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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96화 (97/400)

Ep.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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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가 죽음의 도시가 되기 전, 유진의 기함은 간신히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왔다.

아키라 유진을 잘 아는 자라면 그가 위험한 곳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겠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특수무역중심지에서 중요한 물건을 회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림자들의 장비는 전부 챙겼는가?”

“예. 블랙 슈라우드와 레드퀸 모두 수거 완료했습니다. 다만 손상이 너무 심한지라….”

“상관없다. 미세한 부분만 남아도 복구할 방법이 있으니.”

시종이 나가고 아키라 유진은 집무실에 앉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의 뒤에는 코드 블루가 말없이 호위를 서고 있었다.

“얻는 게 많을 줄 알았거늘 이번에는 내 예상이 틀렸구나. 쓸모 있는 도구를 잃었어.”

“…….”

“도구야 새로 보충하면 그만이나 이건 궁금하군. 누가 코드 블랙을 이긴 거지?”

그가 의문을 표한 순간, 집무실 밖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집무실이 들어왔다.

왼쪽 이마에만 돋은 긴 뿔과 하얀색 바디슈트를 입은 그녀.

그녀는 한때 코드 화이트라 불렸던 시현 유진이었다.

시현을 보자 아키라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었다.

“허허, 돌아온 탕아로다. 네가 한 짓이었구나?”

“…….”

시현은 아키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이 우주선에서 아키라 유진은 그녀에게 죽을 테니까.

“흐음, 의문이 풀리자마자 새로운 의문이로다. 죽은 게 분명한데 어떻게 살았지?”

그녀는 대답 대신 손등에서 검을 뽑아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백색 바디슈트의 이름은 화이트메이든.

화이트메이든은 사용자의 상상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도구를 구현시킬 수 있는 장비다.

지금처럼 그녀가 날카로운 검을 상상하면 갑옷으로부터 예리한 칼날이 솟아나고, 비행을 상상하면 등에 날개가 생기는 식이다.

“호오.”

화이트메이든은 아키라가 시현이 코드를 받을 때 직접 수여한 물건이다.

그녀가 죽으면서 소실된 줄 알았던 장비가 다시 나타나자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필요한 물건이었는데 마침 가져오다니. 쓸 만한 도구로다.”

“여유롭구나. 늙은이.”

“허허, 당연히 여유로울 수밖에.”

아키라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코드 블루가 앞으로 나섰다.

코드 블루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네가 저 우주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을 동안 그림자들은 개량을 거듭했느니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아키라의 말에도 시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대답은 아키라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알아.”

“응?”

시현이 눈짓하자 블루가 그대로 돌아서 아키라의 목을 그어 버렸다.

"끄, 끄르륵….”

목이 반쯤 잘린 아키라는 그대로 자기 책상에 고개를 처박았다.

“…끝났군.”

시현 유진의 혈족뿐만 아니라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파멸시켰던 자의 죽음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했다.

복수에 성공했으니 기뻐해야 마땅했지만, 그녀는 어떠한 희열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시현 유진이라면….’

원수의 시체를 두고 크게 웃었을까. 아니면 울었을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약속한 대로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래.”

“제 가족을 만나게 해준다는 약속, 꼭 지키기 바랍니다.”

블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시현이 눈을 부릅떴다.

그의 뒤에서 아키라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

“?”

시현이 경고하기 위해 소리쳤지만, 아키라가 더 빨랐다. 아키라의 손이 커다란 갈고리 발톱으로 변해 순식간에 블루를 찢어발겼다.

“やあ、これはかなり驚いた。(아, 이건 꽤 놀랍군.) 彼も包摂したとは知らなかった。(그도 포섭한 줄은 몰랐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아키라.

그의 목에 있던 상처는 어느새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상태였다.

블루를 죽인 갈고리 발톱은 작게 줄어들더니 노인의 쭈글쭈글한 손으로 돌아왔다.

“手前の復活も恐らくくそ虎の仕業だろ。(네놈의 부활도 필시 빌어먹을 호랑이의 짓이겠지.)”

“어떻게…?”

시현 또한 아키라가 유전자 개조 시술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 연장을 위한 것이지, 저렇게 목이 거의 잘려 나간 상태에서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술이 아니었다.

그림자 중에서도 저런 신기를 보여 줄 수 있는 존재는 블랙 슈라우드를 입은 코드 블랙밖에 없었다.

“음? 아아, 미안하군. 예전에 쓰던 언어가 나와서.”

“…네놈, 정말로 아키라 유진인가?”

“허허, 당연하지. 뭐 정확히 말하면 반반 섞인 거지만.”

아키라는 평범한 촌부처럼 웃었지만 시현은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주도시에 오기 전 최대한 할 수 있는 선에서 유전자 개조를 받았다. 작전 때문도 있지만 그녀를 죽였던 수수께끼의 괴물과 다시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 상태도 만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나 그런 그녀도 눈앞에서 웃고 있는 아키라한테는 전혀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이길 수 없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원본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저 괴물은 못 이기리라.

“허허허, 후일을 도모하려 하는구나.”

“!”

“그래. 너는 언제나 포기하지 않았지. 그래서 쿠소토라, 아니 범호가 너를 택했을지도 모르겠구나.”

“…….”

“나는 자비로우니 총 세 번의 공격을 허용하마. 마음대로 하거라.”

아키라가 준 3번의 기회.

그녀는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 메고 있던 플라즈마 피스톨을 뽑았다.

피스톨이 불을 뿜고, 녹색 에너지 덩어리가 아키라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허허, 천하의 시현 유진도 겁을 먹는군.”

그녀는 반응하지 않고 재차 한발 더 발사했다. 이번에도 또한 아키라로부터 한참 빗나갔다.

아키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어느새 마지막 기회구나. 세 번이나 기회를 줬거늘 허투루 날리다니.”

안타깝다는 듯 말하는 그를 보며 시현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얼마 전에 배운 게 있어.”

“뭐라고?”

그녀의 왼쪽 팔에서 길고 굵은 촉수가 생성되더니 아키라 뒤편의 벽을 후려쳤다.

동일한 지점에 피스톨을 맞춰서 이미 내구력이 떨어져 있던 내벽이 촉수에 얻어맞는 순간, 그대로 박살 났다.

“뭣…?!”

집무실의 공기가 빠르게 우주 공간으로 흘러나가고, 그 기세를 타서 시현 또한 순식간에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가는 도중에도 그녀는 촉수를 뻗어 블루가 떨어뜨린 단검을 잊지 않고 챙겼다.

“이런!”

시현이 이렇게 행동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아키라의 시선이 시현이 날아간 곳으로 향했다.

화이트메이든을 우주복으로 변환시킨 시현은 저 검은 우주 공간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

“으음.”

타자마자 깜빡 잠이 든 재성은 눈을 떴다.

“흐아아암, 음?”

의자에서 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키던 그는 주변을 쭉 둘러봤다.

이상하게도 그가 잠들기 전까지 꽉 차 있던 승객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다들 식사하러 갔나?”

그가 탑승한 이 우주선은 귀빈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고급 우주선이다 보니 호화로운 코스 요리를 대접하는 식당칸이 따로 존재했다.

다들 거기로 갔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는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아니, 잠깐. 승무원도 안 보이는데?’

고객들이야 밥 먹으러 갔다고 쳐도 승무원이 한 명도 안 보이는 것은 이상했다.

“뭐야 진짜.”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눈을 뜬 재성은 몸을 일으켰다.

객석을 지나 식당칸으로 가던 중 그는 묘하면서도 낯익은 냄새를 맡았다.

쇳덩어리를 코 밑에 갖다 대면 나는 것 같은 독하고 비린 냄새.

‘어디서 맡았지?’

예전에 일할 때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식당칸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어디서 그 냄새를 맡았는지 바로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것은 피 냄새였다.

식당칸은 맛 좋은 음식과 질 좋은 술 대신 살점과 뼛조각, 피로 채워져 있었다.

우주 한복판에 나타난 인세의 지옥에서 꿈에서 나올까 두려운 괴물들이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라운지 한가운데서는 짙은 녹색 비늘에 커다란 날개를 지닌 괴물이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놈에게 피를 빨리는 사람은 그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가 잠들기 전, 승무원에게 역정을 내던 의료팀장이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는 피가 한 차례씩 빨려 나갈 때마다 다리를 파르르 떨어댔다.

식당칸 한쪽에 있는 바 테이블에서는 분홍색 괴물이 수많은 촉수로 인적자원관리팀장을 붙잡아 천천히 잡아먹는 중이었다.

그녀의 몰골은 의료팀장보다 한층 더 비참했다. 수십 가닥의 가느다란 촉수가 그녀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 파고들어서 뇌를 빼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 상품! 헤윽! 언제나 안전! 헤윽! 여러분께 최선을! 헤윽! 힉! 감사합니다! 헤윽! 감사합니다! 헤윽!”

언제나 이지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그녀는 백치나 다름없는 얼굴로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히익?!”

그가 짧은 비명 소리를 내자 괴물들이 그를 쳐다봤다.

놈들의 시선으로부터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재성은 문을 닫고 재빨리 도망쳤다.

‘조, 조종사! 조종사한테 알려야 해!’

그는 살면서 이 이상 빨려 달려본 적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객석 사이를 내달렸다.

조종실에 도착한 그는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다.

“열어 줘! 괴물이 나타났어! 괴물이 나타났다고!”

얼마나 두드렸을까.

“엽, 니, 다.”

문 안쪽에서 사람 목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다! 조종사가 살아 있어!’

마침내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고 생각하며 재성은 문을 활짝 열었다.

그곳에 그가 기대하던 조종사가 있었다.

“어?”

다만 재성이 기대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왜냐하면 재성의 눈에는 남자의 발목만 보였기 때문이다.

조종사를 통째로 삼키고 있던 「그것」이 고개를 까닥이며 발목까지 모조리 삼켰다.

「오·래·기·다·리·셨·습·니·다·」

「그것」이 피 묻은 이빨을 드러내며 말하는 것을 본 재성은 피식 웃었다.

‘꿈이네.’

그는 빨리 악몽에서 깨길 빌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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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배는 접수했고.’

탈출선 내에 살아 있는 먹이는 모두 우리 셋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맛 좋은 먹이로 포식을 한 아드하이와 26호는 빵빵해진 배를 붙잡고 잠들어 있었다.

나는 객석에 있는 담요들을 펼쳐서 녀석들에게 덮어 주고 조종실에 다시 들어왔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

화물칸과 식당칸에 여러 종류의 식재료와 칼로리바가 보관되어 있어서 항해 도중 식량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종하는 것도 초계함만큼 까다롭지 않아서 항해AI의 보조만 받는다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조종이 가능했다.

‘근데 문제가 있어.’

이 배는 출발 전부터 근처에 있는 메가콥 우주 요새를 목적지로 잡고 있어서 비축된 연료가 많지 않았다. 초광속 항해를 몇 번 하면 금세 연료가 다 떨어질 것이다.

‘이 주변에는 우리가 가기에 적당하지 않아.’

우주 요새는 당연히 안 되고, 내가 원래 지향하던 행성까지 가기에는 연료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주변에 다른 행성에 들렀다가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행성들 모두 특수무역중심지에 비해 훨씬 강력한 방위력을 갖춘 곳들이라 몰래 들어가는 것부터가 어렵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다른 배를 탈취하는 것.

예전에 게임을 할 때 많이 쓰던 방법이었다.

‘여기서 초광속 항해로 갈 만한 곳이 있어.’

그곳에 스페이스독이 관리하는 구역이 있다.

자원을 채취하거나 인간 목장을 둘 만큼 좋은 행성도 없고, 그렇다고 특수무역중심지의 사례처럼 우주도시를 지어서 관리할 만큼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도 아니다.

게다가 아주 드물게 메탈릭 그렘린의 무리가 해당 구역을 지나가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그들에게 걸렸다간 강철의 우주요새도 오래 버틸 수 없다.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구역이다 보니 메가콥, 스타유니언 양쪽 모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덕분에 그 틈을 스페이스독이 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 가면 메가콥과 스타유니언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어.’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해적선 하나만 노리고 간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방법도 문제가 있다.

‘스페이스독이 우리를 언제 발견할지 모른다는 거지.’

스페이스독의 카르텔들은 해적질을 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재수가 없으면 몇 달 동안 해당 구역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게임에서도 우주비행 특성을 확보한 뒤에 이 방법을 주로 썼다.

‘우주비행만 있으면 내가 직접 해적선을 찾아다닐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배로 그렇게 했다간 연료가 금방 바닥나고 말리라.

‘뭔가 돌파구가 필요한데….’

돌파구라 하니 순간 드는 생각이 있었다.

‘새 초월 특성.’

나는 반투명 텍스트창을 띄웠다.

「‘초월’ 재료 목록(신규!): 날개, 지구력, 우주비행, 거대생물, 하이재킹」

현재 나는 새 초월 특성의 재료를 모두 모은 상태다.

우주비행과 거대생물 특성은 샘플로 얻은 것이다 보니 0.5만 채워져서 직접 사용은 불가능하지만 재료로는 활용이 가능하니까.

‘생각해 보면 이전 유일 특성도 재료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았어.’

완전한 유기체의 재료들은 전부 나의 육체와 관련한 특성들이었다.

초월로 얻은 유일 특성 자체가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특성이라고 해도 아예 재료의 성격과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다.

‘재료들만 봤을 때 우주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활동과 관련이 깊어 보여.’

비록 내가 얻은 유일 특성은 완전한 유기체 하나뿐이지만, 이 특성 덕분에 나는 매우 위험한 난관들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두 번째 유일 특성도 규격 외의 효과를 보여 줄 가능성이 높아.’

어쩌면 지금 내가 처한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

‘다만 금제가 문제야.’

무슨 특성에, 어떤 형태의 금제가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선택하기 어렵다.

새 유일 특성이냐, 아니면 현상유지냐.

고민하던 중 텍스트박스에 있는 한 글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진화에는 끝이 없다라.’

한참 고민하던 나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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