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76화 (77/400)

Ep.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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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 방위군, 그리고 괴물.

무너진 하수도의 폐허에서 세 존재들 간에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부팀장님!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후퇴해야…악!”

기사들이 플라즈마 볼터를 쏠 때마다 병사 한 명씩 죽어 나갔다. 이쪽도 플라즈마 런처로 대응사격하고 있었지만 여의찮았다.

런처는 충전 시간이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중거리를 두고 벌어지는 난전에서는 제성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애초에 괴물과 싸울 때 지원화기로 써먹기 위해 들고 온 런처다.

기사단과 싸운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기사단이 우리를 왜?’

위기관리부팀장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사단이 뭐가 아쉬워서 그들을 치는가?

하수도에 들어오기 전까지 분위기가 좋았고, 들어와서 수색을 진행할 때도 큰 문제가 없었다.

기사단의 부단장은 예의를 아는 인물이었고, 단원들도 규율이 잘 잡혀 있었다.

‘반란은 아니야. 위에서 내린 명령이 분명해.’

좀 전에 비커스 부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놈을 넘겨서는 안 된다고.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고 말이다.

‘괴물에게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부하들의 비명, 총탄과 플라즈마 에너지들이 허공을 가르는 전장 한가운데서도 부팀장의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괴물이 처음 사건을 일으킨 장소는 아파트 단지. 당시 무장경찰들과 싸우고 도주했지. 그 뒤로 놈이 간 곳이 항만 지구.’

그곳에서 괴물은 밀수꾼들을 죽이고 도망쳤다.

이를 밝혀낸 항만 지구의 경찰은 병원에 입원했고, 그다음에….

‘기사단이 그곳에 찾아갔지. 맙소사. 증거 인멸이었어!’

부팀장은 이제야 겨우 머리가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놈은 에저튼 가문에서 비밀리에 만든 생물 병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저튼 가문은 실험체의 모의 전투 장소로 이곳 특수무역중심지를 골랐다.

‘아마 시가전을 상정하고 만든 괴물이라 그런 거겠지.’

아파트 단지에서 무장경찰들을 전멸시켰으니 실험은 성공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다음 등장한 자들이 바로 밀수꾼들.

놈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 에저튼 가문이 몰래 고용한 자들이리라.

‘아마 괴물을 마취시킨 뒤 옮기려고 했겠지.’

그러나 그 작업은 실패했고, 이 광경은 항만 지구에서 밀수꾼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팀 경찰에게 발견되었다.

거기서 에저튼 가문은 옛 지인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기사단을 파견했다.

‘증인을 살려 두면 안 되니까.’

부팀장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 이렇게 거대한 모략과 음모가 벌어지고 있었다니.

마치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얘기 같지 않은가.

‘…총괄관리자께 보고해야 해.’

하지만 그러기에 현재 상황이 여의치 않다.

통신이 정상화될 때까지 버텨야지 그가 이 중요한 발견을 보고할 기회가 생긴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그의 부하들도 대부분 전사해서 얼마 남지 않았다.

런처를 담당하는 병사도 단 한 명만 생존해서 땅에 고정된 런처를 들고 계속 사격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명백히 불리한 상황.

어떻게 살아나갈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전혀 의외의 존재였다.

“부팀장님! 괴물이 기사단만 공격하고 있습니다!”

“뭐?”

“저기 보십시오!”

부팀장의 시선이 부하의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부하의 말이 사실이었다.

길쭉한 꼬리와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진 괴물이 기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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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지구로 가자.’

에저튼 군함도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현재 이곳은 이사회를 앞두고 상위 캐피탈의 정예 병력이 모이는 곳.

그들이 내 목숨을 노리기 전에 빠져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그런데도 행정 지구를 택한 이유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쪽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단 진화하려면 컬트를 잡아야 해.’

현재 나는 준성체로의 진화 조건 중 컬트 부분은 거의 채우지 못했다.

진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면 아무리 유전자 정수가 많아도 한계가 있다.

‘유전자 정수는 행정 지구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어.’

반면 에저튼의 군함에 컬트가 탑승했을지 아닐지는 현시점에서 알 수 없다.

나를 잡을 때 기사단에 컬트를 동원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컬트가 없을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겠지.

‘그리고 군함에 탑승하게 되면 애들을 데려갈 수가 없어.’

26호와 아드하이.

둘 다 나에게 이득이 된 경우는 있어도 손해를 입힌 적은 없다.

그들을 버리면서까지 군함에 탈 메리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아드하이의 경우는 계약도 했으니.’

나는 녀석을 살려주고 보호해주는 대신, 갤러곤의 둥지가 어디 있는지 안내받기로 약조했다.

여기서 헤어지면 내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

‘에저튼보다 티앤씨 쪽이 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하수도의 수색에서 에저튼과 티앤씨는 서로 협동 작전을 펼치고 있지만 사실 양자 간에 정보 격차가 제법 크다.

하수도에 들어온 이들의 무장을 봐도 알 수 있다.

에저튼은 나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무기들을 챙겨 왔다.

플라즈마 볼터와 블레이드 클로는 내 외피를 뚫을 수 있는 무기고, 근접전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어썰트팩도 장착했다.

‘게다가 추가로 런처도 들고 왔고.’

런처는 내 몸 중 가장 단단한 부위인 머리를 제외하고 다른 부위를 크게 손상시킬 수 있는 무기다.

이처럼 기사단은 나를 생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반면에 방위군은 아니지.’

그들도 런처를 들고 왔지만 이는 소대 단위의 지원 화기라 그런 거고, 그외에 다른 장비는 아파트 단지의 전투에서 무장경찰이 입던 장비와 큰 차이가 없다.

‘기사단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어.’

아마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그랬겠지.

아무튼 기사단의 정보 통제 덕분에 특수무역중심지의 수뇌부들이 나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적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특수무역중심지는 나를 위협 요소로 보는 것은 틀림없지만, 정작 내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는 모른다.

적들이 모르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법.

그러니 이곳 행정 지구에 몸을 숨기는 것이 내게 이득이다.

‘마음을 정했으니….’

이제 행동만 남았다.

나는 방위군을 공격하는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방금 병사 한 명을 블레이드 클로로 베어죽인 기사가 볼터를 들어 다른 병사를 조준하고 있다.

나는 뒤에서 그를 덮쳐 넘어트렸다.

“억?”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무방비하게 쓰러진 기사.

나는 전투용 팔로 그가 일어서지 못하도록 짓누른 다음, 입으로 그의 머리를 물었다.

“도, 도와…!”

기사가 물속에서 버둥거렸지만, 전투용 팔로 그가 일어나지 못하게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기에 그의 저항은 소용없었다.

나는 그의 머리를 투구째로 씹었다.

투구가 으스러지면서 그 사이로 기사의 뇌수와 튀어나왔다.

기사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것들을 빨아먹은 나는 시체를 두고 새로운 먹이에게 뛰어들었다.

“젠장! 놈을 잡아!”

후방에 있던 내가 갑자기 전방의 기사의 뒤통수를 치자 비커스가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나는 나를 포위하는 기사들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꼬리 끝에 솟아 있는 뾰족한 가시털들이 기사들을 향해 비산했다.

그들은 재빨리 사이킥 실드를 들었다.

사이킥 파워를 극도로 응집해 물리적 방어력을 얻은 실드가 나의 가시털을 무력화시켰다.

가시털을 막은 기사의 볼터가 내 머리로 향한다.

볼터가 막 발사되기 직전, 관통탄이 날아와 그의 머리를 꿰뚫었다.

“빌어먹을 방위군!”

비커스가 소리친 대로 방위군이 기사들을 향해 가우스 소총을 쏴대고 있었다.

물론 기사들만 쏘는 것은 아니고 나한테도 사격을 가하고 있지만.

“4명은 방위군을 맡고 나머지 인원은 괴물을 상대하라!”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나를 ‘죽일’ 자는 어디까지나 방위군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세 명 정도는 남아야 하고.

나는 전투용 팔 중 어깨 쪽 오른팔로부터 흡혈 촉수를 뽑아서 휘둘렀다.

붉은색 촉수가 4명의 기사 중 한 명의 머리를 강타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목이 부러진 기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감히!”

동료의 죽음에 기사 한 명이 고함치며 내게 볼터를 쏴 갈겼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들어서 볼터로부터 날아온 플라즈마탄을 막았다.

머리의 외피는 내 몸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다. 에너지탄과 충돌하면서 머리와 목 부분에 짜르르한 통증이 이어졌지만 아직 버틸 만하다.

‘그래도 두 번 이상 연속으로 맞으면 위험해.’

버틸 수 있다는 말이 맞아도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피격 면적을 낮추기 위해 기사들의 허리춤까지 오는 구정물 속에 바짝 엎드렸다.

전투용 팔 4개와 다리를 이용해 빠르게 움직이자 기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놈이 어디 갔지?”

수위가 낮아서 나의 등 부분이 수면으로 훤히 드러났다.

하지만 물 위에 무너진 잔해물이 둥둥 떠다니고 있어서 내 모습을 분간해내기는 쉽지 않을 거다.

“저쪽이다!

동료의 원한을 갚으려는 기사 한 명이 눈에 불을 켜고 뒤지다가 나를 발견했다.

그는 볼터를 내게 겨냥했다.

“이 빌어 처먹을 개새…!”

“이런 멍청한 놈! 피해!”

비커스가 기겁하며 그를 불렀지만 이미 늦었다.

방위군으로부터 날아온 플라즈마 빔이 볼터와 그의 팔을 한꺼번에 지워 버렸다.

“아악!”

나 하나 잡겠다고 방위군을 무시한 대가는 컸다. 갑옷과 함께 소멸된 팔을 붙잡으며 기사가 울부짖었다.

“저 얼간이를 당장 뒤로 빼도록!”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나는 팔이 떨어져 나가 공황에 빠진 기사에게 가시털을 날렸다.

신경독을 잔뜩 머금은 가시털이 정확히 팔이 절단된 부위에 박혔다.

비명을 지르던 기사가 축 늘어지니까 그를 부축하던 동료가 당혹스러워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돌진해서 머리의 뿔로 두 명을 동시에 꿰뚫었다.

“크, 크헉! 괴, 괴물 놈!”

배가 관통되었음에도 기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블레이드 클로를 휘둘러 내 머리를 덮은 외피의 일부를 잘라 냈다.

‘감각이 적은 외피라서 다행이네.’

괴물의 촉수 부분이 잘렸다면 꽤 많이 아팠을 거다.

‘쓸데없이 저항하긴.’

나는 뿔로 그를 매달고 있는 상태 그대로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배에 박힌 뿔이 내장을 헤집는 고통에 기사가 신음을 내뱉었다. 나의 정수리를 내려찍으려 했던 그의 팔은 힘을 잃고 쳐졌다.

“죽어라!”

다른 기사가 내 뒤를 노린다.

그가 쏜 플라즈마탄에 맞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자연스럽게 내 머리 뿔에 의해 꼬챙이가 된 기사가 나를 위한 고기 방패가 되었다.

가죽이 터지는 소리에 이어서 고기 타는 매캐한 냄새가 내 보조기관을 자극했다.

“아군 사격은 피하라! 아군 사격은…크악!”

“부단장님!”

악을 쓰면서 지휘하던 비커스가 관통탄을 맞고 어깨를 부여잡았다.

지휘관이 부상당한 모습에 기사들이 급격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나의 기습이 시작된 이후, 전황은 급격히 역전되었다.

“좋아! 부단장이 부상당한 지금이 기회다!”

방위군은 기세를 몰아 기사단을 압박하고 있었다.

전방에 서 있던 병사들은 나와 기사들이 있는 방향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해 화망을 만들었고, 후방에 있던 병사들은 부상자들을 이송하며 전열을 정비했다.

그에 반면 기사들은 나로 인해 전열이 완전히 붕괴했다.

방위군을 상대하던 자들은 나의 습격 및 방위군의 사격으로 인해 대부분 행동 불능이 되었고, 다른 기사들은 누구부터 쳐야할지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 상황에서 지휘관까지 부상당했으니 그들에게 불리한 전황은 가속화되었다.

“작전은 실패다! 모두 후퇴하라!”

결국 부하들에게 부축을 받던 비커스의 입에서 후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도망가도록 놔둘까 보냐.’

나 때문에 두 가문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해도 이사회 때문에 한동안은 협력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행정 지구로 간 뒤에 사냥을 다시 개시한다면 그들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일은 혹시 모르니까.’

불안 요소는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겠지.

나는 후퇴하는 그들을 덮쳐서 한 명, 한 명 줄여나갔다.

나뿐만 아니라 방위군도 이 자리에서 기사단을 전멸시키려고 결심했는지 도망치는 기사들의 뒤를 쳤다.

“부팀장님! 저 괴물은 어떻게 합니까?”

“관통탄으로는 소용없으니 런처를 발사하라!”

기사 한 명의 목을 따고 있는데 방위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슬 위장할 시간인가?’

나는 남은 기사들의 수를 확인했다.

도망치는 자들은 비커스를 포함해 총 6명.

방위군에는 아직 수십 명이 남아 있다. 내가 없어도 이들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터.

‘여기까지 하자.’

일부러 맞았다는 의심을 주면 안 되기에 나는 기사의 시체를 물고 마구 흔들었다.

마치 짐승이 먹이를 물고 과시하는 것처럼.

이를 기회라 생각한 방위군이 런처를 발사했다.

녹색 빛이 수면을 가르며 내게 날아온다.

이미 보조기관으로 적들의 공격이 어떻게 날아올지 파악하고 있던 나다.

나는 빔의 궤도에 맞춰 머리를 바로 세웠다.

함선의 외벽도 쉽게 뚫는 빔이 내 머리의 외피에 격돌한다.

‘큭!’

생각보다 강력한 힘에 나도 모르게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두터운 외피가 대부분의 힘을 흡수했지만, 미처 흡수하지 못한 충격이 내 몸에 퍼져나갔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내 목, 등, 다리의 외피가 터져 나가고 안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아직 버틸 수 있어.’

순식간에 전신이 피로 물들었지만 나에게는 재생력 특성이 있다. 머리의 뇌만 파괴되지 않는다면 이 정도 부상은 금방 치료된다.

‘가사상태 활성화.’

나는 빔을 맞아 쓰러지는 척하면서 ‘가사상태’ 특성을 활성화했다.

그 순간,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통제에서 벗어난 내 몸은 자기 마음대로 하수도 통로에 쓰러졌다.

언제나 의지가 됐던 턱 아래 보조기관은 감각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로 늘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느껴지는 감각이라고는 오싹할 정도의 추위뿐.

죽음.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정도로 현실감이 넘쳤다.

‘이런 느낌이구나. 근데 뭔가 익숙….’

왠지 모를 기시감은 흩어져가는 정신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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