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7
‘초월 시스템을 쓰자.’
새로운 유일 특성을 확보하는 것.
장고 끝에 내가 내린 선택이다.
다만 초월 시스템을 이용하기 전, 할 일이 있다.
‘새로 발생할 리스크에 대한 대비해야 해.’
나는 초광속 항해 장치를 기동시키면서 머리로는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새로 띄웠다.
「종족: 미확인 적대적 우주생물
상태: 아성체(초월 1단계)
목표: 생존하라(진화 2회 성공).
보유 특성(육체계열 14개/초능력계열 7개/감염계열 3개/특수방어계열 2개)
① 육체 관련(타입 적용 중): 날개(사용불가), 산성피, 치악력, 금속 흡수, 완전한 유기체(유일), 지구력, 페로몬 강화, 가사 상태
-육체 관련 융합 특성: 재생력, 신경독샘, 의태 기관(사용불가), 흡혈 촉수, 가시털 발사 꼬리, 하이재킹
② 초능력 관련(타입 적용 중): 인간성, 초능력 내성, 통찰
-초능력 관련 융합 특성: 포식자 감각, 괴물의 촉수, 유령 발톱, 공포의 주시자
③ 감염 관련: 우주 박테리아
-감염 관련 융합 특성: 기생 군체, 부패 곰팡이 기관
④ 특수방어 관련: 고통 경감, 저항력
보유타입(2개)
육체 강화 타입, 초능력 강화 타입
* 불완전 특성(7개)
우주비행, 에너지 흡수, 강인한 생명력, 거대생물, 왜소화, 아가미, 지느러미
처음에 비해 특성 개수가 많아지면서 텍스트박스의 구성도 일변했다. 융합 특성이 많아지면서 각 계열별로 하위 카테고리가 새로 상태였다.
‘이 중 금제가 걸렸을 때 제일 치명적인 특성은….’
현시점에서는 두말할 것 없이 괴물의 촉수다.
괴물의 촉수는 이전 유성의 연구선에서 얻었던 초능력 기관을 재료로 써서 만든 융합 특성.
이 특성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나는 26호와 아드하이와 대화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의태기관처럼 모호하게 될 수도 있지만.’
의태기관은 페로몬을 이용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신경을 교란해서 나를 인간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특성이다.
거기서 추가로 의태기관의 재료였던 흉내내기 효과도 계승되어 인간의 목소리도 따라 할 수 있었다.
해당 특성은 완전한 유기체 때문에 사용 불가라는 금제가 걸렸지만, 목소리를 따라 하는 능력만은 제한적이나마 쓸 수 있었다.
완전한 유기체가 몸에 적용될 때 페로몬을 분출하던 모공 기관이 막혀 버렸지만, 목소리를 내는 기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일 특성이 적용되어도 머리의 촉수들이 남아 있다면 대화 자체는 가능할 거야.’
나의 뒷머리 부근에 위치한 이 촉수다발들은 에너지 파장을 통해 대화하는 생물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관이다.
이것 덕분에 나는 에이모프의 종족적 한계를 넘어 26호와 아드하이와 소통할 수 있었다.
‘물론 촉수가 남아 있더라고 해도 사이킥 브레스는 못 쓰게 되겠지만.’
괴물의 촉수에 금제가 걸린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비는 해 놓아야 할 터.
나는 애들이 일어날 때까지 각각 특성에 금제가 걸렸을 시 어떻게 대처할지 계속 생각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26호와 아드하이가 슬슬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우주선을 잠깐 멈춰두고 애들을 불러 사정에 대해 설명했다.
앞으로 내가 애들과 대화할 수 없는 대신, 다른 소통 수단을 준비했다고.
나는 가슴팍의 작은 손으로 신호를 보낼 계획을 짰다. 둘 모두 인간의 언어는 이해하지 못하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자, 숫자는 당연히 모르고.’
소리로 신호를 보낼까도 생각해봤지만 전투 중이라면 불가능에 가깝기에 제외했다.
하지만 막상 가르치기 시작하니 이 방법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다.
「작은 부속지를 위로 올리면 때리라는 거야?」
[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아니. 오른쪽 손의 첫 번째 손가락.)]
「손가락?」
[즈즈 즈즈(작은 촉수)]
「아하.」
손가락이라는 개념이 없는 26호는 팔부터 손, 손가락을 일체화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내 설명을 어려워했다.
[즈즈 즈 즈즈즈(왼쪽 손의 둘째손가락)]
「후퇴」
[즈즈 즈즈즈(후퇴는 셋째)]
「?」「이해불가」
[즈 즈즈(이 부분)]
「나」「간지러움!」
내가 아드하이의 왼쪽 앞발의 세 번째 발가락을 콕 찌르자 녀석이 간지러운지 몸을 떨었다.
그나마 발과 발가락이 있는 아드하이는 내가 뭘 하려는지 알아듣는 것 같았다.
다만 녀석의 신체 구조상 손이라기 보다는 앞발에 가깝다 보니 내가 녀석을 이해시키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면 큰일인데.’
애초에 나부터도 인간의 정신에 에이모프의 몸을 가진 이질적인 존재다.
지능을 가졌지만 어디까지나 동물에 가까운 녀석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큰애기야 걱정하지 마!」
「나」「노력」
내가 실망했다고 생각했는지 녀석들이 나를 위로한다.
‘그래. 벌써 실망할 것 없어.’
26호나 아드하이나 머리가 좋은 녀석들이다. 특히 26호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뜻을 미리 읽고 알아서 행동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러니 중요한 부분만 가르치면 돼.’
그 후 나는 한 시간 동안 녀석들에게 내가 만든 신호를 반복해서 가르쳤다. 지루할 텐데도 녀석들은 열심히 내 말을 듣고 따랐다.
‘이 정도면 됐어.’
원래 내가 생각했던 신호를 전부 이해시키는 것은 역시나 무리였다. 하지만 녀석들도 기초적인 부분은 전부 이해했다.
「그럼 큰애기 또 크는 거야?」
[즈(응)]
「어른」「성장」「나」「환영」
이전에 초월 시스템 때문에 고치에 들어간 적이 있었기에 녀석들은 딱히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녀석들의 묘한 배웅을 받으며 나는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띄웠다.
「‘초월’ 재료 목록(신규!): 날개, 지구력, 우주비행, 거대생물, 하이재킹」
「초월 시스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수락.’
수락한 나는 곧 몸에서 흘러나올 점액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려도 외피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응?’
이전과 달라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데 갑자기 등에서 소리가 들렸다. 빙하가 깨지는 것처럼 쩌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등이 갈라졌다.
그리고 갈라진 등에서 반쯤 액체화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흡사 수백 년 묵은 나무의 뿌리줄기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니면 거미가 오랜 시간 동안 친 거미줄 같기도 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에서 나온 줄기들이 주변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즈즈 즈즈즈(모두 물러나!)]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나는 아직 괴물의 촉수가 살아 있는 틈을 이용해 애들한테 소리쳤다.
애들이 물러난 사이, 내 몸에서 튀어나온 줄기들이 내 몸을 덮으면서 객석들을 집어삼켰다.
「큰애기야!」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걱정하지 마. 평소처럼 기다려)]
아무런 고통도 없는 것을 보니 새로운 유일 특성을 적용하기 위한 절차가 틀림없었다.
줄기는 승객칸의 3분의 1 가량을 뒤덮은 뒤 확장을 멈췄다. 그 뒤로는 다른 때와 동일하게 거대한 고치로 굳어졌다.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이 지경까지 가지?’
추측하건대 내 몸 크기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전보다 훨씬 커지거나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려는 거겠지.
‘쩝. 다음부터는 애들한테 조심하라고 해야겠네.’
고치가 생기기 전 애들보고 안심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아마 걱정하고 있을 터.
‘새로 배를 탈취하면 선물이라도 챙겨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
「어른」「이상함」
「응.」
그녀는 작은 아이와 함께 고치를 바라봤다.
새까만 점액으로 덮여 있는 그것은 느긋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몸에서 얇은 촉수 한 가닥을 뽑았다.
평소 그녀가 부속지가 4개 달린 먹이를 때려잡을 때 쓰는 촉수가 아니다.
동족들 중 그 사실을 가르쳐 준 존재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뽑아낸 이 얇고 가느다란 촉수는 아주 특별한 의식을 할 때만 쓰는 것이라고.
「나」「궁금」
「조용히 해.」
귀찮게 하는 작은 아이를 조용히 시킨 그녀는 가느다란 촉수를 고치에 갖다 댔다.
처음에 느껴지는 감각은 축축함과 따뜻함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녀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얇은 촉수가 약하게 빛난다. 그러자 그녀가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들이 고치로부터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매우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중 일부는 그녀가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낯설은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익숙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고향에서 동족들과 함께 잠을 청할 때 느끼던 그 감각과 똑같았다.
안락함.
큰 아이는 지금 안락함을 느끼고 있다.
만약 또 큰 아이가 괴로워한다면 도와주려고 했는 데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 데 왜 아쉬운 것일까.
전에는 몰랐겠지만 몇 차례 성장한 그녀는 이 굶주림과 유사한 감각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지난번 큰 아이가 괴로워할 때.
그녀는 진정시키기 위해 이 가느다란 촉수를 썼다.
이 촉수에는 다른 존재의 감각을 읽는 것과 그녀가 가진 생각을 전달하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감각의 전이는 이 촉수가 가진 여러 능력 중 일부에 불과했다.
이 촉수는 밀도가 높은 교감을 할 때 쓰인다.
밀도가 높은 교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아직 모른다.
그녀의 지적 수준은 이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에 도달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이 촉수를 쓸 때마다 그녀는 묘하게 기분이 들뜨고 몸속이 간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먹이를 앞두고 느끼는 흥분 같기도 하면서도 약간 달랐다.
어딘가 모르게 중독적인 이 감각을 계속 느끼고 싶었지만, 그녀는 애써 단념했다.
이 고치는 큰 아이에게 중요한 것.
그녀가 만지고 있으면 큰 아이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녀가 촉수를 회수하자 뒤에 있던 작은 아이가 파장을 쐈다.
「어른」「성장」「더」「멋짐?」
「응. 큰애기가 커지면 더 멋있게 변해.」
「나」「만족」「만족」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작은 아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작은어른」「궁금」
「뭔데?」
「어른」「성장」「완료」「나」「어른」「알」「가능?」
「…작은애기는 아직 안 돼.」
「이해불가」「나」「성장」「완료」
그녀가 안 된다고 했지만 작은 아이는 동의하지 않았다. 불만에 찬 작은 아이가 뒷발로 바닥을 툭툭 쳤다.
「나」「어른」「알」「가능」「알」「가능!」
「…….」
작은 아이가 말을 안 듣자 그녀는 굵은 촉수를 뽑아 바닥을 내리쳤다.
차가운 바닥이 우그러지자 작은 아이는 바로 조용해졌다.
「시끄러워.」
「이해」
바로 침묵하는 작은 아이에게 그녀는 약하게 파장을 쐈다.
「…나중에 더 크면.」
「나」「약속」「기억함」
그렇게 작은 아이와 얘기하면서 그녀는 기다렸다.
큰 아이가 더 멋진 모습으로 깨어날 때까지.
-
‘됐다.’
2시간이 거의 다 지났을 무렵, 나는 몸에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머리와 몸뚱이부터 시작해서 팔들과 다리, 그리고 손과 발, 꼬리, 마지막으로 손가락과 발가락, 꼬리 끄트머리까지.
모든 감각이 돌아온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내가 움직이자 반쯤 말라붙은 고치가 쉽게 뜯어졌다.
‘흠.’
고치의 크기 때문에 몸이 커질 것이라 짐작했는데 반만 맞았다.
해츨링 이후 나는 줄곧 지행(趾行)형 다리로 걸어 다녔다. 허리는 인간처럼 핀 상태고 꼬리로 균형을 잡았다.
그렇게 해서 내가 서 있는 크기는 얼추 3m 정도였다. 여기서 사냥의 표상을 쓰면 높이가 5m로 늘어나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내 몸 상태는 8개의 다리를 모두 쓰던 해츨링 때와 그 이후 이족보행할 때의 중간에 위치한 형태였다.
두 발로 걷는 것은 여전하지만 허리를 반쯤 숙이고 있었고, 덕분에 아래쪽 전투용 팔은 땅에 닿을 정도였다.
몸이 이렇게 변한 것은 내 몸을 덮고 있는 갑각과 등 부분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먼저 내 머리를 덮고 있는 갑각과 뿔이 전보다 훨씬 거대해졌다.
머리에 새겨져 있던 눈 모양의 문양도 훨씬 짙어져서 이제는 내 머리 갑각에 진짜로 눈이 여러 개 더 달린 것처럼 보였다.
등의 갑각에는 총 8개의 큼지막한 구멍이 새로 생겼고, 그 위에는 소용돌이 문양의 피질로 덮여 있었다.
등을 감싸고 있던 외피도 넓게 퍼진 형태로 변해서 거북이의 배갑(背甲)을 뒤집어쓴 것처럼 변했다.
등의 갑각이 비대해지면서 머리 뒷부분의 갑각에 닿게 된 모양은 마치 악어거북을 닮았다.
몸의 변화에 맞춰서 괴물의 촉수도 뒷머리 부분에 갈기처럼 솟아나 있던 것이 양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팔과 다리도 갑각의 확대에 맞춰서 굵고 길어졌고, 꼬리의 외형도 달라졌다.
비늘갑주를 두른 것처럼 조각 형태의 갑각이 돋아나 있어서 중거리 타격용 무기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변화한 내 인상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중무장한 탱크였다.
이전에는 날렵한 이족보행 육식동물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그에 비해 뚱뚱하고 거대해졌다고 해도 좋으리라.
‘몸 자체가 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졌어.’
나중에 실험해 봐야 정확하겠지만 당장 봤을 때는 기동성이 살짝 떨어지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반대로 전보다 크고 단단해졌지만.’
갑각 덕분인지 몸이 전반적으로 커져서 반쯤 숙이고 있는 자세로도 높이가 거의 5m에 육박했다. 길이를 따지면 거의 10m에서 12m 사이쯤 되지 않을까.
여기서 사냥의 표상을 쓴다면 훨씬 커지겠지.
‘그럼 새로 얻은 특성이 뭔지 한번 볼까.’
몸에 대한 점검을 마친 나는 신규 특성의 내용을 담은 반투명 텍스트창을 띄웠다.
「악몽의 지평선: 당신의 사냥터는 행성 하나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보유한 유일 특성의 효과를 증가시킵니다. 우주선을 침식해 조종할 수 있는 ‘침식 촉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향 대상: 사냥의 표상(지속시간 20분으로 증가)
*‘침식 촉수’: 우주선을 침식시켜서 사용자의 의식에 지배받는 복합생물로 만듭니다. 우주선과 연결된 상태에서는 육체계열 특성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자가 비축한 에너지가 모두 떨어지면 특성 효과가 자동으로 취소됩니다. 침식 촉수는 7일에 1회, 하나의 우주선에 1번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주의: 우주선의 침식을 완료하기 전까지는 도중에 취소할 수 없습니다. 사냥의 표상의 쿨타임이 7일에 1회로 변경됩니다. 침식 촉수와 쿨타임을 공유합니다.
*추신: ‘악몽’이란 그저 단어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훨씬 끔찍하죠.」
유일 특성 ‘악몽의 지평선’은 기존에 전혀 본 적 없던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특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