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94화 (95/400)

Ep.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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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원자로에 폭탄을 설치하고 나온 시현 유진은 도시 위에서 펼쳐지는 함포전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의문에 대답해 줄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누구도 이 우주도시에서 전쟁이 터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원자로에 지원 부대가 오지 않기에 이상하다 싶었는데.’

시현은 이곳에 오기 전, 암시장에서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가 완공되기 전에 제작된 임시지도를 구했다.

건설노동자들이 제작한 지도로 과거 도시 건설 중 노동자들이 임시로 이용했던 통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물론 노동자라고 해도 원자로에 직접 방문할 일은 드물었기에 해당 비밀통로는 원자로와 이어져 있지 않았다.

대신 비밀통로 중 일부분이 원자로까지 가는 지하통로와 가까웠기에 시현은 그곳을 노렸다.

그녀의 계획은 다름 아닌 원자로의 지하통로에 가까운 곳의 금속 벽을 뚫고 잠입한다는 것.

그렇게 시현과 그녀의 하수인들은 계획했던 대로 비밀통로를 통해 무사히 원자로로 향하는 지하통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시현의 예상대로였지만, 원자로에 도착한 이후부터 그녀가 상정했던 상황과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원래상 원자로 수비 부대에 이상이 발생했을 시, 추가 지원 부대가 도우러 와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대비도 해놨지만, 그녀가 예상한 지원군은 폭탄 설치가 완료될 때까지 오지 않았다.

‘이제 보니 왜 오지 않았는지 알겠군.’

정확히 말하면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올 수 없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폭탄을 이용한 테러 계획은 손쉽게 완수할 수 있었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폭탄이 터지기 전 아키라가 빠져나가겠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키라 유진만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그를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아키라 유진은?”

“확인해보니 유진의 기함은 아직 이곳에 있습니다.”

테러 계획이 세워지기 한참 전, 시현 유진은 그림자 일을 수행하면서 아키라의 기함에 신호 장치를 심어 놨다. 그가 어디로 이동하든 바로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왜 안 떠났지?’

그녀의 머리에 심어진 아키라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는 매우 조심성이 많은 자다. 도시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면 CEO 체면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고 진작 떠났을 만큼이나 말이다.

이유는 불명이나 아키라 유진은 그녀의 기억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는 떠나지 않고 아직 이 도시에 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

“먼저 탈출하도록. 나는 할 일이 있다.”

“예?”

“아키라 유진은 이곳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아가씨. 저희도 같이 가겠습니다.”

민석의 말에 시현은 고개를 저었다.

“코드 블랙은 나만 상대할 수 있다. 너희가 같이 있다면 그녀에게 몰살당할 테니 불허한다. 탐지기를 내게 넘겨라.”

“…아가씨.”

목숨을 걸고 아키라를 제거하겠다는 말에 민석이 묘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민석의 눈에 기쁨보다는 의심에 가까운 감정이 아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고, 그의 표정이 곧 감격스럽다는 얼굴로 바뀌었다.

“아가씨, 무운을 빕니다.”

그에게 탐사기를 받은 시현은 아키라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놈만 정리하면 다음은….’

민석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지만 시현은 그가 자신을 못 미더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본 시현 유진은 복제품인 그녀에게 뭔가의 금제수단을 걸어 놨고, 그 고삐를 민석이 쥐고 있다는 사실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녀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눈빛은 시현 유진과 조금도 흡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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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도시가 불에 의해 정화되고 있다.

신화에서는 신이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불의 비를 내리곤 한다.

반면, 이곳에서는 인간의 손으로 창조한 빛의 포화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확실히 에저튼의 장기는 함선이야.’

지금까지 기사단과 자주 싸웠기에 그들의 강점이 육상병력에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육상 전투에 강세를 보이는 가문은 유전자 개조 병사를 부리는 유진 가문과 강화복으로 유명한 가르멜다 가문.

에저튼의 전문 분야는 어디까지나 함선 개발 쪽이다.

‘게임에서도 에저튼 기사단은 특전에 가까웠지.’

실제로 에저튼 군함은 단 한 척만으로 다수의 티앤씨 전함을 압도하고 있었다.

함포와 실드만 우월한 것이 아니었다. 크기도 훨씬 큰데 기동성까지 좋았다. 덕분에 티앤씨 측 배가 훨씬 많음에도 크게 밀리는 것 없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예전 생각이 나네.’

성체가 될 때쯤이면 가진 특성과 타입도 매우 많아지기 때문에 함대와 싸워 이길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생긴다.

나 같은 경우는 적이 많았던 터라 준성체 때부터 플레이어의 함대와 싸워야했지만.

‘아직은 너무 약해서 무리야.’

초계함 한 두 척을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이 상태로는 저 싸움에 끼어들 수 없다. 다수의 전함과 맞서 싸우려면 더 진화해야 한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두 가문 모두 우리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이 틈에 도망쳐야 한다.

[즈즈즈즈(모두 달려)]

나는 덴버를 어깨에 둘러멘 뒤 몸을 낮춰 반쯤 기다시피 하며 달렸다. 전투용 팔 3개와 다리를 모두 사용해 뛰고, 그런 나의 뒤를 26호와 아드하이가 따라왔다.

“헛?! 놈이 도망친다!”

멍하니 함대전을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우리를 쫓아왔다.

기사들을 피해 달리다 보니 어느덧 곳곳마다 놓여 있는 컨테이너 더미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유진의 하수인들과 싸웠던 항만 지구의 컨테이너 단지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은 돔 내벽의 차폐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배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

‘선착장이 멀지 않아.’

나는 달리는 중에 26호에게 파장을 쐈다.

[즈즈 즈즈즈(저걸 쓰러트려)]

「응!」

26호의 몸에서 촉수 몇 가닥이 솟아오르고 컨테이너를 향했다. 녀석의 촉수 끝에서 보라색 줄기가 뻗어가 컨테이너에 찰싹 달라붙었다.

「으으!」

녀석이 계속 뛰면서 힘을 주자 쌓여 있던 컨테이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미친! 피해!”

“전원 제트팩 활성화!”

뒤에서 우리를 쫓아오던 기사들의 욕설과 비명이 들린다. 기사들 모두 어썰트팩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대부분은 하늘로 날아올라 컨테이너를 피해냈다.

“으악!”

“악!”

다만 일부 반응이 느린 자들은 머리 위에서 떨어진 컨테이너에 깔려 버렸다.

기사들의 추적을 한발 늦췄지만, 대신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항만 지구 주변을 돌아다니던 소형 초계함 한 척이 우리를 발견했다.

「초계함이 이쪽으로 온다!」

「모두 주의하라!」

통신기에서 기사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기사들도 이쪽으로 오는 초계함을 알아차린 것 같다.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따라붙은 초계함이 공격을 개시한다.

목표는 우리와 우리를 쫓는 기사들.

직사각형 모양의 배 양쪽에 달린 4개의 포문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컨테이너 사이를 달리는 우리의 머리 위에서 플라즈마탄의 비가 내렸다.

플라즈마탄이 떨어질 때마다 근처에 있던 컨테이너가 폭발로 인해 하늘로 치솟았다.

우리 중 상대적으로 피격 면적이 큰 26호가 플라즈마탄에 맞을 뻔했지만, 그때마다 아드하이가 퍼플 라이트닝을 써서 허공에서 탄환을 기폭시킨 덕분에 큰 피해는 없었다.

「이러다가 우리가 먼저 당하겠소!」

「큭! 조를 나누겠네! 반은 초계함을 부탁하오!」

초계함이 거슬렸는지 우리를 쫓던 기사들 중 일부가 추적을 멈추고 새로 나타난 적에게 달라붙었다.

기사들이 날아다니면서 볼트를 쏴대자 초계함의 외벽이 터져 나갔다. 그러다가 누구 한 명이 초계함의 포대 하나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포대 하나를 잃은 초계함은 우리를 쫓는 대신 비행 중인 기사들에게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시작했다.

3개 남은 포대가 쉬지 않고 움직이며 기사들에게 녹색 에너지탄을 갈겨댔다.

‘오히려 잘 됐어.’

초계함이 끼어든 덕분에 우리를 쫓는 기사의 수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저들만 속이면 돼.’

마음 같아서는 전부 죽여서 먹어 치우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마땅치 않다.

우리도 방위함대의 타깃이기 때문에 기사랑 싸우다가 초계함이 전함이라도 부른다면 매우 위험해진다.

‘적당한 곳에서 떨어뜨려놔야 해.’

나는 도망치면서 보조기관에 집중했다.

턱 끝에 난 가느다란 촉수가 나의 의지에 따라 부지런히 주변에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수색하기 시작했다.

마침 가까운 거리에 컨테이너를 쌓아두는 대형 창고가 있다.

‘저기가 괜찮겠어.’

[즈즈즈(이쪽으로)]

나는 애들을 데리고 선착장 근처에 있는 창고 내부로 진입했다. 안에는 수많은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었고, 곳곳에 물류 운반을 위해 설치된 크레인들이 보였다.

‘좋아. 장애물이 많아.’

여기라면 적들을 기만하는 데 충분하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모두 반대편으로 나가)]

「큰애기는?」

[즈즈즈즈(할 일이 있어)]

애들을 먼저 보낸 나는 컨테이너 뒤에 숨어서 서둘러 작업을 개시했다.

기사들은 우리가 커다란 건물 안에 숨어 버리자 당황했는지 건물 내로 진입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이 틈에 강화복을 해제해야 해.’

원래 게임에서는 강화복도 플레이어의 장비로 취급되므로 벗길 수 없다.

하지만 여기는 현실.

물리법칙을 초월하는 유물급 장비가 아닌 이상, 기계로 된 강화복이면 물리적인 힘으로 벗길 수 있다.

나는 전투용 팔로 덴버의 몸을 보호하는 강화복의 외장갑을 뜯어냈다. 팔, 다리를 보호하는 장갑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 대충 해체했다.

‘동력원과 투구 부분만 조심하면 돼.’

나는 유령 발톱을 활성화한 다음 강화복 흉부 장갑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안쪽에 있는 전선과 기계 장치들을 피해 갑옷을 고정시키는 접합부만 일일이 잘라 냈다.

그렇게 하자 삶은 게의 등딱지를 분리하는 것처럼 깔끔하게 흉부 장갑이 앞뒤로 분리되었다.

나는 덴버의 몸을 분리된 갑옷에서 끄집어냈다. 맨몸의 그는 가볍고 얇은 재질의 전신 슈트를 입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투구를 벗기자 마구 흔들리는 그의 눈이 보인다.

내가 또 무슨 끔찍한 짓을 할지 걱정되는 것 같다.

걱정하지 않아도 곧 알게 될 거다.

‘여기서부터는 작은 팔로.’

나는 섬세한 작업에 효과적인 작은 팔로 갑옷의 동력원과 투구를 연결했다.

에이모프 특유의 초월적인 감각, 거기에 추가로 하이재킹 특성 덕분에 기계 장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기에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흉갑 장갑에 달린 동력원에 전원이 들어오면서 투구의 눈 부분에 있는 바이저에 붉은 불이 켜졌다.

나는 동력원이 장착된 흉부 장갑과 투구를 조심스럽게 들고 근처의 컨테이너 안에 숨겼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덴버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강화복 투구에는 신호칩이 있지.’

처음 덴버를 잡았을 때 꺼놓은 신호칩이 다시 켜졌다. 기사들이든 군함이든 어느 쪽이든 간에 덴버의 갑옷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터.

그렇게 내가 작업을 완료한 순간, 창고 입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군함으로부터 연락일세! 전하의 카메라가 활성화되었다고!”

“뭐라고?”

이 이상 망설일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아슬아슬했네.’

기사들은 나 대신 저 갑옷을 찾기 위해 창고 내부를 들쑤실 거다.

나는 부서진 장갑의 잔해에서 통신기만 챙겨서 반대편 출구로 몰래 빠져나왔다.

“읍읍!”

덴버는 어떻게든 부하들에게 알리기 위해 꿈틀거렸지만 소용없다. 그의 몸에서 신경독이 빠져나가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되니까.

창고에서 나오자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숨어 있던 애들이 나를 반겨줬다.

[즈(가자)]

아까 전 보조기관으로 괜찮다고 판단했던 배들 중 대부분이 이 도시를 떠났다.

남은 배는 기껏해야 서너 척 뿐.

‘서둘러야겠어.’

나는 맨몸의 덴버를 든 채, 애들과 함께 선착장의 부두를 향해 움직였다.

통신기로부터 기사들의 대화가 간간이 들려왔지만 그들은 아직 투구의 신호기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내가 여전히 덴버를 붙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투구만 따로 어느 컨테이너 안에 처박혀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하겠지.

‘이 컨테이너만 지나면….’

컨테이너 너머에 우리가 타고 갈 배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조기관을 이용해 배의 상태를 점검해 보니 뭔가 물건들을 급히 싣는 중이었다.

딱히 내가 우려할 만한 요소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컨테이너를 막 지나치려는 순간, 내 보조기관이 지이잉 하고 크게 울렸다.

「알 수 없는 위험이 건너편에 도사리고 있다.」

「■■■■이 나를 ■■■」

난데없이 포식자 감각이 발동했다.

‘방금 그건?’

나는 재빨리 컨테이너 뒤로 물러났다.

포식자 감각이 발동했는데 평소와 느낌이 달랐다. 영사기를 빠르게 돌리는 것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은 그대로였지만 이상한 노이즈가 껴있었다.

모자이크 처리라도 한 것처럼 뿌옇게만 보여서 뭐가 위험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즈즈(멈춰)]

「큰애기야? 왜 그래?」

「?」

나는 애들을 불러 세웠다. 범상치 않은 것이 컨테이너 너머, 배 근처에 있다.

지금까지 포식자 감각은 위협이 코앞에 닥쳤을 때 급하게 보여준 적은 있어도 방금같이 애매한 이미지로 보여준 적은 없다.

그 말은 둘 중 하나다.

상대가 포식자 감각을 속일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나, 혹은 포식자 감각으로도 파악 불가능한 강자라는 것.

‘…어느 쪽이든 쉬운 상대가 아니야.’

고민은 짧았다.

[즈즈즈 즈즈(다른 길로 가자)]

나는 저 배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적이 어떻든 간에 여기서 싸움을 시작했다간 배를 전부 놓치고 만다.

‘아직 다른 배가 한 척 남아 있어.’

원래 내가 택한 배보다는 한참 작지만 그 배도 딱히 나쁜 선택은 아니다.

나는 애들과 함께 왔던 길을 돌아서 다른 길로 달려갔다.

뛰면서 혹시나 뒤에서 수수께끼의 적이 달라붙지 않을까 계속 확인했지만, 우리를 따라오는 자는 없었다.

보조기관으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달리는 중에도 연신 뒤를 돌아봐야만 했다.

‘보조기관으로도 감지되지 않는 적이라니.’

다행히도 수수께끼의 적은 우리를 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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