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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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덴버 님.”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야. 역시 티앤씨란 말이 절로 나오는군. 특히 메인 디쉬. 처음 먹어 본 요리던데.”
“지구산 돼지를 메인으로 한 오븐 구이랍니다. 지구와 가장 유사한 환경에서 순수 방목으로 키운 덕분에 풍부한 육질이 특징입니다.”
“허, 돼지는 모두 멸종한 거로 알고 있었는데?”
“제 휘하의 탐사대가 어렵게 구한 종자를 가문에서 양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몇 년 안에 새 브랜드로 시장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하하, 훌륭하군. 시장에 나오면 꼭 구입하고 싶을 정도야.”
티앤씨 가문은 노블캐피탈 중 식민지 개척의 일인자. 티앤씨의 힘은 곧 무수히 많은 식민지에서 나오는 자원이다.
이러한 조건 덕분에 티앤씨는 다른 가문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요리의 정치. 그것이 그들이 메가콥 상류층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이었다.
그들이 가진 식민행성만 수백 개가 넘는다. 이 말은 곧 온갖 환경을 가진 행성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식재료 시장은 티앤씨 가문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시피 했다.
물론 메가콥 내 식량 공급 비율을 보면 유전자 조작 식품을 생산하는 유진 가문이 훨씬 높다. 메가콥 권역 내에 있는 모든 저소득층의 식단을 책임지고 있는 유진이다 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다만 신선하고 진귀한 식재료를 적극 활용해 상류층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얻는 이익은 결코 적지 않았다.
실제로 그것은 사실이었다. 덴버도 야회의 요리를 먹고 나니 라일라가 다시 보일 정도였으니까.
‘내 입맛에 맞춰서 일부러 이 요리를 골랐어.’
객실, 그리고 요리. 모든 것이 덴버의 취향이다.
이 정도 정보력이면 이사회에서 큰 실수를 할 가능성은 낮다. 덴버는 안심하면서 크리스피한 돼지 껍데기를 포크로 집었다.
그가 막 입에 넣으려는 순간, 야회장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응?’
“무슨 일입니까?”
들어온 사람은 라일라의 비서와 비커스 부단장이었다. 둘은 반쯤 뛰다시피 해서 각자의 주인에게 다가 갔다.
“전하, 급보입니다.”
“급보?”
“윌리엄을 지키러 간 기사 4명에게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부단장의 말에 덴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4명이 모두 당했다고?’
은사자기사단은 에저튼의 기함에 주둔하며 함선 방위와 적 함선에 대한 강습전을 전담하는 부대다.
어느 함대든 기함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기함을 수호하는 은사자기사단의 역량 또한 에저튼 가문이 보유한 육상 병력 중에서 최고 수준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가문 내 최고의 특수 부대에 소속된 전사 4명을 전멸시킨 적이라면 절대 만만한 적이 아니다.
“…후속조치는?”
“이미 취했습니다. 남은 단원 20명을 파견했습니다. 지휘는 제이콥이 맡았습니다.”
“음. 밖에 파견나간 단원들도 즉시 복귀시키…응?”
비커스에게 침착하게 지시하던 덴버는 문득 말을 멈췄다.
식탁의 저편에 앉아 그와 마찬가지로 보고를 받고 있는 라일라의 얼굴이 이상했다. 항상 평정을 유지해왔던 그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비서의 긴급 보고를 전부 들은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평정을 유지한 채 덴버를 불렀다.
“덴버 님. 방금 은사자기사단이 병원에 난입해 시민들을 무참히 도륙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뭐?”
“보여드리겠습니다.”
라일라가 손짓하자 비서가 단말기 패드를 조종해 연회장의 벽에 홀로그램 화면을 띄웠다.
「데일리마스 현장리포터 사라입니다. 저는 지금 참상이 벌어진 현장, 상업지구 제2병원 앞에 나와 있습니다.」
비서가 띄운 화면에는 병원 앞에 서서 보도하는 기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설마?’
덴버가 비커스를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저곳은 윌리엄이 입원한 병원이었다.
그러는 사이, 기자가 새로운 인물을 데리고 나왔다. 상대는 환자복을 입은 남자였다.
「안쪽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일하다가 다쳐서 입원 중이었는데요. 밤에 담배 좀 피려고 나왔는데 아니 글쎄 웬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 4명이 들어오더니 병원을 박살 내는 거 아닙니까?」
「갑옷을 입은 사람 말씀이시죠?」
「그래요! 갑옷! 갑옷 입은 ‘삐-’ 새끼들이 뭐 총을 쏘는 건지 멀쩡하던 벽도 부서지고, ‘삐-’ 사람도 ‘삐-’지고 ‘삐--’ 아주 ‘삐-’나 ‘삐--’빡셌다니까요!」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이사회를 며칠 앞두고 있는 지금, ‘갑옷을 입은 자’들이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의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과연 이 도시의 관리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요? 더 자세한….」
도중에 라일라가 그만하면 됐다고 손짓했다. 홀로그램이 꺼지고 야회장에는 정적만이 남았다.
침묵은 라일라가 먼저 입을 열면서 깨졌다.
“덴버 님. 에저튼 가문의 식솔들이 이유 없이 저런 짓을 했을 리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다만 이 사안은 에저튼 가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 도시의 관리자입니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알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해주시지요.”
피를 보기 전에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털어놓으라는 말이었다.
야회 중 덴버가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기에 이제는 그녀도 덴버가 티앤씨에 우호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정중하게 협조를 요청한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이다.
‘문제는 이쪽도 모른다는 거지.’
애초에 윌리엄에게 얽힌 비밀 때문에 기사들을 파견했다. 윌리엄을 데려오라고 보낸 단원들이 전부 죽었으니 윌리엄도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진실을 아는 유일한 자가 죽었으니 현재 덴버의 입장은 빈말로라도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 자칫 잘못하면 이사회가 문제가 아니라 티앤씨와 에저튼 간에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아는 것부터 털어놔야겠군.’
한숨을 쉰 덴버는 그가 알고 있는 상황과 부하들에게 내린 명령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 말씀은 윌리엄이라 불린 경찰과 이 사태가 관련이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얼마 전 항만 지구에서 정체불명의 밀수 조직이 마운틴크롤러를 밀수하려가다 실패, 도주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과 관계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범인이 마운틴크롤러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하지. 부단장.”
“옙.”
“제이콥에게 연락해라. 상황을 파악해야 하니 카메라를 키라고.”
“알겠습니다.”
부단장은 통신기로 제이콥에게 연락한 뒤, 라일라의 비서가 했던 것처럼 단말기 패드를 조작했다.
「충성. 은사자기사단의 제이콥이 단장님을 뵙습니다.」
야회장의 대리석 벽에 잘생긴 흑인 남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어깨 갑주에는 비키니를 입은 여자의 그림이 작게 그려져 있었다.
“특수무역중심지의 총괄관리자가 보고 계신다. 카메라 동기화하고 상황 보고하도록.”
「넵. 동기화 완료. 지금 목표, 제2병원에 접근 중입니다.」
「2조 테네시, 동기화 완료. 후문 도착.」
「3조 페리스, 동기화 완료. 이상 없음.」
제이콥이 투구를 조작하자 투구에 붙어 있는 카메라와 비커스 부단장의 단말기가 연동되었다.
홀로그램을 통해 연기가 치솟는 병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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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는 후문으로 진입하고, 3조는 대기 중이라.’
은색 갑옷을 입은 자들이 민첩한 움직임으로 병원을 포위하고 있었다. 누가 엘리트 아니랄까 봐 이전에 만났던 적들과는 차원이 다른 몸놀림을 보여줬다.
만약 내가 병원에 있었다면 제법 고전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밖에 있지.’
지금 나는 병원을 이미 나와 근처에 있는 언론사 건물 위에서 적들을 관찰하고 있다. 턱의 보조기관은 쉬지 않고 적들의 움직임, 대화 내용 등의 정보들을 수집하는 중이다.
외형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기능 면에서는 훨씬 업그레이드된 보조기관은 적들이 통신기로 나누는 대화까지 감지해냈다.
저들이 일일이 말해 준 덕분에 나는 적들이 어디로 진입할지 어떻게 나를 공략하려 하는지 전부 알고 있다.
「1조 돌입!」
「2조 돌입!」
저들이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벽을 기어 아래로 내려갔다. 기자들이 특종감을 찾아 전부 병원 앞으로 튀어나갔기 때문에 건물 안에는 사람이 없다.
땅에 내려온 나는 역을 향해 달렸다.
내 발이 보도블럭에 박히면서 큰 소리가 났지만, 현재 이 주변은 경찰에 기자에 구급차, 소방차까지 와 있는 상황이라 매우 시끄러웠다. 내 발소리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1조. 건물 안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을 확인. 2조, 열 감지 대신 진동 감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도록.」
「2조. 전환 완료.」
「3조. 대기 중.」
내가 달리는 중에도 보조기관은 정보 수집을 멈추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정보들 중 병원에서 적들이 통신기로 대화하는 부분만 추출해서 내게 전달하고 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금속 흡수의 지속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지만, 사냥의 표상이 문제다. 제한 시간 10분 중 병원에서 쓴 시간이 얼추 8분 정도. 남은 시간은 많아봐야 2분이다.
‘효과가 해제되기 전까지 역에 있는 기사들을 최대한 많이 잡아먹어야 해.’
에저튼 기사단은 전원이 유전자 개조를 한 인간이다. 헐크 뮤턴트나 시현 유진처럼 막대한 양의 유전자가 들어가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일반 시민보다는 유용한 유전자가 많이 포함된 먹이다.
‘이왕 쓴 김에 뽕은 뽑아야지.’
적이 가진 것들을 있는 족족 전부 빨아먹어야 진정한 에이모프라고 할 수 있다.
사냥의 표상 덕분에 병원에서 역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은 극히 짧았다.
역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기사 6명이 보인다.
적들은 아직 내가 뛰어오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새로 얻은 원거리 공격 수단을 써먹기로 했다.
「가시털 발사 꼬리: 꼬리에 치명적인 가시털을 발사하는 기관이 생깁니다. 가시뼈 발사 기관을 대체합니다.
*추신: 고슴도치와 달리 에이모프는 딜레마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겠군요.」
지금 내 꼬리의 모습은 전과 많이 달라졌다. 꼬리 끝이 선인장 혹은 가시가 빽빽이 자란 호저를 연상시키는 긴 가시털로 덮여 있었다.
가시털 특성과 가시뼈 발사 기관이 융합해 새로운 특성을 얻은 덕분이었다.
‘가시뼈 발사 기관과 달리 이건 다발로 쏘지.’
전에 있던 게 저격총이라면 이건 기관총이라 할 수 있다. 관통력은 가시뼈보다 떨어지지만, 대신 상대의 몸에 박히면 상처 안으로 파고드는 특성이 있다. 거기다 신경독 효과까지 적용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다수의 적과 싸울 때 효과적인 무기라 할 수 있다.
가시뼈 발사 기관 특성이 사라졌으므로 왼쪽 아래팔이 다른 전투용 팔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아쉽지 않았다. 두 특성이 각각 장단점이 있으니까.
지금같이 여려 명을 동시에 제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가시털 발사 꼬리가 더 필요하다.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꼬리를 크게 털었다. 꼬리 끝에 촘촘히 나 있던 가시털이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1조. 경계 중인 3조는 보고 바란다.」
“여긴 3조. 딱히 보이는 적은…컥!”
손 한 뼘 길이의 가시털 수십 가닥이 기사들 몸에 박혔다. 적들이 화들짝 놀라며 나의 공격에 반응했다.
“적이다! 모두 반격 준…뭐야?”
“우, 움직이지 않잖아!”
“가시가 관절 부분에 박혔어!”
상급 강화복의 뛰어난 방어력 덕분에 가시털은 그들의 갑옷에 박힐 뿐 관통하지는 못했다. 대신 관절 부분에 박혀서 적들의 움직임을 제한할 뿐.
‘가시털은 꽤 단단하니까.’
물론 적들이 입은 상급 강화복의 위력을 생각하면 시간 벌이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아직 열 감지 시야에서 바꾸지 않았다고 했지?’
1, 2조는 화재가 난 건물에 진입하면서 감시 시스템을 다른 형식으로 바꿨지만 이들은 아니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렸다. 안쪽에 있는 발화기관이 맥동하고, 곧 내 목구멍을 타고 엄청난 양의 화염이 밖으로 쏟아졌다.
“아아악!”
“놈이 불을 쏜다!”
마그마게이터의 특성, 불의 숨결이 기사들에게 작렬했다. 역 앞에 깔린 불길로부터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며 역 내까지 침투했다.
“모두 시야를 전환하게!”
역시 베테랑답게 움직임과 시야가 모두 차단된 상태에서도 적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물론 적들이 준비를 갖추도록 기다려줄 내가 아니다.
나는 맨 앞에서 통신을 담당하고 있던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나의 전력이 들어간 돌진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 낸 기사는 비명도 못 지르고 온몸이 박살 나버렸다.
「여기는 1조. 3조 대답하라! 무슨 일인가?」
“여기는 릭스! 페리스가 당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나는 사지가 분해된 기사의 시체를 주워들어 바로 입 안에 넣었다.
그사이 감시 시스템을 전환한 다른 기사가 나에게 볼터를 겨눴다.
“억?!”
하지만 그의 의도대로 플라즈마탄이 나를 맞추는 일은 없었다.
내가 불길을 쏜 이유는 한 가지다.
적들의 시야를 차단하는 것.
여기서 말하는 적은 단순히 내 앞에 있는 기사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한 ‘적’에는 역 내에 설치된 카메라도 포함된다.
「큰애기야 우리가 왔어.」
지하에 있는 나의 친구들. 그들이 연기 속에 숨어 나를 돕고 있다.
“으, 그어어어, 거억!”
26호의 ‘속박’에 걸린 기사가 허공에 떠올랐다. 아이가 벌레를 잡아다가 팔다리를 떼어내는 것처럼 그의 몸에 달린 팔과 다리가 제멋대로 춤췄다.
“아악!”
“릭스!”
뼈가 이탈하는 소리에 이어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팔과 다리가 뚝 떨어졌다. 한순간에 오뚜기 꼴이 된 기사가 핏물 위로 철버덕 떨어졌다. 그는 잠시 몸을 떨다가 곧 얌전해졌다.
“여기는 3조! 우리는 공격받고 있다! 지원을 요…악!”
「도대체 무슨 일이야!」
「여기는 2조! 당장 지원가겠다!」
「젠장! 테네시! 그 자리에서 대기하도록!」
「하지만!」
통신기 너머로 혼란스러워하는 적들의 목소리, 순식간에 동료를 잃어서 공황에 빠진 기사들.
모두 익숙한 광경이다.
“후, 후퇴하라! 후퇴하…켁!”
기사 한 명이 도망치려고 뛰어가다가 목 부분에 구멍이 났다. 적의 약점을 정확히 노린 것은 아드하이였다.
「생물」「목」「약점」
연기 너머에서 아드하이가 나지막하게 파장을 흘렸다.
만약 기사가 상급 강화복에 내장된 사이킥 실드를 작동시켰다면 살았을 텐데. 전투 중에 등을 보인 그의 잘못이다.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싸우기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동료 중 절반을 잃은 기사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들의 주인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기사단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저 두려움에 떠는 양떼만 있을 뿐이다.
우두머리를 잃은 양떼가 늑대를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그저 애처롭게 우는 것.
양떼가 운다고 살려주는 늑대가 없는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다.
남은 기사 3명을 마저 처리한 나는 급히 시체 2구를 집어 들었다.
‘빨리빨리!’
나는 시체들을 잘라 입에다 쏟아부으면서 역 안으로 들어갔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먹을 거 다 챙기고 둥지로 가야 해)]
「여기서 안 먹고?」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시간이 없어. 들 수 있는 만큼 들고 따라와 줘)]
「나」「배고픔」
「알았어. 남은 건 내가 챙길게.」
26호는 내가 급하다는 것을 알고 얌전히 촉수를 뻗어 시체 2구를 집어 들었다. 아드하이도 한 구를 집으려고 했지만 무거워서 포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체 4구를 챙겨 들고 둥지로 돌아갔다.
사냥의 표상이 해제되기 직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적의 기사 중 한 명이 울분에 찬 고함을 지르는 것을.
나는 연기와 어둠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