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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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당일 오전.
티앤씨 가문 소유의 모뉴먼트에서는 초대형 이벤트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건물 전체가 바쁘게 뛰어다니는 가솔들의 발소리로 시끄러운 와중에 유일하게 정적에 잠긴 곳이 있었다.
모뉴먼트의 어느 회의실.
그곳에 이 도시의 지배자 라일라 쳄벌린과 그녀의 비서를 비롯한 측근들이 모여 있었다.
“에저튼 측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이 모든 사태는 비커스 부단장의 독단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독단이라고요?”
비서의 말에 라일라는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악령 사냥 작전에 투입되었던 방위군 생존자들의 카메라 기록과 위기관리부팀장의 보고 덕분에 그녀는 사태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생물 병기를 풀어놓은 자가 누구인지.
이를 입막음하기 위해 은사자기사단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전부 알게 되었다.
‘내 도시에서 감히!’
라일라는 이를 악물었다.
덴버가 겉으로 보이는 호탕한 이미지와 다르게 속은 능구렁이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이사회 개시보다 한참 전부터 그녀의 도시에서 개수작을 벌이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모든 게 다 오해라고? 뻔뻔한 작자!’
위기관리부팀장이 보고하던 자리에 덴버도 함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지만, 오랫동안 사람을 부리던 위치에 있던 라일라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읽어낼 수 있었다.
덴버는 모든 책임이 부단장에게 있다고 말했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기사단의 실권은 부단장이 쥐고 있지 자기는 그저 대외적인 이미지 때문에 단장 자리에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에저튼과 오래 교류한 티앤씨 가문의 딸에게 그런 변명이 먹힐 리가 없었다.
“부단장을 제외하고 유일한 생존자가 누구라고 했죠?”
“은사자기사단 소속 캐서린 님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됐나요?”
부단장을 제외한 유일한 생존자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폐허 속에서 발견되었다.
원래라면 당장 구속시켜야겠지만 부상 상태가 워낙 심각해서 행정 지구의 중앙병원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캐서린 님은 심각한 PTSD와 신체 손상으로 인해 현재 치료 중입니다.”
“심문은 언제쯤 가능하죠?”
“신체는 복구되어도 정신적 손상이 워낙 커서 치료가 어렵다고 합니다. 후유증으로 평생 실어증을 달고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입니다.”
“쯧. 치료가 끝나면 어떻게든 정보를 캐내세요. 필요하다면 고문을 해도 좋아요.”
“알겠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게도 사태의 용의자 중 한 명은 실어증, 다른 한 명은 실종된 상태란다.
덴버가 이 사태의 주범이라고 주장한 비커스 부단장. 그가 제일 중요한 인물인데 아무리 하수도를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이미 제거했을 테니까.’
책임자만 발견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십중팔구 덴버가 미리 손을 써둔 것이 뻔했다.
모든 것이 훤히 보이는데도 그는 거짓말만 늘어놓았다.
그녀는 당장 부하를 불러 덴버를 연행시키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간신히 돌려보냈다.
‘상업 지구의 기반 시설 반파, 방위함대 소속의 병사들을 기습, 그리고 정체불명의 실험체 밀반입….’
어느 하나 중죄가 아닌 것이 없다.
그것만 해도 머리에 열이 오를 지경이었는데 그보다 그녀를 더 분노하게 만든 것이 있었다.
‘그 간악한 자를 내버려 둬야 한다니!’
아침 일찍 그녀는 사담 쳄벌린에게 사건의 내용에 대해 상세히 보고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하나였다.
‘복수는커녕 이대로 묻으라고?’
메가콥 CEO를 노리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에게는 구닥다리에 불과한 이 특수무역중심지보다 에저튼 가문의 지원이 더 중요했다.
그녀도 가문의 숙원이 뭔지 알고 있으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겼다간 그녀는 엄청난 망신을 당했음에도 아무 말도 못 하는 얼뜨기가 되어 버린다.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의 총괄관리자인 나에게 수치를 준 자를 그냥 내버려 두라니!’
현재 덴버가 그녀를 상대로 얄팍한 수작을 부렸다는 사실을 메가콥 내에서 모르는 자가 없다.
데일리마스에서 그녀가 치욕을 당했다는 사실을 오전 중에 특종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웨이 자오, 더럽고 추잡한 자…!’
그녀는 언론을 이용해 자기를 엿먹인 웨이 자오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데일리마스 때문에 덴버도 막대한 이미지 손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그는 가문의 가주다.
일개 도시의 총괄관리자로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그녀와는 입장이 다르다.
‘이대로 가다간 나만 당하고 끝난다.’
혈육보다 실리를 중요시하는 그녀의 아버지라면 복수 대신 오히려 그녀를 내치는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즉, 그녀가 에저튼 가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제물이 되는 것이다.
“총괄관리자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은사자기사단 관련 인사들은 전부 구속하세요. 군함에 있는 자들도 다른 생각 못하도록 방위함대에서 엄중히 감시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덴버는 이사회 때만 자유행동을 허가하고 나머지 시간대는 전부 행동 금지입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에저튼 가문 사람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뿐.
“그럼 가보겠습니다.”
명령을 받고 하나둘씩 회의실을 나가는 측근들.
이 바쁜 시간 일부러 회의까지 열었지만 결국 처리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사실에 무기력함을 느끼던 라일라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내게 남은 카드는 그것 밖에 없어.’
라일라는 회의실을 나가려는 비서를 다시 불렀다.
“방위군이 가져온 그 실험체는 어떻게 됐죠?”
“현재 시체는 과학연구소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해부 실험은 오후 늦게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에저튼 가문에서 특수무역중심지로 밀반입한 괴생물체.
그것의 시체는 방위군이 획득해서 현재 이곳 모뉴먼트 지하에 위치한 과학연구소로 이송된 상태다.
‘에저튼 가문에서 새로 개발한 생체 병기.’
그 시체를 손에 넣은 것이 이번 사태에서 그녀가 얻은 유일한 수확이었다.
“그 악마 같은 괴물에게서 어떻게든 성과를 얻어야 해요. 안 그러면 수지가 전혀 맞지 않으니까요.”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에저튼의 비밀병기의 위력은 이미 모두가 실감했다.
역전의 용사인 위기관리부팀장이 보고 중에도 몇 번이나 겁에 질린 표정을 취할 정도였으니까.
만약 티앤씨, 아니 라일라 쳄벌린이 그 괴물의 유전자를 얻어 양산할 수 있다면?
가문의 실권을 독차지하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그날이 오면 내가 가주가 된다.’
비서가 떠나고 홀로 남은 회의실에서 라일라의 눈이 조용히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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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가 모뉴먼트에서 반역을 꿈꾸기 몇 시간 전.
은사자기사단의 부단장 비커스는 아직 하수도에 있었다.
주변에 그를 찾고 있는 방위군 병사들이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에는 없습니다.”
「치직, 다른 곳도 확인, 치직, 해보도록.」
“알겠습…쯧. 이거 통신망은 언제 고쳐지는지.”
추격자들이 멀어지고, 근처에 숨어 있던 비커스가 조용히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현재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강화복의 동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라 투구와 동력원이 연결된 흉부 장갑만 남기고 나머지는 죄다 다른 곳에 버렸다.
동력이 없으면 상급 강화복은 무거운 애물단지에 불과하므로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낭패한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당하다니.”
충분히 경계하고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판이었다.
괴물의 지능은 상상 이상이었고, 놈의 이간질에 방위군과 기사단 모두가 놀아났다.
‘어떻게든 나가서 전하께 이 사실을 전달 드려야 해.’
비커스는 주인이 자기를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병사들이 그를 수색하는 것을 보면, 대외적으로는 그가 독단으로 방위군을 공격했다고 알려져 있으리라.
하지만 상관없다.
이전에 덴버는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면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그는 수긍했다.
그는 전하를 보필하는 검.
검은 소유자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도구다. 또한 도구에게는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에 병사는 더 이상 없는 것 같군.’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낀 비커스는 다시 움직였다.
가까운 곳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하수도 천장이 무너지면서 새로 생긴 길이다.
그곳으로 나가서 폐허에 은신하고 있으면 분명 기회가 생길 터.
“쿨럭, 젠장.”
보호해주는 갑옷이 없다 보니 차가운 구정물을 그대로 몸으로 맞으며 헤쳐 나가야 했다.
게다가 부상당한 어깨 쪽은 치료제를 맞았음에도 여전히 시큰거렸다.
체력 저하와 부상이 겹쳐서 그런 것일까. 연신 기침이 나왔다.
비커스는 기침하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계속 움직이다 보니 저 앞에 한 줄기의 빛이 보였다.
‘다 왔어!’
비커스는 더러운 물에서 빠져나와 잔해를 타고 올라갔다.
물속에 오래 있어 손가락 끝이 죄다 불어 있는 상태로 딱딱한 금속 조각을 헤집다 보니 그의 손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됐다.
‘조금만 더!’
비커스는 손을 타고 올라오는 통증을 참으며 위로 기어 올라갔다.
이제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지상이다.
그가 손을 뻗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
‘어?’
아니. 멈춘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그의 몸이 천천히 떠오르더니 다시 하수도로 빨려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그가 당황스러워하는데 갑자기 무형의 압력이 그의 전신을 짓눌렀다.
그의 몸을 옥죄는 그 힘은 마치 어떠한 보호 장비도 걸치지 않고 심해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커, 커헉! 자, 잠…으헉! 억!”
그의 팔다리가 제멋대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단단한 줄에 고정된 꼭두각시 인형처럼 몸이 그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손가락부터 손목, 팔 전체가, 발가락부터 발목, 다리 전체가 정상적이지 않은 각도로 꺾이고 부러졌다.
허리는 반대로 뒤틀렸고, 흉부를 감싸는 갈비뼈들은 살갗을 뚫고 밖으로 삐져나왔다.
비커스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지만 그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뒤를 쳐다봤을 때.
그곳에는 분홍색 풍선과 두 개의 보라색 눈동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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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나」「먹음?」
「응. 작은애기가 다 먹어.」
사냥에 성공한 그녀는 작은 아이에게 먹이를 넘겼다.
작은 아이가 식사하는 동안, 그녀는 주변을 끊임없이 살폈다.
큰 아이는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 그녀는 이전의 싸움으로 한차례 더 성장했다.
그녀가 선천적으로 가진 신비한 힘을 훨씬 정밀하게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신비한 힘을 이용해 전보다 먼 거리에 있는 물체까지 감지하고, 또 영향을 줄 수 있다.
덕분에 그녀는 지금 사랑하는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관측할 수 있었다.
「작은애기가 빨리 커야 해.」
「이유」「모름」
「큰애기 혼자 우리를 지키느라 힘드니까 우리가 도와줘야 해.」
「?」
그녀는 몸만 성장한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크게 성장했기에 그녀는 사랑하는 아이가 자기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큰 아이가 그녀와 작은 아이를 보호하는 이유가 이기적인 욕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또한 그 안에 조금씩 ‘애정’이라고 하는 이타적인 감정이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변해가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큰 아이도 변해가는 것이리라.
「작은애기가 커지면 큰애기가 분명 기뻐할 거야.」
「나」「어른」「기쁨」「환영」
물론 그녀는 큰 아이의 그런 태도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이미 그녀 속에서 큰 아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도 컸기에.
「나」「성장」「어른」「알….」
「시끄러워. 빨리 먹기나 해.」
「아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작은 아이를 혼내준 그녀는 이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큰 아이는 그들이 얌전히 숨어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약간 생각이 달랐다.
「이곳에는 무서운 동물이 너무 많아. 큰아이 혼자 싸우는 것은 힘들어.」
그를 돕기 위해서는 그와 만나기 전까지 최대한 성장해야 한다.
「이거 다 먹고 다른 곳으로 가자.」
「어디?」
「먹이가 있는 곳.」
다행히 이곳 지하에는 영양가가 풍부하면서 사냥하기 쉬운 먹이들이 많았다.
4개의 부속지가 달린 생물들의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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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술은 성공한 것 같네.’
정신을 차린 나는 제일 먼저 보조기관으로 내가 있는 장소부터 살펴봤다.
독한 화학 용액 냄새와 옅은 피 냄새.
그리고 허공에 떠다니는 전자파와 여기저기 배치된 기기들이 내는 기계음.
모든 요소가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이곳이 모뉴먼트 지하의 과학연구소라고.
현재 나는 실험실 안에 있는 초대형 금속 해부대 위에 엎드린 상태로 묶여 있었다.
분명 내가 시체임을 인지했을 텐데도 어지간히 경계심이 들었는지 팔, 다리 모두 금속 수갑을 채워 놨다.
‘이건 내버려 두고.’
단단하긴 해도 내 힘 앞에서는 어림없다.
당장 끊어 낼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연구소 내에 감시카메라가 있기 때문이다.
미리 계산하고 움직여야 문제가 안 생긴다.
‘어디 보자. 유전자 샘플 저장소가 근처에 있을 텐데.’
특수무역중심지는 엄밀히 따지자면 유전자 연구에 특화된 시설은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종합 유흥 시설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도 메가콥 과학 연구 시설에 유전자 샘플 저장소가 없을 리가.’
지하 과학연구소는 티앤씨에 순종적인 고용인 양성을 위한 여러 종류의 연구를 진행하는 시설이다.
여기서 말하는 ‘순종적인 고용인 양성’이란 유전자 개조를 통해 그들이 쉽게 티앤씨에게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헐크 뮤턴트랑 반대로 안 좋은 유전자만 갖게 만드는 것이 주 목적이지.’
간단히 정의하자면 인간을 좀 더 열등한 노예로 만들기 위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런 시설이다 보니 여러 종류의 유전자 샘플들이 보관되어 있다.
‘이 도시에서 여기만큼 유전자 파밍에 최적화된 장소는 없어.’
아마 희귀 생물의 유전자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몇 가지 노려볼 만한 유전자들이 있다.
‘새 타입 해금과 관련된 유전자들만 얻으면 돼.’
그리고 현재 나에게는 유전자 획득 확률을 올려주는 특성이 있고.
사냥의 표상.
그것을 쓰고 이곳을 털면 내가 원하는 타입들을 새로 해금할 수 있으리라.
‘일단 그러려면 누가 좀 와줘야 하는데.’
단 내 계획이 무사히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나는 기다렸다.
한동안 기다리고 있으니 실험실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총괄관리자께서 놈으로부터 유전자를 빼내어 무기화할 수 있을지 알아보라고 하시더군.”
“하긴. 듣자 하니 군인하고 기사들을 수십 명씩 잡아먹은 놈이라던데.”
ID카드가 확인됐다는 안내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 4명이 들어왔다.
연구원들은 거대 생물을 해부하기 위한 보조 장비를 착용한 상태였다.
외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일반 강화복에 비해 한층 투박해 보이는 슈트 디자인에 안드로이드와 비슷한 형태의 보조용 팔이 등 뒤에 2개씩 더 달려 있었다.
“무섭게도 생겼군. 이놈을 해부하라고?”
“쩝. 오늘도 야근하게 생겼네.”
“그럼 빨리 준비하자고.”
연구원들은 보조용 팔을 이용해 여러 화약 약품과 해부 도구를 해부대 위에 올려 두기 시작했다.
‘화학 약품이라.’
연막을 칠 것이 필요했는데 마침 잘 됐다. 나는 화학 약품이 있는 곳에 꼬리를 아주 살짝 움직였다.
“응?”
연구원 중 한 명이 뒤를 돌아봤다. 나는 원래 그 상태였던 것처럼 꼼짝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내가 잘못 봤나?”
“이봐, 농땡이치지 말고 빨리 도와줘.”
“알았어.”
그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동료들을 따라 해부용 물건들을 옮기는 데 열중했다.
나는 보조기관만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읽으며 생각했다.
‘조건이 갖춰졌어.’
사냥의 표상을 사용하기 전에 필요한 조건들이 전부 채워졌다.
사냥의 표상은 부작용으로 이성을 상실시킬 정도로 강한 식욕을 동반한다.
표상 효과가 끝났을 때 주변에 먹이가 없으면 나는 이성을 잃고 날뛸 거다. 그러면 금방 적들에게 걸려 제거되고 말겠지.
‘불상사를 피하려면 미리 먹이를 준비해놔야 해.’
이 실험실에 있는 4명의 연구원.
그들은 사냥의 표상을 위한 제물이 될 거다.
‘물론 그전에 나를 잠깐 도와줘야겠지만.’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준비했다.
‘감시카메라가 있으면 몰래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도와줄 친구들이 필요하다.
내 말에 복종하는 친절한 친구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