전 나간 윌리엄은 평소라면 생각도 하지 못할 과격한 소리를 내뱉었다.

언제나 이성적인 그였지만 인간의 정신에는 한계가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용할 뿐이다.

그렇게 다리를 절면서 도망치던 그의 눈에 멀리서 경찰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여, 여섯 대? 저 정도 수로 막을 수 있는 놈이 아니야!’

무장경찰을 태운 버스 여섯 대라면 정규군 소대에 버금갈 만큼 어마어마한 전력이지만, 이미 놈과 맞서 싸워 본 윌리엄은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다.

“멈춰!”

강화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도로 한복판에 튀어나오자 경찰버스가 멈춰 섰다. 버스에서 안드로이드가 내려서 그를 부축했다.

“신원을 확인하겠습니다. 형사팀장 윌리엄 씨가 맞습니까?”

“가면 안 돼! 절대로 가면 안 돼!”

“착란 상태 확인. 전투 속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니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어! 이러다간 다 뒈진다고!”

안드로이드는 죽는다는 말만 반복하는 그의 목을 손으로 내리쳤다. 기절한 윌리엄을 실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목표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부서진 안드로이드의 잔해와 인간의 파편들, 그리고 복부에 구멍이 난 채로 죽어 있는 경찰과 기절해 쓰러져 있는 경찰뿐이었다.

-

“정신이 드십니까?”

“…여긴?”

눈을 뜬 윌리엄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의료용 캡슐 안에 있었다. 반투명한 캡슐의 유리 너머에 의료용 안드로이드가 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안드로이드 뒤에는 각종 전자기기들이 빛을 내고 있었고, 방 밖의 복도에 간호사들과 안드로이드들이 뛰어다는 모습들이 보였다.

“…병원이군.”

“맞습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됐지? 작전은? 모두 무사한가?”

“C단지 3번 아파트에 지원 병력이 진입했을 때 목표물은 이미 도망친 뒤였습니다. 그래서 추가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안드로이드의 말에 윌리엄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놈을 놓친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실책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드로이드들의 제2 기억 저장 장치는 이미 수거했습니다. 지구총괄보안팀에서 머지 않아 목표물을 찾아낼 것입니다.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

안드로이드의 말에도 윌리엄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기억을 저장한 M01은 적의 가공할 사이킥 공격에 의해 흔적도 남지 않고 증발해 버렸다.

다른 안드로이드들의 기억은 파편적이어서 과연 상부에서 놈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온전한 기억을 간직한 자는 윌리엄 본인 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상부에 전할 말이 있어!”

“치료 도중입니다. 퇴원은 불가합니다.”

“젠장! 한시가 급한 일이야!”

“불가합니다. 최소 내일까지는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이봐! 어이!”

그렇게 말하고 안드로이드는 캡슐 옆에 있던 기기를 조작했다. 그러자 윌리엄 팔에 연결된 주사 튜브를 통해 약물이 자동으로 주입되었다.

윌리엄은 주사를 뽑아버리려고 했지만 약물로 인한 급격한 피로감 때문에 또다시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윌리엄은 불현듯 깨어났다.

“헉!”

밤이 됐는지 병실은 어두웠다.

어두운 병실에는 그 말고 다른 사람도 함께 있었다.

그가 기기의 단추를 누르자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캡슐 뚜껑이 열렸다.

“자네는?”

“상부에서 부릅니다. 지금 바로 보고하러 가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문제없네.”

윌리엄을 깨우고 캡슐을 열어 준 상대는 경찰이었다. 경찰 제복을 입고 있는 그는 목 부근에 붕대를 감고 있는 것 말고는 딱히 특이한 점이 없었다.

‘응?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윌리엄은 형사팀에서 근무하는 만큼 사람에 대한 기억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상대의 얼굴은 잘 모르겠지만 체격은 낯이 익었다.

‘항만지구에서 근무하는 자는 아닌데 어디서 봤지?’

분명 최근에 만난 자였다.

“밖에 차를 대기시켜놨습니다. 따라오시죠.”

“짐만 챙기고.”

아무튼 상부에 서둘러 보고해야 했기에 윌리엄은 가벼운 짐만 챙기고 그를 따라갔다.

중간에 야간 근무 중인 의료용 안드로이드들이 제지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윌리엄을 안내하는 자가 경찰용 전자 뱃지를 꺼내서 인증했기 때문이었다.

병원 밖 주차장에 도착한 경찰은 차 키를 눌렀다. 멀리서 헤드라이트를 번뜩이는 차는 일반 자가용이었다.

“타시죠.”

먼저 운전석에 앉은 경찰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부에 보고하러 가는데 경찰차가 아니라고?’

공무집행 중이 아니라는 건가? 윌리엄은 혼란스러웠다.

상대는 무표정한 얼굴로 전방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만약 상대가 나쁜 마음을 먹고 그를 속이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윌리엄은 품속에 있는 레이저 권총을 어루만졌다.

‘아까 꺼낸 뱃지를 보면 지구총괄보안팀 소속인데.’

상대가 안드로이드에게 보여줬던 전자 뱃지는 양식은 다르지만 윌리엄도 갖고 있었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쓰는 전자 뱃지인 만큼 고유한 ID와 패턴이 기록된 물건이라 복제나 위조는 불가능했다. 또한 타인이 대신 뱃지로 인증하려 하면 바로 경계음이 울리기 때문에 훔쳐서 쓸 수도 없었다.

행동거지가 이상하긴 하지만 뱃지를 지니고 있는 이상, 상대는 경찰이 분명했다.

잠시 고민한 그는 결국 차에 올랐다. 그를 태운 경찰차는 어두컴컴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밝은 빛으로 외부를 장식한 병원을 뒤로하고 차는 한밤중의 도로를 달렸다.

달리는 차 안은 조용했다. 경찰은 그저 앞만 보고 운전할 뿐이었고, 윌리엄은 상대가 누군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지구총괄보안팀에서 최근 내가 본 사람이라면…혹시 무장경찰?’

“자네….”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생각이 난 윌리엄이 물어보려고 했는데 차가 멈췄다. 밖을 보니 그들이 있는 곳은 행정지구가 아니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조용한 거리와 어두운 골목, 그리고 가까운 곳에 보이는 맨홀.

‘여긴 지구간 경계잖아?’

주거 지구와 항만 지구 사이의 경계로 윌리엄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양 지구에 걸쳐 있는 경계다 보니 각 지구별 보안팀이 서로 책임을 떠넘겨서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이 안 다니게 된 곳이기도 했다. 게다가 카메라와 가로등이 없어서 잊을 만하면 강도 사건이 발생하는 곳이었다.

“내리세요.”

“이게 무슨 짓이지?”

윌리엄은 재빨리 레이저 권총을 뽑아 경찰의 관자놀이에 겨냥했다.

이제 기억났다. 상대는 그와 함께 C단지 3번 아파트에 괴물을 잡기 위해 출동했던 무장경찰이었다. 당시 헬멧과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이제 기억이 난 것이었다.

“내리시면 다 알게 될 겁니다.”

“뭐를?”

“…….”

상대, 아니 103번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리면 다 알게 될 것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설마?’

103번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윌리엄은 봤다. 정체불명의 기생물에 조종당해 동료를 쏜 것도.

“…죄송합니다. 팀장님.”

“뭐?”

“이미 늦었어요.”

어두운 차 안에서 그가 윌리엄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히죽 웃었다. 103번은 윌리엄의 얼굴,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의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

뒤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너무 늦었다. 조수석의 창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윌리엄의 목 뒤를 찔렀다.

따끔거린다는 아픔을 느끼자마자 그는 전신이 마비된 것을 느꼈다. 누가 뇌 안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부위에 자물쇠라도 채운 것처럼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레이저 권총을 발사하기 위해 손가락에 힘을 줘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억센 힘이 그를 차 밖으로 확 끌어당겼다.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쳐졌지만 고통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윌리엄은 「그것」과 조우했다.

얼핏 보면 발굽처럼 보이는 4개의 굵은 발가락, 역관절처럼 보여 인간의 것과는 전혀 다른 지행(趾行)형 다리는 무거운 신체를 지탱하기 위해 근육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

엉덩이 쪽에는 몸의 크기에 배는 될 것 같은 길고 굵은 꼬리가 뻗어 있었다.

다리 위에는 복부의 일부를 제외하고 흉부까지 갑옷과 같은 외피가 감싸고 있었다. 흉부까지 덮고 있는 외피 중 가슴팍 부분에는 작은 팔들이 돋아 있었다.

팔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인간으로 치면 어깨와 겨드랑이 부분에 2쌍의 팔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생김새는 작은 팔과 비슷했지만 크기가 훨씬 거대했다. 팔 중에서 유독 왼쪽 아래에 달린 팔만 다르게 생겼는데 기다란 막대 같은 것이 손을 대신하고 있었다.

나머지 팔들 끝에 달린 손가락은 4개였고, 손톱은 갈고리처럼 크고 예리해 보여서 매우 위협적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악몽에 나올 것만 같은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는데 윌리엄을 한층 더 공포에 질리게 만든 것은 놈의 머리였다.

두상은 파충류 계열의 동물을 연상시켰지만 머리에 난 2개의 뿔, 투구를 쓴 것처럼 머리 전체를 덮고 있는 외피, 머리 뒤편에 나 있는 촉수다발을 보면 절대로 일반적인 동물이라 볼 수 없었다.

103번이 차에서 내려 괴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명령하신 대로 데려왔습니다.”

그를 흘낏 쳐다본 괴물이 다시 윌리엄을 노려봤다.

괴물은 입을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나는 먹이를 놓치지 않아.”

괴물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익숙했다. 작전 때 건물에 같이 들어갔던 경찰, 112번의 목소리였다.

놈의 머리가 다가오자 윌리엄은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을 들을 수 있는 자는 그 자신 말고 아무도 없었다.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