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6
아파트 단지의 전투가 끝난 뒤 지성체의 고기는 자주 먹지 못했다.
몇 시간 전, 즉 어젯밤에 먹었던 여기자가 그나마 최근에 먹은 인간 고기였다.
그 반동인 걸까.
신체가 마비된 제이드, 전신의 뼈 대부분이 부러진 중화기병, 그리고 컬트의 시체까지.
오늘은 새로운 먹이가 많이 생겼다.
‘이것만 처리하면 사냥은 마무리되겠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제이드 일당들이 마운틴크롤러와 싸움을 벌였던 장소.
내 앞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져 있는 마운틴크롤러 새끼가 있었다.
나의 기생충에 지배당해 시간을 벌던 녀석은 적들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6개의 다리 중 3개는 잘리고, 2개는 부러졌다. 등갑에 비해 연약한 배는 저격과 유탄 공격에 의해 찢어져서 내장이 흘러나왔다.
마운틴크롤러에게는 치유 능력이 없다. 녀석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녀석에게는 딱히 악감정이 없지.’
나는 치명상을 입은 마운틴크롤러에게 독을 주입했다. 고통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전신을 마비시키는 독이 퍼지자 녀석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지 표정이 나아졌다.
녀석의 숨이 점차 잦아들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그리고 녀석의 귀 밖으로 기생충이 빠져나왔다.
내가 팔을 가까이 대자 기생충이 처음 자신이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생충이 보이면 누가 의심할지도 모르니까.’
샌더는 내가 병원 영안실까지 접근하기 어려워서 기생충을 수거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생충까지 무사히 회수한 나는 마운틴크롤러의 시체를 두고 다시 이동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시체를 먹어서 처리했겠지만 상황이 그다지 여유롭지 않다. 내 어깨 위에 있는 이 중화기병 때문에 경찰과 안드로이드가 진작 이곳으로 출동했을 테니까.
내가 아무리 빨리 먹는다고 해도 6m짜리 먹이를 경찰이 오기 전까지 처리할 수는 없다. 다 먹지 못하면 포식 효과도 발동되지 않으니 그럴 바에는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이 낫다.
‘밀수꾼이 마운틴크롤러를 빼내려다가 실패하고 도망친 것으로 하면 되니까.’
유탄에 맞아 치명상을 입은 녀석의 시체, 그리고 여기저기 남아 있는 전투의 흔적들이 그 증거 역할을 할 거다.
‘그래서 사이보그도 먹지 않았지.’
그가 맡을 역할은 동료들과 달리 미처 도망치지 못한 밀수꾼 역할이다. 나는 뽑아놨던 사이보그의 머리를 마운틴크롤러 시체의 입속에 넣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물론 경찰도 조사하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거다. 하지만 나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그들이 사건 현장에 또 다른 괴물이 존재했다고 생각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죽고 없는 밀수꾼들이나 찾으려 들겠지.
‘좋아. 그럼 챙길 것 챙기고 빨리 떠나자.’
보조기관이 경고한다. 항만 지구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고 말이다.
나는 마비된 중화기병을 다시 들었다. 다음으로 챙겨야할 것은 컬트의 시체다.
경찰과 안드로이드가 움직이는 쪽을 피해서 컬트의 시체를 먼저 수거한 뒤, 애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내가 오지 않는 동안 26호와 아드하이는 식사를 끝마친 뒤였다. 나는 머리 없는 미라가 된 저격수의 시체에서 강화복을 벗겼다.
‘들고 가서 한번 살펴봐야지.’
적의 무장 상태를 점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내가 모르는 정보라면 되도록 빨리 확인해야 한다.
‘유물급 강화복이 아니라면 양산 가능하니까 거기에 대비해야 해.’
강화복을 챙긴 나는 아직 마비가 풀리지 않은 제이드까지 집어 들었다.
‘역시 전투용 팔이 네 개나 되다 보니 이럴 때는 편하단 말이야.’
한 팔에 사람 하나씩 끼고 가면 되니까. 그런데 다른 애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사람 3명에 강화복까지 들고 있는 내가 무거워 보였는지 26호가 나를 불렀다.
「도와줄까?」
나는 괜찮다고 답하려다가 녀석의 덩치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강화복 정도는 들 수 있겠지?’
들고 있던 것을 건네주니 녀석이 촉수를 뽑아서 강화복을 휘감았다. 강화복을 스파게티 면발에 감긴 포크 모양으로 만들어서 단단히 고정시킨 녀석은 몸속에 숨겨놨던 지느러미도 꺼냈다.
녀석은 지느러미를 움직여 앞뒤로 몇 번 시험 삼아 걸어보고 문제없다는 듯 몸에서 빛을 깜빡였다.
「됐어. 가자.」
솔직히 전투적인 부분에서의 성장을 기대했는데, 유틸 부분도 만만치 않게 성장한 것 같다.
‘기특한 녀석.’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강화복을 떨어뜨릴 것 같아서 관뒀다. 녀석도 내 마음을 아는지 마음만 받겠다는 듯 몸을 빛냈다.
정리가 끝나고 둥지로 돌아가기 전, 나는 윌리엄을 불러 뒤처리를 지시했다.
마운틴크롤러의 시체와 밀수꾼의 흔적이 있으니 윌리엄이 상황을 조작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
또한 내가 알기로 윌리엄은 처음부터 항만 지구에서 일어나던 밀수꾼들을 쫓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새벽인데 이곳에 있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경찰은 없을 터.
“…알겠습니다.”
윌리엄에게 지시를 마친 나는 애들과 함께 둥지로 향했다.
그렇게 새벽의 사냥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적들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경찰들의 관심이 항만 지구 중심 쪽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지구 외곽 부분은 평소보다 경계가 소홀해진 상태였다.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지하로 진입할 수 있었다.
둥지에 도착한 나는 제이드와 중화기병을 내려놓았다. 유독가스 때문에 오래 있으면 죽겠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들이 가스에 질식하기 전, 우리에게 먹힐 테니까.
[즈즈즈 즈즈즈 즈즈(이 먹이는 네 것이야.)]
「어른」「감사」
나는 중화기병을 아드하이에게 넘겼다. 마비된 그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제이드를 바라봤지만 그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슬픈 눈으로 동료의 최후를 지켜볼 뿐.
“으, 으으! 으으!”
아드하이가 촉수더미를 펼쳐 그의 얼굴을 덮었다.
길고 얇은 촉수가닥의 끝에 있는 빨판이 중화기병의 머리 곳곳마다 달라붙었다. 그리고 빨판에 달린 작고 뾰족한 이빨들이 그의 피부 속으로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끄! 끄으윽! 끅!”
빨대로 음료를 빨아들이듯 촉수가 꿀렁꿀렁 움직이며 힘차게 피를 빨아들였다.
역시 새끼 갤러곤이라 그런지 이미 사람 하나를 먹고도 아직도 배가 덜 찼나 보다.
26호는 이미 배가 부른지 아드하이의 식사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녀석은 둥지 구석에 몸을 기대고 얌전히 잠을 청했다.
애들이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는 사이, 나는 컬트의 시체를 집어 들었다. 죽일 때 발톱으로 복부를 갈라서 죽였기 때문에 그녀의 시체에서는 내장이 흘러나온 상태였다.
‘평소라면 머리부터 먹지만….’
늘 똑같은 식사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컬트의 내장을 뜯어서 입안에 집어넣었다.
‘괜찮은데?’
인간의 고기에서는 말 그대로 육류의 맛이 강하게 났는데 컬트는 복잡하면서도 색다른 맛이 났다.
‘젤리 같기도 하고 곱창 느낌도 조금 나네? 특이한 식감이야.’
사이보그처럼 과일 특유의 신맛보다는 설탕의 단맛에 가까운 맛이었다. 식감은 인간보다 좀 더 부드러운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완전 물렁한 느낌은 아니었다.
‘다행이네. 컬트는 앞으로도 많이 먹어야 해서 걱정했는데.’
그녀가 특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만약 다른 컬트도 이런 맛이 난다면 기꺼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컬트의 시체를 남김없이 싹 먹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부러진 뿔 조각을 씹자 반투명 텍스트박스가 진화 조건 중 일부를 만족했다고 보고했다.
‘드디어 컬트 하나를 채웠네.’
포식 효과는 발동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진 소울링크 기술을 얻는다면 전술의 폭이 다양해졌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내가 컬트를 먹는 사이, 아드하이는 이미 식사를 끝마치고 자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26호와 같이 있으면 아드하이가 26호를 품에 안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26호가 커졌기 때문에 녀석이 아드하이를 보듬어 안고 자는 모양새가 됐다.
‘고생했어.’
잠들어 있는 녀석들을 한번 쳐다본 나는 마지막 먹이 앞에 섰다. 제이드는 마취가 살짝 풀렸는지 몸을 뒤집은 채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굳이 마취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를 잡아서 번쩍 들었다. 동료가 먹히는 것을 보고 오줌이라도 지렸는지 놈의 몸에서는 악취가 났다.
물론 나는 편식 따위는 하지 않기에 그의 머리를 깨물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기, 기다려…!”
막 그의 머리를 씹으려는 순간, 그가 크게 외쳤다.
“사, 사람 말을 하, 할 줄 아시죠?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습니다! 저, 저를 살려주신다면 당신에게 봉사하겠습니다!”
제이드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흠.’
이건 또 신선한 반응이다.
여태까지 내가 잡아먹으려고 한 상대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살려달라고만 하지 이렇게 협상을 제시한 대상은 처음이다.
‘어떻게 할까.’
나는 제이드를 든 상태로 그를 노예로 부렸을 때 얻는 이득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시현 유진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겠지만….’
그녀는 이미 죽어서 내 양분이 된 지 오래다. 시현이 죽지 않았다면 제이드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가 가진 정보는 쓸모가 없다.
‘노예로만 쓰는 것에는 어떤 메리트가 있지?’
입은 옷을 봤을 때, 딱히 이 도시에서 높은 직군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탈옥한 뒤 도시에 숨어있던 그가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윌리엄처럼 경찰이라든가 아니면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모를까. 제이드의 직업은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아.’
그리고 제이드는 내가 기생충으로 지배하기에는 위험한 자다.
시현 유진의 부하라면 굉장히 다양한 유전자와 그 유전자가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봤을 거다. 그렇다면 기생충 관련 유전자, 기생충의 지배를 피하는 방법 등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따져 본 나는 결정을 내렸다.
‘필요 없네.’
제이드는 내게 유용하지 않은 존재다. 그가 가진 가치는 오로지 살점뿐이다.
“자, 잠깐…!”
나는 마지막 외침을 무시하고 그대로 놈의 머리를 씹었다.
강화된 턱이 놈의 머리를 단숨에 으스러트렸다. 안에 있던 잔해들이 흘러나와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음.’
컬트와는 다른 의미에서 흥미로운 맛이었다. 이쪽은 뭔가 화학조미료를 듬뿍 친 것 같은 맛이었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닌데….’
좋은 재료로 요리를 했는데 재료가 각각 따로 노는 그런 맛이었다. 실력 없는 요리사가 온갖 귀한 재료를 넣고 만들다가 조미료를 듬뿍 쳐서 내놓은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도 못 먹을 수준은 아니네.’
컬트 쪽은 고기가 적어서 살짝 부족한 느낌이었다. 적당한 허기 덕분인지 나는 제이드의 고기도 말끔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전부 먹어 치운 순간.
「‘아성체->준성체’ 진화 조건 중 일부가 충족되었습니다.
변신 가능 지성체 2/20(미달성), 인간형 지성체 14/20(미달성), 사이킥 파워 사용 지성체 1/20(미달성)」
「포식 효과 발동! ‘금속 흡수’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메탈릭 그렘린’의 생물 특성 중 ‘금속 흡수’를 탈취.」
「‘금속 흡수’을 적용하시겠습니까?」
반투명 텍스트창이 떴다.
‘메탈릭 그렘린이라고?’
분명 내가 먹었던 제이드는 인간이다. 메탈릭 그렘린은 인간에 비하면 훨씬 흉측하게 생겼고, 크기도 작다.
인간형 지성체로 카운트된 것을 보면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제이드도 시현 유진처럼 유전자 개조를 마친 존재다.
‘어째 맛이 이상하더니.’
완벽 그 자체였던 시현 유진과 달리 제이드의 맛은 영 이상했는데, 사실 적절하지 못한 유전자 개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긴 메탈릭 그렘린의 유전자를 이식한 거였으면 나랑은 극상성이지.’
메탈릭 그렘린은 금속을 뜯어먹거나 전자기기 마비 혹은 장비 효과 차단 등의 고유 능력을 지닌 종족이다. 덕분에 대(對) 사이보그, 안드로이드전(戰) 종결자지만, 전자 장비를 전혀 쓰지 않는 에이모프나 아웃스페이서한테는 굉장히 불리하다.
‘제이드가 운이 없었네.’
그의 능력은 테러를 목표로 한다면 굉장히 유용했겠지만, 하필 상대가 나였다는 것이 그의 불운이었다.
‘금속 흡수라.’
금속 흡수는 내가 금속이나 장비를 섭취할 시, 섭취한 대상이 갖는 속성과 효과 중 일부를 일정 시간 동안 외피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금속 흡수를 활성화한 상태에서 사이킥 파워에 저항력을 갖는 블랙실버를 섭취한다면 일시적으로 내 외피가 높은 초능력 저항력을 갖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매우 좋은 특성 같지만 안타깝게도 두 가지 단점이 있다.
일단 금속 흡수의 효과의 지속 시간이 짧다. 기본 10분, 육체 강화 타입의 효과를 받으면 20분으로 늘어나지만 길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한 번 써먹은 효과는 제한 시간이 끝난 뒤 자동으로 소멸된다. 만약 그 효과를 다시 누리고 싶다면 특성을 활성화한 뒤 동일한 금속을 재섭취해야 한다.
이러한 단점 때문에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제값을 하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단점이 크긴 하지만 현재 내게는 필요한 특성이야.’
원거리 무기에 취약한 내게 방어력을 올려주는 특성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할 정도다. 적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할 때 금속 흡수를 써서 방어력을 높이는 등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리고 금속 흡수는 육체 관련 특성으로 분류되지.’
현재 내가 가진 육체 관련 특성의 개수는 총 12개로 금속 흡수까지 얻으면 총 13개가 된다.
그 말은 즉, 초월 시스템을 써 볼 시간이 왔다는 것.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새로운 특성 적용을 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