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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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온 제이드는 단지 앞에서 동료들을 기다렸다.
담배 2개비를 막 다 피울 때쯤, 멀리서 검은색 세단 1대가 나타났다. 제이드가 담배를 문 채로 손을 흔들자 고풍스러운 이미지의 중형 세단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차가 멈춰 서고 제이드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안에는 머리에 염소의 뿔이 달렸고, 백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몰래 오라니까.”
“괜히 관용 차량을 끌고 왔다가 의심이라도 사면 어떡해요.”
여성의 이름은 제넷 러셀. 머리의 뿔에서 보이듯 종족은 컬트다.
“어차피 5명이 다 타려면 이 정도 크기는 되어야 해요.”
“…쯧, 뭐 틀린 말은 아니군. 다른 녀석들은?”
제이드는 혀를 차며 조수석에 탔다. 그가 차에 오르자 뒷좌석에서 한 남자가 은신을 풀고 나타났다.
“드웨인 러셀. 명령을 받고 복귀합니다.”
“오랜만이군.”
우울한 인상에 깡마른 남자, 드웨인 러셀은 이곳에 잠입한 유진의 부하 중 저격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광학 위장 효과를 추가한 상급 강화복을 입고 있었다.
원래 상급 강화복이라면 일종의 아머슈트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드웨인이 입고 있는 강화복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개량한 물건이라 원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 그 대가로 방어력이 중급 강화복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지만, 어차피 드웨인은 후방에서 동료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은 건 프로스트랑 호프인가.”
“프로스트는 유흥 지구에 있고, 호프는…저기 오는군요.”
스포츠머리를 한 거구의 남자, 호프 러셀이 첼로 가방을 메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호프는 차 뒤로 가서 트렁크 위를 두드렸다.
“열어.”
“비싼 차인데 좀.”
제넷은 투덜거리며 트렁크를 열었다. 첼로 가방을 트렁크에 실은 호프는 뒷좌석에 앉았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무기는 문제없겠지?”
“물론입니다. 사실 쓸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요.”
“방심하지 마라. 어떤 우발 사태가 터질지 모르니.”
“네네. 엄마. 드웨인 임마, 넌 잘 지냈냐?”
호프는 제이드의 충고를 대충 흘려듣고 옆에 있는 드웨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휴, 저 새끼는 볼 때마다 좆같네.”
“이 씹년은 왜 또 시비야?”
“…제넷.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출발해라.”
“넵.”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에 잠입한 러셀의 자식들은 항상 팀으로 움직였다. 함께 수행한 작전도 수십 번이 넘으니 그야말로 베테랑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제이드 님의 말이 맞다. 군인은 언제나 대비해야 하는 법.”
팀 중에서 가장 군인다운 성격을 가진 드웨인 러셀. 그는 후방 지원 및 저격을 담당했다.
“그깟 무기가 뭐라고. 탄약 다 떨어지면 쓸모도 없잖아. 그런 것보다 초능력이 최고지.”
일행 중 홍일점인 제넷 러셀. 그녀는 컬트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강력하고 희귀한 능력을 지녔다.
“빡대가리년. 아랫도리에 유탄이 박혀봐야 정신을 차리지.”
온갖 무기를 잘 다루지만 특히 중화기 사용에 특화된 호프 러셀.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전투 중에서는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자였다.
“…너희는 만날 때마다 싸우는군.”
리더이자 파괴공작 전문인 제이드 러셀. 시현 유진에게 메탈릭 그렘린 유전자를 받은 덕분에 거의 모든 종류의 금속들을 파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는 없지만 팀원 중 선봉대 역할을 하는 프로스트 러셀이 있다.
이처럼 이들은 각자 맡은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고, 오랫동안 함께 작전을 수행한 덕분에 호흡도 잘 맞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서로 사이가 좋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리더 역할을 하는 제이드만이 두루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고, 나머지 인원들은 서먹한 편이었다.
‘작전 중 때는 괜찮은 것들이 임무 수행이 아닐 때는 꼭 이러는군.’
그래도 다들 공과 사가 철저한 편이라 제이드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는 편이었다.
심야를 달리는 차는 유흥 지구의 경계 부근에서 멈춰 섰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멀리서 사이보그 한 명이 뛰어왔다.
“제가 제일 늦었네요.”
“오랜만이군. 프로스트.”
“제이드 님도 반가워요.”
사이보그, 프로스트 러셀은 실실 웃으면서 뒷좌석에 탔다. 그가 타자마자 뒤에 앉아 있던 일행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미친, 너 또 누구 조지고 왔냐?”
“어? 티나?”
“그래 이 새끼야. 피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한다.”
“헤헤.”
이 차 안에 있는 자들 모두 사람을 족히 수백 명은 넘게 죽인 살인의 전문가들이지만, 그중 프로스트는 유별난 감이 있었다.
‘임무가 없어도 정기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전신 중 80% 이상을 개조해서 거의 안드로이드에 가까운 사이보그인 프로스트. 팀에서 근접전을 전담하는 그는 러셀 가문의 일원 중 가장 흉악한 성품을 가진 자였다.
메가콥으로 전향한 사이보그들 중에는 프로스트와 같은 케이스가 종종 있었다. 원하지 않게 몸이 기계가 된 이후 정신이 망가져서 아주 극단적인 자극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고문이나 살인, 타인에 대한 폭력 행위 등등.
일반적으로 봤을 때 스페이스독이 그들의 정신세계에 더 가깝다 보니 전향한 사이보그 중 80%는 우주 해적의 길을 택했다. 나머지 20%는 특수무역중심지처럼 ‘유흥’이 잘 갖춰진 곳으로 왔다. 보다시피 프로스트는 후자에 속했다.
‘그래도 임무 수행에는 딱히 지장이 없으니 다행이지.’
프로스트는 작전 중이 아닐 때는 죽여도 되는 사람만 골라 죽이기 때문에 제이드도 딱히 걱정은 안 했다. 몸에서 빠지지 않는 피 냄새는 부담되지만 말이다.
“도착했어요.”
상념에 빠져 있던 제이드를 깨운 사람은 제넷이었다. 조수석의 창문 너머로 수북하게 쌓인 컨테이너 더미가 보였다.
“내려서 모두 준비해라.”
다른 일행들이 각자 장비들을 점검하는 동안 제이드는 하역장을 두르고 있는 철망 펜스에 다가갔다. 손으로 펜스를 붙잡고 가만히 서 있자 굵은 줄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펜스들이 뜯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나?”
어느새 펜스에는 사람 3명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제이드는 펜스를 넘어 하역장으로 들어갔다. 점검을 마친 다른 일행들도 그를 따라 하역장에 들어섰다.
“어디로 갑니까?”
“이쪽이다. 드웨인. 늘 하던 대로 후방 경계 부탁한다.”
“옙.”
대답과 함께 드웨인의 몸이 허공의 그림자 속에 녹아들었다.
드웨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제이드를 따라 컨테이너의 숲을 거닐었다. 메탈릭 그렘린의 유전자 덕분에 제이드는 똑같이 생긴 컨테이너라도 금속 냄새로 어떤 컨테이너가 그가 찾는 것인지 어렵지 않게 구분해낼 수 있었다.
그는 마치 지도를 보면서 걷는 것처럼 막힘없이 일행을 안내했다. 금방 컨테이너 앞에 도착한 제이드는 단말기 위에 손을 올려놨다.
손에 있는 입이 단말기를 씹어대자 기계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이어서 단단한 철문 안쪽에서 철컥 하고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응?”
컨테이너 안쪽에 발을 디딘 제이드는 이상함을 느꼈다. 갤러곤을 보관하는 냉동관 때문에 찬 공기가 느껴져야 정상인데 컨테이너 안은 따뜻하기만 했다.
‘뭐야?’
불안한 예감이 든 제이드는 황급히 냉동관으로 달려가서 뚜껑을 열었다.
“…….”
“어라? 여기 맞아요?”
따라 들어온 제넷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에게 제이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냉동관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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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생물이 담긴 컨테이너입니다.”
나에 의해 두 번씩이나 불려 나온 윌리엄은 여전히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할 때마다 그의 뇌에 박혀 있는 기생충이 고통을 주기 때문이었다.
공손한 태도와 별개로 그는 나를 어지간히도 원망하는지 수시로 진통제를 먹고 있었다.
‘포기하면 편할 텐데.’
문득 윌리엄의 고기를 먹으면 무슨 특성을 얻을지 궁금해졌다. 물론 100% 유전자 정수를 포식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약 뜬다면 어떤 특성이 나올까.
‘이쪽이야말로 인간성의 표본 아냐?’
꽤 많이 아플 텐데도 나를 공격할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면 그가 불멸의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적 부선장보다는 이쪽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특성이다.
‘쓸모가 없어지길 기대해야겠네.’
윌리엄은 내가 본인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뭐 그건 됐고. 어디 확인해 볼까.’
나는 그에게 관심을 끄고 컨테이너를 열었다.
이 컨테이너에는 워킹우드 30마리가 실려 있다.
워킹우드는 플랜트리자드와 비슷하게 밀림 행성에 사는 식물형 생물이다.
30cm 정도 되는 크기에 깜찍한 요정같이 생긴 워킹우드들이 냉동캡슐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자기들이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게임에서도 인기가 많았지.’
버블 아메바가 외모 덕분에 인기가 많은 것처럼 워킹우드도 작고 귀여운 외형 덕분에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워킹우드만 찾아다니는 매니아들이 제법 있을 정도였으니까.
나도 워킹우드를 많이 찾아다녔었다. 내 경우는 귀여워서라기보다는 특성을 얻기 위해 쫓아다녔던 거지만.
워킹우드가 가진 특성은 ‘자연회복’.
내가 지닌 ‘재생력’ 특성의 융합 재료였던 특성이다.
에이모프가 유사한 효과를 가진 특성을 2개 이상 획득했을 때는 더 높은 효과를 가진 특성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자연회복과 재생력이 둘 다 있다면 재생력이 적용되는 식이다.
만약 특성의 효과를 무효화하는 공격에 당해서 재생력이 발동하지 않게 된다면 자연회복이 발생하겠지만 그런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즉 지금은 필요 없다는 거지.’
자연회복은 당장 내가 얻는다고 해서 유리할 것이 없다. 물론 초월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한 재료로 쓸 수야 있겠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만은 26호에게 넘기기로 했다.
‘회복 관련 특성을 가진 먹이가 성장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
돌연변이 버블아메바의 진화 결과가 씨 데몬이라면 같은 행성, 같은 서식지에 존재하는 생물들을 잡아먹고 진화할 거다. 그렇다면 바다 행성에서 서식하는 생물을 먹이로 주는 것이 최선이다.
밀수 동물 중 해양 생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나는 다른 가설을 세웠다.
에이모프처럼 특정 유전자 혹은 특성을 지닌 생물을 잡아먹어도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26호가 아무 생물이나 다 잡아먹어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영양분을 얻는 것과는 별개라는 뜻.
녀석의 촉수가 증가한 상황을 돌이켜 보면, 시현 유진을 쓰러트렸을 때와 밀수 동물을 먹었을 때뿐이었다. 둘 다 해양 생물과 크게 관련이 없었다.
강대한 적 사냥 및 특별한 동물을 먹으면 성장. 전부 에이모프와 유사한 조건이다.
에이모프적으로 생각해보면 씨 데몬으로의 진화 방식도 특정 특성을 얻어 성장하는 방식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심해 생물들과 비슷하게 자가 치유 능력을 보유한 생물을 골랐다.
‘먼저 특성을 가진 먹이 부분부터 확인해 보자.’
나는 26호를 불렀다.
[즈즈즈 즈즈즈(배고프지? 밥이야)]
「응!」
26호는 배가 고팠는지 바로 냉동캡슐에 달려들었다. 녀석은 촉수를 이용해서 내가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단말기를 조작했다.
‘학습했나 보네.’
성장해서 더 똑똑해진 것일까. 녀석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냉동캡슐을 수월하게 열었다.
캡슐에서 냉기가 빠져나오며 뚜껑이 열리자 26호는 바로 촉수를 집어넣어 워킹우드를 끄집어냈다.
“켁!”
자다가 끌려나온 워킹우드는 허리가 부러져 죽었다. 26호는 몸 전체를 부풀려 워킹우드의 시체를 한 번에 삼켰다.
약 5분에 걸쳐 시체를 흡수한 26호는 바로 다음 냉동캡슐을 노렸다.
‘소화 속도도 빨라졌어.’
워킹우드가 작아서 그런 것인지 녀석이 성장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화액도 전보다 강해진 것 같다. 저 정도면 거의 내 산성피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그렇게 내가 유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26호는 10마리의 워킹우드를 잡아먹었다. 녀석은 배가 부른지 아까보다 움직임이 많이 굼떴다.
「나 배불러.」
[즈즈즈 즈즈즈(한 마리만 더 먹어)]
「응.」
어차피 나도 26호가 다 먹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26호 뒤에 기다리고 있는 녀석이 있으니까. 내 머리 위에 올라탄 아드하이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즈즈즈 즈즈(조금만 참아)]
「나」「인내」「인내」
[즈즈(그래)]
기특하다는 뜻을 담아 녀석을 한 차례 쓰다듬어줬다.
그사이 26호는 11번째 워킹우드를 소화시키고 있었다. 녀석의 분홍빛 반투명한 몸 안에서 워킹우드의 잔해가 거의 다 사라질 때쯤, 26호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녀석의 몸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순간 뭔가 잘못된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녀석에게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26호의 몸이 부풀어 올라 형태가 전과 약간 달라졌다. 전에는 둥글둥글한 찐빵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위쪽 부분이 훨씬 두터워졌고, 아래쪽에 다리 역할을 하는 작은 지느러미 다발이 생겨났다.
원래 있던 촉수도 3개에서 6개로 늘어났고, 몸의 크기도 전에 비해 훨씬 커져서 얼추 60cm는 되어 보였다. 원래 아드하이보다 작던 26호였지만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씨 데몬이랑 비슷하게 생겼어.’
녀석의 몸을 20m 정도로 키우고, 지느러미를 훨씬 길고 굵게 만들면 영락없이 씨 데몬 전투형태다.
녀석은 자기 몸에서 일어난 변화가 익숙하지 않은지 지느러미로 어색하게 걸었다. 몸에 비해 한참 작은 지느러미로 빨빨 거리며 걷는 모습이 퍽 귀여웠지만 나는 안다. 나중에 저 지느러미가 톱날 촉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흉악한 무기로 변화한다는 것을 말이다.
컨테이너 내부를 돌아다니던 녀석이 나를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 몸을 빛냈다.
「큰애기가 작아졌어.」
[즈즈즈 즈즈즈즈(아니야. 네가 커진 거야)]
「내가 커졌어?」
이런 적은 처음인지 녀석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녀석에게 나는 나의 변화를 비유해서 설명해줬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나처럼 너도 자란 거야)]
「나도?」
[즈(응)]
「와!」
자기가 성장했다는 것이 기쁜지 녀석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부피만 커진 것이 아니라 무게도 늘어난 것인지 컨테이너가 살짝 흔들렸다.
‘얘를 데리고 기습할 때는 주의를 줘야겠네.’
전에는 어깨나 머리 위에 얹고 다녔는데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게 기쁨의 세레모니를 마친 26호는 촉수와 다리를 몸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하니까 덩치만 커졌을 뿐 원래의 버블 아메바 모습과 똑같았다.
「내가 큰애기 지켜 줄게!」
[즈즈즈(고마워)]
나는 고생했다는 의미로 녀석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전보다 커져서 그런지 촉감이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물풍선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부드러운 솜으로 채운 베개 같은 감촉이다.
“…괴물이 늘어났군.”
밖에서 26호를 지켜보던 윌리엄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26호의 변화를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아드하이가 손으로 내 머리를 콕콕 찔렀다.
「어른」「나」「성장」「지향」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너도 먹으면 커질 거야)]
「희소식」
솔직히 나는 갤러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모른다. 일반적인 생물이 아닌 만큼 특별한 조건을 만족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알 수 없다.
‘갤러곤이니까 사이킥 파워를 가진 생물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타입을 얻은 뒤는 갤러곤의 성장도 고려해 봐야겠다.
남은 워킹우드는 갤러곤이 모조리 먹어 치웠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컨테이너를 나왔다.
윌리엄을 돌려보내고 돌아가려는 순간, 나의 눈앞에 여러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강화 합금탄이 내 머리를 꿰뚫었다.」
「나는 죽었다.」
‘뭐?’
순간적으로 발동한 포식자 감각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틀었다. 간발의 차로 총알이 머리 뒤의 괴물의 촉수를 찢고 지나갔다.
‘누군가 공격하고 있다.’
날카로운 고통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나는 턱 아래 두 가닥 뻗어 있는 촉수, 보조기관을 이용해 어디서 공격이 왔는지 파악했다.
전신의 감각이 보조기관에 집중되고, 보조기관이 총알이 찢고 지나간 공기의 흐름을 읽어냈다.
저 멀리 항만 지구의 경계 부근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거리가 멀어서 정확한 위치까지는 감지되지 않았다.
‘저격수!’
나는 애들과 윌리엄보고 컨테이너 뒤에 숨으라고 지시한 뒤, 서둘러 자리를 이동했다. 적의 사격 범위에서 벗어났는지 더 이상 공격이 날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왜?’
윌리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경찰은 아닐 거다. 나를 쫓던 기자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녀와 관련된 사람도 아닐 거다.
‘내 머리를 뚫을 정도의 탄환이면 보통 총이 아닌데.’
플라즈마 무기 급의 저격총에 강화 합금탄을 쓰는 무기라면 딱 하나밖에 없다.
저격용 코일건.
‘이 도시에 저격용 코일건을 갖고 있을 만한 사람은 별로 없어.’
만약 있었다면 무장경찰이 들고 왔겠지. 이사회 도중이라면 새로 들어온 호위병력들이 갖고 있을 수 있지만, 이사회가 열리기까지는 아직 며칠 남은 상황이다.
‘경찰도 아니면서도 비싼 무기를 들고 나를 암살하려는 자.’
그렇게 생각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유성의 연구선에서 나를 죽일 뻔했던 자, 아놀드 러셀.
‘…갤러곤을 챙기러 왔구나.’
하필 오늘이라니. 게다가 상대는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보조기관의 감지 영역 내로 낯선 존재 4명이 진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