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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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지구에 설치된 작전 캠프.
기사단과 방위군의 공동 작전 수행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시설이다.
그곳에서 덴버는 위기관리팀장의 작전 지휘를 참관 중이었다.
덴버가 비록 외부인이었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는 프라임캐피탈 에저튼의 가주이지만 동시에 여러 전쟁에 참여한 영웅이기도 했다. 군인의 성질을 잘 이해하는 그다 보니 방위군에게 거슬리는 행동은 최대한 피하고 있었다.
방위군도 그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며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작전 캠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라일라가 데려온 새로운 방문자 때문에 깨졌다.
“하하, 오랜만에 보는군. 덴버 님.”
“크흠, 웨이 자오.”
캠프에 새로 들어온 자는 머리카락을 푸른색으로 염색한 황인 남성이었다.
그의 이름은 웨이 자오.
화성의 지배권을 두고 에저튼 가문과 경쟁하는 프라임캐피탈 자오 가문의 수장이다.
덴버는 실내에 들어와서 태연하게 시가를 꺼내는 그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웬일이오?”
누구에게나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덴버지만, 자오 가문의 사람들에 한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두 가문이 화성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기 위해 다툰 기간만 벌써 수백 년째. 가문 간의 분쟁으로 피를 본 경험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본가가 있는 화성에서는 두 가문 간의 보이지 않는 암투가 한창이다.
그러니 둘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
적대감을 드러내는 덴버에게 웨이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니 뭐 재밌는 일이 있다고 들어서 말이오. 이래 봬도 나도 언론인 중 하나인데 새로운 사건이 생기면 취재를 해야 하지 않겠소?”
덴버는 웨이와 함께 온 라일라의 얼굴을 쳐다 봤다.
그녀 또한 표정이 서늘하기 이를 데 없었다. 딱 봐도 그녀가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요청한 것이 분명했다.
‘하필 이럴 때….’
자오 가문은 메가콥 내 최대 언론사 데일리마스의 소유주.
이사회를 앞두고 특수무역중심지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진작 전달되었을 거다.
“모든 것은 문제없이 통제되고 있소이다. 웨이. 이곳에 그쪽의 관심을 끌만한 일은 없을 것 같네만?”
“하하.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길. 나도 투표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오. 투표할 대상이 과연 적법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않겠소.”
“…….”
웨이 자오는 아키라 유진의 연임을 지지하고 있다.
덴버가 알기로 자오 가문에서는 아키라 유진을 지지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뉘어 있다.
즉 현재 웨이 입장에서는 아키라의 경쟁자 사담 쳄벌린이 얼마나 무능한지 밝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가문 내의 여론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을 테니까.
‘…비커스가 잘 해 주길 빌어야겠군.’
메가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황색언론의 수장이 이 자리에 있는데 여기서 일이 잘못되면?
사담과 덴버의 계획은 완전히 파탄이 나고, 다음 이사회를 기약해야 한다.
라일라의 경우는 아예 책임을 지고 총괄관리자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이건 내 문제니 덴버 님은 신경 끄시고. 흐음? 이봐, 저 카메라가 뭐지?”
덴버를 침묵시킨 웨이는 입에 시가를 문 채로 위기관리팀장에게 질문했다.
“작전 참여 중인 방위군 분대별 분대장의 개인 카메라입니다. 이곳에서도 수월하게 작전 진행 상황을 확인….”
위기관리팀장이 답을 하던 중, 캠프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지, 지진?!”
“모두 조심하십시오!”
안에 있는 컴퓨터와 장비들, 사람들까지 통째로 뒤흔들던 지진은 금방 끝났다.
하지만 자리에 있던 자들은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주에 떠 있는 인공구조물에서 지진이라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도시의 지배자인 라일라였다.
“당장 돔관리팀장에게 연락해서 운석 충돌 때문인지 확인하세요.”
“알겠습니다.”
비서가 급히 캠프 밖으로 뛰쳐나갔다.
혼자 넘어지는 바람에 체면을 구긴 웨이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일어났다.
“…식민지 개발로 명성이 높은 티앤씨라 들었는데. 평소에도 자주 이렇소?”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라일라 님, 웨이 둘 다 진정하시게. 이 진동은 바닥에서 온 것 같은데. 이보게, 위기관리팀장. 내려간 부대에게 확인 가능한가?”
덴버의 요청에 위기관리팀장이 통신병에게 눈짓을 했다. 병사는 서둘러 지하에 통신을 보냈다.
“여기는 작전본부. 아래는 무사한가?”
「방위군 1팀. 치직, 무사합, 치직, 니다. 부단장님과 기사단 측도 이상 없, 치직, 습니다.」
「치직, 방위, 치직, 군 2팀. 하수도가 무너져서, 치직, 일부 타박, 치직, 상 발생. 현재 부상 치료 중.」
「방위군 3팀. 캠프 주변과 지, 치지지직, 지반 붕괴 현상이 발, 치지직, 지하 쪽 인원, 치직, 연락 두절 상태입니다.」
“통신 상태가 불안정하군. 2팀에는 추가 지원을 보내고, 3팀은 다시 연락을 시도해 보라고 하도록.”
“옙. 여기는 작전본부….”
통신병이 위기관리팀장의 지휘사항을 전달하고 있을 때, 덴버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제법 당황했다.
‘3팀에서 지하로 내려간 자라면 테네시 밖에 없다.’
현재 덴버의 기사단은 지원군의 형태로 방위군의 작전에 참여하는 중이다.
팀 단위로 편제된 방위군에 맞춰 3개의 조로 나눠서 방위군 각 팀의 작전 수행을 지원하는 구조였다.
세 개의 조 모두 지상 위에 방위군과 함께 공동 캠프를 꾸렸고, 그중 1, 2조의 비커스와 제이콥은 지상에서 단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오직 복수심에 불타는 테네시만 지하에 직접 들어갔다. 미끼를 관리하는 역할을 자원하면서까지 말이다.
덴버는 잠깐 볼일이 있다고 하고 캠프를 나왔다.
주변에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비커스에게 통신을 보냈다.
「치직, 전하? 무슨 일입니까?」
“테네시를 확인해 봐라. 뭔가 이상하니.”
「현재 통, 치직, 신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치직,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덴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진으로 인한 하수도 붕괴는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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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제련 기술로 주조된 도시의 혈관.
온갖 오염 물질이 유입되어도 결코 변질되지 않는 금속 통로.
그 대단한 하수도가 현재 절단이 났다.
‘생각보다 너무 강력한데?’
사이킥 브레스는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통로 내부는 당연히 초토화되었고, 금속과 콘크리트로 채워져 있는 벽까지 뚫고 지나갔다.
타입 효과를 받다 보니 강해졌을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통로뿐만 아니라 주변 지반도 무너진 것 같은데.’
사이킥 브레스로 인해 지하가 강제로 텅텅 비게 되니까 위에 있는 지반(地盤)도 버틸 수 없다.
지반이 땅 아래로 꺼지고, 그 위에 있는 건물들도 같이 무너지는 연쇄 작용이 일어나면서 파괴의 규모가 훨씬 커진 것 같다.
아마 내가 있는 상업 지구 중 5분의 1 정도는 폐허가 됐을 터.
‘애들은 괜찮겠지?’
나는 26호에게 파장을 쐈다.
[즈즈즈 즈즈즈(그쪽은 괜찮아?)]
「큰애기야 방금 쿵쿵쿵 했어! 안 다쳤어?」
[즈즈 즈즈즈 즈즈(나는 괜찮아. 너는?)]
「작은애기가 쿵쿵쿵 미리 알려 줘서 피했어.」
다행이다.
녀석은 돌연변이이긴 하지만 엄연한 블루 갤러곤.
갤러곤은 사이킥 파워의 흐름에 민감하다.
사이킥 파워의 흐름을 느끼고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한다고 했겠지.
[즈즈즈 즈즈즈(일단 숨어 있어)]
「응.」
애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내가 있던 곳은 좁던 통로에서 넓은 공동으로 변했다.
지반이 무너진 덕분에 중간중간 위에서 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왔다.
‘문제가 좀 복잡해지겠는걸.’
내가 도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을 정도의 괴물이라는 것을 적이 알면 막무가내로 나올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함대 포격을 할 수도 있어.’
하수도에 병력을 투입해도 처리가 안 되면 남은 방법을 그것 말고 없으니까.
솔직히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되겠지만 혹시 모른다.
인간은 그렇게까지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니까.
‘남은 유전자 정수부터 먼저 챙기자.’
벌어지지 않은 일을 미리 고민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당장 해야할 일부터 처리하는 것이 훨씬 이롭다.
날 쫓아온 기사들 중 남은 자는 2명. 그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는 공동으로 변한 통로를 빠져나왔다.
‘하수도가 무너졌으니 저쪽도 지금 혼란스러운 상황이겠지. 기습하는 데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지만 뒤가 문제인데.’
생각하면서 걷고 있는데 반대편 통로로부터 오는 물결의 흐름이 느껴졌다.
내가 찾던 기사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일단 저쪽부터 처리하고.’
몸을 숨기기에는 여기에 물이 적어서 힘들다.
보라색 열선에 의해 구정물들이 증발하고, 여기저기 벽에 구멍이 생기는 바람에 주변의 수위(水位) 자체가 낮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굳이 숨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
보조기관으로 감지해 보니 한 명이 다른 하나를 부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기사의 마비가 안 풀려서 다른 한 명이 그녀를 부축하는 듯했다.
그 말은 적의 전력이 0.5명도 안 된다는 뜻. 몸을 사릴 필요는 없다.
나는 물결의 흐름이 저쪽에게 걸리지 않도록 벽에 붙어서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통로 너머에서 기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넥 조장님! 비커스 조장님! 젠장, 통신이 완전 먹통이야!”
“으, 으으….”
“이런! 캐서린, 괜찮아?”
“으으! 으!”
“뭐?”
여기사한테 신경 쓰느라 나를 보지 못한 기사.
여기사가 나를 먼저 보고 반응하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천장에서 그를 향해 뛰어내렸다. 내가 기사를 깔아뭉개고, 우리 셋은 하수도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익!”
기사가 재빨리 나와 싸우기 위해 블레이드 클로를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가 팔을 휘두르기에는 우리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 나는 전투용 팔로 그의 양팔을 붙잡은 뒤 입으로 그의 투구를 깨물었다.
“어, 어억?”
치악력으로 강화된 내 턱이 그의 투구를 으스러트렸다. 시야 부분의 바이저를 구성하는 강화유리가 깨져서 안쪽으로 쏟아졌다.
“악, 아악!”
투구가 우그러지며 머리 전체를 짓누르고, 깨진 유리 조각이 눈에 박히자 기사가 비명을 질렀다.
내게 붙잡혀서 대롱대롱 흔들리던 그의 다리는 잠시 후 얌전해졌다.
나는 기사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투구로부터 입을 뗐다.
그의 투구는 완전히 구겨져서 원래 크기에서 3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다.
“으! 으으으!”
옆에서 동료가 죽어 가는 꼴을 전부 지켜본 여기사가 신음을 내뱉었다.
들고 있는 시체를 바닥에 내던지려고 했는데, 순간 다른 기사에게서는 보지 못한 장비가 보였다.
‘플라즈마 런처네?’
기사는 등에 플라즈마 런처를 매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에서 런처를 풀어 손에 쥐었다.
‘아주 단단히 준비하고 오셨구먼?’
다른 것은 몰라도 런처는 위험하다.
사냥의 표상을 쓰더라도 머리에 두 발 이상 연달아 맞으면 위험할 정도로 화력이 강하니까.
‘방위군이라면 런처를 들고 있는 게 맞지만 기사단이 왜?’
방위함대 소속의 방위군이면 정규군이니까 당연히 플라즈마 런처도 보유하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소대 단위로 지급되는 제식 무기 중 하나였다.
반면 에저튼 기사단은 플라즈마 런처를 쓰지 않는다.
그들의 주력 무기는 플라즈마 볼터. 런처에 비하면 화력이 부족하지만, 대신 범용성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그건 게임 속 얘기고, 여긴 현실이니까 다를 수도 있다.
강화복을 착용하고 있으니 개인이 런처를 들고 쏘는 것도 가능할 테지.
‘이건 내가 써야겠다.’
나는 런처를 챙기고 여기사를 돌아봤다.
‘아까 말하는 것을 보니까 통신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던데.’
막대한 사이킥 파워는 전파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장기적인 것은 아니다. 대략 10분 정도면 복구된다.
‘그 전에 처리할 수 있는 만큼 처리하고 빠져나가야겠어.’
상업 지구의 지반이 무너지면서 폐건물들도 많이 생겼을 거다.
그곳 중 하나를 임시 아지트로 삼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다.
‘그럼 이 여기사는 어떻게 할까.’
통신 기능이 엉망이 된 상태면 그녀를 미끼로 써먹기도 애매하다.
‘그냥 애들한테 줘야겠다.’
앞으로 얼마나 더 굶어야 할 지 모른다.
시체메기로 겨우 배를 채운 애들을 생각하면 이쯤에서 맛 좋은 먹이를 주는 것이 좋겠지.
‘생각해 보면 기사는 거의 다 내가 다 먹었네.’
유전자 정수로 나 자신이 강해지는 것이 제1목표지만, 녀석들을 성장시키는 일도 필요하다.
‘기사들은 다 영양이 풍부했으니까.’
애들이 먹고 전보다 강해지면 내게 이득이다.
녀석들은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훌륭한 전투원들이니까.
나는 여기사를 두고 동료 기사부터 먹기 시작했다.
두꺼운 갑옷을 벗기고 안에 있는 탄탄한 근육들을 뜯어냈다.
살점들을 입 안에 넣고 씹자 섬세한 근섬유들이 만들어 내는 쫄깃한 식감이 느껴졌다.
‘이 사람은 돼지고기 맛이네?’
정확히 말하면 돼지고기 목살 맛이다.
보통 목살을 먹으면 맛은 진하지만 좀 텁텁한 느낌인데, 기사의 고기는 식감이 좋아서 오히려 목살보다 우위에 있었다.
‘스페이스 서바이벌에는 돼지가 없는데 신기하네.’
게임 설정상 지구는 7대 기업과 각국 정부의 핵전쟁으로 불모지가 됐다.
덕분에 돼지는 아예 멸종됐고, 닭은 멸종 위기종이라 프라임캐피탈 이상의 계급만 맛을 볼 수 있다.
‘치킨과 삼겹살이 사라진 비참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이지.’
나는 잡생각을 하며 빠르게 기사의 고기를 먹어 치웠다.
‘쩝. 벌써 다 먹었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기사의 손목.
익숙한 맛이어서 기분이 좋았는데 아쉽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
괜히 씹다 보면 미련만 남을 것 같아서 나는 손목을 한입에 꿀꺽 삼켰다.
손목이 목구멍을 통과한 순간.
「포식 효과 발동! ‘가사(假死)상태’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혼드 하이에나’의 생물 특성 중 ‘가사(假死)상태’를 탈취.」
「‘가사(假死)상태’를 적용하시겠습니까?」
‘오?’
오랜만에 맛 좋은 음식을 먹어서 그런 걸까.
안내를 위해 나타난 반투명 텍스트박스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반갑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