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04화 (105/400)

Ep. 104

백색 악귀들이 선체에 달라붙는다.

놈들이 날카로운 이빨로 배를 물어뜯었다.

‘피하기는 이미 늦었어.’

나는 급히 선체 외벽에 침식 촉수들을 생성했다. 스톰건으로부터 발사된 탄환과 함께 내 침식 촉수가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

수많은 촉수들이 메탈릭 그렘린들에게 달라붙어 사지를 잡아 뜯어내거나 통째로 집어삼켰다. 외벽에 이미 만들어져 있던 부패 곰팡이 포대도 쉬지 않고 포자들을 토해냈다.

선체로 돌아왔던 아드하이, ‘심해의 공포’를 쓰고 있던 26호도 놈들에게 맞서 싸웠다.

아드하이는 녹색 번개가 되어 그렘린들 사이를 헤집었고, 26호는 스톰건의 사격 궤도에 맞춰 그렘린들을 속박시켰다. 검은색 선체가 놈들이 뿌린 은색 피로 번들번들 빛났다.

그렇게 우리는 맹렬하게 메탈릭 그렘린 무리를 방어했지만, 쉽지 않았다.

‘수가 너무 많아.’

나는 연신 떠오르는 텍스트박스를 치웠다. 엄청난 수의 메탈릭 그렘린을 잡아먹다 보니 포식 효과가 계속 뜨고 있다.

대부분은 내가 이미 얻은 ‘금속포식’, 아니면 내게 필요 없는 ‘왜소화’ 특성이었다. 그래도 개중 쓸모 있는 특성도 몇 개 확보할 수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

사이킥 브레스로 놈들 수를 절반가량 줄였지만 여전히 놈들의 수는 수백 이상. 워낙 수가 많다 보니 아무리 죽여도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스톰건의 탄약도 다 떨어졌어.’

이대로 가다간 잘해봐야 공멸이다.

우리가 수백 마리를 죽이는 동안 또 다른 수백 마리가 선체를 물어뜯기 때문에 외벽도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다.

[즈즈즈즈(모두 돌아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더 늦었다간 초광속 항해를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초광속 항해는 선체에 제법 부담을 주기 때문에 배 전체에 손상이 심하면 항해 도중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는 수가 있다.

‘아직 놈들이 많지만….’

여전히 백 마리가 넘는 메탈릭 그렘린이 달라붙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큰애기야! 나쁜 녀석들이 너무 많아!」

「적」「무한」「나」「피로」

나는 내 옆으로 다가온 26호와 아드하이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녀석들은 수많은 적들과 쉬지 않고 싸우느라 피곤한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도 둘에게 자잘한 상처 빼고는 큰 부상은 보이지 않았다.

‘애들도 왔으니 준비하자.’

나는 함선의 구조를 바꿔서 우리가 있는 방, 원자로 등 중요한 시설이 있는 부분의 벽들을 최대한 두껍게 만들었다.

그리고 원자로에 남아 있는 에너지를 광속엔진으로 돌렸다.

나에게 침식당해 검은색 구체의 모습으로 화한 광속엔진이 에너지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꿈틀댄다.

엔진이 가동을 준비하는 중에도 메탈릭 그렘린들의 공세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드하이와 26호가 빠졌기에 놈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침식 촉수로 녀석들을 쳐 냈지만, 놈들은 기어코 선내까지 기어들어 왔다.

선내에 침입한 놈들은 자기들 세상인 양 내부의 시설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만약 놈들의 수가 좀 더 많았더라면 광속엔진이 가동되기 전에 원자로를 잃고 말았으리라.

놈들이 원자로의 외벽을 갉아먹고 있을 때 함선의 심장이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신호를 보냈다.

‘됐어!’

마침내 광속엔진이 포효했다.

목적지는 밀수꾼들이 주로 가던 구역. 도착한 곳 근처에 다양한 희귀 생물이 서식하는 밀림형 행성이 존재한다.

푸른빛이 우리뿐만 아니라 배 전체를 휘감고, 저 멀리 드문드문 보이던 별빛들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그리고 배 안과 밖에 있던 모두가 함께 공간을 뛰어넘었다.

‘큭?!’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내 몸 위로 어마어마한 압력이 닥쳤다. 배가 빛의 속도를 넘어 초광속의 영역에 접어들면서 발생한 충격 때문이었다.

탈출선만 해도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배가 커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메탈릭 그렘린들에 의해 배가 손상되었기 때문일까.

단단한 합금에다가 침식을 위해 생성된 특수 점액들로 보호받던 함선이 마치 꽈배기처럼 뒤틀렸다.

배를 통제하느라 몸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선체에 가해지는 압력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배 전체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합금벽을 덮고 있는 점액 물질에 감각을 한층 더 밀접하게 퍼뜨렸다. 그러자 전신이 으스러지는 것 같은 통증이 내 뇌리를 강타했다.

「고통 경감 발동!」

당장 감각 연결을 해제하고 싶지만 배의 상태를 시시각각 확인해야하므로 어쩔 수 없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겠어.’

배가 쪼개졌다면 진작 부서졌을 거다. 이대로 간다면 행성에 착륙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과 고통은 별개의 문제. 고통 경감이 발동되었음에도 온몸을 쥐어짜는 것 같은 고통이 계속되니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큰애기야! 힘내!」

「위대한 어른!」

26호와 아드하이가 응원하는 파장이 감지된다.

녀석들의 응원을 받은 나는 재차 이를 악물었다.

‘게임에서도 이런 식으로 죽은 적은 없어.’

내가 겨우 메탈릭 그렘린들 따위한테 털렸다는 소식을 커뮤니티 유저들이 접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다.

고통 속에서 어떻게든 정신을 다잡은 나는 외벽에 침식 촉수를 생성했다.

「■■?」

반쯤 망가진 배에서 촉수가 튀어나오자 메탈릭 그렘린들이 당황해했다. 나는 촉수를 조종해 놈들을 후려쳤다.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한 정리해야 해.’

선체 내부에 있는 녀석들은 떨어뜨리기 어렵지만 외부에 있는 놈들은 아니다.

「■■■■!」

외벽에 있다가 촉수에 얻어맞은 놈들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우주의 저 어딘가로 떨어져 버렸다. 놈들은 반격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자칫 잘못 움직였다가 함선에서 떨어지는 순간, 촉수에 맞은 동족 꼴이 될 테니까.

문제는 안에 있는 놈들이다.

놈들은 교활하게도 배가 초광속 항해에 돌입하자 원자로에 침입하는 것을 멈췄다. 도중에 원자로가 폭발하면 큰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그렇다고 내버려 둘 생각은 없어.’

도착하자마자 공격할 놈들이다. 힘들지만 어떻게든 줄여놔야 한다.

나는 촉수에 이어서 부패 곰팡이를 발사할 작은 포탑을 배 내부 곳곳에 생성했다.

「■■■!」

내부에서 벽을 갉아먹던 녀석들은 새로운 적이 나타나자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나는 외벽에 있는 놈들은 침식 촉수로 정리하고, 내부에 있는 놈들에게는 곰팡이 포자를 날려 견제했다.

선체 상태 점검에 촉수랑 부패 곰팡이 기관 조종까지.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분투한 끝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초광속 항해가 끝났다.

‘도착했어!’

주변에 내리깔린 어둠 너머에 푸른 행성이 보인다. 해적들이 희귀 동물 포획을 위해 잠입하는 행성이다.

‘좋아! 조금만 더 버티자!’

나는 메탈릭 그렘린을 배 안에 실은 채로 행성의 대기권에 진입했다. 외벽 전체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강한 열기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끼익!」

뜨거운 열기 속에서 메탈릭 그렘린들이 아우성을 친다.

고통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메탈릭 그렘린은 우주 공간에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행성에 들어가면 매우 약해진다.

설정상 메탈릭 그렘린은 눈이나 후각이 거의 없다시피 한 대신 금속을 감지하는 기관으로 먹이를 찾아 나선다.

그렇기에 다량의 금속이 섞여 있는 행성에 들어가면 뛰어난 금속 감지 능력이 독이 된다. 주변으로부터 온통 금속이 감지되는 바람에 감각에 혼란이 오는 것이다.

또한 놈들은 행성의 대기에서 활공 정도만 가능하지 우주로 돌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없다. 즉 한번 행성에 들어오면 우주로 나갈 수가 없다.

행성에 갇힌 메탈릭 그렘린에게 남은 미래는 행성 내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다가 다른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는 일뿐이다.

그 사실을 놈들도 알고 있기에 날뛰는 거다.

「키이이이익!」

「킥! 키익!」

놈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밖으로 도망치려고 한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이빨과 발톱을 활용해서 바깥쪽과 가까운 벽을 긁어댔다.

‘그렇게는 안 되지.’

지금까지 나를 잔뜩 귀찮게 한 놈들이다. 도망치게 내버려 둘까 보냐.

나는 침식 촉수들로 도망치려는 놈들을 놓치지 않고 집어삼키는 동시에, 놈들이 서 있는 공간의 위치를 계속해서 바꿨다.

벽을 뚫어도 위치가 바뀌기 때문에 놈들은 계속 배 안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메탈릭 그렘린들을 농락하면서 대기권 내로 진입했다.

푸른 바다와 중간마다 있는 점처럼 박혀 있는 섬들, 그리고 울창한 밀림으로 뒤덮인 육지가 작게 보인다.

다양한 환경이 섞여 있다면 거기에 서식하는 생물의 종류도 다양할 터.

그 말은 즉 내가 습득할 수 있는 유전자 정수의 폭도 넓어진다는 뜻이다.

지상 어디에 착륙할지 살펴보는데, 달갑지 않은 장면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컬트 순양함의 주포에 요격 당했다.」

「선체가 둘로 쪼개졌다. 회복할 수 없다.」

「원자로가 폭발했다.」

「나는 죽었다.」

‘뭐?’

지금 지나간 것이 포식자 감각에 의한 미래 예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급히 배를 우측으로 크게 틀었다.

육지 안쪽으로부터 거대한 열선이 날아와 배의 후면, 즉 추진기와 상황실이 있는 부분을 날려 버렸다.

‘이런!’

배는 나의 통제 아래에 있지만 추진기가 날아간 상황에서도 고도 비행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나와 애들을 실은 배가 통제에서 벗어나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우리가 추락하는 지점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곳은 육지에 인접한 얕은 바다였다.

‘순양함의 주포라면 대기 시간이 있어. 그 전에 바다에 불시착하면….’

하지만 수수께끼의 적은 내가 무사히 착륙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육지 안쪽 밀림에서 다이아몬드를 닮은 함재기들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된 거지?’

이 배에 남아 있던 정보에서는 해적들 말고 다른 세력은 오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다. 적어도 내가 잡아먹은 해적들이 이 행성에서 다른 세력들과 교전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다른 해적이구나.’

거침없이 공격하는 것을 보니 저쪽은 적어도 이 무역선의 원주인들보다는 상위의 카르텔에 있는 자들이 분명했다.

하필 내가 온 날에 다른 해적들이 이곳에 올 줄이야. 그렘린 무리에 새로운 해적 무리라니 불운이 연달아 닥치고 있다.

‘침착하자. 이대로 가다간 다 죽어.’

불운에 대한 한탄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당장의 위기부터 헤쳐 나가야 한다.

‘주포가 활성화 되기 전에 착륙하지 못하면 끝장이야.’

그렇지만 적들의 함재기가 내가 무사히 착륙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다. 현재 배의 손상이 심해서 함재기들이 쏘는 플라즈마탄에도 쉽게 파괴될 거다.

‘나는 그나마 버틸 수 있어.’

공중에서 원자로가 폭발하지 않는 이상 나는 죽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나와 같이 있는 애들은 아니다.

‘…애들부터 탈출시켜야 하는데.’

문제는 저 함재기들이 애들을 내버려 두겠냐는 것.

혹여나 놈들이 아드하이와 26호를 노리고 사격을 가한다면 애들은 큰 위험에 빠질 거다.

그나마 아드하이는 비행이 가능하니 도망이라도 칠 수 있지만, 26호는 아니다.

‘마침 바다니까 여기서 애들을 먼저 보내자.’

바다라면 26호의 홈그라운드다. 물 속에 들어가면 녀석이 알아서 아드하이와 같이 도망칠 수 있겠지.

나의 경우는 아까 메탈릭 그렘린을 잡아먹으면서 새로운 탈출 수단을 확보했다. 그렇기에 애들을 보낸 뒤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도 탈출할 수 있다.

‘어떻게 시선을 끌…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 배 안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는 놈들, 메탈릭 그렘린들. 놈들을 이용해야겠다.

나는 배의 구조를 변형시켜서 벽 한쪽에 큼지막한 구멍을 뚫었다.

구멍 밖에 푸른색 바다가 그대로 보이고, 바다 냄새가 훅 하고 밀려들어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즈즈즈 즈즈즈(너희는 먼저 가)]

「큰애기야?」

「어른?」

나는 금속 벽들의 모양을 변형시켜서 26호와 아드하이를 감싸도록 바꿨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26호가 급히 파장을 쐈다.

「같이 가!」

[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난 너희 먼저 보내고 갈게)]

「여기 있으면 안 돼! 위험하단 말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바깥의 상황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집중했다. 함재기들이 배에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좋아.’

함재기에 달려 있는 플라즈마 런처가 배를 조준했을 때, 나는 배 안에 있던 공간 중 일부의 벽을 그대로 치워 버렸다.

그러자 안에 있던 메탈릭 그렘린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녀석들은 달려 나가던 속도 그대로 활공하며 함재기들에게 달라붙었다.

‘지금이야!’

나는 26호와 아드하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금속 구체를 촉수로 후려쳤다. 구체가 분리되기 직전, 26호로부터 가느다란 촉수 한 가닥이 솟아나 나의 보조기관에 닿았다.

그 순간 나는 녀석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한 두려움, 스스로 아무것도 못한다는 무력감, 그리고 제발 죽지 말아 달라는 간절함.

그 복합적인 감정의 메시지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그리고 우리는 금방 다시 만날 거라고.

「약속이야!」

녀석이 외친 순간, 구체가 분리됐다.

아드하이와 26호를 감싼 구체는 미리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함선 밖으로 사출되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녀석들이 무사히 바다로 떨어질 때까지 확인했다. 함재기들은 그렘린 때문에 정신이 없는지 떨어지는 금속 구체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됐어.’

내가 함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끝났다. 침식 촉수를 해제한 나는 구체가 튀어 나간 구멍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함선 밖으로 뛰어내렸다.

저 멀리 밀림 속에서 주포의 열선이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열선은 무자비하게 함선을 관통했고, 엄청난 폭발이 나를 휘감았다.

「고통 경감 발동!」

‘윽!’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나는 전투용 팔 전부와 꼬리를 활짝 펼쳤다.

아까 메탈릭 그렘린을 잡아먹고 얻은 특성 중 하나인 ‘활공 피막’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활공 피막: 높은 고도에서 안정적으로 활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내 전투용 팔들 사이부터 꼬리 중간까지 연결된 길쭉한 피막이 펼쳐지고, 내 몸이 공기의 흐름을 타고 붕 떠올랐다.

활공 피막은 윙슈트나 날다람쥐의 활공 형태를 모방한 것이지만, 4개의 팔과 긴 꼬리를 가진 에이모프를 보고 이를 연상할 사람은 없으리라.

그렇게 추락 속도를 낮추면서 하늘을 활공하고 있으니 함재기들이 내 뒤를 쫓아왔다.

그들이 쏜 플라즈마탄이 내 머리와 등 위를 스쳤다.

나는 팔에 붙어 있는 피막을 빠르게 접었다. 내 몸이 빠르게 추락하고 함재기들 또한 나를 따라 급강하했다.

‘걸렸구나.’

활공 피막을 다시 펴서 강하하던 함재기들과 거리를 좁힌 나는 또다시 메탈릭 그렘린으로부터 얻은 특성을 사용했다.

「전파 장애: 전기로 움직이는 기기를 대상으로 일시적인 오류를 일으키는 파장을 내뿜습니다.」

그 특성은 바로 ‘전파 장애’.

하이재킹의 재료 중 하나인 전파 장애를 아까 전에 습득했다.

내 등에 이중으로 솟아 있는 골판으로부터 기계를 고장 내는 파장이 흘러나와 가까이 있는 함재기들을 휘감았다.

함재기들의 전원이 그대로 꺼지고, 하릴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떨어지기 전 강화 유리 너머에 예상외의 사태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조종사들이 보인다.

그렇게 함재기들을 무력화시킨 나는 활공 피막을 활용해 밀림 속으로 서둘러 날아갔다.

‘전파 장애 효과는 길지 않아.’

저쪽이 숙련된 조종사라면 금방 함재기의 통제권을 되찾겠지.

내 예상대로 떨어지던 함재기 중 하나가 금방 다시 날아올랐고, 나머지는 숲속에 처박혔다.

함재기는 나를 쫓으려고 했지만, 나는 이미 거목들이 가득한 수목림에 가까워진 상태.

피막을 접은 나는 그대로 나무를 부수며 밀림 안쪽에 떨어졌다.

수많은 거목들을 쓰러트린 끝에 나는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착지하자마자 나는 쓰러진 거목 더미 아래에 몸을 숨겼다.

뒤따라온 함재기가 나를 바위로 착각하고 그대로 가려고 할 때, 나는 조종사를 향해 공포의 주시자를 썼다.

‘어딜 그냥 가려고.’

멀쩡히 날아가던 함재기가 급격히 방향을 틀더니 그대로 나무에 들이받았다. 날개가 반쯤 파손된 함재기는 비틀거리며 제자리를 뱅뱅 돌다가 땅에 추락했다.

추락한 함재기에서 조종사 2명이 기어 나왔다.

한 명은 뿔이 있는 것을 보니 컬트, 다른 한 명은 인간이었다.

추락의 충격으로 정신이 없어 보이던 그들은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저 없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둘 모두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나는 침식 촉수를 날려서 그들을 붙잡았다.

“자, 잠깐! 기, 기다려!”

“사, 살려 줘!”

붙잡힌 채 버둥거리는 조종사들.

평소라면 기생충을 쓰든 뭔가 이용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오랜만에 뚜껑이 제대로 열렸으니까.

“끄, 끄아아아악!”

“그, 그만! 아아아악!”

인간은 침식 촉수로 발끝부터 천천히 삼켰고, 컬트는 촉수 두 개로 팔, 다리를 붙잡고 잡아 당겼다.

‘내게 아주 거하게 엿을 먹였어.’

번개 두 번 맞는 것보다 확률이 낮다는 메탈릭 그렘린 무리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나.

어떻게든 피했다고 생각하니까 이번에는 스페이스독이 튀어나오질 않나.

기껏 어렵게 얻은 배를 주포로 날려버리질 않나.

‘게다가 아드하이와 26호까지 죽을 뻔하게 만들었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금 내 기분은 심히 좋지 않다.

‘감히 밀림 지역에서 내게 도발을 했다 이거지?’

내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전장은 우주선도, 우주도시도 아니다.

과거 내가 4개의 클랜들을 밀림형 행성에서 전멸시킨 이후.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랭커들조차도 차라리 자살을 할 망정, 밀림 속에서는 나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곳, 밀림에서 펼치는 게릴라전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께에엑!”

두 개의 촉수에 붙잡혀 있던 컬트는 꽥꽥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다가 상하체가 분리된 뒤에야 조용해졌다.

“끄, 끄으, 으으….”

다른 한 명은 가냘픈 신음을 내뱉다가 촉수에 으스러져 죽었다.

그렇게 둘을 천천히 죽이고 잡아먹은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직 추락한 함재기에 있는 조종사들. 그들도 전부 죽이기 위해서.

이 행성에 있는 해적들 중 단 한명도 살려두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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