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5
“큭! 이런 미친….”
내 발에 깔린 사이보그는 죽지 않았다. 하체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상체도 반쯤 박살이 난 상태이지만 놈은 나에게 저항을 시도했다.
“너도 나랑 같이 뒈지는 거야!”
“깡통! 안 돼!”
그가 꺼낸 것은 격발 장치였다. 놈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장치의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 뭐야?”
놈이 황망한 표정으로 스위치를 다시 눌렀다. 그렇게 몇 번씩이나 다시 눌렀지만 폭탄은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찢겨져나간 놈의 복부에서 반쯤 부서진 폭탄을 끄집어냈다.
‘역시.’
저격하지 않고 직접 사이보그를 처리하러 온 건 이 폭탄 때문이다.
사이보그인 군인이나 용병 중에는 간혹 폭탄을 넣고 다니는 놈들이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죽어서도 적에게 피해를 주려는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스릴 때문이다.
이 중 전자는 플레이어가 실용적인 목적으로 폭탄을 심은 경우다. 어차피 게임이니까 상대한테 엿이나 먹으라는 심정으로 자폭 수단을 준비한 거다.
반면 여기는 현실이니까 후자, 즉 스릴을 추구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몸에 폭탄을 넣은 경우라 볼 수 있다.
‘기계로 대체한 부분이 많을수록 살아 있다는 감각도 둔해지니까.’
사이보그의 고향 스타유니언은 메가콥과 다르게 개인의 욕구와 감정을 억압하는 사회다. 그렇다 보니 극단적인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스타유니언을 배신하는 사이보그가 제법 많다.
‘스페이스독에 가는 사이보그가 제일 많지만 메가콥에도 적지는 않지.’
스페이스독은 매일 목숨을 건 전투가 벌어지고, 그릇된 욕구를 푸는 것도 딱히 금지하지 않기에 미친 사이보그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택지다. 그래서 스페이스독에 소속된 사이보그는 스릴 추구를 목적으로 몸에 폭탄을 심거나 하지 않는다.
‘애초에 삶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스페이스독 소속 사이보그가 몸에 폭탄을 심을 리가 없지.’
남의 몸에 재미 삼아 강제로 심을 수 있어도 자기 몸은 아끼는 놈들이니까.
반면 메가콥은 스타유니언보다야 낫지만 욕구 해소 방법이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내 앞에 있는 이놈처럼 스릴을 추구하기 위해 몸에 폭탄을 심는 사례가 간혹 있었다.
‘게임에서 메가콥 소속으로 등장하는 사이보그 자폭병이 그런 설정이었지.’
원래라면 나도 설정으로 취급하고 넘겼을 거다.
하지만 난 이미 유성의 배에서 심장에 폭탄을 연결한 헐크 뮤턴트와 싸운 적이 있다.
단순히 설정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몸에 폭탄을 넣고 다니는 정신 나간 놈들이 현실에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내가 저격으로 사이보그를 죽였는데 폭탄이 터지면 26호와 아드하이가 치명상을 입을 거다.
‘그럴 바에는 안전하게 가는 게 낫지.’
“씨, 씨발! 왜 안 터지는 거야!”
그리고 내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내 손에 들린 폭탄을 보고 사이보그가 울부짖었다. 나는 시끄럽게 구는 녀석의 가슴팍을 밟고 전투용 손으로 머리를 꽉 잡았다.
손에 힘을 주자 사이보그가 비명과 같은 신음을 내뱉었다.
“으그극, 그어어억!”
26호를 괴롭히던 녀석이라 천천히 죽일까 했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적이 남아 있다. 나는 머리를 붙잡은 전투용 팔에 힘을 줘서 단번에 위로 당겼다.
“끅?!”
“깡통!”
사이보그의 머리를 뽑으니 기계화된 척추가 딸려 나왔다. 숨이 끊어진 사이보그는 혀를 빼물고 있었고, 반쯤 부서진 척추에서는 검은 기름과 피가 섞여서 흘러내렸다.
“제, 젠장!”
내가 동료를 죽이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던 중화기병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들고 있던 복합형 유탄발사기의 총구를 내게 향했다.
애들도 옆에 있는데 적이 유탄으로 공격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당연히 없다. 나는 손에 쥔 사이보그의 머리를 그에게 던졌다.
두개골도 강철로 코팅한 놈이다. 그 자체로도 둔기나 다름없는데 에이모프의 강력한 근력으로 던졌으니 맞고 무사할 리 없다.
“끄악!”
사이보그의 머리가 중화기병의 어깨를 강타했다. 놈은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니미개씹! 씨바알!”
어깨가 부러진 그는 분노에 찬 욕설을 내뱉더니 그대로 도망쳤다.
나는 그를 추적하는 대신, 26호와 아드하이의 상태를 살폈다. 26호의 모습에는 딱히 외상은 없어 보였다.
[즈즈즈(괜찮아?)]
「응. 나 말고 작은애기부터 봐줘.」
녀석의 말대로 아드하이는 적이 쏜 그물에 맞아서 불편한 자세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나는 손톱을 이용해 그물들을 잘게 끊어냈다.
「위대한 어린 자」「감사」
[즈즈즈즈(다친 곳은?)]
「나」「부상」「경미」「괜찮음」
맞춘 상대를 조이는 형태의 그물인지 아드하이의 푸른 비늘에 전체에 그물 모양으로 얇은 상처들이 나 있었다.
아드하이에게는 회복 관련 특성이 없으니 다 나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중화기병은 아드하이에게 줘야겠네.’
중화기병을 잡아 먹으면 아드하이의 기분도 좀 풀리겠지.
둘의 상태를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윌리엄을 확인했다. 그는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미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에게 죽거나 내 노예로 살 거나 둘 중 하나밖에 선택지가 없으니까.’
아무튼 아드하이가 조금 다쳤지만, 그래도 치명상을 입은 자는 없었다. 나는 26호를 불렀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저쪽으로 가면 다른 먹이가 있어)]
「다른 먹이?」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한 명은 살아 있고, 한 명은 죽었어)]
「죽은 것만 먹으면 되지?」
나랑 오래 있다 보니 단번에 이해하는 녀석이다. 나는 그렇게 하라는 의미로 녀석을 한 번 쓰다듬고, 도망친 적을 뒤쫓았다.
사냥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
“헉, 헉, 헉….”
호프는 부러진 어깨를 붙잡고 달렸다. 다른 작전이었다면 안정감을 줬을 컨테이너 엄폐물들이 오늘따라 다르게 보였다.
“힉?!”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느낌에 호프가 질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미친놈처럼 두리번거려도 컨테이너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쪽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환풍기의 날이 도는 소리 같기도 했고 뭔가 거대한 동물이 날갯짓을 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급히 돌아봤지만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
호프는 덜덜 떨면서 등에 메고 있던 무기를 풀어서 손에 쥐었다. 본인의 몸을 지키기 위해 사비로 구매한 가우스 소총이었다.
‘탄을 교체해야 해!’
유탄에 맞아도 죽지 않는 놈이다. 관통탄이 아니고서야 이길 수 없다고 호프는 생각했다.
“큭, 니미!”
오른쪽 어깨가 부러졌기 때문에 그는 왼팔로만 탄약을 교체해야 했다. 간신히 관통탄을 장전한 호프는 왼팔로 가우스 소총을 들었다.
호프는 생각했다.
여기 있는 수많은 장애물들은 그에게 불리한 요소였다. 놈은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 지금도 높은 어딘가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을지 모른다.
‘하, 항만 지구에서 벗어나야 해!’
지구 경계에 제넷이 세워둔 차. 그 차를 타고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다.
목표를 정한 호프는 다시 도망쳤다. 그의 귓가에 또다시 불길한 날갯짓이 들렸지만 그는 애써 무시했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바로 시현 유진에게 보고해야 하지만 현재 호프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온갖 전장을 다 구른 그였지만, 살아 있는 동료의 목을 뽑고, 그것으로 모자라 그걸 던지는 괴물은 처음 봤다. 동료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그의 멘탈을 회복시켜줬겠지만, 그 역할을 할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
‘이, 이쪽 길이 맞나?’
계속 달렸지만 경계 지점에 있는 펜스는 보일 생각을 안 했다. 비슷하게 생긴 컨테이너만 보일 뿐이었다.
고통과 공포 때문에 호프는 자기가 가는 길이 맞는지 확인하기 힘들었다.
‘아냐! 맞을 거야! 맞을 게 분명…엇?’
그렇게 자기를 다독이며 뛰고 있던 그의 눈에 처음으로 컨테이너가 아닌 다른 것이 보였다.
머리 전체가 피투성이가 된 제넷이 컨테이너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녀가 항상 자랑하던 염소 뿔은 완전히 부러졌고, 백발은 원래 적발이었던 것처럼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제, 제넷?”
“으, 으으…호, 호프?”
호프는 서둘러 달려가서 컨테이너에 기대고 있는 그녀를 살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머리 가죽 상당 부분이 손상되어 하얀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괘, 괜찮아?”
“어, 어서 아, 아가씨에게 보고, 보고해야….”
더듬거리는 그녀의 말을 듣자 호프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그는 서둘러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야! 너까지 죽으면 안 돼! 정신 차려!”
“하…. 마지막에 보는 사람이 너라니 인생니미….”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제넷. 이런 상황인데도 평소랑 똑같은 그녀의 반응에 호프는 뭐라 대꾸하려고 했다.
“또라이년이 이럴 때도 지랄이냐?”
“크, 크윽, 너, 너 같으면 안 그러….”
그녀가 말을 다 잇기 전.
컨테이너 위에서 새까만 무언가가 내려와 그녀의 머리를 붙잡았다. 어둠을 닮은 시커먼 손이 제넷을 위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이어서 고기를 다지는 소리와 함께 컨테이너 위에서 핏물이 튀었다. 부들부들 떨던 제넷의 다리가 이완되어 늘어지고, 바지가 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히, 히이익!”
호프는 들고 있는 가우스 소총으로 반격할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동안 쌓아왔던 훈련, 중화기의 전문가라는 경력, 무수히 많은 살상 경험.
호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아무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린아이처럼 도망치는 일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하늘이 기적을 내려 준 것일까.
그의 눈앞에 항만 지구의 경계가 보였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도망치기 위해 들고 있던 가우스 소총도 내버렸다.
“허, 헉, 헉, 헉….”
달리는 동안 부러진 어깨가 마구 흔들렸지만 압도적인 공포가 그의 뇌리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육상선수마냥 전력을 다해 달린 그는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다행히 제넷은 차에 키를 꽂아 두고 있었다. 애초에 작전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누가 알았을까.
그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중형 세단의 엔진이 그르렁 소리를 내며 깨어나자 그는 가속 페달을 세게 밟았다.
발사된 미사일처럼 제넷의 차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백미러에 보이는 항만 지구의 컨테이너 더미가 순식간에 작아졌다.
호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저 지옥 같은 항만 지구에서 벗어났다.
‘여, 연락부터….’
동료들이 죽어 나갈 때 진작 연락했어야 했다. 뒤늦게라도 시현 유진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그는 통신기를 들었다.
왼손으로는 운전대를 잡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오른손으로 메시지를 입력했다. 어깨가 부러져서 그런지 손과 팔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간신히 해당 번호로 메시지를 보낸 그는 백미러로 누가 쫓아오지 않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어?”
백미러 너머로 지구 경계 부근에 있는 작은 물체가 보였다.
물체에서 작은 빛이 번쩍이고, 곧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타이어에 구멍이 난 차가 호프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였다.
“어, 어어!”
호프가 다급히 양손으로 운전대를 쥐었지만 이미 늦었다. 중형 세단 앞에 전봇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굉음이 울려 퍼지고, 호프는 차의 유리창을 뚫고 앞으로 날아갔다. 언제나 즐겨 쓰던 유탄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그는 도로 위에 사정없이 처박혔다.
이어서 차에 부딪친 전봇대가 차 위로 쓰러졌다.
전봇대 위에 달린 카메라에서 스파크가 튀고, 기름이 줄줄 새던 차체에 불길이 확 피어올랐다.
“으, 으으, 으….”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데 몸이 통제를 거부했다. 굼벵이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그의 뒤에서 유리 조각이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다.
놈이 그를 따라왔다.
호프의 뒤까지 따라온 놈이 그의 눈앞에 기다란 물건을 툭 던졌다. 그건 그의 동료, 드웨인이 쓰던 저격용 코일건이었다.
“진정한 관대함이란 복수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
쓰러져 있는 그의 뒤에서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저가 없이 평화롭기만 한 목소리. 그의 동료들을 학살한 괴물이 내는 소리가 분명했다.
“나는 관대하지 않아.”
「그것」이 그를 우악스럽게 잡아들었다.
“이, 이, 러어….”
‘이러지 마! 살려 줘! 살려 줘! 제발! 내가 잘못했어!’
호프는 애원했지만 턱이 부러졌는지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만 났다. 그의 애원을 무시한 놈은 그를 둘러메고 항만 지구로 향해 걸어갔다.
지옥으로 끌려가는 호프의 뒤에는 불에 활활 타오르는 자동차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