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52화 (53/400)

Ep. 52

‘질긴 악연이네.’

연구선에서도 아놀드 러셀은 키사라기 유진을 죽이려고 했지만 내가 먼저 잡아먹었다.

여기서도 제이드 러셀이라는 자가 테러를 위해 갤러곤을 가져왔지만, 그 갤러곤은 지금 나와 같이 다니고 있다.

‘내가 갤러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를 노린 게 분명해.’

아드하이는 항상 내 머리에 타고 다니니까 적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거다.

아무튼 적의 공격은 이미 시작된 상황. 이쪽도 그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

현재 접근하는 적은 총 4명이지만, 그중에 저격수는 포함되어 있지 않을 거다.

‘저격용 코일건은 유효사거리가 1.5km. 지구 경계 밖의 건물 위에서 쐈을 가능성이 높아.’

일반적인 저격총에 비하면 딱히 유효사거리가 높다고 보기 어렵지만 대신 화력과 관통력이 매우 좋다는 강점이 있다. 가장 단단한 내 머리를 쉽게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다른 저격총과 달리 저격용 코일건은 강점을 살리기 위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저격을 한다. 아마 적은 1km 안팎의 거리에 있는 고지대에서 나를 쐈을 거다.

‘문제는 내가 저격수의 정확한 위치까지 감지할 수 없다는 거지.’

저격수를 제외하고 현재 내 감각에 들어오는 4명. 3명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고 1명은 후방에 떨어져 있었다.

다가오는 존재들 중 인공 피부 냄새와 몸 전체에 흐르는 미미한 전기 신호가 없는 것을 봐서 안드로이드는 없었다.

적들 중 유독 기계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자가 있긴 했지만, 피부에서 고무 냄새 대신 피 냄새가 짙게 나는 것을 보니 사이보그가 확실했다.

‘게다가 컬트가 있어.’

적들 중 후방에 있는 자에게서 미세한 사이킥 파워의 흐름이 감지된다. 파워의 양 자체는 아드하이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지만 실제로 약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컬트의 초능력이 무서운 이유는 다양성과 특수성 때문이다. 컬트는 온갖 종류의 사이킥 파워 기술에 잠재력을 갖는 몇 안 되는 종족이다. 멋모르고 컬트에게 덤볐다가는 기상천외한 초능력 공격에 의해 농락당하기 딱 좋다.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습부터 확인해야 해.’

보조기관은 냄새, 소리, 진동 등의 여러 요소들을 종합해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한다. 외모의 세세한 부분까지 읽어내기는 힘들기 때문에 외모가 궁금하다면 맨눈으로 직접 봐야만 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보조기관에 의존하겠지만 컬트의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뿔에 따라 특화된 초능력이 다르니까.’

컬트는 인간과 다르게 외모가 매우 중요한 종족이다. 컬트가 공격적인 스타일인지 서포트에 특화된 스타일인지 뿔을 보고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뿔은 많은 강점을 가진 컬트의 몇 안 되는 약점 중 하나다.

컬트 플레이어들도 뿔이 가진 단점을 잘 알고 있기에 뿔을 깎든가 해서 적을 속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상대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설정상 컬트는 뿔을 귀하게 여기지.’

컬트 사회는 뿔의 외형에 따라 직업이 정해지기 때문에 뿔을 훼손하는 것은 매우 큰 중죄다. 그러니 저쪽이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절대로 뿔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설령 뿔의 모습을 바꾼다고 해도 장신구로 치장하는 수준에서 그칠 거다.

몸을 숨기고 적들을 분석하는데 멀리서 작은 무언가가 날아왔다.

‘유탄!’

나는 급히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뒤이어 내가 있던 자리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물의 화력이 어마어마해서 그런지 수십 톤에 달하는 컨테이너가 하늘을 날았다.

상대는 이 도시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을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구 밖에 보일 정도의 폭발을 일으키는 유탄을 저렇게 쏴 재낄 이유가 없을 테니까.

‘쯧. 골치 아파지겠는데.’

현재 나는 무장경찰들에게 추적을 받는 몸이다. 윌리엄이 내 명령을 받아 경찰들을 교란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난동을 피우면 분명 걸릴 거다.

‘어떻게든 빨리 정리해야 해.’

어차피 나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 놈들이니 살려 둘 생각은 전혀 없지만.

‘지금까지 감지된 적은 컬트, 사이보그, 중화기 사용자, 저격수…한 명이 비네?’

분명 한 명이 더 있었는데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보조기관에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멀리 벗어나서 습격 기회를 노리는 것 같다.

‘자리에 없는 자는 자를 빼면 4명인가.’

누구부터 먼저 제거할지 정해야 한다.

‘저격수를 먼저 죽이는 것이 좋지만 현재 조건으로는 어려워.’

내가 가진 원거리 공격 수단은 총 2개. 가시뼈 발사 기관하고 괴물의 촉수다.

괴물의 촉수는 에너지 소비량이 심하니 사용할 수 없고, 사실상 가시뼈 발사 기관이 유일한 원거리 무기다.

‘가시뼈라면 저격수와 맞설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적은 높은 곳에 있고 나는 낮은 지점에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가시뼈의 유효사거리는 500m. 저쪽이 들고 있는 무기와 비교해 보면 유효사거리가 절반 이하니까,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저격수와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접근하려는 나를 그대로 냅둘 리 없다. 나와 대치하고 있는 저 중화기병이 막으려 들겠지.

‘어떻게든 접근을 해야…이런.’

적이 쏜 강화 합금탄이 컨테이너들을 뚫고 내게 쇄도하고 있음을 보조기관이 보고했다.

나는 즉시 앞쪽을 향해 짧게 도약했다. 내 머리를 노리던 총알은 이번에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애꿎은 바닥만 때렸다.

‘저쪽의 위치에서 내가 보이지 않을 텐데?’

이건 명백히 상식을 벗어난 공격이었다. 방금까지 컨테이너 뒤에서 몸을 땅바닥에 붙이고 바짝 엎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보려면 내가 있는 위치에 바짝 접근하거나, 아니면 항만 지구 전경이 다 보일 정도로 높은 곳 위에 올라가야 한다.

‘설마?’

적들이 어떻게 내 움직임을 읽는지 알아낸 나는 앞을 향해 내달렸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내가 있던 컨테이너 위로 유탄 2발이 떨어졌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 자리에 있었다간 그대로 폭발에 휩쓸렸으리라.

예상대로 적들은 보이지 않는 내 움직임을 읽고 연계하고 있다. 이 능력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안다.

‘컬트의 소울링크 기술이야.’

컬트가 쓰는 사이킥 파워 중에 ‘소울링크’라는 기술이 있다. 특정 아군과 감각을 연결해서 보조하는 초능력 기술이다. 예를 들어 A, B, C라는 플레이어가 있을 때, A가 B, C에게 시야를 링크하면 3명이 모두 같은 시야를 공유한다.

게임에서는 화면의 상단이나 하단에 미니맵 형식으로 시야 공유 효과가 구현되어서 서포트 역할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이 많이 사용했다.

‘소울링크면 서포터 타입인가.’

그렇다면 적 컬트의 뿔 생김새는 염소의 뿔을 닮았을 거다. 재수 없게 사슴뿔 모양이면 승산을 장담하기 어렵겠지만 아마 그건 아닐 거다.

‘적 모두 시야를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겠네.’

마침 소울링크의 유효 범위도 술자를 중심으로 반경 700m까지다. 그 밖으로 나가면 자동으로 해제된다. 그러니 나를 공격하고 있는 저격수도 컬트에게서 소울링크 유효 범위 이상으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저격하고 있을 거다.

‘저격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수확이지만….’

컨테이너 사이를 뛰어다니는 동안, 적들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놈들의 무차별 공격 때문에 내가 먹을 밀수 동물이 실려 있는 컨테이너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먼저 저 중화기 담당부터 어떻게 해야겠어.’

이러다가는 내가 먹을 유전자 정수가 하나도 안 남게 생겼다.

나는 달리던 중에 가시뼈 발사기를 뒤로 향해 쐈다. 예리하게 간 얼음송곳처럼 생긴 생체 탄환이 적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적은 특별히 몸에 보호 장비를 걸치지 않고 있는 상태. 내 가시뼈를 피할 방법은 없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헤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두꺼운 장갑을 걸친 사이보그가 해머로 가시뼈를 튕겨 냈다. 해머의 단단함보다 나는 상대의 엄청난 반사 신경에 놀랐다.

‘그걸 튕겨 내?’

사이보그가 저 정도 힘을 내려면 몸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해야 한다. 스타유니언이 아니면 보기 힘든 수준인데 이런 곳에서 볼 줄은 몰랐다.

‘적이 만만치 않은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강적과 조우하게 될 줄이야.

‘재정비 시간이 필요해.’

이대로 가다간 반격 한 번 못하고 당할 거다. 불길한 생각대로 사이보그의 보호를 받는 적이 내게 유탄을 쐈다.

‘…쯧.’

한 발 늦게 피하는 바람에 폭발에 휩쓸렸다. 내 외피에는 불에 대한 내성이 있지만 덜 아파질 뿐 고통을 아예 상쇄할 수는 없다. 나는 외피가 불타는 고통을 억지로 참고 계속 움직였다.

“씨발 벌레 새끼가 좆나 안 죽네!”

적의 욕설을 뒤로하고, 나는 다른 컨테이너 뒤에 엄폐했다. 놈이 유탄을 재장전하는 사이, 나는 빠르게 내가 가진 특성들을 점검했다.

‘저 사이보그랑 컬트 때문에 가시뼈 공격은 쉽지 않겠어. 톱날 촉수? 싸우는 중에 저격당하면 바로 무력화될 거야. 그렇다고 근접전으로 가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닌데.’

가시뼈와 근접전이 어렵다 보니 평소에 유용하게 쓰던 신경독 특성도 봉인이다. 날개 특성은 저격수가 있는 상황이라 사용하기 어렵다.

‘뭔가 방법이…아.’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마침 ‘그것’이 실려 있는 컨테이너가 가까운 위치에 있다.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로 움직였다. 한가롭게 단말기를 열 시간이 없었기에 이빨과 전투용 팔을 활용해 문을 뜯어냈다.

예상대로 컨테이너 안에 설치된 철창 너머에 거대한 짐승이 잠들어 있었다.

꼬리까지 포함하면 6m 정도 되는 거구의 몸집을 자랑하는 녀석은 금속 장검을 누벼서 만든 것처럼 생긴 외피로 덮여 있었다. 다리는 총 6개로 코끼리의 발처럼 크고 두꺼웠다.

내가 이 도시에 와서 두 번째로 잡아먹었던 사이보그 라스가 만들어놓은 장부에 있던 그 생물, 마운틴크롤러의 새끼였다.

전투용 팔로 철창을 구부려서 안에 들어간 나는 기생 군체를 활성화했다. 손끝에서 기어 나온 기생충이 마운틴크롤러의 귓구멍으로 숨어들었다.

「그르륵?」

기생충이 들어간 감각이 이상했던 것인지 마운틴크롤러가 눈을 떴다. 4개의 큼지막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가다가 나에게 고정되었다.

「그르르르」

동물의 본능인지 기생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놈은 나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녀석의 갑피는 내 외피보다 훨씬 단단하다. 아직 새끼니까 배 부분 같이 아래쪽은 갑주가 없어서 약점이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탱크라 불러도 무방한 녀석이다.

나는 기생충을 통해 녀석에게 명령했다.

나가서 마음껏 날뛰라고.

「그르르르릉」

비유가 아니라 정말 탱크가 움직이는 것 같은 포효를 내지른 녀석이 구부러진 철창 밖으로 튀어 나갔다.

녀석이 나가자마자 강화 합금탄이 날아들었지만 무시무시하게 단단한 마운틴크롤러의 등갑을 뚫는 것은 무리였다.

“이런 씹! 뭐야 이게?!”

“마운틴크롤러다!”

갑자기 튀어나온 야수에 적들이 당황해하고 있다. 마운틴크롤러로 시간을 번 나는 컨테이너를 나와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괜찮아?」

[즈즈즈(너희는?)]

「나랑 작은애기는 괜찮아. 먹이도 괜찮아.」

[즈즈즈즈(다행이네)]

달리는 도중 26호가 쏜 파장이 날아왔다. 녀석의 말을 들어 보니 셋 다 별다른 공격을 당하지 않은 것 같다.

적들이 갤러곤을 찾아 이곳에 온 것이다 보니 아드하이 쪽을 공격하는 것은 일단 보류한 것 같다.

‘문제는 26호와 윌리엄인데.’

아드하이 말고 다른 존재를 적들이 봐주고 넘어갈 것 같지 않다. 나를 정리한 다음 바로 죽이려고 들겠지.

솔직히 윌리엄은 몰라도 26호는 내게 유용한 존재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26호를 보호하기는 쉽지 않다. 녀석도 나와 함께 나서서 적들과 싸워야 한다.

‘성장했으니 강해지긴 했을 텐데.’

26호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을 거다.

마음 같아서는 안전한 곳에서 녀석의 힘을 지켜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 전투를 통해 녀석의 힘을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과 함께 저쪽의 시야부터 처리해야 해.’

보조기관에 다시 집중해도 적들 중들 느껴지는 감각은 3명뿐. 저격수는 멀리 있어서 내가 감지를 못한다고 쳐도 1명이 빈다.

‘시야를 담당하는 사람. 한 명이 아닌 것이 틀림없어.’

링크를 담당하는 컬트.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자.

나를 공략하는 적들 중 시야를 담당하는 자는 총 둘이다.

‘지금 저격수와 3명은 마운틴크롤러에게 집중하고 있어.’

그 말은 남은 한 명의 방어가 취약해진 상태라는 뜻. 물론 저쪽에서 어떤 비장의 카드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다.

결정한 나는 26호에게 파장을 날렸다.

[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나 말고 저 녀석을 도와줘)]

「저 큼지막한 애?」

[즈(응)]

「큰애기는?」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해야 할 일이 있어)]

나는 26호에게 마운틴크롤러를 도우라고 한 뒤, 숨어 있는 적이 있을 곳을 향해 달렸다.

놈이 어디 숨어있는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거대한 컨테이너들 사이에 숨어 있는 나의 위치는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컨테이너 안에 있을 때는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위치.

적은 매우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이곳 항만 지구에 높은 곳이라면 딱 하나 밖에 없다.

컨테이너 크레인.

그곳에 시야를 공유하며 전장을 내려다보는 자가 있다.

‘아드하이랑 26호를 저쪽에 보내도 되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다.

상대가 어떤 비장의 카드를 지니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런 전투에 익숙한 것은 녀석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이런 식으로 시야 공유를 해서 나를 몰아붙인 적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놈들과 싸우면서 나는 한 가지 방법을 터득했다.

서로의 시야에 의존하는 놈들을 적절하게 교육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갤러곤을 이용해서 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저들은 우주 도시에 공포와 혼란을 가져오기 위해 온 테러리스트들.

아무래도 저들에게 진짜 테러가 뭔지 보여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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