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50화 (51/400)

Ep. 50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봤지만 허공에서 빛나는 반투명 텍스트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진짜 나왔네. 내가 생각하던 것과 좀 다르긴 하지만.’

나는 이빨 자체를 강화해주는 특성을 원했지만, 치악력이라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에이모프의 치악력이 특별히 낮다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사람 두개골도 거뜬히 씹을 수 있을 정도니까 지구의 동물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우월하다고 봐도 좋을 거다.

그러나 매우 높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방어구와 장비들이 즐비한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서 그 정도 무는 힘은 특별하다고 보기 어렵다.

‘에이모프의 구강 구조는 뱀과 일반 동물이 섞인 것에 가깝지.’

입을 크게 벌리고 이빨로 먹이를 단단히 고정하는 방식은 뱀에 가깝지만, 그 뒤에 먹이를 잘근잘근 씹는 것은 일반 육식동물의 방식과 유사하니까.

‘치악력 특성이 생기면 무는 것 자체도 무기가 될 수 있어.’

게임에서도 치악력 특성은 무난한 특성에 속했다. 맹수의 발톱처럼 없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있으면 유용한 부류의 특성이라고 할까.

어차피 초월 시스템을 쓰려면 육체 관련 특성이 13개 되어야 한다. 현재 육체 관련 특성이 하나하나 아쉬운 상황이니까 이런 특성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낫다.

‘치악력까지 얻으면 총 12개. 앞으로 한 개만 더 얻으면 돼.’

수락하자 내 머리 부분이 전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턱 부분이 살짝 아리더니 이어서 뼈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이전보다 크기가 커졌다. 그에 맞춰 머리도 전보다 더 크게 자라났다. 머리와 턱이 커지면서 턱 아래에 있던 보조기관도 같이 길고 굵어졌다.

변화는 단순히 크기만 커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빨 부분도 근질거리며 치아의 구조도 전과 살짝 달라졌다.

큰 변이가 아니다 보니 완료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변이를 끝낸 나는 지하철의 강화 유리에 비추는 내 얼굴을 살펴봤다.

전반적으로 이전에 비해 머리가 커지면서 두상의 느낌도 살짝 달라졌다. 전의 머리가 살무사처럼 뾰족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아나콘다처럼 두껍고 묵직한 느낌을 줬다.

그리고 이빨도 달라져서 인간으로 치면 송곳니가 위치한 부분의 이빨이 전보다 길어졌다. 여기서 조금만 더 자라나면 엄니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게임에서는 귀여웠는데….’

현실이라서 그런 것일까? 전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인상이 되었다.

보기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치악력으로 강화된 턱 덕분에 우주선 내부의 합금 정도는 무난히 씹어버릴 수 있을 거다.

‘시험해 보고 싶지만….’

아쉽지만 내릴 시간이다.

앞으로 몇 분 있으면 다음 역에 도착할 테니까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기자가 떨어뜨린 가방을 챙겼다.

‘그럼 어떻게 나갈까.’

윌리엄이 말해 준 바로는 지금 열차가 바로 막차였다. 다음 역에 도착해도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낮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아까 승강장에 있던 남자.’

열차가 떠날 때, 그 사람의 분위기로 봐서는 신고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까 승강장에 있을 때, 나는 의태 기관을 이미 활성화하고 있었기에 그는 나를 경찰로 봤을 거다. 나를 괴물로 보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문제는 내가 선로에서 승강장으로 기어 올라간 것을 그가 봤다는 거다.

‘승강장 반대편 쪽 문을 열고 나가야겠네.’

잠시 후, 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칸을 넘어가 최대한 승강장에서 멀리 떨어진 칸으로 움직였다.

달리던 열차가 서서히 느려지고 바퀴와 선로 사이로부터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역시.’

몸을 바짝 낮춘 채 창밖을 보니 저 멀리 지하철 경비원들이 열차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승강장 반대쪽에 있는 문을 전투용 팔로 붙잡았다. 에이모프의 강인한 근력 덕분에 문은 쉽게 열렸다.

승강장에 도착하기 전, 나는 느리게 이동하는 열차에서 밖으로 뛰어내렸다. 빨리 달릴 때면 모르겠지만 이 정도 충격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별 탈 없이 무사히 선로 위에 착지한 나는 저들이 열차에 오르기 전에 서둘러 움직였다.

“뭐야? 이봐, 여기 문이 열려 있어!”

“무슨 개소리야?”

놀란 경비원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선로의 어둠 속으로 기어갔다.

둥지로 돌아오니 26호와 아드하이는 깨있었다. 26호는 촉수로 포자를 툭툭 치며 놀고 있었고, 아드하이는 촉수로 날개를 다듬는 중이었다.

나를 본 26호가 몸에서 빛을 내며 반겨 줬다.

「왔어?」

[즈(응)]

「큰애기 뭔가 달라졌어?」

내가 바뀐 것을 눈치챈 26호가 나에게 다가왔다. 녀석은 신기한지 촉수를 뻗어 얼굴을 쓰다듬었다.

「큰애기 엄청 빨리 자라!」

[즈즈 즈즈즈즈(한창 클 때라)]

「대견해.」

아드하이도 호기심이 생겼는지 내게 다가왔다.

「어른」「변함」

[즈즈(그래)]

「입」「촉수」「멋짐」「풍모」「위대한 어린 자!」

아드하이는 전보다 굵어진 나의 보조기관이 특히 마음에 드는 듯했다. 녀석은 위대한 어린 자라 외치는 파장을 쏘고 몸을 바짝 낮췄다.

‘갤러곤은 촉수의 모양에 호감을 느끼나 보네. 설정에는 없었는데.’

갤러곤은 NPC 생물인데다가 희귀하므로 그 생태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의 경우도 갤러곤의 어디가 약점이고, 뭐를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잘 알 뿐이었다. 그들의 생태에 대해서는 많이 아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저쪽에서 좋게 봐주면 나야 좋지.’

26호와 달리 아드하이는 나와 계약으로 얽힌 관계다. 그런 녀석이 내게 호감을 가져 주면 나야 좋을 뿐.

「큰애기는 애기니까 많이 먹고 빨리 커.」

[즈즈즈(고마워)]

「나도 빨리 크고 싶다.」

내 어깨에 올라타 머리를 쓰다듬던 녀석은 갑자기 축 쪼그라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금방 자라는데 자기는 그렇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흠.’

향후를 생각해 보면 26호를 빨리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지난번 아파트에서 안드로이드들과 싸울 때도 그랬지만 나 혼자서 적들과 싸우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특성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내 상황에서 여유롭게 적을 사냥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그때 녀석들이 없었다면 나는 훨씬 힘들었겠지. 운이 없었으면 혼자 싸우다가 패배할 수도 있었다.

‘게임에서야 죽어도 되지만 현실은 아니야.’

현실에서 치명상을 입으면 게임에 비해 훨씬 불리해진다. 게임은 그냥 죽은 다음 리스폰하면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치명상은 패배 확률을 높게 만들고, 패배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안 되려면 26호의 성장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해.’

다만 씨 데몬의 성장 조건과 과정을 내가 알 수 없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씨 데몬은 갤러곤만큼 희귀하지는 않지만 플레이어들이 생태를 조사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괴수가 아니어서 생태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추론은 가능하니까.’

씨 데몬은 바다 행성, 그중에서도 심해에만 서식하는 생물이다. 심해에 서식하는 생물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생물들을 추려내서 26호에게 먹인다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내게 필요 없는 생물들을 위주로 녀석들에게 제공했지만 약간 생각을 바꿔야할 것 같다. 나한테 크게 도움이 안 되면서도 26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생물을 주는 것으로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밀수 목록 중에 그 조건에 해당하는 생물들이 드물지만 몇몇 남아 있었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밥 많이 먹으면 빨리 커)]

「정말?」

[즈즈즈즈(응. 확인해 보자)]

「응!」

「나」「허기」

[즈즈(너도)]

아무래도 윌리엄을 다시 불러야 할 것 같다.

-

주거 지구의 E단지 아파트.

한 남자가 버츄얼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 주거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그 또한 무료한 얼굴로 자극적인 가상 현실 속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남자의 옆에 있던 통신기가 짧게 울렸다. 흐리멍덩한 남자의 눈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

남자는 버츄얼 TV를 끄고 통신기를 살폈다. 작은 화면에는 짧은 메시지 하나가 떠 있었다.

「작전 준비」

“드디어 왔나.”

남자, 제이드 러셀은 작게 중얼거렸다.

1년 전, 제이드 러셀은 시현 유진에게 한 가지 명을 받았다.

이사회 전에 페어리윙으로 위장한 갤러곤을 미리 우주 도시에 반입해 두고, 제이드도 함께 잠입하고 있으라는 명령이었다.

당시 이사회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었지만 시현 유진은 아키라 유진의 그림자. 노블캐피탈과 관련된 중요 정보를 남들보다 빨리 얻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갤러곤을 굳이 페어리윙으로 위장시킨 이유는 둘 간의 생김새가 그나마 비슷한 것도 있지만, 페어리윙의 밀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현이나 제이드 모두 특수무역중심지에서 밀수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혹시 밀수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제이드는 특수무역중심지에서 페어리윙으로 위장한 갤러곤을 밀수하는 척하다가 일부러 발각되었다. 갤러곤이 밀수동물관리팀에게 인계되는 것으로 1차 목적을 달성한 그는 유치장에서 몰래 탈출했다.

“이 능력을 다시 유용하게 쓸 때가 왔군.”

제이드가 통신기를 쥔 손을 내려다 봤다. 그러자 갑자기 배터리가 나가더니 통신기의 몸체가 천천히 으스러지며 그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고 그의 통신기는 완전히 사라졌고, 손바닥 위에는 금속 가루 일부와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난 입만 남아 있었다.

러셀 가문은 유진 가문,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현 유진이 직접 키운 자들로 구성된 가문이다.

시현 유진은 러셀의 이름을 받은 자들에게 각각 역할을 부여하고, 그 역할에 맞춰 필요한 것들을 지원했다.

이를테면 아놀드 러셀은 플라즈마 피스톨이라는 거금의 무기를 지원받았고, 제이드 러셀은 구하기 어려운 생물의 유전자를 이식받았다.

그가 가진 유전자의 원주인은 메탈릭 그렘린.

함선의 포식자라 불리며 선원들 중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하는 악명 높은 생물이다.

메탈릭 그렘린은 크기 30~80cm가량에 몸에 털이 하나도 없는 유인원처럼 생겼는데, 차이점이라면 피부가 전부 금속 색을 띠고 있으며 얼굴에 눈이 없고 얼굴 반을 채울 정도로 커다란 빨판형 입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외형 자체도 흉측스럽게 생겼지만 메탈릭 그렘린이 선원들에게 두려움의 상징이 된 이유는 메탈릭 그렘린들의 습성 때문이다.

메탈릭 그렘린은 떼거리로 모여 우주를 유영하며 먹이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메탈릭 그렘린의 먹이는 금속이다.

우주를 떠다니다가 함선을 발견하면 바로 외벽에 달라붙어 빨편형 입으로 금속들을 무자비하게 뜯어 먹는다. 그 속도도 굉장히 빨라 수백m의 전함도 메탈릭 그렘린 무리에게 걸리면 하루도 안 지나 뼈대만 남을 정도다.

이처럼 위협적인 놈들인데 더 문제는 놈들의 크기가 작아 함선의 레이더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주에 떠다니는 쓰레기나 작은 운석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첨단 기술이 적용된 레이더로도 잡기가 어려웠다.

또한 설령 일찍 발견한다고 해도 몸이 금속이라 레이저 무기를 맞아도 잘 죽지도 않는다. 그렇다 보니 죽은 줄 알았던 녀석이 나중에 다시 습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렇다 보니 수많은 함선들이 지금도 메탈릭 그렘린의 먹이가 되어 수명을 다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만약 유진 가문이 아니었다면 이런 위협적인 생물의 유전자를 추출해 이용할 생각을 못했을 거다.

‘이 능력 덕분에 탈출은 어렵지 않았지.’

유치장에 갇혀 있던 그는 메탈릭 그렘린의 능력을 이용해 탈출한 뒤, 다른 동료의 도움을 받아 성형을 끝마친 뒤 지금까지 숨어 있었다.

‘갤러곤을 수거해 와야겠군.’

제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주인, 시현 유진이 내린 명을 무사히 완수하기 위해 준비할 때가 왔다.

갤러곤이 보관된 컨테이너에는 높은 수준의 암호가 걸려 있지만 상관없다. 그의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제할 수 있으니까.

제이드는 다른 통신기를 꺼내 같이 잠입해 있던 동료들에게 연락했다. 시현 유진이 오기 전까지 갤러곤을 냉동시켜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 준비를 시킨 것이었다.

‘그럼 가 볼까.’

모든 것이 완벽하다. 제이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추호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블루 갤러곤이 지금, 이상한 괴물들과 함께 그의 발밑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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