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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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피터! 찰리!”
은사자기사단의 비커스 부단장은 계속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불길한 잡음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피터가 그에게 남긴 통신.
피터는 동료인 밀번과 파이필드가 이미 당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피터와 찰리 둘 중에서 누구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는 단 하나의 사실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두 전멸했다는 것.
‘안 되겠어. 기사단원을 파견하고 전하께 보고해야 해.’
비커스는 급히 대기 중인 기사단원들을 소집했다.
덴버를 호위해야 할 병력과 치안 조사를 위해 파견한 단원들을 제외하고 그가 당장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의 수는 총 20명.
부단장에게 제공된 넓은 객실에 무장한 기사들이 속속히 들어왔다.
자유시간이기에 그들은 모두 투구를 해제하고 있었다.
적금발의 백인 여성, 흑발의 황인 남성, 스킨헤드의 흑인 남성 등 온갖 인종, 성별이 섞여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전원이 미남, 미녀에 일반 성인 남성의 1.5배는 될법한 거대한 키를 자랑한다는 점이었다.
은사자기사단은 덴버의 지시로 전원이 유전자 개량을 받았기에 출중한 미모와 키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세간에서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덴버답다고 평하지만 비커스는 진실을 알고 있다.
저들이 헐크 뮤턴트 프로젝트의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부단장님, 부르셨습니까.”
“음, 왔는가?”
맨 앞 스킨헤드의 흑인 남성이 비커스 앞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비커스는 상념에서 깨어나 그들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사태가 심각하네. 전하의 명을 받아 경찰을 지키러간 자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예?”
“병원에 찰리, 피터, 밀번, 파이필드를 파견했네. 5분 전 피터의 연락을 마지막으로 아무도 연락을 받지 않는 중일세.”
“…….”
은사자기사단의 무력이 어느 수준인지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 중 4명이 전사했다는 사실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바로 전하께 보고하겠네. 제이콥, 나를 대신해서 이들의 지휘를 부탁하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사회를 앞두고 이런 일이 터지다니.”
기사들을 병원으로 보낸 뒤, 비커스는 서둘러 야회장으로 향했다.
‘전하께서는 사담 쳄벌린이 CEO가 되는 것을 바라시는데 이런 일이 터지다니.’
비커스는 덴버의 최측근이기 때문에 그가 뭘 노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 도시에 오기 전 덴버는 미리 사담과 만나 어떻게 이사회를 진행시킬지 전부 논의했다. 논의 중에 사담은 딸 라일라에게 큰 기대를 품고 있음을 어필했고, 덴버도 사담의 의도를 읽었다.
라일라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덴버는 그녀에게 딱히 악감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여기 오기 전에 그녀를 돕기 위한 많은 준비를 했다.
준비가 모두 끝났으니 이제 이사회가 무사히 진행되는 일만 남았는데 이런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이다.
‘병원에서 누가 기사단원을 죽였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문제는….’
노블캐피탈의 영지에서 프라임캐피탈의 수행원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사담의 경쟁자들이 이런 좋은 떡밥을 그냥 넘길 리 없다. 여기서 그냥 적당히 넘어간다면 분명 말이 나온다.
티앤씨와 에저튼이 CEO 선출에 앞서 야합을 한다고 말이다.
CEO 투표 과정에서 당연히 온갖 음모와 밀약이 판을 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문제가 수면 위에 드러난 적은 없었다.
공식적으로 메가콥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CEO를 뽑는 조직이고, 그 과정에서 부정이 있으면 안 된다.
만약 이게 걸리면 사담은 CEO 후보에서 제외되는 것은 당연하고, 심하면 티앤씨 가문의 노블캐피탈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전하께서 강경하게 나오시는 것도 문제지.’
일부러 덴버가 티앤씨를 비판하는 척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에저튼 가문의 장로들 중에서 티앤씨와 에저튼의 야합을 모르는 자가 대다수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은 치안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티앤씨를 버리고 다른 후보를 택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티앤씨의 자금 지원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하리라.
‘이걸 어떻게 해야….’
거의 뛰다시피 가던 그의 앞 저 멀리 야회장의 문이 보였다. 문 앞에는 한 여성이 들어가기 위해 경비에게 검사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라일라의 비서. 비커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도 그와 같은 이유로 이곳에 온 것이리라.
‘레이디도 이 문제로?’
‘부단장님도 설마?’
둘은 눈빛만 교환했을 뿐이지만 서로 무슨 생각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밤 야회는 길어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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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귀찮게 했던 존재는 죽었다.
유능하다고 판단해서 살려 뒀는데 결과적으로 이득과 손해가 반반이 되었다.
‘현실인데도 목숨을 걸 줄이야. 향후에는 주의해야겠어.’
내가 인간의 의지를 지나치게 간과한 것일지도. 감염 강화 타입을 얻기 전까지는 조심해서 운용해야 할 것 같다.
‘중앙AI컴퓨터까지 파괴하고 나가자.’
남은 시간이 슬슬 아슬아슬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나는 둘로 쪼개진 그를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먼저 상체부터 맛을 봤다.
‘좀 더 일찍 먹을 걸 그랬나?’
나한테 시달려서 그런지 맛이 영 별로였다. 본래 괜찮은 품질의 고기였는데 냉장고에 잘못 보관해서 살짝 쉬어 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먹는 도중에 기생충이 자기는 먹지 말아 달라는 듯 급히 시체의 콧구멍으로 빠져나왔다. 녀석은 내 팔을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다리 하나 남았을 때 나는 메인컴퓨터가 위치한 서버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먹던 다리를 내려놓고 머리의 뿔로 문을 들이받았다.
10cm의 두께를 가진 합금 문도 에이모프의 괴력 앞에서는 무력했다. 내 침입을 감지한 중앙AI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경고! 경고! 확인되지 않는 생물이 접근했습니다!」
나는 꼬리를 휘둘러 천장 모서리에 달려 있는 스피커들을 파괴했다. 소란스러운 경고음이 사라지고 서버실 안에는 냉방 시설이 돌아가는 규칙적인 소음만 남았다.
‘먼저 냉방 담당 컴퓨터부터 부수고.’
서버실 안에는 수많은 컴퓨터들이 있었지만 나도 병원 공략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여기까지 오는 것이 어렵지 들어온 이상 그 뒤로는 쉽다.
나는 오른쪽 끝에 나열되어 있는 컴퓨터들을 등의 팔로 일일이 내리찍었다. 불똥이 튀고 컴퓨터마다 들어와 있던 붉은빛이 잦아들었다.
잠시 후 내부의 환풍기가 전부 정지되고 내부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내부에 있는 예민한 전자기기들이 사우나를 능가하는 내부 온도에 비명을 질러댔다.
‘이걸로 끝이 아니지.’
나는 있는 팔을 전부 활용해 차례차례 데이터서버장치들을 파괴했다.
전투형 팔로 컴퓨터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거나, 아니면 꼬리를 휘둘러 데이터 저장 장치를 회생 불가의 폐기물로 만들었다.
몸이 커진 덕분에 넓은 서버실에 있는 전자기기를 부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요한 기기들은 얼추 파괴했으니 남은 것들은 다른 수단으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나는 팔을 깨물어서 상처를 내고 산성비를 여기저기 뿌렸다.
완전한 유기체 덕분에 산성피의 효과가 크게 상승했는지 핏방울이 닿은 전자기기들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그러다가 부서진 컴퓨터 속 전선에서 쇼트가 났는지 불길이 확 치솟았다.
‘여긴 이 정도로 하고.’
이 정도 불길로는 이중으로 강화된 내 외피를 손상시킬 수 없다. 나는 불 속을 유유히 걸어서 서버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강화유리로 감싸져 있는 원통형 컴퓨터가 있었다. 저것이 중앙AI가 들어 있는 메인컴퓨터다. 검은색에 무광택 재질의 표면에 녹색 숫자가 쉴 새 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저 원통형 컴퓨터는 메가콥 특유의 디자인으로 함선 내 AI컴퓨터도 저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경고! 경고! 중앙AI에 손상 위협!」
AI는 죽고 싶지 않은지 전자음으로 마지막 경고를 날렸지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강화유리를 향해 가시뼈를 발사하자 유리 벽이 산산조각이 났다.
가시뼈는 유리 벽을 부수면서 메인컴퓨터도 꿰뚫었지만 안심할 수 없다. 완전히 파괴해야만 적들이 데이터를 수거할 수 없다.
‘예전에도 실수해서 한번 된통 당한 적이 있지.’
게임에서 우주도시의 병원에 있는 누구를 잡아먹어야 해서 잠시 잠입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준성체였고 타입도 6개나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한테도 걸리지 않고 적을 암살하는 일은 매우 쉬웠다.
다만 너무 쉬운 일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방심했고, 그 탓에 내가 특성을 사용하는 모습은 중앙AI에게 그대로 노출되었다.
나에게 살해당한 적대 클랜의 조직원은 중앙AI를 통해 손쉽게 내 정보를 손에 넣었다. 녀석들은 내가 병원에서 썼던 전략들을 커뮤니티에 퍼뜨리는 방식으로 내게 복수했다.
‘그때 이후로 완전히 새로운 전략을 짜느라 힘들었지.’
물론 나중에 그들에게 배로 갚아주긴 했지만 당시의 기억을 다시 재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산성피를 뿌려서 메인컴퓨터를 완전히 녹여 버렸다.
‘잘 마무리됐네.’
불이 활활 타오르는 서버실을 나온 나는 윌리엄의 남은 다리를 마저 먹어 치웠다.
또다시 포식 효과와 관련된 텍스트박스가 떴고, 나는 텍스트박스를 넘기려다 멈칫했다.
‘잠깐? 이거?’
나는 급히 텍스트박스를 확인했다.
「포식 효과 발동! ‘통찰’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인간’의 생물 특성 중 ‘통찰’을 탈취.」
「‘통찰’을 적용하시겠습니까?」
‘헐?’
통찰.
나도 아는 특성이다.
‘통찰’ 특성을 활성화한 상태에서 맨눈으로 생물 혹은 사물을 보면, 대상의 고유 특징, 보유 특성, 기술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전부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일제한 5회, 한 번에 알 수 있는 정보는 무작위로 정해진다.
예를 들어 강화복을 착용한 상대에게 통찰을 쓰면 강화복에 대한 정보가 나올 수도 있고, 아니면 착용한 사용자의 보유 특성이나 기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하루에 5번 이상 통찰을 사용하면 이후부터는 사용불가 판정이 뜬다.
‘윌리엄한테 뭐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이게 나오다니.’
어째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통찰을 보유하고 있다면 납득됐다. 본인에게 잠재된 특성 덕분에 그는 남보다 예리한 감을 가질 수 있었을 거다.
‘나의 약점에 대해 빠르게 파악한 것도 통찰 덕분이겠지.’
생각해 보면 윌리엄은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은 적이다. 시현 유진이나 헐크 뮤턴트처럼 전투력이 높은 것도 아니면서 본인의 감만으로 나의 약점을 노렀다.
기생충으로 그를 감염시켰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나를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그랬던 자가 이렇게 마지막에 선물을 줄고 갈 줄이야.’
과거에는 적이었지만 이쯤 되면 용서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통찰은 효과에서 보이듯이 플레이어들 간의 싸움, 즉 PK에서 유리한 특성이다. 플레이어와 싸우지 않는 내게 당장 필요한 특성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기뻐하는 이유는 단 하나.
‘통찰은 초능력 계열 특성이니까.’
통찰까지 포함하면 내가 보유한 초능력 계열 특성은 총 6개가 된다. 즉 초능력 강화 타입의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는 뜻이다.
기사와 환자를 먹어서 획득한 특성들은 아직 취소될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보류 중인데 지금 먹은 통찰은 다르다.
‘타입 획득 기회인데 놓칠 수 없지.’
나는 바로 통찰 습득을 수락했다.
특성이 적용되면서 눈의 구조가 변화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피곤할 때처럼 안구 안쪽이 뻑뻑한 느낌이 들고 눈살에 경련이 일어났다. 눈이 간질간질했지만 특성 적용에 의한 자연스러운 변화이기에 나는 가만히 있었다.
적용 부위가 넓지 않아서 그런지 변화는 금방 끝났다. 나는 통찰을 활성화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어라?’
습득했는데 변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물에 대한 정보가 무작위로 떠야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맞다. 나 지금 눈이 안 보이는 구나.’
통찰은 무조건 맨눈으로 확인해야 효과가 발휘되는 특성이다.
현재 나는 사냥의 표상 효과 때문에 눈이 가려진 상황. 당연히 아무것도 안 보일 수밖에.
‘어차피 중요한 것은 따로 있으니까 상관없어.’
통찰의 효과는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나는 그동안 기다려왔던 텍스트박스를 띄웠다.
「특성화 가능한 ‘타입’ 1개가 존재합니다.」
「‘초능력 강화 타입’을 해금하시겠습니까?」
첫 타입을 획득한 이후, 두 번째 타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