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0
아드하이를 뒤쫓는 초계함은 총 3척.
40m 길이의 직사각형 상자를 닮은 저 우주선이 메가콥에서 활용되는 소형 초계함 모델 아이기스다.
물론 소형이라고 해도 플라즈마 포대가 4개씩이나 달려있기에 무턱대고 덤빌 수 없다.
‘어떻게 할까.’
주변에는 블랙이 사이킥 브레스 열선으로 파괴한 폐허들뿐이라서 숨기에 적합하지 않다.
‘도망칠 거면 애들이 이곳으로 온 지하 통로를 이용해야 할 것 같은데.’
한데 이 상황에 지하로 도망치는 것도 딱히 좋은 선택은 아니다.
당장 아드하이가 추격을 당하고 있는 상태다. 괜히 무리하게 숨으려다가 잘못해서 플라즈마탄을 맞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더군다나 아드하이는 다쳤어.’
녀석의 몸에 사람의 피와 녀석의 피가 뒤섞인 냄새가 난다.
녀석을 여기서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이 이상 부담을 줄 수 없다.
‘시간을 벌려면 뭔가 수단이 없을…아.’
그러고 보니 내가 정신을 잃었을 때, 26호가 내게 블랙과 컬트 시체를 먹이로 던져 줬다.
‘블랙을 먹은 뒤 분명 텍스트박스가 떴었어.’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뭐가 눈앞에 아른거린다는 것만 알았지 구체적으로는 살펴보지 않았다.
나는 텍스트박스를 서둘러 확인했다.
「포식 효과 발동! ‘용의 위엄’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코드 블랙’의 생물 특성 중 ‘용의 위엄’을 탈취.」
「‘용의 위엄’을 적용하시겠습니까?」
「포식 효과 발동! ‘페인 스피어’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코드 블랙’의 생물 특성 중 ‘페인 스피어’를 탈취.」
「‘페인 스피어’를 적용하시겠습니까?」
「포식 효과 발동! ‘저항력’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코드 블랙’의 생물 특성 중 ‘저항력’을 탈취.」
「‘저항력’을 적용하시겠습니까?」
전부 강력한 특성이다. 게다가 그중 하나는 당장 내게 필요한 것들이다.
전부 수락하자 새로운 반투명 텍스트박스가 떠오르면서 내 몸에 변이가 시작되었다.
「‘용의 위엄’ 특성이 적용되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투시’와 융합 가능.」
「‘용의 위엄’과 ‘투시’ 특성이 융합. ‘공포의 주시자’ 특성으로 진화!」
「공포의 주시자: 특정 지성체 1명에게 형용할 수 없는 공포심을 주입합니다. 일정확률로 대상이 미칠 수 있습니다.
*추신: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페인 스피어’ 특성이 적용되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불의 숨결’와 융합 가능.」
「‘페인 스피어’와 ‘불의 숨결’ 특성이 융합. ‘부패 곰팡이 기관’ 특성으로 진화!」
「부패 곰팡이 기관: 적의 자연 치유 능력을 악화시키고 오염시키는 곰팡이 포자를 토해냅니다.
*추신: 부패는 순환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이번 변이는 머리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눈가를 시작으로 근질거림이 머리 전체로 퍼져갔다.
외피의 표면이 움푹 들어가거나 튀어나오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졌고, 뿔 또한 머리 앞쪽으로 휘어지고, 겉에 소용돌이 모양의 무늬가 생겼다.
전에 초능력 강화 타입을 획득했을 때, 내 머리를 덮고 있는 갑각 위에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졌었다. 그 위에 새로 눈동자를 닮은 문양들이 추가되었다.
‘공포의 주시자’ 라는 이름답게 머리 안에서 수많은 눈들이 외부를 감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변화는 머리 위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내 목 안에 있던 발화기관이 소실되고, 대신 미생물을 생산, 발사하는 기관이 새로 생겼다. 새 기관이 생긴 덕분에 목 전체가 이전보다 훨씬 굵어졌다.
‘저항력’ 특성은 몸 내부에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라 겉으로는 딱히 드러나지 않았다.
‘좋아.’
새 특성을 통해 진화를 끝마친 나는 26호를 불렀다.
[즈으으으 즈즈 즈즈즈 즈즈(아드하이를 쫓는 사람을 잡아야 해)]
「사람? 부속지 4개가 달린 먹이를 말하는 거야?」
[즈(응)]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었기에 지적하지 않았다.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사람이 저 금속 상자 안에 타고 있어)]
「응. 느껴져.」
[즈 즈즈즈 즈즈즈(나 혼자서는 전부 못 잡아)]
「응응. 내가 도와줄게!」
이해가 빠른 녀석이라 다행이다.
초계함이 하나면 모를까 3척이나 있으므로 나 혼자 상대하기 쉽지 않다. 여기서는 26호가 도와줘야 한다.
[즈즈즈 즈즈 즈즈(네게는 힘이 있어)]
「힘?」
[즈즈즈 즈즈즈즈 즈(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힘)]
‘심해의 공포’ 특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초계함에 탑승한 승무원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게임에서 씨 데몬이 탱커나 서포터한테 심해의 공포를 집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
이때 걸리는 심해의 공포 디버프 효과는 엄청나게 강력하므로 철저히 내성을 갖추더라고 해도 막을 수 없다.
‘이곳은 현실이기에 다를 수도 있지만….’
또한 이곳과 초계함의 위치 간에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설령 26호가 심해의 공포를 쓴다고 해도 과연 배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도 없어.’
26호는 아직 작지만 그래도 씨 데몬이다.
‘녀석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녀석은 머리가 좋은 녀석이다. 요령만 깨우친다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거다.
[즈즈 즈즈즈 즈즈(가진 힘을 집중해)]
「응. 으으으으!」
26호가 몸을 파르르 떨며 집중하는 동안, 나는 아드하이를 살펴봤다.
녀석은 초계함을 달고 이곳 주변의 상공을 맴돌고 있었다. 초계함의 포격을 신들린 비행으로 연신 피해내고 있지만, 점점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저래서는 얼마 못 버텨.’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목표를 명확히 하고 붙잡고 싶다고 생각해)]
「붙잡아?」
[즈 즈즈즈 즈즈(응. 절대로 놔주지 않겠다고)]
「해볼게.」
사실 내가 말한 것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저 누군가를 노릴 때 보조기관에 감각을 집중하는 감각을 간략히 설명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26호에게는 꽤 도움이 됐나보다.
녀석의 몸 위에서 요동치던 알록달록한 색체의 기운이 한 곳에 뭉치더니 거대한 눈의 형상이 되었다.
「됐어!」
26호가 기쁨을 담아 파장을 쐈다.
그 순간, 보조기관이 빳빳하게 서며 내게 경고했다.
내 앞에 매우 위험한 존재가 있다고.
전투용 팔과 다리의 근육이 긴장으로 수축되고, 내 몸 안에 흐르는 산성피의 혈류가 빨라진다.
이 기분은 마치 시현 유진이나 블랙을 처음 조우했을 때와 똑같았다.
‘성공했네.’
26호가 쓴 심해의 공포 효과가 내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리라.
내 생각대로 나의 심장을 조이던 두려움은 금세 사라졌다. 내가 심해의 공포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해제한 것이다.
[즈즈즈(잘했어)]
「나 대단하지? 대단하지?」
[즈즈(그래)]
나는 기뻐하는 26호를 쓰다듬었다.
내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면 일반 승무원들은 결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즈즈즈즈 즈즈즈(아까처럼 날 던져 줘)]
「응.」
녀석이 굵은 촉수로 내 허리를 휘감았다.
「간다!」
날 잡고 있던 촉수가 크게 흔들리면서 내 몸을 공중 위로 밀어냈다.
사냥의 표상으로 변신했을 때는 크기도 꼬리 빼고 5m에 달했고 무게도 많이 나가서 26호가 나를 높이 던질 수 없었다.
하나 지금은 크기와 무게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초계함이 있는 위치까지 날아갈 수 있었다.
공중에서 나는 전투용 팔을 뻗어 흡혈 촉수를 초계함 쪽으로 날렸다.
붉은색 촉수가 함선에 닿자마자 표면에 나 있는 작은 톱날들이 함선 외벽에 파고들었다.
몸이 고정된 상태로 나는 흡혈 촉수를 회수하면서 초계함에 달라붙었다.
내가 올라탔다는 사실을 선원들이 인지했는지 초계함 좌측에 배치된 포탑 2대가 나를 겨냥했다.
나는 바짝 엎드려 첫 탄을 피해내고, 가까이 있는 포탑을 향해 기어갔다.
포탑에 접근한 나는 유령 발톱을 활성화한 뒤 포탑 안쪽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톱 끝부분만 유령 발톱을 해제해서 전기 회로가 있는 부분을 끊어냈다.
‘일단 하나.’
나를 조준하던 포탑이 오류를 일으키고 곧 정지했다.
남은 포탑이 나를 쏘려고 했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이미 해두었다.
내 등에 2열로 난 골판이 서로 맞부딪치며 기계에 장애를 주는 파장을 내보냈다.
파장에 당한 플라즈마 포탑의 접합부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바로 무력화되었다.
하이재킹에 성공했으니 저 포탑의 제어권은 이제 내 손에 있다.
반대편에 있는 포탑 2대는 내가 외벽에 붙어 있는 자리가 사각이다 보니 나를 쏠 수 없었다.
‘외부 위험 요소는 이걸로 끝.’
외벽 안쪽에서 선원들이 외치는 말들이 보조기관을 통해 감지된다.
적들은 예정에 없던 새로운 적 때문에 당황한 상태다.
‘아직 부족해.’
이쪽에서 다른 초계함에 연락해 나를 쏘라고 하면 나는 끝장이다.
그렇게 못하도록 더 흔들어놔야 한다.
내 보조기관이 꿈틀거리며 승무원들 중 몸에서 금속 냄새가 많이 나는 자를 찾기 시작했다.
보조기관이 일하는 동안, 나는 하이재킹으로 포탑을 조종해 다른 함선을 겨냥했다.
내부에서 비명과 욕설이 좀 전보다 한층 심해졌을 때, 포탑이 강렬한 녹색 에너지 덩어리를 토해냈다.
에너지 구체는 그대로 날아가 다른 초계함의 꽁무니 부근을 강타했다.
피격당한 초계함은 크게 흔들렸지만 비행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확실히 내가 직접 조종하는 것은 어렵네.’
그사이 보조기관이 내가 바라던 목표물을 찾아냈다.
나는 그를 대상으로 공포의 주시자를 발동시킨 뒤, 초계함 옆면으로 기어갔다.
승무원들이 타고 내리는 문 앞에서 나는 유령 발톱으로 안쪽에 있는 단말기를 파괴했다.
‘빨리 끝내자.’
반쯤 열린 문을 잡아 뜯어낸 나는 초계함 안쪽으로 진입했다.
-
“젠장! 좌측 제1포대 무력화!”
“좌측 제2 포탄 또한 통제 불가! 어떻게든 해 봐!”
“사격보조 AI 시스템을 끈 다음 다시 재활성화하는 수밖에 없어!”
방위함대 소속 1408번 초계함 내부는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좀 전까지 녹색 비행물체를 쫓고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적이 그들을 급습했기 때문이다.
“놈은 어디 간 거야! 우측 카메라에는 안 보여!”
“상측 카메라에서 발견! 뭐 하는 거지?”
“뭘 하든 간에 놈을 떨어뜨려야 해!”
상황실의 승무원들이 괴물이 어떻게 할지 대책을 강구하던 중에도 배에 탑승한 방위군들은 주변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13번 병사도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언제 터질지 모를 긴급사태에 대비해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초계함 내부의 불이 전부 꺼졌다.
이어서 시끄럽던 배 안에 소음도 한순간에 싹 사라졌다.
“어?”
당황한 13번 병사는 가우스 소총을 들고 전방을 주시했다.
“뭐, 뭐야?”
잠시 후 비상등이 켜지면서 함선 안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에 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승무원들이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로 차가운 금속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끔찍한 외형의 괴물들이 시체를 뜯어먹고 있었다.
“으, 으아아악!”
“이봐 왜 그래?”
그가 비명을 지르자 옆에서 누군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동료인가 싶어 돌아본 13번 병사는 헉 하고 숨을 멈췄다.
시체를 뜯어 먹는 괴물과 똑같이 생긴 존재가 그를 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가에서는 검은 피를 흘리고 있고 입은 귀까지 찢어진 괴물이 그에게 이빨을 들이밀었다.
“주, 죽어어어어!”
13번 병사는 가우스 소총으로 괴물을 쐈다.
복부에 탁구공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생긴 괴물이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자 시체를 먹고 있던 괴물들이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
총구에서 불을 뿜을 때마다 괴물이 한 마리씩 쓰러졌다.
동료가 죽었다는 것을 안 것일까. 다른 방에서 수많은 괴물들이 나타나 이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13번 병사가 그들을 향해 소총을 조준하려는데, 어디선가 금속탄이 날아와 그의 머리를 꿰뚫었다.
머리가 꿰뚫린 뒤에서야 그는 자기가 죽인 괴물이 누군지 알았다.
“씨발! 이 미친 새끼가!”
“이봐! 정신 차려! 조금만 더 버텨!”
“의무병!”
“본부! 여기는 1408호! 13번 병사가 미쳐서 아군을 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후회할 틈도 없이 13번 병사의 정신은 어둠 속에 잠겼다.
-
‘성공이야.’
공포의 주시자에 당한 병사 덕분에 배 안에 있는 20명 중 7명이 사망했다.
‘심해의 공포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지만 충분히 쓸 만하지.’
공포의 주시자는 1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심해의 공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심해의 공포와 달리 대상을 미치게 만드는 효과가 확률로만 발동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충분히 강력한 특성이다.
‘특히 지금 같이 적을 교란시킬 때는 아주 탁월하지.’
적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 나는 초계함 내부 통로를 달리고 있었다.
공포의 주시자 때문에 정신이 나간 병사가 상황실에서 총기를 난사한 덕분에 방위군들은 다 그쪽에 몰려 있다.
그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나는 통로를 질주하며 만나는 승무원들을 줄여나갔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켁!”
무릎을 꿇고 비는 승무원의 머리를 뽑아버린 나는 그의 머리를 한 번 씹고 그대로 삼켰다.
시체를 먹으며 상황실로 달려가는데 저쪽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텅스텐탄이라. 어림없지.’
관통탄이 아닌 통상탄으로는 내 외피를 뚫을 수 없다.
나는 군인들이 숨어 있는 상황실 문 안쪽으로 머리를 향한 뒤, 입을 크게 벌렸다.
내 목 안쪽에 있는 미생물 생산기관이 작동하면서, 입 밖으로 곰팡이가 가득찬 덩어리를 토해냈다.
“으악! 씨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곰팡이 포자가 군인 머리 위를 지나 상황실 안쪽에 떨어졌다.
음식물쓰레기가 담긴 비닐을 바닥에 던진 것 같은 소리가 나며 덩어리가 폭발했다.
“이게 뭐…우웨에에에엑!”
“크허허헉! 크어어어어억….”
덩어리의 파편을 맞은 병사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페인 스피어와 불의 숨결이 융합한 특성인 부패 곰팡이 기관은 재료들과는 사뭇 다른 효과를 지닌다.
페인 스피어의 재생력을 악화시킨다는 특징, 입으로 뭘 토해낸다는 불의 숨결 특징만 계승되고 나머지는 재료들의 효과와 완전히 다르다.
‘애초에 감염 관련 융합 특성이니까.’
부패 곰팡이 기관은 상처를 괴사, 부패시키는 곰팡이 포자를 만드는 특성이다.
포자가 터지면 안에 있던 곰팡이가 밖으로 나와 다른 생물을 감염시킨다.
감염을 막으려면 곰팡이를 제거하는 항진균제나 치료제를 써서 치료해야 한다.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전투 중에는 힘들지.’
게임에서 부패 곰팡이 기관의 곰팡이에 플레이어가 맞으면 바로 공황 상태가 뜬다. 설정상 곰팡이에 당한 생물은 실시간으로 전신이 썩어들어가는 고통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혼자서 응급처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으, 으게에에에엑….”
“꺼으으으….”
극심한 통증에 구토하거나 비명을 지르던 군인들은 모두 숨만 간신히 쉬는 상태가 됐다.
그들의 얼굴은 손톱만한 농포로 뒤덮여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땀과 피, 고름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일부는 벌써 신체 내부까지 썩어들어간 것인지 코와 입에서 검은색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함선 내 인원이 완전히 무력화된 것을 확인한 나는 상황실에 들어갔다.
‘직접 조종하면 좋겠지만 군함은 나 혼자 불가능해.’
소형 탐사선 정도면 모를까 군함에 속하는 초계함 모델부터는 내 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종할 수 없다. 기껏 해야 AI를 이용한 자율 항해 정도만 가능할 뿐.
‘아쉽지만 이거라도 해야겠지.’
나는 레이더에 표시된 아군 초계함 방향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AI에게 전속력으로 돌진하라고 입력했다.
초계함의 엔진이 으르렁거리고, 내가 서 있던 상황실이 크게 흔들렸다. 초계함이 목표를 향해 맹렬히 전진하는 동안, 나는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초계함 외벽으로 기어 나와 보니 남은 배 2척 중 하나가 이미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중이었다.
지상에서 26호가 심해의 공포로 승무원들을 교란시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올라탄 초계함과 적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적들은 이쪽 함선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뒤늦게 알고 급히 방향을 선회했다.
배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갈 때, 나는 흡혈 촉수를 뻗어 다른 초계함으로 갈아탔다.
곰팡이에 감염된 군인들을 태운 초계함은 조종사를 잃은 채 저 멀리 도시를 감싸는 돔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어른!」
멀리서 아드하이가 날 보고 파장을 쏜다.
‘인사는 이따 하고.’
남은 것은 내가 올라탄 이 배 하나뿐.
하나만 남은 소형 초계함, 그리고 안에 있는 20명의 승무원. 그들이 마지막 적이다.
만약 적들이 피해를 무릅쓰고 내가 타고 있던 초계함을 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취했고,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그저 유린당하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