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7
몸 주변에서 요동치는 물결을 느끼며 나는 깨어났다.
‘내가 얼마나 잤지?’
맨홀의 미세한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봤을 때 지금 시간은 낮인 것 같았다. 보조기관에 집중하니 땅 위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모프는 코가 없어서 다행이네.’
불행 중 다행인지 여기 있는 멤버 중 코가 달린 생물이 없다. 갤러곤은 코와 입 부분이 촉수로 대체됐고, 26호는 머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까.
나도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감각 기관을 대신하고 있고.
보조기관으로 맡는 후각 정보는 뭐라고 할까. 냄새의 성분들을 일일이 분석해서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여기에 흐르고 있는 구정물들 안에 암모니아 비율이 얼마나 되고 질산염 비중은 얼마나 차지하는지 등등.
‘…지저분한 생각은 관두자.’
고개를 털어서 되도 않는 생각을 떨쳐낸 나는 몸을 일으켰다.
가까운 곳에서 26호와 아드하이가 자는 것이 보인다. 아드하이는 26호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자고 있었고, 26호는 몸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수면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물에서 살던 녀석이니까.’
내가 보기에는 영락없이 구정물이지만 녀석에게는 오히려 편안한 곳으로 느껴지나보다.
녀석들을 깨우지 않고 나는 통로 안을 거닐었다.
‘하수관의 크기는 직경 6m 정도 되려나.’
몸을 일으켜도 머리 부분에 공간이 한참 남는 것을 보니 얼추 그 정도 될 거다. 사냥의 표상을 써도 아슬아슬하게 머리가 닿지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잠들기 전에 특성을 적용했는데 확인해 볼까?’
워낙 피곤해서 제대로 확인도 못하고 그냥 넘겼다. 나는 텍스트박스를 활성화했다.
「종족: 미확인 적대적 우주생물
상태: 아성체(초월 1단계)
목표: 생존하라(진화 2회 성공).
보유 특성
① 육체 관련(타입 적용 중): 날개(사용불가), 재생력(융합), 신경독샘(융합), 산성피, 의태 기관(융합)(사용불가), 흡혈 촉수(융합), 가시털 발사 꼬리(융합), 맹수의 발톱, 치악력, 금속 흡수, 완전한 유기체(유일), 불의 숨결, 지구력, 페로몬 강화
② 초능력 관련(타입 적용 중): 포식자 감각(융합), 괴물의 촉수(융합), 인간성, 투시, 초능력 내성, 통찰
③ 감염 관련: 기생 군체(융합), 우주 박테리아
타입: 육체 강화 타입, 초능력 강화 타입
*열람하지 않은 신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어라?’
텍스트박스를 확인하다 보니 새로 변한 특성이 눈에 띄었다.
‘흡혈 촉수라고? 내가 얻었던 것이 흡혈 특성이었나?’
비몽사몽 중에 부정적인 효과를 주는 특성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고 넘겼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결과다.
‘흡혈’ 특성은 게임에서 그리 드문 특성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다른 동물의 체액을 빨아먹는 생물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흡혈 특성은 덩치에 비례해 그 효과가 강해지는데.’
아드하이가 50cm 정도 되는 크기지만 성인 남성 한 명의 피를 10분 안에 전부 빨아먹을 수 있다.
촉수의 빨판이 작은 녀석조차 그 정도 속도다. 그보다 흡착 기관이 큰 나라면 더 빠르게 흡혈이 가능하겠지.
나는 흡혈 촉수를 팔에서 뽑아봤다. 위쪽 전투용 팔의 손바닥 구멍에서 붉은색으로 변한 촉수가 튀어나왔다.
전에는 톱날이 촉수 전반에 걸쳐 가지런히 나 있는 형태였는데 지금은 톱날 대신 문어의 다리처럼 안쪽 면에 빨판이 새로 생겼다.
빨판을 보면 안쪽에 칠성장어의 입처럼 가시이빨 같은 것들이 뾰족하게 돋아나 있었다.
‘빨판이 있으니 벽에 붙을 때 이용할 수 있지.’
게임을 할 때 흡혈 촉수를 흡혈하는데 쓰기보다는 다른 용도로 많이 사용했다.
시체에서 나오는 피를 전부 빨아먹어서 흔적을 지운다거나, 빨판 달린 촉수를 이용해 건물을 타고 다니는 용도로 주로 썼다.
‘일단 흡혈 촉수는 활용도가 높은 특성이니까 잘됐네. 그리고….’
웬일로 또 신규 메시지가 와 있다. 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초월’ 재료 목록: 의태 기관, 페로몬 강화, 투시, 환각(획득되지 않음)」
새로 도착한 메시지에는 신규 초월 특성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4개의 특성을 합쳐서 만드는 특성이라.’
완전한 유기체는 육체 관련 특성 중 3개를 초월 시스템으로 합쳐서 만든 유일 특성이다. 이번에 나온 것은 전과 달리 육체 계열 2개와 초능력 계열 2개를 섞어 만드는 특성 같다.
‘환각은 이곳에서 못 얻는데.’
환각 특성은 레드미스트 유전자 정수에서만 획득할 수 있다. 레드미스트는 고대 유적 행성과 밀림 행성에서만 서식하는 생물이라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있어도 당장은 못 만들겠지만.’
초능력 특성 2개를 획득하기 전까지는 환각을 얻어도 초월로 합칠 수 없다. 그랬다간 타입이 날아갈 테니까.
신규 초월에 대한 내용은 머리 한구석에 고이 모셔두도록 하자.
‘주변이나 좀 둘러볼까.’
우리가 있는 곳보다 더 안전한 곳이 있는지, 근처에 위험한 요소는 없는지 확인해야겠다.
그렇게 물살을 가르면서 이동하는데 내 보조기관에 뭔가가 잡혔다. 시커먼 물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흡혈 촉수를 휘둘러 물체를 붙잡고 끄집어냈다. 길쭉하고 새하얀 몸통을 가진 생물이 내 촉수에 붙들려 퍼덕거렸다.
‘시체메기네.’
시체메기는 하수도로 흘러들어온 크고 작은 부산물들을 먹어 치우는 청소부다.
메가콥의 하수도에는 단순히 구정물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메가콥 시민들의 가학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시설에서는 종종 ‘고용된 자’ 잔해나 부산물들을 몰래 하수도로 흘려보낸다.
그 부산물은 부피가 크기 때문에 하수처리장으로는 처리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징그러운 생물을 이용해 그것들을 작게 줄여줄 필요가 있다.
‘가끔 커뮤니티에 혐짤로 올라오는 녀석이었는데.’
일반인이 보면 진저리를 칠 정도로 징그럽게 생겼다.
물론 그렇다고 멀쩡한 유전자 정수를 안 먹고 버릴 생각은 없다. 나는 시체메기를 크게 베어 물었다.
솔직히 맛은 그저 그랬다. 식감은 퍼석거렸고, 흘러나온 육즙에서는 역한 느낌의 신맛이 났다. 하긴 하수도에 살며 시체나 파먹는 생물이 맛이 좋다면 오히려 이상할 거다.
‘영양 공급에 의의를 둬야겠네.’
한동안 이런 것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좀 그랬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또 먹다 보면 새로운 유전자 정수를 얻을지도 모르고.
‘시체메기는 감염 관련 특성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그걸 노려 봐야겠어.’
나는 메기를 입에 털어놓고 다시 움직였다.
-
“지하철에서 아무것도 발견된 것이 없다고?”
“크흠, 예, 옙. 전하!”
“부단장. 저 말이 사실인가?”
“단원들 말에 의하면 괴물이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비밀통로만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그건!”
병원에서의 참상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났다.
이사회까지 하루가 남은 상황인데 진척된 것은 전혀 없었다.
방금까지 덴버와 함께 보고받던 라일라는 새로 도착한 귀빈을 맞아 자리를 뜬 상황.
덕분에 지구총괄보안팀장은 보고 도중 경비원들에게 끌려 나가는 수모를 피할 수 있었다.
밀수 사건과 범죄자 실종, 경찰의 사망 등 요 며칠간 굵직한 문제들이 연달아 터졌지만 지구총괄보안팀장은 이를 전혀 보고하지 않았다. 이사회에 앞서 이런 일이 터졌다는 것을 라일라가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덴버가 관련 정보를 수집해 오지 않았다면 해당 사건들은 보안팀의 캐비닛 속에서 영영 묻혀 버렸으리라.
도시의 총괄관리자인 라일라는 내부자도 아닌 외부 인사로부터 치부를 들었다는 사실에 극도로 진노했다.
그녀는 돌아오면 보안팀에 소속된 관료들을 전원 교체할 것이라 선언하고 회의실을 떠났다.
덴버는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의 땀을 닦는 지구총괄보안팀장을 보며 혀를 찼다.
“지구총괄보안팀장.”
“넵!”
“자리를 보전하고 싶으면 말일세. 일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 자네들의 주인은 자비로운 사람이지만 마냥 참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 그렇습니다.”
“유흥 지구에서 봉사하고 싶다면야 내 말리지 않겠네만.”
“아, 아닙니다!”
보안팀장에게 경고한 덴버는 턱을 쓰다듬었다.
‘괴물은 지성이 있으니 우리가 수색하려는 것도 알았겠지.’
사람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비밀통로까지 이용하는 놈이다. 일반적인 짐승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흐음, 생각해 보자고. 놈이 사람의 머리를 가진 짐승이라면?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 같나?”
“헐크 뮤턴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녀석들은 멍청하잖나. 그보다 더 똑똑하다고 봐야지. 위기관리팀장, 뭐 떠오르는 생각은 없는가?”
덴버는 회의에 함께 참여하는 위기관리팀장에게 질문했다. 선이 굵은 강직한 인상의 황인 남성, 위기관리팀장이 잠깐 생각하더니 덴버의 질문에 답했다.
“역에서 빠져나갔다고 해도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은사자기사단이 제출한 정보를 토대로 추측해 보면 놈의 덩치는 작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
“그러니 지도와 놈의 동선을 비교해서 역 주변에 숨을 만한 곳이 있는지 다시 한번 검토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그럼 지도부터 한번 보지. 보안팀장, 부탁하네.”
“예, 옙!”
지구총괄보안팀장은 급히 단말기 패드를 조작해 도시의 지도 이미지를 회의실 벽에 띄웠다.
덴버는 유심히 지도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보게.”
“넵?”
“저 선로 옆에 있는 줄들은 다 뭐지?”
“아, 저건 하수도 통로를 표시한 것입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수도?”
덴버는 다시 위기관리팀장을 불렀다.
“직접 부하들과 나가서 수색을 지도했다고 들었는데. 역 주변에서 하수도와 가까운 곳이 있었나?”
“아무래도 하수도는 지하에 있는 시설이라 제가 보기는 어렵…아.”
“왜 그러지?”
“그러고 보니 몇몇 역 주변에는 맨홀 뚜껑이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맨홀?”
“그, 그건 제가 대답드릴 수 있습니다.”
“말해 보게.”
“맨홀 중 하수도로 연결된 곳은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위기관리팀장이 본 것은 하수도로 연결된 맨홀이 아닐지.”
“보안팀장의 말이 맞습니다.”
“흠.”
두 팀장의 말에 덴버는 눈을 빛냈다.
“부단장, 단원들한테 한번 물어봐. 화재가 났던 역 주변에 정사각형 맨홀이 있었는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놈이 하수도로 숨어들어갔다고 생각하시는지?”
“역과 가깝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네.”
“하지만 하수도 구조는 지하철 선로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놈을 찾기 전에 또다시 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침착하게 자기 의견을 내는 위기관리팀장과 질세라 덧붙이는 지구총괄보안팀장.
‘어떻게 한다?’
덴버는 이 도시의 시민들이 죽든 말든 큰 관심은 없었다. 수백, 수천 명의 시민이 죽더라도 그 괴물을 생포한다면 그에게 이득이었으니까.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얘기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그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그야말로 나락으로 갈 거다.
“그럼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떤가?”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가 직접 찾아다니는 것보다 놈을 끌어내는 방법을 써 보는 것이 어떤가?”
“유인 작전 말입니까. 허나 놈을 어떻게 끌어낼 생각이신지?”
“놈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거의 확실하지. 그렇다면 이쪽에서 먹이를 제공하면 되지 않겠나.”
“유흥 지구의 자원을 쓰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네. 하수도에 함정을 준비한 뒤 놈을 유인, 사살하는 것이지.”
괴물이 사람만큼 똑똑한 존재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놈은 인간이 아니다.
지능이 높은 것과 도시에 대한 정보를 세세하게 아는 것은 별개다. 놈이 이 도시에 거주하는 인간이 아닌 이상, 하수도에 먹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 가능성은 낮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먹이가 계속 들어온다면 놈도 의심을 풀 것이 분명하다.
덴버의 의견에 위기관리팀장은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적자원관리팀장에게 검토를 받아야겠지만 200명 정도는 무리 없이 받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네.”
“저, 그 부분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오, 좋아. 그 기세일세. 보안팀장.”
200명의 무고한 인명을 식인 괴물의 먹이로 준다는 정신 나간 계획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메가콥에 ‘고용’된 자는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행정상 자원으로 분류된다. 필요에 따라 도축하거나 폐사시킬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자원.
인적 자원 200명만으로 그 괴물을 붙잡는다면 여기 있는 모두에게 남는 장사다. 덴버는 괴물을 포획했으니 좋고, 두 팀장에게는 도시 안보의 불안 요소를 제거했으니 좋을 수밖에.
“아주 좋아. 그럼 부단장의 확인만 끝나면 바로 작전으로 들어가지.”
“알겠습니다.”
“보안팀장, 이번 작전만 성공적으로 끝나면 내가 총괄관리자에게 선처를 부탁하도록 하지.”
“저, 정말입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하, 작전이라 하기 뭐합니다만 그래도 군사를 운용하는 일이니 작전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해도 되겠는가?”
“군인 중 전하를 존경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정해주신다면 저희야 영광입니다.”
덴버는 잠깐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라일라가 그에게 말했다.
저 보이지 않는 악령 같은 존재가 무엇이냐고.
그 기억을 떠올린 덴버는 입을 열었다.
“이건 어떻겠나? 악령 사냥.”
“악령 사냥이라. 좋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악령, 저희가 퇴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호쾌하군! 하하하.”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다. 덴버는 진실로 기쁨에 차 웃음을 터뜨렸다.
‘놈은 내 것이다!’
가문의 숙원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다. 덴버는 웃으면서 남몰래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붙잡은 괴물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