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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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의 항만 지구.
평소라면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 대신 방위함대의 군인과 보안팀의 경찰들이 총출동해서 항만 지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에저튼 가문의 가주께서 원래 예정보다 일찍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총괄관리자님!”
도시의 지배자 라일라 쳄벌린은 위기관리팀장의 대답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저튼의 가주는 대중들에게 흑사자라 불리며 그 용맹함을 과시하고 있지만, 메가콥 상층부 사이에서는 취급이 약간 달랐다.
라일라는 화성의 귀족 덴버 에저튼을 이렇게 정의했다.
‘괴짜.’
일반적으로 노블캐피탈과 프라임캐피탈의 인간들은 아랫것들에 친절하지 않다. 아키라 유진처럼 아랫것들을 노예나 소유물로 여기거나 혹은 라일라처럼 지극히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프라임캐피탈은 에저튼 가문의 가주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이쪽만 고생이지.’
라일라는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짜증과 분노가 차오르고 있었다.
원래 덴버가 오기로 한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이틀 뒤, 즉 이사회 바로 전날이었다.
그런데도 라일라가 이렇게 일찍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한 이유는 덴버가 예정보다 일찍 도시에 오는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깜짝쇼를 즐기는 자니까.’
필경 도시의 대중들에게 특별함을 과시하기 위해 그런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오라고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인기 있는 손님을 푸대접한다면 시민들이 라일라에게 손가락질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담 쳄벌린은 그녀의 일 처리에 크게 실망할 것이 뻔했다.
‘…여우 같은 작자.’
한편에서 라일라가 울화를 억누르고 있을 때, 다른 쪽에서는 보안팀 소속 경찰들이 모여서 회의 중이었다.
“항만 지구 쪽 보안팀, 정리는 완료됐습니까?”
“젠장, 하필 밀수꾼들이 난리 친 와중에 온다고 해서 정말 고생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에 밀수꾼 추적에 공을 세운 윌리엄 씨, 정말 잘하셨습니다. 그쪽이 아니었다면 귀한 손님에게 추태를 보일 뻔했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흠흠, 아직 항만 지구 형사팀장으로 머물고 계시던데 조만간 좋은 소식이 갈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모두의 축하를 한 몸에 받는 윌리엄이었지만 그의 속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이 도시가 현재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는지 말이다.
‘…에저튼.’
과거 윌리엄은 군인이었다. 그가 활동했던 곳은 일반적인 위기관리팀이 아니라 지금 오고 있는 덴버 에저튼 직속의 비밀부대였다.
‘신형 헐크 뮤턴트를 시범 운용하는 곳이었지.’
헐크 뮤턴트를 개량하겠다는 말은 곧 유진 가문과 경쟁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었기에 덴버는 기밀 유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해당 부대에 소속된 자들은 모두 위장된 경력을 부여받았다. 윌리엄도 서류상으로는 에저튼 가문의 기함 내 위기관리팀에서 근무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다만 윌리엄이 봤을 때, 덴버는 나쁜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메가콥의 지배층답지 않게 좋은 자, 호인에 가까웠다. 공식적으로 덴버는 비밀 부대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부대에 소속된 사람들을 몰래 챙겨주거나 했다.
만약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윌리엄과 동료들은 지금도 덴버에게 충성하며 그 밑에서 일했을 것이다.
‘그 빌어먹을 자식이 실험체와 작당만 안 했어도….’
비밀 부대에 있던 동료 중 한 명이 덴버를 배신했다. 그는 신형 헐크 뮤턴트의 프로토타입과 함께 부대를 탈출한 뒤, 그대로 잠적했다.
덴버나 윌리엄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해당 소식은 유진 가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밀 유지 때문에 부대는 해체되었고, 윌리엄과 동료들은 각자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전하께서 아직 나를 기억하신다면….’
그에게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이 도시를 위협하는 존재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윌리엄이 상념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지구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배가 들어온다는 신호였다.
신호에 맞춰 항만 지구 위 어두운 하늘이 잠시 일렁였다. 항만 지구에 설치된 이중 차폐문이 작동하면서 홀로그램에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이어서 하늘에 200m가 족히 넘는 크기의 균열이 생겼다. 거대한 차폐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군함이 그 위용을 뽐내며 등장했다.
신형 군함은 백색을 베이스로 황금색 장식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전장 700m에 전고 100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여서 지구 경계에서도 보일 지경이었다.
돔 형태의 천장에 달린 조명으로부터 쏟아지는 빛 덕분에 군함은 마치 고대의 신화 속에 나오는 영웅의 배를 연상시켰다.
“결국 5년 만에 신형이 나왔군.”
처음 보는 군함을 보며 라일라가 중얼거렸다.
느린 속도로 내려온 군함이 지구 위에 착지했다.
이어서 함선의 문이 열리고 중세 유럽의 기사처럼 은빛 갑옷으로 무장한 자들이 걸어 나왔다. 메가콥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에저튼의 은사자기사단이었다.
사실 저들이 입은 것은 실제 갑옷이 아니라 은색으로 도색한 상급 강화복이다. 중세라든가 전통과는 한참 떨어져 있지만 이미지를 중시하는 덴버의 지시 때문에 일부러 저렇게 꾸민 것이다.
‘허례허식하고는.’
라일라는 혀를 찼지만 적어도 일반인 관점에서는 덴버의 판단이 적잖은 호응을 얻는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지구에 있는 군인들과 경찰들 모두가 열망어린 눈빛으로 은사자기사단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배에서 내린 기사단원들이 가운데만 남기고 일렬로 섰다. 기사단원 중 맨 오른쪽 앞, 제일 두껍고 큰 갑옷을 입은 기사가 사자가 그려진 깃발을 높게 쳐들고 외쳤다.
“화성의 위대한 군주이자 에저튼의 흑사자 덴버 에저튼 전하 납십니다!”
그의 소개에 맞춰 덴버가 마지막으로 내렸다.
다른 기사들과 대조적으로 흑색을 베이스로 하고 금색 장식이 달린 갑옷을 입은 남자. 그가 바로 화성의 프라임캐피탈 덴버 에저튼이었다.
덴버는 내리면서 머리에 쓰고 있는 투구를 해제했다. 검은색 피부에 새하얀 이빨을 가진 남자가 웃으면서 손을 번쩍 쳐들었다.
일단 저쪽에 맞춰주기 위해 군인과 경찰들을 대기시켰던 라일라였기에 그녀는 옆에 있는 위기관리팀장에게 눈짓했다.
그가 서둘러 박수를 치자 항만 지구에 있던 군인과 경찰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덴버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군인과 경찰의 환호에 응답했다. 그는 환호를 즐기며 느긋하게 정렬한 기사단원 사이를 통과했다.
그리고 마침내 메가콥 내 정점에 있는 자들이 서로를 마주했다.
짧은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라일라였다.
“사담 쳄벌린의 딸 라일라 쳄벌린이 프라임캐피탈 에저튼 가문의 가주 덴버 에저튼 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얼마 전까지 꼬맹이던 아가씨가 이렇게 멋진 레이디가 될 줄이야.”
“감사합니다. 다만 지금은 총괄관리자라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덴버 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는 그녀를 보며 덴버가 피식 웃었다. 그는 주변을 다시 훑어보고 감탄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거 원. 나도 보안에 나름 신경을 썼는데 말이지. 사담이 기뻐하겠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기자들에게 적당히 시간을 주라고. 그러라고 프로토타입 전함을 가져온 거니까.”
“이미 지구 밖에서 기자들이 기다리는 중입니다.”
“오오, 그런가? 대단하군!”
덴버는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평한 모습에 라일라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메가콥 내에 노블캐피탈과 프라임캐피탈은 합쳐서 7대 가문, 7대 귀족이라 불리지만 사실 두 계급 간의 격차는 제법 큰 편이었다.
CEO 출마 자격은 오로지 노블캐피탈에게만 허용되고, 프라임캐피탈은 가문 내 장로들과 가주에게만 투표권이 부여될 뿐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킹 메이커 또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것은 분명하기에 프라임캐피탈도 그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라일라의 눈앞에서 호탕하게 웃고 있는 덴버 에저튼처럼 말이다.
덴버는 약속보다 일찍 온 주제에 신형 군함의 홍보 타령을 하며 무례하게 굴지만 그것은 대외적인 쇼에 불과하다. 실제 그의 의도는 이사회 준비를 맡은 라일라를 시험하는데 있다.
과연 그녀, 그녀의 가문 티앤씨가 차기 CEO의 자격이 있는지, 그녀가 에저튼 가문에서 배팅할만한 패가 맞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하하, 빈틈이 없는 것은 여전하군.”
그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덴버는 크게 웃었다. 1차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라일라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뒷일은 다른 분들께 맡기시고 저와 함께 행정 지구로 가시지요. 신형 전함에 관해서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기껏 왔는데 그냥 가면 섭섭하지. 여기 계신 분들과 인사나 좀 나누고 싶은데.”
“…기다리겠습니다.”
어차피 말려 봐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 뻔했기에 라일라는 제지하지 않았다. 덴버는 웃으면서 군인과 경찰에게 다가 갔다.
메가콥 대중들에게 스타로 인식되는 덴버인 만큼 군인과 경찰 중 사인을 요청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분위기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덴버의 눈에 익숙한 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아니, 자네? 윌…아니지. NH01 아닌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덴버가 과거의 코드네임을 거론하며 아는 척을 하자 윌리엄이 고개를 숙였다. 덴버는 반갑다는 의미로 그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뭔가 이상한지 표정을 찌푸렸다.
“자네 원래 몸이 이랬나? 원래 이 정도로 마르지는 않았는데?”
“…….”
걱정하는 덴버의 태도를 봤을 때, 그는 옛 부하였던 윌리엄에 대해 여전히 호감을 갖고 있었다.
‘전하라면 내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지.’
윌리엄은 결심했다.
“…부탁드립니다. 전하.”
“응?”
그 말을 끝으로 윌리엄은 레이저 피스톨을 빼 들어 자기 배를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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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라.’
내 기억에 우주도시에는 중상자를 치료할 수 있는 대형 병원이 총 세 개 존재한다. 행정 지구에 하나가 있고 나머지는 전부 상업 지구에 있다.
‘행정 지구의 병원은 서드캐피탈 이상만 이용 가능하니까 윌리엄은 못 가.’
기생충이 보내는 신호는 상업 지구 쪽에서 오고 있다. 마침 병원과 역이 가까우니 지하철 선로를 통해 가는 것이 좋겠다.
‘루트는 됐고. 문제는 지금이 초저녁이라는 건데.’
상업 지구다 보니 아직 거리에 쇼핑하는 사람이 많이 남아 있다.
병원과 역이 가깝다는 것은 희소식이지만, 퇴근에 가까운 시점이라 역내에 사람이 많다.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지만 그렇다고 도시와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다. 게다가 역에 있는 사람을 무더기로 죽였다간 둥지가 발각될 수도 있고.
‘그래도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기생충이 보낸 파장에 의하면 현재 윌리엄은 심각한 자해로 인한 혼수상태에 있다. 그렇다면 의료진도 그를 살려놓는 작업부터 먼저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살리는 것이 우선이니까 기생충부터 끄집어낼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기생충이 발견되는건 피하기 어렵겠지.’
중상을 입은 채 병원에 입원한 이상, 요행을 바랄 수 없는 노릇이다.
‘기생충이 계속 보고하고 있으니 밤까지 기다려보자.’
기다리는 동안 병원을 어떻게 공략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윌리엄이 간 병원은 예전 아파트 단지 전투 후 입원했던 병원이다.
당시 나는 병원에 접근하지 않고, 대신 기생충에게 감염된 무장경찰을 보내 그를 빼왔다.
‘메가콥 병원에는 안드로이드가 많으니까.’
메가콥에서는 크게 다친 환자나 유전자 개량이 필요한 환자, 프라임캐피탈 이상의 환자는 유전자 개조 의사가 치료를 전담한다. 그 이외에 의사가 일반 환자를 담당하는 일은 함선에 승선했을 때 말고는 없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메디컬캡슐로 치료하기 때문에 의사와 같은 고급인력 대신 안드로이드가 맡는다.
‘전투형이 아니니까 싸우는 것 자체는 쉽겠지만….’
의료용 안드로이드는 다른 의미에서 골치 아픈 상대다.
‘모두 호출 벨을 달고 다니지.’
의료용 호출 벨이 울리면 병원의 중앙AI에게 바로 전달되고, AI의 판단에 의해 적절한 조치가 취해진다. 내가 공격했을 때 안드로이드가 벨을 울린다면 바로 경찰과 군인이 나를 잡으러 출동할 거다.
이런 난점 때문에 게임에서도 병원은 공략하기 어려운 곳 중 하나다. 잠입에 도가 튼 나도 병원은 그다지 공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EMP특성이나 은폐 특성이 없으면 들어가기가…아.’
은폐라고 하니 괜찮은 수단이 떠올랐다.
항만 지구의 저격수로부터 획득했던 상급 강화복.
해당 강화복에는 은폐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강화복을 작동시킨 다음 내가 먹으면 은폐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까?’
가볍게 개조하느라 합성섬유제가 베이스지만, 그 위 은폐를 구현화하기 위한 특수 금속도 섞었기에 내 특성의 적용 대상이다.
‘금속 흡수의 지속 시간은 20분 이상이야.’
원래는 20분이어야 하지만 현재 내 몸은 완전한 유기체 특성으로 한층 더 강화된 상태. 금속 흡수도 적용대상이니까 아마 20분에서 30분 사이 정도로 여유가 있다고 봐야겠지.
다만 30분이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병원 내 감시망이 촘촘한 만큼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나다.
‘윌리엄을 빨리 처리하려면 병원의 구조를 알고 들어가야 해.’
다행히 나에게는 직접 병원을 가지 않고도 구조에 대해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나는 애들과 함께 상업 지구의 둥지로 돌아왔다.
[즈즈즈 즈즈즈(건드리지 말아줘)]
「둥지하려고?」
[즈(응)]
「작은애기야. 방해하면 안 돼.」
「?」
전에 우주선에서 내가 하는 것을 본 적 있는 26호는 바로 납득했다. 녀석은 아드하이를 데리고 멀찍이 떨어졌다.
‘딱히 거리까지 벌릴 필요는 없는데.’
배려해 주는 거니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둥지 위에 편하게 엎드린 다음 턱을 바닥에 붙였다. 내 보조기관도 둥지의 끈적거리는 표면에 닿았다.
언제나 그렇듯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다가 갑자기 구멍에 빨려 들어가듯 아래쪽으로 확 쏠렸다.
여러 번 해봤기에 이제는 익숙한, 링크 당시의 감각이다.
‘병원을 찾아.’
보조기관이 내 명령을 받아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발소리, 가게에서 영업하는 사람들의 소리, 길거리에서의 잡담 소리. 가장 먼저 잡히는 감각들은 도시가 만들어 내는 소리였다.
뒤처질세라 바짝 쫓아오는 감각은 후각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식당에서 나는 음식의 냄새, 땀에 흠뻑 젖은 직장인들의 옷 냄새, 아직 정화가 되지 않은 오염된 공기의 냄새 등.
어찌 보면 상업 지구야말로 이 도시의 정수일지도 모르겠다.
감각의 홍수 속에서 나는 병원 특유의 냄새, 흔히 방부제나 소독약 안에 들어가는 크레졸 냄새를 골라냈다.
‘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8층짜리 병원.’
그중 윌리엄의 위치는 3층의 수술실이다.
3층 전체에 소독약 냄새 속에 짙은 피 냄새, 그리고 인간의 냄새가 섞여 있는 것을 보니 3층 내에 수술실과 중환자실이 함께 위치한 것이 확실했다. 수술이 끝나면 근처의 중환자실에 들어가 회복을 취하도록 하는 구조겠지.
‘3층에서 다 해결되겠네.’
이외에도 나는 병원 내부에 서버실과 중앙AI컴퓨터가 있을 만한 곳도 샅샅이 뒤졌다. 전기 신호가 가장 많이 감지되는 곳은 지하 2층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됐어.’
마지막으로 병원의 전반적인 구조까지 파악한 나는 링크를 해제했다.
병원에 들어갈 준비는 끝났다. 이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오늘이 지나기 전, 윌리엄은 내 손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