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4
“쿨럭!”
컨테이너 위에서 떨어진 저격수가 피를 왈칵 토했다. 심장이 뚫리고 바닥에 처박혔지만, 그의 표정에 떠오른 것은 고통이 아니라 의아함이었다.
그는 왜 자기가 이렇게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디서 공격이 날아온 것인지, 누가 자기를 쏜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나를 귀찮게 했던 저격수는 끝까지 의문을 풀지 못하고 죽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드웨인의 링크가 해제됐어.」
저격수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나는 제이드에게 다가갔다.
현재 제이드는 나의 신경독 때문에 눈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동료가 죽는 것을 여과 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눈앞에서 자기 때문에 동료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팔다리가 부러진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까. 동료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탈까. 아니면 곧 자기도 뒤를 따라가겠지 하며 체념하고 있을까.
‘죽으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데려온 동료를 전부 사냥한 다음 그를 죽일 생각이니까.
나는 제이드의 몸을 붙잡아 시야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은 뒤, 저격수의 시체 곁으로 갔다.
가시뼈를 맞기 전까지 투명 상태였던 저격수의 갑옷은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상급 강화복인가?’
상급 강화복과 중급 강화복은 이름만 봐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예를 들어 중급 강화복까지가 옷에 가까운 외형이라면 상급은 일종의 아머슈트에 가깝다.
저격수가 입고 있는 장비도 하이테크스러운 갑옷 형태였다.
‘보니까 옵션을 여러 개 붙이느라 방어력을 희생했나 보네.’
좀 더 살펴보고 싶지만 지금은 전투 상황이다. 나는 강화복에 관심을 끊고 시체를 붙들었다.
‘오른손이면 되겠지.’
전투용 팔로 시체의 오른쪽 손을 붙잡고 쭉 잡아당겼다. 에이모프의 초월적인 근력 때문인지 손뿐만 아니라 손목까지 뜯어졌다.
한 손으로는 피가 줄줄 새어 나오는 손목을 쥐고, 다른 손으로 시체 옆에 떨어져 있던 저격용 코일건을 들었다.
‘지문 인식 장치가…아, 여기 있네.’
저격용 코일건은 방아쇠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우측면에 지문 인식 장치가 있어서 등록된 사용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구조다.
‘보안을 위해 이렇게 설계했다는 설정이지.’
나는 코일건 옆의 센서에 저격수의 손가락을 갖다 댔다. 잠시 후 전자음이 들리면서 코일건에 불이 들어왔다.
‘어디 탄환부터 체크해볼까.’
손가락으로 코일건 위에 부착된 단말기를 터치하자 탄환 목록이 화면에 출력되었다. 목록 중 AP탄 항목만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좋아.’
AP탄은 메가콥과 스타유니언이 대(對) 사이킥 전(戰)을 상정하고 만든 특수한 탄환이다. 탄 안에 사이킥 파워의 흐름의 차단하는 특수한 물질이 심어져 있어서 이 탄을 맞을 시 일정 시간 동안 사이킥 파워를 쓸 수 없게 된다. 설령 빗나간다고 해도 탄환이 파괴되면서 특수 물질을 주변에 흩뿌리기 때문에 해당 범위 내에서는 사이킥 파워를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26호랑 아드하이가 고생했겠네.’
나는 코일건을 든 상태로 등에 감각을 집중했다. 등갑 쪽이 갈라지면서 안에서 곤충의 날개를 닮은 거대한 날개가 밖으로 뻗어 나왔다. 이어서 날개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내 몸이 급격히 위로 솟구쳤다.
‘두 번째 목표는 컬트.’
하늘 위에서 나는 코일건으로 저 멀리 적들이 있는 곳을 겨냥했다.
적들 후방에 티아라를 쓴 컬트가 보인다.
나는 저격수의 손가락으로 코일건의 센서를 꾹 눌렀다.
초능력의 힘 덕분일까. 불길한 예감을 느꼈는지 컬트가 내가 날고 있는 위치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발견한 그녀가 뭐라고 외치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와 동시에 코일건이 발사되었다.
-
최근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자주 떠올렸다.
사실은 그리 떠올리고 싶은 기억은 아니었다. 좋지 않은 기억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는 가족들의 죽음도 같이 떠올렸다.
역겨운 냄새로 가득 찬 그곳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어 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 기억이, 가족들의 단말마가 칼이 되어 그녀를 찔렀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아픔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아픔을 덜 느끼게 되었다.
아직도 가끔 악몽을 꾸지만 전보다는 나아졌다.
그녀는 무엇이 상처를 치유해주는지 알고 있었다.
새로운 가족.
그녀가 과거에 지키지 못했던 가족이 그녀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있다.
물론 그녀도 안다. 지금 곁에 있는 아이들과 죽어 없어진 이들이 다른 생물이라는 것을.
그런데 왠지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해지고 싶다는 욕심.
사실 ‘욕심’이라든가 '갈망'이라고 하는 고차원적 사고방식은 그녀에게도 생소한 것이었다.
물론 전에도 무리를 지켜야겠다는 의식은 있었지만, 그 감정은 일종의 본능에 가까웠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먹고, 졸리면 잠이 든다는 그런 종류의 것 말이다.
욕구는 채우면 그만이지만 욕심은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그것은 더 나은 것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미지의 무언가에 의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변화, 아니 그 이상의 것이었다.
새로 생긴 가족들을 어떻게든 지켜야겠다는 집착, 초조함, 애정, 갈망.
즉, 그녀는 ‘감정’을 매개로 종족의 한계를 초월해가고 있었다.
그 놀라운 변화를 그녀는 두려워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감정이 그녀를 강하게 만든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좆같은 마운틴씹롤러는 다 잡았어!”
“빨리 처리하고 제이드를 구하러 가자고!”
「그우우우우우우」
그녀 앞에 새끼 짐승이 울부짖었다. 그녀는 불쌍한 새끼를 공격하는 자들을 노려봤다.
생김새는 전혀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냄새가 났다.
그녀의 동족을 무자비하게 죽였던 자들과 똑같은 냄새가 그녀를 한층 더 불쾌하게 만들었다.
아픈 기억이 그녀를 쑤셔댔고, 분노는 그녀의 힘을 자극했다.
“좋아! 막타는 내가…억?!”
“프로스트!”
전투가 시작되고 두 번째로 그녀의 힘이 저기 저 냄새 나는 것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싸우는 동안, 그녀의 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아끼는 아이와 대화할 때 쓰는 파장과 비슷한 파장이 그녀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 주던 수단을 저 나쁜 놈들이 쓰고 있다는 사실도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가진 여섯 마디의 촉수가 일제히 냄새 나는 것을 향했다. 여섯 갈래의 보라색 줄기가 상대의 부속지를 붙잡고 마구 당기기 시작했다.
“커헉!”
“씨발! 제넷 이 썅년아! 뭐 하는 거야?! 깡통 뒈지게 생겼어!”
「니미씹! 기다려 봐!」
냄새 나는 것을 붙들고 있던 그녀는 작은 아이를 불렀다. 작은 아이는 큰 아이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착한 아이였다.
「어른」「지원」
작은 아이는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작은 아이가 그녀와 비슷한 보라색 힘을 입에서 토해냈다.
냄새 나는 것을 향해 날아간 보라색 힘은 놈의 부속지 하나를 잘라 냈다.
“끄아아악!”
부속지가 잘린 냄새 나는 것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액체를 뿌려댔다. 그녀가 여러 번 먹었던 고기와 비슷한 냄새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저렇게 역한 냄새가 나는 먹이는 절대로 먹고 싶지 않았다.
“프로스트!”
「그르르르르」
“니미마운틴씹! 제넷!”
냄새나는 것이 당하자 나쁜 놈들이 동요했다. 그동안 아직 살아 있던 새끼 짐승이 젖 먹던 힘을 다해 냄새 나는 것을 물어뜯었다.
「…이러다가 다 죽겠어. 호프, 작전보다 생존이 우선이야.」
“뭐?”
「갤러곤이 죽든 말든 놈들부터 조지고 보자고.」
「기다려! 대장님에게 가고 있으니 침착하게…」
“드웨인! 난 지금 팔이 잘렸다고! 침착이고 나발이고 뭐라도 하란 말이야!”
나쁜 놈들이 뭐라고 웅얼거리고 있다. 아까부터 그랬지만 저렇게 웅얼거리는 것은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에이 씨발 나도 모르겠다.”
「…대장님을 확인한 다음 바로 지원하지.」
머리에 털이 별로 없는 것이 뭉툭한 막대기 같은 것을 꺼냈다.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저 물건이 위험하다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대응하려고 했지만, 놈들이 한 발 더 빨랐다. 털이 적은 것이 뭉툭한 막대기를 두꺼운 원통 안에 넣고 그녀를 공격했다.
원통 끝에서 튀어나온 막대기가 빠른 속도로 그녀에게 쇄도했다.
그녀는 방어하기 위해 보라색 줄기를 그물처럼 깔았지만 놈이 쏜 물건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보라색 줄기는 연기처럼 사라졌고 막대기는 그녀의 촉수를 찢고 지나갔다.
「어른!」
극심한 고통에 기절할 뻔했지만 작은 아이의 외침을 듣고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어떻게든 다시 보라색 줄기를 뿜으려고 했지만 고통 때문에 집중이 안 돼서 그런 것일까. 그녀가 가진 미지의 힘은 주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떠올렸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보라색의 힘이 그녀를 돕지 않아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가.
또다시 가족을 잃을 수는 없다.
잊고 싶은 악몽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 사실이 압박감이 되어 그녀에게 들이닥쳤다.
「잠깐? 놈이 무언가 하려고 해!」
‘절박함’이라는 그 감정에 의해 그녀가 또다시 한 단계 올라서고 있었다. 절박함이 몸 전체에 퍼져나가고, 그녀의 촉수, 그녀의 외피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나쁜 것들은 그녀가 변화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프로스트!”
“괴물 주제에 수작은!”
어느새 새끼 짐승을 쓰러트린 냄새 나는 것이 그녀에게 달려와 부속지로 걷어찼다. 아찔한 고통이 그녀를 강타했고, 그녀의 몸에서 발생하던 변화는 중단되었다.
“빌어먹을 괴물 새끼,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주마.”
「호프! 지금이야! 갤러곤을 포획해!」
“알았어!”
냄새 나는 것이 으르렁거리며 뾰족한 막대기를 꺼냈다. 냄새 나는 것이 그녀에게 다가오는 동안, 털이 없는 것이 작은 아이를 노렸다.
그녀는 다급히 작은 아이에게 도망치라고 파장을 쐈다. 작은 아이는 혼자 도망치는 것이 꺼려지는지 꼼짝도 않고 있었다.
「도망쳐!」
「나」「어른」「없음」「도주」「거부」
「빨리!」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소리 지르듯 파장을 쏘자 그제야 작은 아이가 움직였다. 그녀와 다르게 작은 아이는 땅 위에서도 날아오를 수 있으니까 어렵지 않게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나쁜 놈들이 그녀의 기대를 짓밟았다.
“어딜 도망치려고!”
털이 적은 것이 그물망 같은 것을 쏴서 작은 아이를 옭아맸다. 작은 아이가 보라색 힘을 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물망에서 나오는 묘한 파장이 작은 아이의 힘을 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엿같은 촉수부터 먼저 잘라 주지.”
그녀는 생각했다.
자기는 또다시 실패했다. 그녀와 작은 아이는 이 자리에서 죽게 되겠지.
전과 다른 점이라면 큰 아이는 이곳에서 무사히 도망쳤다는 것.
그녀보다 대단하고 그녀보다 훨씬 힘이 세고 그녀보다 멋진 큰 아이.
큰 아이라면 그녀가 죽어도 잘 살아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큰 아이가 멋지게 성장해가는 길 곁에 자신이 있길 바랐는데.
안타깝지만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냄새 나는 것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뾰족한 막대기를 높이 들었다.
“죽어…어? 뭐야?”
「드웨인? 드웨인의 링크가 끊겼어!」
죽음이 닥쳐오려는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뭐?”
「설마…어? 꺅!」
“제넷?!”
“깡통! 링크가 해제됐어!”
나쁜 놈들이 서로 웅얼대는데 좀 전과 분위기가 달랐다. 뭔가 일이 잘못된 것인지 다급하다는 느낌이었다.
“제넷을 확인해…깡통! 피해!”
“어?”
그리고 하늘에서 「그것」이 떨어졌다.
「그것」이 냄새 나는 것을 깔아뭉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8개의 부속지에 긴 꼬리를 가진 그 괴물은 그녀도 잘 아는 존재였다.
그녀만큼 작은 아이에서 어느새 이렇게 어엿하게 자라난 멋진 아이.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큰 아이.
[즈즈즈 즈즈즈(많이 늦었지?)]
그녀가 큰애기라 부르는 그것이 그녀에게 말했다.
큰애기가 쏜 파장은 어딘가 멋쩍어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그녀가 감정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지금 속에서 올라오는 이 느낌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그것은 ‘통쾌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