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1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는 수천 가지 이상의 특성들이 존재한다.
개중에는 전황을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강력한 특성도 있고, 이런 것이 어떻게 심의를 통과했는지 의문이 드는 특성도 있다.
온갖 효과를 가진 특성이 널려 있는 만큼 신체 변형 같은 특성도 당연히 빠지지 않고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전에 잡아먹었던 볼프.
그들은 우주시대의 늑대인간 같은 존재로 각각 짧은 시간 동안 야수의 형태로 변신하는 고유 능력을 갖는다. 볼프로 플레이하면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된다.
더 나은 존재, 진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에이모프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현재 내 몸의 변화가 볼프의 변신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원래도 괴물의 육체였지만 새롭게 변한 내 모습은 괴물이라기보다는 괴수(怪獸)에 가까웠다.
머리를 덮고 있는 외피가 급속도로 성장해서 내 눈을 가릴 정도가 되었고, 뿔은 창처럼 길고 거대해졌다.
기존 3m 높이의 몸은 훨씬 더 커져서 방 안에서 서 있는 것이 불가능했다.
완전한 유기체 효과 덕분에 근육이 붙어 굵어진 전투용 팔은 그 이상으로 강화되었고, 형태도 달라졌다. 손목 부분에 덮여 있던 외피만 불균형하게 자라나서 마치 작은 방패를 착용한 모양새가 되었다. 방패처럼 자란 외피의 겉면에는 작은 가시들도 달려 있어서 단순히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데만 쓰는 게 아니라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왼쪽 아래팔의 가시뼈 발사 기관도 크게 변했는데, 전에 장총 형태였던 것이 이제는 박격포에 가까워졌다.
‘게다가 총구가 3개잖아?’
즉 3발을 동시에 쏘거나, 아니면 연달아 쏠 수 있게 되었다는 뜻. 덕분에 원거리 화력이 부족할 일은 없어졌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적인데 가장 큰 변화는 내 등에서 이루어졌다.
‘팔이 늘어났어?’
등에 팔 2개가 더 추가되었다.
관절 부위는 내 다른 팔과 다르게 4개나 되었고, 팔 끝에는 손 대신 초승달 모양의 길쭉한 뼈 칼날이 달렸다. 그야말로 오로지 전투와 살상을 목적으로 한 형태의 팔이었다.
‘날개가 금지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날개를 움직이는 감각과 거의 동일한 것을 보니 등의 팔은 날개를 대체하는 기관이 분명했다.
나는 등의 팔을 몇 번 휘둘러봤다. 팔 끝에 달린 뼈 칼날이 보통 예리한 것이 아닌지 휘두를 때마다 공기가 베이는 위협적인 소리가 났다.
확실히 사냥의 ‘표상(表象)’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변화였다.
‘거기다가 눈이 안 보이는데도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질 줄이야.’
시각이 완전히 상실되었지만 보조기관의 기능이 3배 이상 향상되어서 그런지 전혀 아쉽지 않았다.
보조기관 덕분에 내 몸의 변화뿐만 아니라 이 건물 전체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 외형까지 전부 읽어낼 수 있었다. 심지어 강화복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 4명의 심장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강력한 특성에는 대가가 있는데 이 정도 변화라면 반동이 엄청날 거야.’
이 정도 변화를 동반하는 특성이라면 에너지 소모율이 미친 듯이 높을 거다. 자칫 잘못하면 효과가 끝나자마나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일단 나가서….’
“이쪽일세!”
그때 밖에 있던 기사 한 명이 내가 있는 방을 향해 플라즈마 볼터를 겨눴다. 볼터 안에 있는 플라즈마 연료가 에너지로 전환되고, 총구 밖으로 발사되었다.
순수한 파괴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플라즈마 에너지가 벽을 먼지로 만드는 것으로 모자라 내게 덤벼든다.
그리고….
“아닛?!”
기계음에 의해 변조된 목소리. 그 안에 있는 감정은 오로지 당혹감뿐이었다.
플라즈마 에너지를 정면에서 맞았는데도 내 외피는 살짝 그을린 것 말고 멀쩡했다.
‘괜찮은데?’
아예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 봐야 극히 미세한 통증에 불과했다. 약간 뜨거운 커피를 마실 때 혀가 살짝 아린 느낌 정도?
나는 외피에 묻은 그을음을 전투용 팔로 털어낸 뒤, 방에서 기어 나왔다.
덩치 때문에 허리를 필 수 없어서 나는 전투용 팔을 전부 바닥에 붙여서 반쯤 기는 형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복도가 나 하나로 꽉 찼다.
좀 전과 달리 거대해진 덩치에 적이 압도됐는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르르르」
“프, 플라즈마 볼터인데 통하지 않다니!”
“모두 물러나게!”
내가 으르렁거리자 적들이 급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거 상황이 꽤 재밌어졌다.
나는 꼬리에 힘을 주고 강하게 휘둘렀다.
꼬리가 복도 벽을 부수는 걸로 모자라 적들 중 맨 뒤에 있던 기사 한 명을 후려쳤다. 콘크리트 벽도 쉽게 파괴했던 강화복이 단숨에 찌그러졌다.
“컥!”
내 꼬리에 맞은 기사의 허리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꺾였다. 즉사해야 할 부상이지만 생명 유지 장치를 옵션으로 달았는지 그는 죽지 않았다.
“파이필드!”
“젠장, 이미 늦었네! 물러나서 재정비해야 해!”
“빌어먹을!”
나는 다른 기사들을 쫓는 대신 파이필드라 불린 부상당한 기사에게 다가갔다.
‘턱이 강화되었으니까 그대로 먹어도 문제없을 거야.’
금속 흡수 효과를 발동시킨 다음 먹으면 방어력이 배로 뛰겠지만, 둥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현재 지속 중인 은폐 기능은 남겨놔야 한다.
나는 전투형 팔로 기사를 붙잡았다.
그가 입고 있는 상급 강화복은 아머슈트에 가까운 물건. 그래서 키도 3m에 가까울 정도로 컸지만 내 덩치가 그보다 더 컸기 때문에 그는 날 올려다봐야만 했다.
“쿨럭, 우리, 은사자기사단이, 큭, 네놈을….”
기계음으로 변조 처리가 된 음성이었지만 기침 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피를 토했는지 그의 갑옷 안에서 혈향이 진동했다.
나는 잠깐 공격하는 것을 멈췄다.
그를 살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말 중 한 단어가 걸렸기 때문이다.
‘기사단이라.’
메가콥에서 기사단이라는 말을 쓸 세력은 에저튼 밖에 없다.
‘이곳에 가주가 왔구나.’
에저튼 가문으로 플레이하면 가주가 됐을 때 특전으로 가문의 기사단이라는 용병이 제공된다. 게임에서는 랜덤으로 이름이 정해지는데 이곳 현실에서는 은사자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나 보다.
‘하긴 이사회라고 했으니 메가콥 7대 가문이 모두 오겠지.’
아마 다른 가문에서 오는 자들도 이들처럼 호위병력을 다수 챙겨올 가능성이 높았다.
‘몇몇 가문의 호위병은 시스템상 고정이라 나도 알지만.’
에저튼에게 기사단이 있는 것처럼 몇몇 가문에는 무조건 제공되는 용병이 있다. 다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 부분은 내가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
어쨌든 더 이상 먹이에게 들을 내용은 없다. 나는 등의 팔로 그의 머리를 찍었다.
예리하고도 단단한 뼈 칼날이 상급 강화복의 바이저 헬멧을 뚫고 놈의 정수리에 박혔다. 칼날이 뽑히면서 피와 뇌수를 흩뿌리고, 강화복도 주인의 사망에 맞춰 작동을 정지했다.
파괴된 헬멧 안에는 젊고 잘생긴 백인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생전에는 제법 인기가 많았겠지만 현재 그는 정수리에 난 구멍에서 뇌수를 줄줄 흘리는 시체에 불과했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려 기사의 시체를 물었다. 커진 몸, 그리고 유연하게 벌어지는 턱으로 인해 나는 한 번에 그의 가슴팍까지 입에 넣을 수 있었다.
그 상태로 턱에 힘을 주자 상급 강화복이 맥없이 박살이 났다. 안에 있던 살점과 피, 내장이 갑옷 밖으로 삐져나오면서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건 달콤한 잼이 든 알사탕을 깨물어먹는 감각과 비슷했다.
‘이놈도 개조한 인간인가 보네.’
그 말은 맛이 아주 일품이라는 것.
쇳덩어리나 다름없는 강화복이 마이너스 요소였지만 재밌는 식감이라 생각하면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강화복을 입은 기사는 몇 분도 안 돼서 나의 양분이 되었다. 몸이 커져서 3m짜리 먹이도 금방 먹을 수 있었다.
다 먹으니 반투명 텍스트박스가 떠올랐지만 나는 무시했다.
‘지금은 아직 사냥 시간이야.’
사냥의 표상이 끝나기 전까지 도망다니는 양들을 부지런히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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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라일라 총괄관리자께서 전하를 위한 야회를 여신다고 합니다.”
“허, 그건 또 언제 준비했데?”
“알고 계시겠지만 그분은 저 유명한 사담 쳄벌린의 딸입니다. 이 정도 수완을 발휘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죠.”
“쯧, 사담이 복이 많은 양반이야.”
덴버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라일라 쳄벌린의 수완에 혀를 내둘렀다.
현재 그는 행정 지구의 초고층 건물 모뉴먼트 내에 위치한 최고급 객실에 머물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딱히 특별한 것이 없지만 방 안의 상태가 범상치 않았다.
객실 내의 모든 시설과 장식품들이 덴버의 집무실과 정확히 일치했다. 외형만 그런 게 아니라 가구의 재질, 연식까지 동일했다.
‘이렇게 자식 농사를 잘 지은 양반이니 걱정 안 해도 되겠군.’
대외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프라임캐피탈 에저튼과 노블캐피탈 티앤씨는 덴버가 가주가 됐을 때부터 밀약 관계에 있었다. 덴버가 비밀리에 추진하는 프로젝트, 신형 헐크 뮤턴트 개발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이 드는데 거기에 티앤씨가 돈을 대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돈을 받은 대가는 이사회에서 에저튼이 티앤씨의 사담 쳄벌린에게 투표하는 것. 라일라는 모르겠지만 덴버는 이미 사담과 얘기를 다 끝내놓고 여기에 온 것이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본 윌리엄도 다시 부를까 생각했는데 그런 일이 터질 줄이야.’
자기 앞에서 자결을 시도한 옛 부하를 보고 덴버는 꽤 놀랐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윌리엄은 자살을 생각할 사람이 아니었다.
‘부탁한다라….’
덴버는 윌리엄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곱씹었다.
옛 부하가 그에게 부탁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예전 1차 프로젝트가 불미스러운 일로 종료되었을 때, 덴버는 프로젝트 팀원들에게 적지 않은 보상금을 챙겨 줬다.
‘크래딧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텐데.’
설령 크래딧이 급하다고 해도 목숨보다 급하겠는가. 그가 자해한 것이 그런 하찮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 같지는 않았다.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리고 매우 시급한 사안.’
안타깝게도 덴버는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의 사정을 잘 모른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야 매우 자세히 알고 있지만, 일반 경찰이 목숨을 걸면서 도와달라고 하는 문제가 뭔지는 알기 어렵다.
‘윌리엄에 대한 정보를 모아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덴버는 부단장에게 물었다.
“자살을 시도한 자는 어떻게 됐지?”
“그자는 현재 상업 지구의 병원에 있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현재 회복 캡슐에 들어가 있다더군요.”
“음. 내 옛 친구니까 섭섭하지 않게 대해주라고.”
“은사자기사단원 4명을 붙여놨습니다. 전원 베테랑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단장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내 안심할 수 있지.”
그가 인정한 부단장답게 깔끔한 일 처리였다. 고개를 끄덕인 덴버는 추가로 부단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말이야. 최근 이 도시에서 일어난 치안 문제를 조사해서 내게 말해주게.”
“치안 문제 말입니까?”
“어. 궁금한 게 있다네.”
“알겠습니다. 내일까지 조사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이제 덴버도 야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 했기에 부단장은 밖으로 나왔다.
그는 환영식을 망친 일개 경찰을 덴버가 왜 신경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딱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덴버의 변덕스러운 지시는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은사자기사단이 그렇듯 그 또한 전하의 검일 뿐이다. 검은 휘두르는 자에게 의문을 갖지 않는 법이다.
자기 객실로 돌아온 부단장은 다른 기사를 불렀다. 덴버가 내린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단원들과 함께 조사하겠습니다.”
“부탁하네.”
부하들을 보낸 뒤, 부단장은 고급스럽게 장식된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이쪽도 한 번 더 체크해 봐야겠군.”
은사자기사단은 백전백승의 베테랑 전사들로 구성된 에저튼 최고의 특수 부대 중 하나다. 전원이 상급 강화복과 각종 흉악한 무기로 무장한 인간병기였기에 부단장도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평소 하던 대로 작전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한 번 검사하려는 것일 뿐.
하지만 오늘 작전은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아악!」
「젠장! 밀번이 당했다!」
「비커스 부단장님! 지원 바랍니다! 이미 파이필드, 밀번이 당해…지직」
통신기 너머에서는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