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81화 (82/400)

Ep. 81

「‘전파 장애’ 특성이 적용되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손재주’와 융합 가능.」

「‘전파 장애’와 ‘손재주’ 특성이 융합. ‘하이재킹’ 특성으로 진화!」

「하이재킹: 전파 장애 특성의 효과를 계승합니다. 10m 이내에 있는 전자기기를 짧은 시간 동안 조종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한 기기만 가능하며 사이보그에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추신: 우주시대에 기계를 쓰지 못하는 인간은 원시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새로 획득한 융합 특성을 적용하자 몸에서 변이가 일어났다.

변화가 발생한 부위는 등.

등에는 날개와 뼈 칼날이 달린 팔 2개 말고는 다른 것이 없었다.

그저 단단한 외피로 채워져 있는 그곳에 새로운 기관들이 생겼다.

척추를 따라 얇은 골판이 2열로 자라났다. 골판은 등에서부터 꼬리 끝 가시털이 나 있는 부분의 바로 전까지 솟아났다.

골판의 외형은 정형화되지 않아 투박했고, 색깔은 짙은 검은색이었다.

빛조차 흡수할 정도로 완벽한 흑색이다 보니 골판이 아니라 마치 정제된 흑요석 조각을 등에 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본래 메탈릭 그렘린이 패시브로 보유한 능력이지만, 에이모프가 이를 흡수하면서 전혀 다른 형태로 재탄생했다.

이 골판만 있으면 바로 주변 지역에 있는 기기들에게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

‘어디 한번 써볼까.’

게임에서야 여러 번 써본 특성이지만 현실에서는 처음이다.

나는 반쯤 엎드린 상태에서 등에 감각을 집중했다. 척추 운동을 할 때처럼 등 부분에 힘을 주자 골판들이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

골판들이 맞닿으며 기묘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언뜻 듣기에는 멀리서 들리는 매미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아주 작고 옅은 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일반적인 동물 소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불길한 음률이 존재했다.

일반인이 이 소리를 계속 듣는다면 필시 기분이 안 좋아질 정도의 불협화음.

허나 골판의 진가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소음이 아니다.

사냥의 표상 덕분에 전보다 훨씬 강화된 나는 느낄 수 있다.

골판에서 기계를 고장 내는 파장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만약 이곳에 전기의 흐름이나 파장을 읽어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내 골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었겠지.

골판이 울면서 만드는 파장이 주변에 퍼지자 냉동보관소의 전등들이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으악!”

“모, 모두 침착해!”

“아무것도 안 보여!”

냉동보관소가 한순간에 어둠에 잠기자 연구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다음은 하이재킹.’

극도로 발달된 내 보조기관의 영역 내로 남성 컬트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가 오기 전까지 실험을 마치기 위해 나는 냉동보관소 문 옆에 있는 단말기에 감각을 집중했다.

보조기관과 골판이 힘을 합쳐 단말기에 흐르는 미세한 전기 신호들 중 저 위 어딘가부터 내려오는 통제 신호를 찾아낸다.

마침내 목표를 찾아낸 파장이 날카로운 가위가 되어 통제 신호를 자른다.

이어서 파장은 통제 신호를 모방해 그와 유사한 형태로 조율되었다. 잘려나간 통제 신호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서다.

파장이 새로운 통제 신호가 되자 단말기 조종에 관한 정보가 나의 보조기관으로 흘러들어왔다.

‘열려라 참깨.’

내 말과 함께 냉동보관소의 문이 열렸다.

하이재킹 특성은 이름 그대로 전자기기의 지배권을 ‘강탈’하는 효과가 있다.

원래라면 ID카드로 인증해야 들어올 수 있는 문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문의 지배권은 내게 있으니까.

이 특성이 있으면 우주선을 빼앗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제한 시간이 짧아서 실제로는 써먹기 힘들지만.’

사냥의 표상 효과 덕분에 시간이 연장되었겠지만, 원래 하이재킹으로 지배권을 빼앗을 수 있는 시간은 3분이다.

조종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보니 하이재킹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주선 탈취보다 다른 용도로 많이 쓰인다.

‘잠입, 사보타주에 제격이지.’

카메라에 걸리지 않고 이동하거나, 근접전 혹은 중거리 내에서 적과 조우했을 때 손 안 대고 상대의 무기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새로운 특성 실험은 이 정도로 하고.’

나는 등에서 힘을 뺐다.

골판에서 흘러나오던 파장이 사라지면서 특성 효과가 해제되고 모든 게 다 정상으로 돌아왔다.

‘초월 시스템의 조건은 만족했어.’

그러나 지금 바로 만들 생각은 없다.

이유는 두 가지.

‘먼저 어떤 유일 특성이 나올지 몰라.’

초월 시스템으로 만든 유일 특성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특성이다.

유일 특성이니까 효과는 매우 강력하겠지만, 어떤 특성으로 나올지 알 수 없는 게 문제다.

‘거기다 페널티도 고려해야 해.’

내가 완전한 유기체를 얻었을 때, 날개랑 의태 기관에 금제가 걸렸다.

날개는 그렇다 쳐도 의태 기관은 도시에서 사냥할 때 매우 적극적으로 쓰고 있던 특성이었다.

그것들에 금제가 걸리는 바람에 나는 기존에 세웠던 도시 공략 방법을 완전히 수정해야만 했다.

‘이번 유일 특성에 어떤 페널티가 생길지 몰라.’

재수가 없으면 기생 군체나 신경독샘 등과 같이 내가 자주 사용하는 특성에 금제가 걸릴 수도 있다.

그러니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그에 반해 하이재킹 특성은 당장 모뉴먼트를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첨단기기가 가득한 이 초고층 빌딩에서 전자기기에 대한 카운터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원래는 기생충으로 천천히 공략할 생각이었지만….’

하이재킹이 있는 이상 작전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카메라를 비롯한 감시 장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큰 메리트니까.

‘좋아. 초월 특성은 안전한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보류.’

결정을 내린 나는 몸을 일으켰다.

냉동보관소 앞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손님을 맞이할 채비를 해야지.’

내가 돌아보자 움찔거리는 연구원들.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았다.

-

남성 컬트 안드레는 동료인 애나와 함께 메가콥으로 이주한 컬트다.

메가콥이 7개의 가문들의 각축장인 것처럼 컬트도 오랜 세월 동안 내분에 시달리고 있었다.

안드레를 비롯해 모뉴먼트에 근무하는 컬트들은 모두 동족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꼴을 견디지 못하고 메가콥으로 온 자들이다.

“어휴, 거기나 여기나 지겹다 지겨워.”

하지만 지성체가 있는 곳에 싸움이 없을 리 없는 법.

안드레는 외부인이지만 이곳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자기들끼리는 이사회인지 뭔지 거창하게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욕심이나 채우려는 추악한 싸움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린 시절 이민 오면서 이름까지 바꾼 그지만, 이 도시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야만적인 원숭이들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쯧.”

그는 혀를 찬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 복도만 지나면 바로 냉동보관소다.

그는 지나가면서 복도에 있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동족인 애나를 생각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는 안드레였다.

‘그러고 보니 제넷은 말이나 좀 하고 가지.’

동족 생각을 하자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가 떠올랐다.

그녀는 이사회 전에 갑자기 퇴직서를 제출하고 사라져 버렸다.

“쩝, 썩 괜찮은 친구였…응?”

복도를 걷던 안드레는 뭔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밝은 은색의 금속판이 질서정연하게 깔려 있는 복도는 평소 그대로였다.

하지만 안드레는 복도의 평범한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이질감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게 무슨?’

만약 그가 컬트 본성에서 계속 살았다면 지금 느끼고 있는 감각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었으리라.

그것은 경고였다.

“뭐가 이리 춥지?”

안드레는 닭살이 잔뜩 돋은 양팔을 부여잡고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복도 끝 냉동보관소 앞에 도착한 그는 제3중앙관리실 마스터 카드를 꺼냈다.

짧은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한기가 쏟아져 나왔다.

“어우 엄청 춥네.”

엄청나게 추운 것을 보니 냉방 시설 자체는 멀쩡해 보였다.

보관소 내에 발을 디딘 그는 연구원들을 불렀다.

“이봐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통신기를 들었다.

“제3중앙관리실 안드레입니다! 들리십니까?”

「츠츠츠츠츠츠」

“제3중앙관리실 안드레. 이상 사태 발생. 이런…!”

통신기에서는 잡음말고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안드레는 카메라에 신호를 주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근처에서 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야?”

“으, 으으….”

“연구원이십니까?”

“으, 으으!”

소리의 정체는 인간 남성의 고통에 찬 신음이었다.

안드레는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얼음을 연상케 하는 푸른색 조명 아래에 천장의 금속 고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시체, 금속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생물의 파편들.

인간이 아닌 안드레도 등골이 절로 오싹한 광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생물이 엎드려 있는 스테인리스강 테이블을 지나자 두 사람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한 사람은 피범벅된 상태로 쓰러져 있었고, 곁에는 다른 연구원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쓰러져 있는 동료를 지혈하고 있었다.

“헉! 괜찮습니까?”

바닥과 연구원의 손은 완전히 피범벅이었다.

신음을 삼킨 안드레는 급히 통신기를 들어 다시 통신을 시도했다.

통신기에서는 여전히 츠츠츠 하는 소음만 들려오고 있는데 무릎을 꿇은 연구원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제발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다급한 연구원의 도움 요청에 안드레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쓰러진 연구원을 확인했다.

“출혈이 너무 많습니다! 당장 위의 병원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안드레가 보기에 쓰러진 연구원은 매우 위중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통신기는 완전히 맛이 간 상황.

‘바로 옮기기에는 상처가 너무 커.’

안드레는 어떻게든 지혈하기 위해 연구원의 상처 부위를 꾹 눌렀다.

“제가 보고 있을 테니까 빨리 다른 사람들을….”

그는 동료 연구원에게 빨리 나가서 구급요원이라도 불러오라고 외쳤다.

하지만 등 뒤에 있던 연구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서 들려온 답은 그의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으으, 미, 미안합니다….”

“네?”

연구원의 뜬금없는 사과에 안드레가 반문했다.

그 순간, 그의 뒤에 있던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커다란 생물이 꿈틀거렸다.

-

“얘는 언제 갔는데 아직도 안 와?”

관리실에 앉아 있던 애나는 통신기를 들었다.

내려간 지 몇 분이 지났는데 아무런 답이 없는 동료에게 전화하기 위해서다.

신호음이 한참 울리고서야 동료가 받았다.

“왜 이리 안 받아? 아래에 무슨 일 있어?”

「아, 무, 그극, 것, 도. 금, 방, 올, 라, 가.」

“그래? 근데 이거 통신기가 좀 이상한데? 잡음이 자꾸 껴. 올라오면 검사 받아봐.”

「응.」

통신이 종료되고 애나는 다시 카메라를 확인했다.

냉동보관소 앞 복도.

동료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카메라 화면이 크게 일그러졌다.

“뭐야?”

모니터를 살짝 치자 화면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뭐가 잘못된 것인지 카메라 화면들이 차례대로 하나씩 하나씩 일그러졌다가 복구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거 왜 이래?”

짜증이 난 애나는 설비팀에 연락을 하려고 통신기를 쥐었다.

그녀가 통화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카메라 화면이 한번 크게 깜빡이더니 그 이후에는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어라?”

화면 속의 복도는 좀 전 모습과 그대로였다.

하지만 애나는 분명 봤다.

화면이 복구되기 직전, 화면 너머에서 검은 물체가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말이다.

‘뭐였지?’

애나는 통신기를 내려놓고 컴퓨터를 조작했다.

이윽고 오류난 뒤 복구되기까지의 기록들이 허공에 홀로그램 형태로 출력되었다.

홀로그램을 일렬로 나열한 애나는 유심히 살펴봤다.

카메라에 찍힌 밝은 은색 복도들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딱 한 곳을 제외하고.

“이게 뭐지?”

화면 구석에 작은 크기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길고 뾰족한 가시를 닮았다.

그 가시들은 위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화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애나가 그것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카메라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려는 그때.

뒤에서 단말기가 마스터 카드를 체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시간에 제3중앙관리실에 올 사람은 한 명뿐.

살펴보겠다고 내려간 동료, 안드레였다.

“뭐하다가 이제 와?”

뒤돌아 한 마디 하려던 애나는 문득 든 생각에 몸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카메라에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그녀가 기록을 열람하던 중일 때도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 화면 중 어디에도 안드레가 이곳으로 오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다.

피시이익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