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1
「수리 언제 끝날 것 같아?」
“몇·시·간·걸·립·니·다.”
「하아, 니미 오래도 걸리네. 아, 그리고 카메라 맛이 간 것 같은데 그것도 같이 수리해.」
알았다고 대답한 나는 통신을 종료했다.
‘다시 정리해보자.’
나는 엔지니어의 팔을 오도독 씹으면서 생각했다.
배를 장악하기 전, 뭐부터 먼저 해야 할까.
원래 계획은 해적선에 침입 후 지배를 유지할 에너지부터 확보하는 것이었다.
침식이 완료된 이후에 에너지가 부족하면 금방 배의 지배권을 상실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상황이 약간 바뀌었어.’
이전에 메가콥 탈출선을 지배하고 있을 때, 나는 해적들을 잡아먹었다.
직접 그들을 물어뜯고 먹어 치운 것이 아니라, 배 내부에 침식 촉수를 만들어서 말이다.
‘먹은 뒤 지배를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났었지.’
배를 지배한 다음 에너지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 짐작했지만, 내 예상이 틀렸다.
침식 촉수로 적을 잡아먹어도 나의 보유 에너지가 증가했다.
‘침식 촉수로 먹는 것은 내가 입으로 먹이를 섭취하는 것과 동일해.’
해적 중 한 명에게 포식 효과도 띄운 것을 보면 거의 확실한 상황.
즉, 침식에 쓸 에너지 확보에 목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무턱대고 침식할 수는 없어.’
침식 도중에는 취소할 수 없으니 5시간 동안 꼼짝없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로는 적들의 공격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침식을 좀 나중에 하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게 좋아.’
얼추 300m쯤 되는 이 거대한 배에 있는 해적 수는 85명.
그들의 수가 적을수록 내게 유리하다.
‘일단 줄이긴 줄여야 하는데.’
먼저 무엇부터 노리는 게 좋을까.
저스틴에게 듣기로 이 배에는 강한 화력을 지닌 폭탄이 다수 실려 있다. 다른 배를 약탈한 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쓰는 폭탄이라고 한다.
‘솔직히 나 하나 때문에 자폭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막다른 길에 몰리면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아니면 선장이 부하들 몰래 폭탄을 설치한 뒤, 자기 혼자 함재기를 통해 빠져나갈 수도 있고.
‘먼저 저들이 못 도망치게 만들자.’
배 안에 있는 함재기를 망가트리면 저쪽에서도 함부로 폭탄을 쓸 생각을 못 할 터.
그 다음 폭탄까지 정리해두면 저쪽이 나를 위협할 수단이 크게 줄어든다.
‘함재기는 격납고에 있어.’
하이재킹 특성을 악몽의 지평선 재료로 써버렸기 때문에 현재 나는 감시카메라를 무력화시킬 수 없다.
다시 하이재킹을 융합해서 얻으면 모를까, 이 덩치로 적들의 시선을 피해 격납고로 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는 법.
‘먼저 둥지부터 만들자.’
나는 엔지니어의 시체를 입에 마저 털어 넣고 몸을 웅크렸다.
배를 침식할 때 나오는 비슷한 검은색 점액이 몸에 있는 구멍 곳곳에서 흘러내렸다.
‘어차피 임시로 쓸 거니까 굳이 완벽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내가 서 있는 이곳으로부터 반경 100m 이내에 있는 적들을 샅샅이 감시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반쯤 굳은 점액들이 어느새 포자와 줄기를 만들며 조금씩 범위를 불리고 있었다.
둥지의 크기가 얼추 내가 누워 있는 범위를 넘어설 때쯤, 나는 보조기관 끝을 둥지 위에 붙였다. 침식 촉수를 썼던 것과 비슷하게 내 몸이 배의 금속 합판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둥지와의 링크에 성공한 것을 확인한 나는 둥지로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을 체크했다.
‘좋아. 이 정도면 괜찮아.’
작지만 운용 가능한 둥지를 만들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탈출선에서 해적을 죽이고 얻은 특성이 있다.
몇 번 쓸 기회가 있었지만 쓰지 않았는데, 이제 그걸 활용할 시간이 왔다.
「이빨요정 둥지: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식인벼룩 ‘이빨요정 무리’를 생성하는 기관이 몸에 생깁니다. 이빨요정 무리는 하루에 최대 3회까지 생성 가능하며, 지배할 수 있는 거리는 반경 100m 입니다.
*추신: 아니 도대체 이런 이름은 누가 지은 거죠?」
해적선에 승선하기 전부터 내 배갑에는 침식 촉수가 나오는 구멍을 제외하고 다른 부위에 알주머니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 알주머니가 전투형 기생충인 ‘이빨요정 무리’가 들어 있는 둥지다.
이빨요정 둥지는 육체 관련 특성인 치악력 특성과 감염 관련 특성인 털벼룩 특성을 융합해서 만든 특성이다.
‘털벼룩 특성은 야생 짐승한테서 주로 얻을 수 있는데 의외였어.’
몸이 털가죽으로 덮인 동물을 잡아먹으면 높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특성이라 이곳에서 얻을 줄은 몰랐다.
‘밀수꾼이라 그런가?’
탈출선에서 들어온 해적 중 한 명이 이미 털벼룩에 감염된 상태였다. 그를 집어삼킬 때 몸에 붙어 있던 털벼룩도 같이 소화되면서 나는 새 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
‘털벼룩 자체는 쓸모 있는 능력이 아니지만.’
왜소화처럼 부정적인 효과를 갖는 특성이다. 특성을 보유할 시 반영구적으로 가려움증이라는 상태 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융합하면 전혀 달라지지.’
치악력 특성과 융합하면 쓸 만한 감염 관련 특성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나와라 얘들아.’
이빨요정 둥지를 활성화하자 등에 있던 알집들이 터지면서 검은색 벌레들이 튀어나왔다.
머리에 눈 대신 큼지막한 이빨과 입이 달려 있고, 크기가 어린아이 손바닥만 하다는 점만 빼면 일반 벼룩과 똑같이 생겼다.
원본 털벼룩이 피를 빠는 것과 달리 이빨요정들은 저 뾰족한 이빨로 뭐든지 뜯어 먹는다.
이 충성스러운 병사들은 고기든, 금속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명령한 것을 물어뜯을 뿐.
‘모두 정렬.’
수십 마리의 이빨요정들이 내 의지에 복종해 내 앞에 모였다.
옆에서 우주복을 입은 엔지니어를 빼먹고 있던 26호가 그걸 보고 다가왔다.
「우와? 얘들은 누구야?」
26호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빨요정들이 신기한지 몸을 반짝반짝 빛냈다.
[즈 즈즈 즈즈(내가 만든 애들)]
「만들어? 큰애기가 낳은 애기야?」
[즈즈즈즈 즈 즈즈(비슷하지만 좀 달라)]
「애기들이 아니야?」
툴팁에 지배 제한 거리가 쓰여 있는 것처럼 이빨요정은 나를 통해 생성된 일종의 소환수다.
적의 시선을 끌어 주거나 예상치 못한 장소에 숨겨놨다가 기습을 시키는 용도의 소모품.
‘게임할 때도 잘 써먹었지.’
기생 군체가 게임에서 일종의 디버프 기술로 구현된 것과 달리 이빨요정은 전투용 소환수 형태로 구현되었다.
단독 플레이만 가능한 에이모프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솔직히 스펙 자체는 그리 좋지 않지만.’
이 무서운 식인벼룩은 움직임도 빠르고 공격력도 높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아무래도 벌레다 보니 방어력이 없다시피 해서 레이저 소총만 맞아도 죽는다. 헐크 뮤턴트 같이 힘이 강한 생물이라면 발로 밟아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잘 써먹어야 제값을 하지.’
해적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나는 이빨요정을 잘 써먹는 축에 속한다.
‘각자 위치로.’
나의 명령을 들은 이빨요정 무리가 통통 튀며 화물창의 계단 위로 사라졌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이빨요정들이 보내는 특유의 신호는 끊임없이 나의 보조기관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이빨요정 무리의 목적지는 함재기들이 실려 있는 격납고.
‘격납고는 3층 선체 전방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그들은 튼튼한 뒷다리로 이리저리 튀면서 빠르게 3층까지 올라간 뒤 격납고로 향하는 복도에 접어들었다.
‘중간에 해적.’
둥지를 통해 해적들의 움직임을 미리 인식하고 있던 나는 이빨요정들에게 이를 알렸다.
식인벼룩들이 근처에 있는 환풍구 등을 갉아먹고 그 안에 들어가 숨었다.
<동작 감지기에는 여기에 뭐가 있다는데?>
<아무것도 없잖아?>
<씨, 씨발 유령이 배에 옮겨붙은 거 아냐?>
해적들은 계속 경고 신호를 띄우는 동작 감지기를 들고 복도를 한참 헤매다가 다른 곳으로 떠났다.
해적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아서 나는 다시 명령했다.
‘전진.’
복도 위를 폴짝 폴짝 뛰며 빠르게 이동하던 이빨요정 무리 앞에 어느새 격납고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문 앞에는 나보다는 작지만 일반 인간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큰 경비 둘이 서 있었다.
하나는 고릴라 비슷하게 생긴 괴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머리가 코뿔소를 닮았다. 서로 다르게 생긴 괴물이었지만, 딱 하나 닮은 점이 있었는데 바로 몸 여기저기 금속판들이 이식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헐크 뮤턴트가 있네?’
여러 종류의 유전자가 조화롭지 않게 이식되어 흉측한 외모를 가진 그들의 정체는 헐크 뮤턴트였다.
그들은 경비를 서는 것이 지루한지 하품을 쩍쩍 해대며 서 있었다.
‘헐크 뮤턴트는 무리야.’
나는 이빨요정 무리를 후퇴시켰다.
이들로 헐크 뮤턴트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놈이 이빨요정을 한 대씩 칠 때마다 한 마리씩 죽어 나갈 테니까.
설령 이빨요정들이 헐크 뮤턴트를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하지 않을 거다.
‘귀한 유전자 정수 덩어리인데 날릴 수는 없지.’
저들 두 마리는 나중에 내가 직접 처리하도록 하고, 나는 이빨요정 무리를 환풍구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좀 돌아가야겠지만 환풍구를 통해 격납고 내부에 잠입하는 것이 낫다.
식인벼룩들이 2열종대로 서서 환풍구 내부를 걷는다. 아마 나 말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봤다면 참으로 초월적인 광경이라 생각하겠지.
‘환풍구라.’
이빨요정 무리를 조종하는데 문득 처음 에이모프가 됐을 때 생각이 났다.
유성의 연구선에 있는 화물칸에서 에이모프의 삶을 시작했을 때.
나는 환풍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냥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연구선보다 훨씬 큰 배 안에서 수많은 해적들을 역으로 사냥하려 하고 있다.
‘들어갔어.’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빨요정 무리는 무사히 격납고 천장에 붙어 있는 환풍구 앞에 도착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격납고 천장의 환풍구는 예전 연구선 화물칸에 있던 회전 날이 달린 형식이었다.
‘전부 달려들어서 갉아먹어.’
그때 나는 환풍구의 날을 피하고자 목숨을 걸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십 마리의 이빨요정들이 환풍구 모서리 부근에 달린 기계 장치를 갉아 댔다. 곧이어 스파크가 튀며 환풍구의 날이 서서히 느려지다가 결국 정지했다.
이빨요정들은 날을 치우고 격납고 내부로 뛰어내렸다.
내부에는 스타유니언의 구형 전투기가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모두 망가뜨려라.’
이빨요정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함재기 밑바닥에 달라붙었다.
내부에 카메라가 있긴 하지만 누구 한 명이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이빨요정들의 움직임을 알아채기 어려울 거다.
몸이 바닥과 똑같이 시커먼 검은색인데다가 크기도 어린아이 손바닥만 하니까.
그런 것들이 함재기 밑바닥으로만 돌아다니고 있으니 카메라 너머에서 본다면 쥐가 돌아다니는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일 터.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두꺼운 격납고의 문이 열리고, 일련의 무리들이 무장한 상태로 격납고 내에 진입했다.
<격납고 내부에 이상 발생!>
<이 머저리들아! 안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밖에서 뭘 하는 거야?>
<어, 우린, 열심히, 지켰다! 억, 울하다!>
<씨발 원숭이보다 못한 새끼들!>
해적들은 내 예상보다는 빠르게 격납고의 이상을 눈치 챘다.
그들은 전등으로 함재기 밑에 있는 식인벼룩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으악!>
<이 미친 벌레 새끼들!>
식인벼룩들이 해적들에게 덤벼들자 그들이 기겁하며 사격을 개시했다. 컴컴한 격납고 내부에 붉은색 레이저 빛이 번뜩일 때마다 이빨요정들이 터져 나갔다.
<아아악! 이것 좀 떼줘!>
<끄아아악! 내 얼굴!>
일부 살아남은 이빨요정이 해적들의 몸에 달라붙어서 그들의 살점을 물어뜯었다. 면도날 같은 이빨들에 피부가 뜯겨지는 고통에 해적들이 비명을 질렀다.
<도, 도와 준다!>
<빌어먹을 굼벵이 새끼가! 빨리 떼달란 말이야!>
생각보다 이빨요정들이 분발했지만 안타깝게도 해적 측의 사망자는 없었다.
헐크 뮤턴트 경비원들이 돌아다니며 해적들에게 붙은 이빨요정을 맨손으로 떼어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격납고에 들어간 이빨요정 무리는 순식간에 전멸했다.
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씹! 함재기가 다 망가졌어!?>
그들은 나의 의도에 충분히 부응했으니까.
‘퇴로는 막았어.’
그리고 저들은 모르겠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어느새 배갑 위에 자라난 알집들이 터지며 새로운 이빨요정 무리가 나를 둘러쌌다.
‘함재기는 정리했고.’
다음 타깃은 병기고에 보관된 폭탄들이다.
사냥은 단순히 사냥감을 뒤쫓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냥이 시작되기 전에 무엇을, 얼마만큼 준비하는지도 사냥을 성공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사냥감에 대해 미리 알고, 사냥감이 내가 원하는 위치에, 내가 원하는 상태에 있게 만드는 것.
저들은 나에 대해 모르고,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모른다.
겨우 세 가지 차이로 저들과 나의 위치가 갈린다.
사냥감과 사냥꾼으로.
‘폭탄까지 모두 정리되면….’
척박한 우주 공간에서 유일한 생존공간인 이곳이.
어리석은 사냥감을 집어삼키는 암흑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