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99화 (100/400)

E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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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락 카르텔은 일반적인 스페이스독과는 약간 다른 면모가 있다.

보통 스페이스독의 카르텔들은 타종족의 함선을 습격하는 것을 돈벌이로 한다. 더 우월한 함선을 약탈하는 데 성공하면 기존에 굴리던 배는 버리고 새 함선으로 갈아타곤 한다.

그렇다 보니 카르텔 대부분이 운용하는 함선의 무장에만 신경 쓰지 다른 부분은 도외시한다.

하나 루스락 카르텔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주 돈벌이 수단은 희귀 동물 포획 및 밀수. 약탈은 어디까지나 부수입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함선의 무장 말고도 챙겨야할 것이 많다.

잡은 동물을 안전히 보관할 시설, 동물들에게 줄 먹이 저장시설, 또한 우주 공간에 서식하는 생물을 포획하는 데 쓸 함재기 탑재 시설 등등.

필요한 것이 많다 보니 루스락 카르텔의 함선은 카르텔의 규모에 비해 비교적 거대한 편이었다.

전장 300m에 전고 70m에 달하는 우주 함선으로 크기만 봤을 때는 메가콥의 소형 구축함에 버금갈 정도다.

루스락 카르텔의 배 이름은 캘빈호.

오래전에 밀로가 스타유니언의 무역함을 탈취한 뒤 붙여 준 이름이다.

그 거대한 약탈자가 새로운 먹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신호에 도달하기까지 10분 남았습니다.”

“다 왔는데 왜 안 보여?”

상황실 전방에 설치된 초대형 디스플레이에서 보이는 것은 한없이 펼쳐진 암흑뿐.

스카이웨일은 심해에 사는 동물처럼 몸에서 빛을 내는 생물이다. 그 빛이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선명하여 아주 먼 거리에서 쉽게 보인다.

그저 검은색 일변도의 공간인 우주에서라면 훨씬 잘 보여야 할 터.

밀로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신호 다시 확인해 봐.”

“이쯤이면 보여야 하는데….”

그때 상황실에서 긴급 신호가 울렸다. 함선을 통제하는 중앙AI컴퓨터 캘빈이 보낸 신호였다.

「충돌 주의! 충돌 주의!」

그 순간, 디스플레이에 새까만 배가 나타났다. 배와의 거리는 그야말로 코앞.

경악한 밀로가 외쳤다.

“이런 씹! 긴급 회피!”

“모두 조심!”

회피 기동으로 인해 함선의 선체가 크게 요동쳤다. 디스플레이에서 보이던 검은색 배가 그들을 지나 화면 너머로 사라졌다.

상황실에 있던 해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 위로 나뒹굴었다.

밀로는 늑대 볼프족에다 뛰어난 전사다 보니 넘어지면서 체면을 구길 일은 없었다. 그가 다급히 외쳤다.

“이 게으름뱅이 원숭이 새끼들아! 자빠져 있지만 말고 상품부터 멀쩡한지 확인해!”

“예, 옙!”

선장의 역정 섞인 고함에 부하들이 서둘러 컴퓨터를 두드리며 배 안에서 피해가 없는지 파악했다.

“바로 앞에 배가 있는데 왜 감지가 안 됐지?”

“으,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선장 스탁스는 얼얼한 엉덩이를 매만지며 상황실의 단말기를 조작했다. 이어서 그의 표정이 묘해졌다.

“선장님.”

“왜?”

“스타유니언의 배가 에너지의 흐름은 귀신 같이 잡아내는 거 아시죠?”

“당연히 알지.”

“그, 저 배에서 전기 신호가 감지 안 되는데요?”

“뭐?”

부선장이 단말기로 확인한 내용을 디스플레이에 띄웠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밀로는 당황했다.

“뭐야? 그럼 방금 꼴아박을 뻔했던 배가 이미 죽은 배란 말이야?”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희가 파악한 신호가 저 배에서 나오고 있어요.”

“…….”

즉 그들이 지나친 배는 기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생체 신호를 내는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게 뭔 원숭이 부랄 같은 상황이지?’

밀로와 스탁스가 고민하는데, 상황실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유, 유령선이다….”

그 말에 밀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원숭이 새끼가 지껄였냐? 우주에 유령이 어디 있어?”

“서, 선장님도 아시잖습니까! 드, 드바라 카르텔이 유령선한테 걸려서 개작살이 났다고….”

몇 달 전, C-08 구역의 패자라 자인하던 드바라 카르텔이 의문의 사건으로 완전히 몰락했다.

소문에 의하면 드바라 카르텔의 선장과 부선장은 평소처럼 약탈하러 갔다가 유령선을 만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저, 저희는 해적이지만 유령은 못 이깁니다!”

“당장 도망쳐야 합니다!”

밀로는 발에 힘을 줘 상황실 바닥을 내리쳤다. 단단한 금속 합판에 발자국이 그대로 찍히자 해적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전부 닥쳐. 유령선은 없다.”

“선장님!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C-08이면 이곳에서 몇백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데 그럼 유령선이 뭐 초광속 항해로 이곳까지 왔으리?”

“유, 유령선이니까 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씨발 아예 유령이 플라즈마 함포도 쏘고 실드도 깐다고 그래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선장 밀로의 태평한 태도에 해적들은 안정을 되찾아갔다.

해적들의 눈에서 겁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밀로는 명령을 내렸다.

“저 배가 뭔지 확인해야겠어. 스탁스. 네가 애들 데리고 들어가 봐.”

“네?”

“겁쟁이 원숭이 새끼들만 보내는 게 더 위험하니까 네가 직접 지휘해.”

“…….”

“새끼야, 내가 다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쩝. 옙.”

스탁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됐든 간에 함선을 나포하면 손해보다 이득이 컸다.

내부에 실린 화물들이 전부 그들의 소유가 되니까.

‘뭐가 있으려나.’

부선장을 보낸 밀로는 디스플레이에 떠올라 있는 수수께끼의 배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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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접근하는 배를 느낀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이곳 I-97 섹터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침식된 함선의 기능을 확인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초광속 항해가 가능하다는 것은 고무적이야.’

배를 침식했을 때 가장 큰 장점은 침식 대상이 가진 기능 대부분을 내 몸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항해 기능 말고도 광속엔진을 이용한 초광속 항해도 무리 없이 가능했다. 이 경우에는 나의 에너지가 아닌 배에 남아 있는 잔량 에너지를 대신 소모해도 된다.

‘만약 안 그랬다면 배를 오래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이 배에는 포탑이 없어서 확인할 수 없지만 아마 함포 사격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플라즈마 에너지를 끌어다가 쓸 수 있으니 가능하겠지.’

또 한 가지 장점은 배의 구조를 내가 원하는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내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 둥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야.’

침식이 완료된 순간부터 이 배는 살아 움직이는 둥지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여기서 추가로 배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덕분에 내 특성이 적용된 함정을 만들어 써먹을 수 있다.

천장에 부패 곰팡이를 발사하는 포자를 만들어두거나, 바닥의 일부를 변형시켜 유령 발톱 효과가 적용된 발톱 함정을 만든다거나 등등.

‘괴물의 촉수도 잘 써먹었어.’

나를 찾아온 저 함선도 내가 배 안에 커다란 괴물의 촉수를 만들어서 파장을 쐈기 때문에 온 것이다.

아마 스카이웨일이나 갤러곤이라고 착각하고 온 것이겠지.

여기까지만 보면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세상일이 그렇지 않듯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배를 조종하고 있을 때 못 움직이는 것은 아쉽네.’

내 배갑(背甲)에서 나온 침식 촉수가 배와 연결되어 있어서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 상태에서 애들을 부른다거나 몸을 조금씩 움직이거나 하는 것은 되지만 이동만큼은 안 된다.

또한 육체 관련 특성도 금제가 걸려 사용할 수 없다.

‘만약 가능했다면 배를 지배하는 중에도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배를 지배한 상태로 육체 관련 특성을 쓸 수 있다면 그 쓰임새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배 외벽에 날개를 달아서 행성 대기원에서 이동하는 데 쓰거나, 치악력과 금속 흡수 특성을 합쳐서 다른 배를 물어뜯고 본체를 강화시킬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침식 촉수 자체는 연결 상태 중에도 새로 만들 수 있다는 거지.’

내 몸에 있는 침식 촉수는 배와 연결을 유지해야 하니 쓸 수 없지만, 내벽이나 외벽 부근에 새로운 침식 촉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한 배를 조종하면서 새로운 배를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침식이 완료되면 나의 정신이 배와 연결된다.

저 배가 가까이 왔을 때 확인해 봐야 정확하겠지만, 이 배를 장악한 상태에서 새로운 배를 침식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터.

‘그건 아쉽지만 침식 촉수 자체의 스펙도 나쁘지 않으니까.’

특별한 기능이 없다고 해도 이 촉수를 이용해 적을 사냥, 포식할 수 있다.

‘침식 촉수에 입이 있어서 유전자 정수도 습득할 수 있을 거야.’

이 또한 실험할 대상이 없어서 아직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배가 생각보다 크네.’

배가 가까워지니 그 크기가 확실히 체감이 된다.

내가 지배하는 배에 비하면 거의 3배에 가까울 정도로 크다.

스페이스독 중에 저 정도로 거대한 배를 운용하는 부류는 많지 않다.

최상위 카르텔이거나 아니면 밀수를 위주로 하는 애들이 보통 저렇게 큰 배를 굴린다.

‘감지되는 인원만 봤을 때 상위 카르텔은 아니야. 수가 너무 적어.’

내 예상으로는 저들은 밀수꾼들이다. 그것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상당한 수준으로 말이다.

‘밀수를 위한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또한 많은 수는 아니지만 함재기도 있고.’

생긴 것만 보면 스타유니언의 무역선이나 메가콥의 강습함을 닮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자세한 것은 저 배에 들어가서 확인해야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배가 맞는다면 새로 갈아타기에 나쁘지 않은 함선이다.

‘밀수선이면 먹을 만한 것이 많겠지.’

거기다가 밀수선을 노리면 함선 컴퓨터에 저장된 밀수 동물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느 행성에 뭐가 사는지, 어떤 경로로 가면 무사히 행성에 잠입할 수 있는지 등등 말이다.

‘초월 2단계를 생각하면 지성체 말고도 야생 동물도 잡아야 해.’

사실 초월 2단계 말고 진화 조건에도 준성체에서 성체로 넘어갈 때 여러 종류의 동물 유전자들이 필요하다.

‘대충 다음 가야할 곳은 정해진 것 같네.’

물론 그 전에 저 배의 통제권부터 확보해야겠지만.

‘크기가 좀 크긴 한데.’

마침 저쪽 배가 우리 쪽을 향해 도킹을 시도하고 있다.

손님을 맞이하기 전에 지배가 가능한지 여부부터 확인해야겠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 지배하는 배의 외벽에 침식 촉수를 만들었다.

적의 함선으로부터 길쭉한 도킹 포트가 솟아나 내가 지배하는 배에 장착되었다.

그동안 침식 촉수가 도킹 포트 아랫부분에 몰래 달라붙었다.

침식 대상을 고를 때 뜨는 반투명 텍스트박스가 나를 안내했다.

‘예상대로야. 당장은 지배할 수 없어.’

이미 배를 지배하는 중이라서 새로운 배를 침식할 수 없었다.

그래도 대상으로 삼을지 말지 확인하는 것은 가능했다.

‘어디 보자.’

체크를 완료한 침식 촉수가 내게 결과를 보고했다.

‘지배가 가능하다니 다행이네.’

3배 이상 큰 해적 함선도 침식 가능 대상이라는 점은 희소식이지만, 몇 가지 문제점도 같이 딸려왔다.

먼저 침식까지 걸리는 시간이 이 배를 지배할 때보다 더 길었다.

‘침식 완료까지 5시간이라.’

거기에 지배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10일밖에 되지 않았다.

‘지배 대상의 크기가 커지니까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량도 커지는 구나.’

다시 말해 에너지를 최대한 많이 섭취한 뒤에 해적의 함선을 침식시켜야지 장기간 지배할 수 있다.

‘신중히 움직여야겠네.’

나는 외벽에 돋아난 침식 촉수를 회수했다.

‘이미 일주일이 지났으니까 배를 옮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어.’

다만 내가 보유한 에너지가 많지 않으므로 저 배로 넘어가면 준비부터 해야겠다.

‘적당히 사냥을 하며 에너지부터 모아야지.’

저 배 안에 있는 밀수업자들과 밀수된 동물들을 먹어치우면 배를 장기간 지배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터.

그 후 기회가 왔을 때 침식을 끝마친다면 저 함선은 내 것이 되리라.

‘그보다 먼저 이 배에 승선한 자들부터 처리해볼까.’

탐사대인지 일련의 무리가 도킹 포트를 통해 이쪽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배에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포트가 연결된 문을 약하게 만들었다.

<뭐야? 왜 이리 약해?>

<덕분에 시간 낭비 안 해서 좋지 뭐.>

<잡소리 그만하고 들어가.>

배 안으로 진입하는 해적들의 목소리가 머리 안으로 전달된다.

이 배는 나의 둥지이자 몸과 같은 존재이기에 저들이 말하고 행동하고, 신체 상태가 어떤지까지 전부 알 수 있다.

‘우주복을 입었네.’

해적들은 이 배가 죽은 배라는 것을 미리 알고 우주복을 입고 있었다. 또한 혹시 모를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각자 다양한 종류의 무기들도 챙겼다.

심지어 이 우주선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아예 없애버리려는지 폭탄까지 챙겨왔다.

‘그래 봐야 의미 없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위험한 야생 동물을 잡을 때는 유용하겠지만, 지금 그들을 기다리는 존재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다.

발을 디디고 있는 배가 자기들을 노릴 것이라고 과연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럼 나눠서 수색하도록 하지.>

<옙.>

<아, 저스틴. 엔진실로 가서 상태 좀 체크해.>

<엔진은 비싸니까요. 알겠습니다.>

들어온 해적 무리가 배 안을 빠르게 수색하기 위해 쪼개지기 시작했다.

‘좋아.’

저들이 오기 전, 나는 함선 내부의 구조를 극단적으로 뒤바꿔놓았다. 미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함정도 많지.’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배 안에 얼기설기 꼬여 있는 통로 중 하나가 내가 있는 엔진실로 연결되었다.

<애미 씨발, 좆나 으스스하네.>

순식간에 변화된 통로에는 저스틴이라 불린 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 엔진실로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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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이쪽이 분명 엔진실일 텐데.”

루스락 카르텔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저스틴은 메가콥이든 스타유니언이든 가릴 것 없이 배의 구조에 빠삭한 편이었다.

현재 그들이 들어온 여객선은 3층 구조로 되어 있고, 이 중 엔진실은 제일 아래층에 위치하고 있다.

평소라면 지금쯤 내려가는 계단이 보여야하는데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끝을 모를 정도로 긴 통로뿐이었다.

“뭐야 이거?”

이 배는 루스락 카르텔의 함선, 캘빈호만큼 거대하지 않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걸었으니 지금쯤이면 배 반대편에 도달해야 했다.

‘뭔가 이상해.’

저스틴은 불길함 속에서 우주복 안에 있는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스탁스 부선장님?”

「치직, 뭐, 치지지직, 이건, 치지지직」

“부선장님?”

「치지지직, 괴물, 치지지지직, 후퇴, 치지지직」

통신기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기분 나쁜 잡음만 들려왔다.

“…벼, 별일 없겠지?”

외부에서 캘빈호가 대기하는 중이다. 이 배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다면 진작 조치를 취했을 터.

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억지로 안심시키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검은색으로 가득 찬 통로에 우주복에 달린 전등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어둠, 그리고 또 어둠.

전등의 빛조차도 이 기괴할 정도로 검은 벽 속으로 흡수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걷던 중, 저스틴의 귀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꺄르르르륵.”

“!”

그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분명 그가 걸어온 복도임이 분명한데도 심히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그가 걷는 동안 통로가 제멋대로 움직인 것처럼 말이다.

“자, 잘못 들은 거겠지? 분명 그럴 거야. 아, 암. 그럼 말고.”

어색한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스틴이 발을 내딛는 순간,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꺄하하하.”

“씨, 씨발 거기 누구야?”

우주 공간, 그것도 가동을 멈춘 배에서 그가 들은 소리는 분명 어린 여자아이의 웃음소리였다.

우주복을 입고 있음에도 그는 온몸에서 닭살이 돋아났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도, 동작 감지기! 그걸 키면…!’

그는 서둘러 허리춤에 달린 도구팩에서 작은 기계를 꺼냈다.

생물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동작 감지기로, 주변에 움직임이 있을 시 기계에 달린 레이더에 표시해준다.

동작 감지기를 작동시키자 기계에서 녹색빛이 들어왔다.

“됐다…어?”

레이더에 나온 결과를 본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그를 둘러싼 이 주변 전체에서 신호가 표시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그의 바로 앞에 신호가 표시되어 있었다. 경악한 그는 고개를 들었고, 「그것들」과 마주했다.

그가 서 있는 복도 전체에서 눈이 나타나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색 벽 위에서 보라색으로 빛나는 눈들.

눈들과 마주한 저스틴은 어느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저 끔찍스러울 정도로 두려운 시선들을 피해 미친 듯이 달렸다.

도망치던 그의 앞에 문이 있었다.

지금까지 전혀 보이지 않던 엔진실로 향하는 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리·오·라·」

그것은 극도의 공포 때문에 들은 환청이었을까. 아니면 배의 심장이 그를 부른 것일까.

그를 부른 자가 누구인지 저스틴은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누군가의 인도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그에게 그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스틴은 부름에 따라 엔진실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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