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8
특수무역중심지의 행정 지구에 있는 초고층 빌딩 모뉴먼트.
나이가 든 플레이어들은 이곳을 블X마X라고 부른다.
‘확실히 꽈배기 형태로 꼬여 있는 모습만 보면 비슷하게 생겼어.’
물론 고전 공포 게임에 나오는 외계 유물과 외형만 비슷할 뿐 설정은 판이하게 다르다.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모뉴먼트는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거나 이상한 모습으로 바꿔 버리지 않으니까.
‘대신 소유자한테 버프를 주는 특성이 있지.’
특정 클랜이 모뉴먼트를 소유하면 ‘노예무역’이라는 클랜 전용 특성을 얻을 수 있다.
해당 특성을 보유한 클랜은 소유 행성으로부터 얻는 수익이 2배 이상으로 펌핑된다.
그래서 대형 클랜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고 싶어하는 기념물이기도 하다.
덕분에 특수무역중심지에서는 언제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블X마X를 오마주한 것이 맞을지도.’
모뉴먼트 하나 얻겠다고 함부로 전쟁에 나섰다가 패가망신한 클랜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참고로 나는 모뉴먼트의 소유권에는 관심 없었다.
‘오히려 모뉴먼트를 얻으러 오는 클랜원들에게 관심이 있었지.’
예전에는 클랜원들의 유전자 정수를 빼먹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모뉴먼트에 잠입했다.
지금처럼 ‘가사상태’ 특성으로 죽은 척 위장해서 들어온 적도 있었고 말이다.
“하아, 오늘을 유흥 지구 가서 한바탕 놀려고 했는데.”
“넌 결혼까지 한 놈이 아직도 그런 곳에 가냐?”
“쯧, 결혼하니까 가지. 너는 결혼하지 마라.”
“미친놈.”
“곧 연말인데 야근이라니 실화냐?”
“자네는 어차피 애인도 없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가?”
“아이씨, 애인 없으면 사람도 아닙니까? 저도 휴양지에서 느긋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이국적인 장소에서의 만남,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이별….”
“쌉소리 그만하고 이거나 빨리 옮기게.”
연구원들이 도구를 옮기며 잡담을 나눈다.
내가 살아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좋아.’
나는 그들이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기생군체를 활성화했다.
아래쪽 오른팔의 손끝에서 검은색 실지렁이들이 한 마리씩 꿀렁거리며 기어 나왔다.
‘모두 해부대 아래로.’
4마리의 기생충이 내 명령에 따라 해부대 아래에 몸을 숨겼다.
“음?”
“뭐야? 왜 그래?”
“이상하다. 분명 움직인 것 같은데?”
“죽었는데 무슨.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 마.”
연구원 한 명이 나를 유심히 살펴본 뒤 다시 준비 작업에 몰두했다.
‘연구원은 총 4명. 전원 마스크를 쓰고 있어.’
기생충에게는 공격 능력이 전무하므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마스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기생충이 들어갈 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 줘야 해.’
꼬리의 가시털을 쏴서 구멍을 낸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다만 감시카메라가 있어서 당장 움직일 수 없다.
보조기관을 통해 카메라의 방향을 파악해 보니 내가 있는 해부대에서 사각이라 할 만한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생충처럼 얇고 작은 물체면 모를까 내가 크게 움직인다면 바로 카메라에 걸린다.
‘꼬리의 움직임을 감추려면 연막이 필요해.’
마침 연기를 만들어 낼 화학 용품들이 내 꼬리 부근에 놓여 있다.
‘근데 저것만으로는 연기를 크게 내기 어렵겠지.’
저 용품들로부터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촉매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산성액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내 피에는 강산성 효과가 있다.
‘아무래도 좀 더 기다려야겠네.’
어차피 저들은 해부하러 이곳에 왔다.
그들이 내 몸에서 피를 흘리게 할 때가 곧 내가 움직일 시간이다.
-
“좋아. 준비 다 됐겠지?”
과학연구소 생물관리팀 산하 해부팀장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해부대 옆에는 각종 도구를 올려놓을 스테인리스 합금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메스나 의료용 톱 같은 의료 도구부터 단단한 피부를 가르기 위한 플라즈마 커터, 잘라낸 생물의 피부 조직을 보관할 화학 용액 등등.
우주시대가 되어도 해부 절차는 원시적인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 어디부터 합니까?”
“엎드려 있으니까 등부터?”
“천천히 하자고. 먼저 피부 조직 샘플부터 채취하게.”
해부팀장의 말에 연구원이 메스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외골격 슈트의 보조용 팔들도 각각 커버 글라스와 유전자데이터 검사 장치를 들었다.
“어디 무슨 동물인지부터 확인해 볼까.‘
그는 괴물 시체의 팔 부분을 메스로 그었다.
“어라?”
팔 부분 외피가 잘려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메스 날이 망가졌다.
“엄청 단단한데요? 이 정도면 거의 마운틴크롤러 성체급인데.”
“이걸 써봐.”
옆에 있던 동료가 소닉 블레이드를 건넸다. 군용이 아니라 의료용 절개 도구라 훨씬 작은 크기였지만 효과는 동일했다.
연구원이 소닉 블레이드의 스위치를 누르자 짜리몽땅한 막대기 끝에서 얇은 칼날이 튀어나왔다. 칼날에서는 초진동 효과로 섬뜩한 소리가 났다.
“어디….”
그가 소닉 블레이드를 괴물의 시체에 가져다데려고 할 때.
“어?”
“움직이네?”
그의 눈에 괴물의 꼬리가 살짝 움직인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그 혼자 본 것이 아니었는지 옆의 동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었을 때 굳어 있던 근육이 풀어지는 것 같군.”
“그, 그런 거겠죠?”
“어휴 깜짝이야. 하긴 얘가 살아 있으면 우린 이미 죽었겠지?”
“야,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잡담은 그만. 빨리 피부 샘플부터 채취해.”
연구원이 소닉 블레이드로 괴물의 팔을 긁었다.
괴물의 외피가 어찌나 단단한지 금속과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나며 불꽃이 튀었다.
“이건 동물의 몸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데?”
계속 소닉 블레이드로 긁으니 마침내 괴물의 외피에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오 좋아. 이제 조금만 더 하면…앗.”
그 순간 소닉 블레이드의 날이 완전히 손상되면서 초진동 효과가 꺼져 버렸다.
도구가 완전 망가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주 작은 외피 조각을 잘라낼 수 있었다.
“작지만 분석기로 충분히 검사할 수 있어. 샘플은 분석기에 넣게.”
“쩝, 무식하게 단단한 놈이군.”
“이번에는 플라즈마 커터를 써 보죠.”
연구원 두 명이 플라즈마 커터를 집어 들었다.
보통 커터는 반동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곳, 이를테면 바닥 같은 부분에 고정하고 사용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보조용 팔이 달린 외골격 슈트를 입고 있다. 보조용 팔은 높은 중량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므로 커터의 반동을 버틸 수 있다.
보조용 팔이 플라즈마 커터가 흔들리지 않게 꽉 붙잡았다.
커터의 단말기를 통해 커터 끝 발사구가 시체를 향하도록 조정한 연구원 둘은 작동 버튼을 눌렀다.
얇은 녹색 빔이 뿜어져 나와 외피의 표면을 지졌다.
제아무리 튼튼한 생체 장갑을 가진 괴물이라도 플라즈마 에너지 앞에서는 역시 뚫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샘플을 분석하던 데이터분석기가 분석이 완료되었다며 안내 메시지를 띄웠다.
그것을 본 연구원이 깜짝 놀라며 해부팀장을 불렀다.
“왜 그러지?”
“이 생물은 메가콥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생물종이랍니다.”
“그래? 그럼 신종인가?”
“그게 이상하게도 수십 종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고….”
연구원이 말을 끝마치기 전 커터로 외피를 뚫고 있던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해부팀장님! 놈의 몸에서 연기가 납니다!”
“아니, 기다려! 이건 연기가 아니야!”
“미친! 피가 산성이잖아?”
연구원이 소리친 대로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해부대를 녹이고 있었다.
“피가 이쪽으로 튄다! 조심해!”
그뿐만 아니라 커터의 빔 때문에 산성피가 연구원 쪽으로 튀었다. 만약 옆에 있던 연구원이 그를 뒤로 잡아끌지 않았다면 아마도 몸에 큰 부상을 입었으리라.
“어우씨, 고마워.”
“정신 똑바로 차려.”
감사를 표하는 동료가 괜찮은지 확인하던 연구원은 그의 몸에 이상한 물체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너 몸에 그거 뭐야?”
동료의 옆구리 부근에 검은색 실지렁이가 붙어 있었다.
잘못 봤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꿈틀거리며 위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응? 뭐, 뭐야?”
기겁하는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연구원들의 몸에도 어느새 실지렁이가 달라붙어 있었다.
“이게 뭔….”
연구원이 진저리를 치며 보조용 팔을 조종해 실지렁이를 떼려고 하는 순간, 유리 깨지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이어서 뭔가 물을 흩뿌리는 소리가 들리고 등 뒤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화학 용액이 놓여 있던 테이블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화학 용액으로부터 발생한 시커먼 연기가 순식간에 올라와 연구원들을 감쌌다.
“부, 불이야!”
“켁, 케엑! 쿨럭!”
“소화기를 가져와!”
당황한 연구원들이 우왕좌왕하는데 가만히 엎드려 있던 괴물의 시체가 꿈틀거렸다.
놈의 꼬리가 까딱 꺼리더니 끝에 달린 가시털들이 연구원들의 얼굴을 향해 발사되었다.
“앗?”
“방금 그거 뭐야?”
다행히 빗나간 것인지 가시털들은 해부팀장을 비롯해 연구원들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마스크가 찢어지고 속에 있던 살갗이 유독한 연기에 노출되었다.
“이게 뭐야?”
“어디서 날아온 거야?”
갑자기 날아온 날카로운 물체에 마스크가 찢어지자 연구원들 모두 혼란스러워 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주의해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그들의 몸에 붙어 있던 검은색 실지렁이들.
괴물의 몸에서 나온 기생충들이 맹렬한 속도로 몸을 타고 올라와 그들의 얼굴에 달라붙은 것이다.
“으아악!”
“도, 도와줘!”
“크억! 켁!”
연구원들이 급히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기생충들은 이미 마스크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연구원들은 콧속으로 파고드는 기생충을 어떻게든 빼내려고 기침을 하거나, 기생충을 붙잡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마구 긁었다.
만약 그들이 조금만 더 침착했다면 강한 힘을 가진 보조용 팔로 기생충을 잡아당겨 빼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화재와 처음 보는 기생 생물의 습격은 그들이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팟
연기 때문에 실험실 내 스프링클러가 작동해서 물을 쏟아냈다.
쏟아지는 물속에서 연구원들은 하나둘씩 기생충의 습격에 당해 움직임을 멈췄다.
“…걱.”
“…….”
마지막으로 남은 해부팀장은 자기 마스크 안으로 들어온 기생충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기생충이 반쯤 그의 몸 안으로 침투했을 때, 그는 기생충의 꽁무니를 간신히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미끈거리고 불쾌한 감촉이 그의 손바닥에서 느껴졌지만 그는 어떻게든 기생충을 뽑아내려고 했다.
코 안 깊숙이 붙어 있는 그것이 밖으로 끌려 나가지 않으려고 그의 목 뒷부분을 자극했다.
“어걱! 컥! 커헉!”
해부팀장은 헛구역질을 하는 중에도 어떻게든 기생충을 빼내기 위해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빼낸 상태였는데 그는 갑자기 몸의 힘이 쭉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왜 이래?’
축 늘어지는 손목에는 길쭉한 가시털 한 가닥이 박혀 있었다.
그 사이 기생충이 그의 코로 잽싸게 파고들어갔지만 그는 어떠한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저절로 무릎이 꿇리고 쓰러지기 전.
그는 보았다.
엎드린 자세로 해부대 위에 놓여 있는 괴물.
괴물의 하얀 눈이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놈은 죽지 않았다.
-
모뉴먼트의 제3중앙관리실.
이사회 첫날이라 1차 회의는 이미 종료되었지만 그렇다고 관리실이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염소 뿔을 가진 여성 컬트 관리인 애나는 따분한 표정으로 감시카메라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녀의 직장 동료, 산양 뿔을 가진 남성 컬트가 기지개를 한 번 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커피. 너도 한 잔 타줄까?”
“어. 설탕 빼고 진하게.”
남성 컬트가 나가고 애나는 다시 감시에 집중했다.
그녀는 관측에 특화된 사이킥 파워를 갖고 있었기에 수백 개가 넘는 감시카메라를 동시에 감시할 수 있었다.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행정 지구에서 일하는 컬트들은 모두 도시 관리에 도움이 되는 특별한 사이킥 파워를 하나씩 보유하고 있다.
‘하아, 그냥 집에 가서 씻고 자고 싶다.’
일에 도움이 되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일하기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원래는 제3중앙관리실에는 제넷이라는 여성 컬트까지 포함해 총 3명의 감시자가 있었다.
만약 제넷이 실종되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렇게 며칠째 야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거다.
‘그 년, 말도 없이 도망치다니. 나도 도망치고 싶다.’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며 감시를 계속하는데, 그녀의 눈에 이상한 것들이 잡혔다.
“과학연구소 30호 실험실? 화재인가?”
카메라 너머는 연기로 가득했고, 연구원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이윽고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서 실험실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뭐야? 왜들 저래?”
허둥대던 연구원들이 갑자기 서로 말이라도 맞춘 듯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은 차렷 자세를 유지한 채 그저 쏟아지는 물을 맞고만 있었다.
그 중 한 명만은 정신을 잃었는지 자리에 쓰러져 있었는데, 아무도 그를 부축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모습에 애나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
어쨌든 불이 났으면 확인해야 한다. 그녀는 통신기를 들었다.
그녀가 연락하자 카메라 너머에서 꼼짝 않고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일제히 움직이며 뒤처리에 나섰다.
그 중 한 연구원이 해부팀장의 품에서 통신기를 꺼내 받았다.
“제3중앙관리실입니다. 30호 실험실, 거기 화재 발생한 것 맞죠?”
「아, 화, 화학 용액이 떨어져서 부, 불이 난 것 같습니다. 금방, 금방 정상화될 겁니다.“
“소화팀 필요합니까?”
「아, 아닙니다! 절대로 부르지, 부르지 마세요!」
“음? 쓰러지신 분도 계신 데 정말 필요 없습니까?”
「어, 어어, 그게 유, 유독한 연기를 흡입해서 자, 잠깐 기절한 겁니다. 그, 금방 깨어날 겁니다.」
“그렇습니까?”
「네, 넵. 아무튼 팀장님 깨어나면 저희는 이 시체를 이송하러 나가야 하니까 더 이상 감시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통신이 종료된 뒤에도 애나는 이상하다는 듯 통신기를 노려봤다.
‘왜 저리 떨지?’
돌발 사태가 발생해서 그런가. 연구원의 목소리는 유독 떨렸다.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밤중에 실험체를 이송한다고?’
그녀가 고민하는데 동료 컬트가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왜 그래?”
“아니, 해부팀에서 불이 났는데 반응이 좀 이상하더라고.”
“거기 원래 괴짜들만 가는 곳이잖아. 신경 꺼.”
“그런가?”
동료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애나는 결국 30호 실험실의 화재에 대한 의문을 접었다.
‘하긴 이것 말고도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그렇게 해부팀에 대한 것들을 머리 한구석에 밀어 넣은 그녀는 동료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
‘역시 금방 연락이 오는구먼.’
전화는 내게 지배를 받는 연구원이 받았지만, 나는 누가 그에게 전화했는지 알고 있다.
‘컬트.’
모뉴먼트의 특징 중 하나가 실내 감시를 컬트가 도맡아 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돌발 사태에 쉽게 흔들리거나 하는 등 허점이 많고, 안드로이드는 자율적 사고능력이 부족한데 컬트는 비교적 그러한 약점이 덜한 편이다.
또한 사이킥 파워 덕분에 인간보다 감이 훨씬 뛰어나서 몰래 접근하는 적들이나 함정 등을 쉽게 발견해낸다.
그러한 특징 덕분에 메가콥에 이민을 온 컬트들은 주로 감시자나 정찰병 역할을 많이 맡는다.
‘설정상 컬트는 강적 사냥을 즐기는 전통이 있지.’
컬트는 볼프와 유사하게 선천적으로 뛰어난 사냥꾼이자 감시자다.
함선을 타고 우주를 누비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컬트 사회 전반에는 전통적인 수렵 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다.
‘퀘스트라 불리는 컬트만의 고유 시스템도 보면 죄다 무슨 동물을 사냥해서 뿔을 가져와라, 심장을 가져와라 이런 것 뿐이니까.’
그래도 인간과 함께 일하는 컬트는 비교적 그런 면이 덜한 편이다.
컬트들이 사는 행성이었으면 내 계획이 즉시 걸렸겠지만, 메가콥으로 온 컬트는 상대적으로 예리한 감이 덜한 편이다.
인간 사회 속에서는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많아서 자기 감에만 의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 저쪽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겠지만 딱히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면 행동에 나설 거야.’
그 부분은 내가 앞으로 주의하면 될 일이다.
아무튼, 나의 1차 목표인 행정 지구로의 잠입 계획 중 절반은 성공했다.
새로운 친구들도 만들었고, 걸리지도 않았으니까.
“해, 해부팀장님이 깨어나시면 이송하겠습니다.”
연구원의 말에 나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다음 내가 갈 곳은 냉동보관소다.
나처럼 덩치가 큰 동물의 사체를 보관하는 곳인데 내가 알기로 그곳 안에는 감시카메라가 없다.
예전 게임에서도 동물 시체에 숨어서 잠입한 적이 있기에 확실하다.
「주·변·유·전·자·보·관·소·있·어?」
“네? 아, 무, 물론입니다. 바로 옆에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게다가 시설 배치도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다.
‘연구원을 시켜서 샘플을 가져오라고 하면 돼.’
거리가 가깝다 보니 이동 중에 인증 기록을 많이 남길 필요가 없다.
즉 감시자들이 수상하게 생각할 요소가 별로 없다는 뜻.
‘유전자 샘플을 다 먹은 다음에는 연구원들을 잡아먹으면 되겠지.’
사냥의 표상 효과가 끝날 때쯤 그들을 부르면 부작용도 해소할 수 있다.
‘여기서 좀 더 완벽을 기할 방법이 없을까?’
연구원이 갑자기 사라져도 모뉴먼트의 관리자들이 늦게까지 알 수 없도록 하는 방법.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좀 전의 그 전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