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88화 (89/400)

Ep. 88

“난 특별, 특별한, 특별, 죽어? 죽어….”

흉측하게 변모한 블랙.

그녀는 모습이 변한 와중에도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네크로펙터 때문에 이만큼 이상하게 변한 것은 처음 보네.’

그녀의 외형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고전 공포 게임에 나오는 변이 시체 괴물처럼 생겼다.

관자놀이에 솟아 있던 야크 뿔은 기괴하게 뒤틀렸고, 머리카락이 전부 빠진 곳에는 새로 생긴 눈 2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른쪽 팔은 소환된 페인 스피어가 육체와 합쳐진 것인지 길쭉한 창 형태로 변이 되었다.

왼쪽 팔 부분 곳곳에는 자라다 만 입들이 생겨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블랙 슈라우드와 육체가 융합한 덕분에 몸은 알몸이나 다름없었지만 아름다움보다는 불쾌함만 느껴졌다.

외계인, 괴물을 좋아하는 나지만 그녀의 외형에서는 어떠한 호감도 느낄 수 없었다.

“샤아아아아아!”

블랙, 아니 네크로펙터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놈이 왼쪽 팔을 쳐들자 팔에 난 입에서 보라색 채찍들이 튀어나와 내가 있는 곳으로 쇄도했다.

채찍들이 자아를 가진 것처럼 사방에서 내 약점을 노린다.

나는 채찍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전방에서 날아오는 채찍은 머리로 막아 내고, 옆구리를 찌르는 채찍은 손목의 방패 갑각으로 튕겨 냈다.

일부 내가 막지 못한 채찍이 나를 찢어발기기 위해 내 등과 다리 등을 노린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큰애기를 괴롭히는 검댕이는 용서 못해!」

날아드는 채찍이 허공에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서 멈췄다가 사라졌다.

이전에 비해 훨씬 강해진 26호의 ‘속박’ 능력 덕분이다.

마구잡이로 날아온 사이킥 윕이 무력화되고, 그 틈에 나는 네크로펙터에게 바짝 접근했다.

“꺼져! 꺼, 스스스, 꺼져! 죽어!”

놈이 악다구니를 쓰며 페인 스피어와 융합한 팔을 내게 휘두른다.

저걸 그대로 맞아주면 안 된다. 나의 재생력 특성이 막히는 것도 있지만, 내 생명력을 네크로펙터가 빼앗기 때문이다.

네크로펙터는 설정상 블랙 슈라우드에게 생명을 바치면서 탄생한 존재다.

그래서 생명력을 강탈해 블랙 슈라우드에게 바칠수록 원래의 모습, 즉 죽기 전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강화 효과는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불안정 악영향은 반대로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즉, 네크로펙터와 싸울 때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좋지 않다.

나는 몸을 옆으로 크게 틀어 놈이 휘두른 페인 스피어를 피해냈다. 거기서 놈은 내가 피할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한 듯 페인 스피어를 갈고리 모양으로 변화시켰다.

‘어림없지.’

하나 나 또한 놈의 공격을 읽고 있었다.

놈의 갈고리가 내 허벅지를 찍기 직전, 내 전투용 팔 끝에서 흡혈 촉수가 튀어나와 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익! 죽어!”

내 공격에 맞고 날아가던 도중 놈의 왼쪽 팔이 빛났다.

‘위험!’

나는 급히 머리를 숙여서 뒷머리에 뻗어 있는 왕관을 닮은 갑각을 바짝 세웠다.

네크로펙터의 왼팔의 입에서 가느다란 검은 열선이 발사되어 내 머리를 강타했다.

‘윽!’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난 나는 연이어 닥쳐오는 열선을 보고 재빨리 몸을 날렸다.

5개의 검은 열선이 나를 찢어 버리기 위해 내 뒤를 바짝 쫓아왔다.

‘용인화 때문에 에너지 소비 제한이 없어.’

정신이 멀쩡할 때보다는 파괴력이 확실히 떨어졌지만, 저렇게 여러 발을 동시에 쏘니 파괴력이 떨어진 것도 딱히 단점이 아니다.

열선이 주변에 있는 집, 가로수, 도로, 자동차 등등 모든 것을 파괴하며 나의 꼬리 끝을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죽어! 죽어! 죽, 컥!”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지르며 열선을 쏴대던 놈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나도 돌아보니 보라색 그물이 놈의 몸 전체를 옥죄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그물을 던진 자는 26호였다.

26호의 촉수가 까딱거리자 놈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크아아아아악!”

놈이 괴성을 지르며 팔에 힘을 주자 26호가 건 속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26호는 지체 없이 다른 공격으로 전환했다. 녀석의 긴 촉수가 땅을 부수고 파고들었다.

“죽여, 죽여 버리겠…큭!”

놈이 타겟을 26호로 바꿔서 그 자리에서 열선을 쏘려고 했지만, 놈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땅에서 굵은 촉수들이 솟아올라 그의 팔을 노렸기 때문이다.

놈은 급히 왼팔을 회수하고 뒤로 뛰어올랐다.

후퇴하면서 오른팔을 휘둘렀지만 촉수가 순식간에 작아지는 바람에 놈의 공격은 허공을 베는 데 그쳤다.

‘많이 늘었어.’

씨 데몬은 촉수를 운용할 때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26호는 이전에도 촉수를 능숙하게 잘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성장한 뒤에도 무리 없이 전투에 잘 활용하고 있었다.

둘이 공방전을 펼치던 사이, 나는 빠르게 움직여 네크로펙터와의 거리를 좁혔다.

나는 놈이 땅에 착지한 순간을 노려 크게 숨을 들이켰다.

숨을 내쉬는 것과 함께 기다란 화염 줄기가 놈의 얼굴을 태웠다.

“캬아아악!”

네크로펙터는 모든 유형의 공격에 대한 피해를 반만 받지만 그렇다고 고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온몸에 휩싸인 화염 속에서 놈이 머리를 부여잡고 몸부림쳤다.

‘작열통이 그렇게 아프다던데.’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놈의 눈 4개가 일제히 불길에 쏠렸다. 리플렉션이 발동하고 화염이 반사되어 나와 놈의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놈이 불에 집중하는 틈을 이용, 나는 등에 달린 뼈 칼날 팔을 놈의 어깨를 찔렀다.

아니, 찌르려고 했다.

4개의 눈 중 하나가 내 뼈 칼날을 주시하자 허공에 리플렉션이 추가로 발동되며 내 공격을 튕겨 냈다.

등의 팔이 가한 공격이 밀려나며 내 몸이 흔들리는 사이, 놈의 창이 검은 연기와 붉은 불길을 가르며 쏘아졌다.

창의 목표는 내 손.

현재 꼬리를 잃어서 회복되지 않은 내게 남은 무기는 3개의 전투용 팔과 등에 달린 뼈 칼날 팔이다. 그중 내가 제일 자주 사용하는 전투용 손부터 무력화시킬 계획이리라.

하지만 놈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창끝이 손바닥을 꿰뚫기 직전, 내 손이 보라색으로 빛났다.

창은 아지랑이를 찌르듯 내 손을 뚫고 지나갔다.

“?!”

정신이 나간 상태이지만 지금 것은 제법 당황했는지 놈이 눈을 부릅뜬다.

나는 멀쩡한 손의 손톱을 바짝 세워 놈을 아래부터 위 방향으로 벴다.

아쉽게도 이번에도 실패. 놈이 물러나면서 리플렉션을 쓰는 바람에 내 공격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놈의 왼팔에서 채찍이 튀어나와 내 팔을 타격하려 했지만, 26호가 이를 막았다.

속박이 놈의 팔을 붙잡고 있는 사이, 26호의 촉수가 뒤통수를 동시에 노렸다.

“이, 이! 빌어, 먹을, 개, 개, 개잡놈들이!”

네크로펙터가 분노에 찬 괴성을 지르며 왼팔에서 열선을 발사하려고 했다.

나는 머리를 크게 흔들어서 뿔로 놈의 왼팔을 내리쳤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놈의 팔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열선이 막힌 놈이 나를 발로 걷어찼다.

원래 지니고 있었던 특성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놈의 각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내 복부가 움푹 파이고 내 몸이 뒤로 확 밀려났다.

이어서 놈의 페인 스피어가 나를 찌르기 위해 날아들었다. 나는 무너진 자세에서 전투용 팔을 들어서 간신히 공격을 막아 냈다.

‘벌써 두 번째로 공격을 허용했어.’

놈의 힘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지금 공격으로 인해 내 팔의 방패 갑각이 반쯤 잘려 나갔다.

“으, 으으, 이, 이게 무슨…?”

정신도 회복되어가는 것인지 놈의 눈에 한순간 빛이 돌아왔다.

“으, 스스스, 나, 나는 특별, 특별, 특별특별특별특별….”

아직 불안정 효과를 억누를 정도로 많은 생명력을 흡수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놈의 눈이 다시 탁한 상태로 돌아갔다.

‘근접전으로는 쉽지 않겠어.’

근접전을 벌이는 중에는 어떻게 하든 적의 공격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친다. 그럴수록 놈의 빠르게 강력해지고.

‘그렇다고 26호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도 어려워.’

녀석에게는 네크로펙터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만한 공격 수단이 없다.

인간과 싸울 때처럼 속박으로 목을 부러트리는 방법은 네크로펙터에게 통하지 않는다. 26호가 완전히 성장했으면 모를까 지금은 힘이 부족하다.

톱날 촉수도 양날의 검이다. 촉수로 네크로펙터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지만, 반대로 녀석에게 공격당하면 26호에게 큰 손해다.

또한 26호는 나처럼 단단한 외피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네크로펙터의 가벼운 공격으로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방식을 바꿔야겠어.’

처음에는 제일 위협적인 무기인 왼팔을 무력화시킬 생각이었지만 상황을 봤을 때는 쉽지 않아 보였다.

놈은 이성이 없어도 자기 약점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시간이 없어. 이번 공격에 모든 것을 걸자.’

“이젠 죽어! 죽어!”

놈이 광견병이 걸린 개마냥 이빨을 드러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놈이 휘두른 창이 갈고리로 화해 나를 내려찍으려 한다.

아까보다 빨라진 움직임 때문에 나는 아슬아슬하게 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땅에 박힌 갈고리를 발로 차서 놈의 자세를 무너트린 나는 그 틈을 이용해 26호를 쳐다 봤다.

내 시선을 느낀 녀석이 짤막하게 빛을 내뿜었다.

어떤 계획이든 따르겠다는 뜻.

‘좋아.’

나는 발을 굴러 몸을 뒤로 띄웠다.

땅에 박힌 갈고리를 변형시켜 내 발목을 노리던 놈은 자기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혀를 찼다.

혀를 차는 것을 보니 확실히 전보다 이성이 돌아온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놈은 거리를 벌린 내게 열선을 쏘기 위해 왼팔을 번쩍 들었다. 그때 놈의 뒤쪽 땅이 갈라지더니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26호의 촉수가 네크로펙터의 왼팔을 휘감았다.

놈이 리플렉션으로 촉수를 튕겨 내려고 했지만, 그 순간 파괴된 도로 아래에 깔려 있던 철근 파편들이 그의 눈에 날아가 꽂혔다.

“캬아아아악!”

원래는 관통시키려는 의도였던 것 같지만 놈의 내성 때문에 눈을 찌르는데 그쳤다.

“샤아아아아아!”

급소를 공격당한 놈이 비명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오른팔로 촉수를 잡아 뜯어냈다.

맨살이 찢어지는 통증에 26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나를 안고 있는 녀석의 촉수에도 느껴질 정도로.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그렇게 외친 녀석이 촉수에 힘을 주더니 나를 하늘 높이 던졌다.

26호가 나를 던진 방향은 놈의 머리 위.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던 나는 고개를 틀어 놈의 정수리를 조준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이킥 브레스를 놈의 위에서부터 쏟아부었다.

“뭣?!”

이건 위험했다고 판단했는지 놈이 급히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못 가!」

26호가 전력을 다해 건 속박이 놈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그것은 지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사이킥 브레스가 놈에게까지 도달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놈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26호를 바라봤지만 이미 늦었다.

용의 불길이 네크로펙터의 몸을 무참히 휘감았다.

-

‘예상보다 적이 빠름!’

공중의 적에 대한 대공 사격을 이어가고 있던 레드는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가 코일건으로 쏘고 플라즈마가 응축된 텅스텐탄은 일반 총알에 비하면 큰 것이 분명하지만 이 어둠 속에서 결코 잘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녀야 사이킥 컨트롤 웹 덕분에 코일건에서 발사된 총알도 감지, 조종할 수 있지만 적은 그렇지 않다.

우주도시의 밤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밝은 편이라고 해도 저 그린 갤러곤처럼 일일이 총알을 다 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코드 레드는 다른 그림자들과 함께 갤러곤과 싸운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상대하는 녹색 악마만큼 날쌔고 두려운 존재는 없었다.

‘지원 시급!’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영적 조율을 써서 블랙을 강제로 소환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전부 실패했다.

블랙에게서는 어떠한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이 가리키는 사실은 하나뿐.

블랙이 네크로펙터 모드로 들어가 있다는 것뿐이다.

“큿!”

코일건에서 붉은빛이 들어오고, 탄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놈은 능력 없는 일반인이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상황.

불리한 상황이 그녀의 속에 잠들어 있던 감정을 일깨웠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

‘긴급 후퇴!’

그녀는 쓸모가 없어진 코일건을 내던지고 정신을 집중했다.

블랙에게 건 영적 조율을 해제하고 그녀의 동료 코드 블루를 불러내기 위함이었다.

원래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지만, 현재 그녀는 오랜만에 맛보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에서 빛나는 보라색 헤일로를 향해 녹색 유성이 빠르게 접근해 왔다.

‘아직 여유 있음.’

좀 전까지 싸우면서 그린 갤러곤이 움직이는 속도를 계산했다.

놈의 속도로는 코드 블루가 소환되기 전에 그녀 앞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였지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린 갤러곤은 아직 전속력을 다 내지 않았기에.

“?!”

놈의 날개가 녹색으로 강하게 빛나더니 속도가 훨씬 올라갔다.

급속도로 빨라진 놈의 몸 뒤로 충격파가 발생했다. 공기를 찢는 굉음이 울려 퍼지고 모뉴먼트 외벽에 있는 모든 창문들이 파르르 떨렸다.

굉음과 함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던 놈이 거기서 추가로 날개를 뒤로 홱 접었다.

가속도가 붙은 상황에서 표면적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자 놈의 속도는 그야말로 혜성과도 같았다.

전망대가 위치한 50층의 창문들이 충격파로 인해 모조리 깨지고, 전망대 내부에 있던 의자들이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오판.’

어느새 코앞까지 도달한 놈의 보라색 눈동자를 본 레드는 눈을 감았다.

그린 갤러곤은 그녀의 몸을 산산이 파괴한 뒤로도 전망대 뿐만 아니라 층 전체를 뚫고 지나갔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린 갤러곤이 모뉴먼트 상공에서 다시 날개를 편 순간, 저 멀리에서는 또 다른 용의 불길이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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