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95화 (96/400)

E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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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총괄보안팀에서 무장경찰팀장의 직을 맡고 있던 재성 사뮤엘은 간신히 탈출선에 올랐다.

우주도시가 완전히 불바다가 되었고, 각 지구마다 치안이 엉망이 되었지만 그는 자기와 상관없다고 여겼다.

‘난 공무원일 뿐이야! 나보고 뭘 어쩌라고?’

그도 상급기관인 모뉴먼트에 어떻게 할지 연락을 취해봤다.

하나 돌아오는 답은 그저 치안 안정에 힘쓰라는 말뿐.

무장경찰팀장이니까 도시의 치안을 지키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는 다르게 생각했다.

윗대가리들이 자기를 버린 것이라고 말이다.

‘버림받을 바에는 차라리 여기를 뜨는 게 낫지.’

본인이 남을 버리는 것은 참아도 남이 자기를 버리는 것은 못 참는 재성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재성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탈출선 내에 그와 비슷한 동기를 갖고 탑승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다들 아는 얼굴이구만.’

유흥지구의 인적자원관리팀장이라든가, 모뉴먼트 중앙병원의 의료팀장이라든가. 모두 재성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서로 눈이 마주치자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도시가 엉망이 됐는데 도망치는 것은 그들이라고 해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이봐, 왜 안 출발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더는 견디지 못한 것인지 의료팀장이 괜히 승무원에게 성질을 냈다.

승객 대부분이 상위 캐피탈이다 보니 승무원은 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쯧, 한심하긴.’

그 모습을 본 재성은 혀를 찼다. 함께 도망가는 처지지만 재성은 자기가 저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도시를 떠날 명분이 있었다.

얼마 전 동생 유성 사뮤엘의 부고(訃告)가 도착했다.

재성은 고향에서 치러질 예정인 동생의 장례식에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도시를 떠날 수 있었다.

‘쓸모없는 놈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군.’

위성 타이탄의 서드캐피탈 사뮤엘 가(家)의 자손인 그는 유성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둘은 가문의 승계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문 내의 사람들만 아는 사실.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에서 그가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녀석이 죽었으니 가문의 유산은 내 것이 되겠군.’

그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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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분들께서 왜 출발하지 않으시냐고 물어보시네요.”

“이제 출발합니다. 곧 안내 방송이 나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아, 화물칸이 열렸다고 뜨는데 그것만 좀 체크 부탁해요.”

“예.”

조종실에서 나온 여승무원은 화물칸으로 향했다.

화물칸에는 손님들이 챙겨 온 귀한 물품, 다른 곳으로 이송할 예정인 소형 컨테이너들로 꽉 차 있었다.

적재된 화물 너머에 반쯤 닫히다 만 문이 보였다.

그녀는 문 옆의 단말기를 조작해 문을 완전히 닫았다.

단말기에 표시된 붉은빛이 녹색빛으로 변하자 곧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저희 티앤씨 계열 트레이드에어라인을 이용해주신 고객님들께 언제나 감사를….」

귀빈을 위한 탈출선답게 이륙 시에도 내부에서는 거의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응?”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돌아봤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제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컨테이너와 화물들뿐이었다.

“잘못 들었나?”

여승무원은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하고 화물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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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부단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건가!”

“그, 그게….”

강화복을 착용하느라 뒤늦게 항만 지구의 창고에 도착한 제이콥은 기사들에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물었다.

“전하께서 인질로 붙잡히셨다고?”

“예. 그래서 저희가 이곳을 수색 중인….”

“찾았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제이콥과 단원들이 창고 내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기다리던 것은 덴버가 아닌 망가진 강화복의 잔해였다.

“혈흔이 없는 것을 봤을 때, 전하께서 아직 생존해계십니다.”

“그럼 당장 찾으러가야….”

“조용.”

제이콥의 단호한 말에 단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강화복의 잔해를 노려봤다.

제이콥은 기사단원 중에서도 경험이 많은 베테랑.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잔해 속에 필시 단서가 숨어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갑옷의 흔적을 세심하게 살피던 그는 금방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화복을 정밀하게 잘라 냈어. 놈은 기계에 대한 지식도 뛰어나다. 게다가….’

통신기만 쏙 빠져 있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이콥은 더없이 끔찍하고 불길한 상상을 떠올렸다.

“…공용 채널과 연결된 통신기를 다오.”

“여기 있습니다.”

단원에게 통신기를 건네받은 그는 버튼을 눌렀다.

연결된 통신기로부터 그가 섬기는 주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놈, 이, 나, 를, 잡, 고, 지, 하, 로, 숨, 었, 다, 도, 와, 줘.」

어딘가 이상하게 들렸지만 분명 덴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제이콥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피가 서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가 했던 불경한 예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전하. 놈이 티앤씨가 만든 헐크 뮤턴트라고 하셨습니까?”

「그, 것, 보, 다, 지, 금, 내, 가, 붙, 잡, 여, 있, 다, 도, 와, 줘.」

“전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티앤씨는 놈을 연구해서 헐크 뮤턴트를 개발할 생각이라고 말입니다.”

제이콥의 말이 이어질수록 단원들은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그들도 부단장이 무슨 의도로 말하는 것인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놈은 티앤씨가 만든 괴물이 아니라는 뜻이죠.”

「…….」

“전하, 아니. 통신을 받는 네놈은 정말 전하가 맞는가?”

「치직, 치지지직」

제이콥의 질문에 통신기에서는 답이 없었다. 그저 치직 거리는 소음만 침묵에 잠긴 창고를 채울 뿐이었다.

더는 들을 것 없다고 생각한 제이콥이 통신기를 끄려는 순간.

통신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 너, 희, 주, 인, 은, 죽, 었, 다, 그그그그, 뚝」

마지막으로 들려온 것은 덴버의 목소리, 아니 「그것」이 내는 섬뜩한 울음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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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이번에는 안 통했네.’

나는 전투용 팔에 힘을 줘서 통신기를 부쉈다. 애초에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 가져온 것이니 더 이상 쓸모가 없다.

‘혹시 저쪽에서 추적할 수도 있으니.’

나는 손으로 내리쳐서 미세한 칩까지 남김없이 가루로 만들었다.

수수께끼의 적 때문에 멀리 돌아가야 했지만 다행히도 나와 애들은 탈출선에 올라탈 수 있었다.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사람이 와서 아슬아슬했지.’

이 배의 선원들은 모두 우리들의 양식이 될 예정이지만 그들을 먹는 것은 도시에서 멀어진 뒤에 해야 한다.

괜히 일찍 습격했다가 조종사가 배를 돌리거나 쓸데없는 짓을 하면 곤란하니까.

나와 녀석들은 컨테이너 뒤에 몸을 숨겼고, 여승무원은 아무것도 모른 채 문만 닫고 화물칸을 나갔다.

중간에 덴버가 어떻게든 그녀에게 알리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의미 없는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이 만든 첨단 기술의 결정체,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에서 떠날 수 있었다.

화물칸에 있는 작은 창문 너머로 거대한 금속 돔이 씌워진 반구 형태의 우주도시가 보였다.

기사의 통신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거대하기만 했던 우주도시가 이제는 전체적인 형태가 보일 정도로 줄어들었다.

‘오래 있었네.’

원래는 진화 조건을 저 도시에서 다 채울 생각이었지만 결국 달성하지 못했다. 진화에 필요한 타입도 3개가 남았고, 컬트와 볼프 사냥 조건도 다 채우지 못했으니까.

‘아쉬워할 거 없어. 이 뒤에…응?’

창문 안쪽에서 우주도시의 전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도시가 크게 흔들렸다.

도시의 지반 역할을 하는 합금 판의 중심부에서 폭발과 함께 검은 먼지구름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검은 먼지구름은 우주로 솟구쳐 나가다가 도중에 자의식이라도 가진 듯 도시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께 수백 미터가 합금 판에 곳곳에 구멍이 뚫리며 도시 안에 있던 것들이 우주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건 그렘린 어뢰…인데 범위가 뭐 저리 넓지?’

그렘린 어뢰는 이름에서 보이는 것처럼 금속을 갉아먹는 나노머신을 담은 미사일이다. 스타유니언에서 만든 무기로 적의 기함을 타격하는 데 주로 쓰인다.

순간 저게 선착장에서 포식자 감각이 말한 위협요소인가 싶었지만 아마 그것은 아닐 거다. 저건 도시 원자로에서 터진 것 같으니까.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렘린 어뢰가 갉아먹은 도시의 틈 사이로 온갖 것들이 다 빠져나가고 있었다. 탈출에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우주 밖 어둠 속으로 튕겨 나갈 뻔했다.

‘오히려 잘 됐나.’

누가 저지른 테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도시에는 내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저 정도로 타격을 받았으면 도시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 도시가 무덤이 된다면 내가 남긴 흔적들도 자연히 소실될 터.

나는 무너져가는 우주도시를 계속 주시했다.

여기서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저 바닥 없는 심연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고 있다.

‘죄악의 도시에게 어울리는 최후일지도.’

그들에게 그나마 위로가 될 것은 도시를 버리고 떠난 자들 또한 저들 이상의 공포를 맛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도시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거리가 멀어지고 난 뒤에서야 나는 창문으로부터 시선을 뗐다.

경계했던 에저튼의 군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렘린 어뢰에 휩쓸린 것인지, 아니면 이쪽과 반대편 방향으로 탈출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에저튼 군함이 우리를 쫓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마비된 덴버를 내려다 봤다.

‘이 자는 더 이상 필요 없어.’

저쪽에서 가주 유전자를 이용해 바이오 스캐너라도 돌리면 귀찮아진다.

덴버를 잡아먹으려고 입을 쩍 벌렸는데, 뒤통수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니까 26호와 아드하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음.’

생각해 보면 녀석들 둘 모두 도시를 떠나기 전까지 맹활약했다. 나는 말로만 녀석들을 칭찬했지 딱히 선물을 준 적이 없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자.’

이번 일로 26호와 아드하이가 잠재성이 높다는 것은 확인했다. 녀석들이 강해질수록 나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앞으로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몰라.’

이번 코드 블랙과 싸울 때도 녀석들이 없었다면 이기기 힘들었을 거다.

‘게다가 떠나기 전에 봤던 알 수 없는 적도 있고.’

내가 모르는 적, 혹은 상상을 초월하는 강적을 만날 수도 있다.

내가 충분히 진화하고 특성을 습득하기 전까지 녀석들이 나를 도와줘야 한다.

‘…뭐 개인적인 친밀도 역시 무시할 수는 없겠지.’

인간 시절에도 친구 하나 없었다.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말이다.

가족들과의 사이도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어렵고.

그래서일까.

나 또한 둘에게 애착이 생겼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튼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개인적인 감정, 이 두 가지 이유로 나는 이번만큼은 양보하기로 했다.

[즈즈 즈(이거 먹어)]

「큰애기는 안 먹어?」

「어른」「식사」「함께」

[즈 즈즈(난 괜찮아)]

「큰애기가 안 먹으면 나도 안 먹어.」

「동의」

맛 좋은 먹이를 기껏 마음먹고 넘겼는데 녀석들이 거부한다. 코드 레드의 손을 먹을 때도 나눠먹자고 하더니 이번에도 그럴 생각인가 보다.

‘쩝. 이게 아닌데.’

[즈 즈즈 즈즈(그럼 같이 먹어)]

「응!」

「나」「기쁨」

합의를 본 우리는 함께 쓰러져 있는 덴버를 쳐다봤다.

이제부터 우리가 뭘 할지 예상한 덴버가 제발 이러지 말라는 눈빛을 보낸다.

“읍읍!”

마비되어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닐 거다.

덴버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지금 유일하게 제공할 수 있는 것.

그건 싱싱한 고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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