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05화 (106/400)

Ep. 105

“제, 제가 아는 것은 모두 말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기생충에게 지배받는 인간 조종사가 나에게 애원한다.

컬트 조종사의 팔을 씹고 있던 나는 이빨요정 무리에게 눈짓 했다.

그러자 조종사들을 둘러싸고 있던 식인벼룩들이 기뻐하며 먹이에게 달려들었다.

“이, 이러지 마아아아아악!”

추락한 함재기의 조종사들은 이걸로 전부 정리되었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PH-101이라는 행성 중 세인토피아02 대륙이다. 생태계는 원시 지구와 유사하여 생명이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행성은 겉처럼 아름답기만 한 곳이 결코 아니다.

‘푸른 지옥이지.’

이 행성에 서식하는 생물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어중간한 수준의 유저들은 사냥하긴 커녕 사냥당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귀한 자원이 매장된 지역 주변에는 적대적인 볼프 NPC들이 사는 데, 이들 중에는 네임드 볼프가 간간이 등장한다.

‘내가 잡아먹었던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르지.’

드물게 나오는 네임드 볼프는 매우 강력하다. 지금의 나라도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런 탓에 랭커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나 대형 클랜이 아니고서는 이 행성을 공략하기 어렵다.

반면, 행성을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는 상위 플레이어나 대형 클랜도 이곳을 독점할 수 없다.

왜냐하면 PH-101는 설정상 컬트가 종교적인 이유로 보호하는 행성이기 때문이다.

다른 세력들이 독점하고 싶어도 게임 시스템상 어떠한 건축 활동도, 진지 구축도 불가능하다. 설령 컬트 플레이어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에만 체류할 수 있다.

‘내가 이 행성을 택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지.’

PH-101라면 다른 세력들의 견제를 피해 질 좋은 유전자 정수를 마음껏 확보할 수 있으니까.

‘원래는 그래야 한다만.’

해적 조종사를 심문해 보니 게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

현재 이곳은 현재 스페이스독 중 매우 강력한 카르텔이 점거한 상태였다.

카르텔 이름은 ‘휴머니티’.

보통 스페이스독의 카르텔들은 두목의 성이 곧 이름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특이한 경우다.

‘게다가 휴머니티라니.’

내게 스페이스 서바이벌을 접기 전, 랭커가 이끄는 클랜 중에 비슷한 이름의 클랜이 있었다.

희한하게도 클랜장이 여성이면서 클랜원들은 남성만 받았다.

덕분에 커뮤니티에서 여왕벌 클랜이니 뭐니 하며 안 좋은 소리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커뮤니티의 주적인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아무튼 휴머니티 카르텔이 이곳을 점거할 수 있는 이유는 짐작이 갔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컬트 조종사에서도 보이듯 휴머니티의 구성원 대부분은 컬트라고 한다.

그 덕에 휴머니티 카르텔은 대놓고 이 행성에 들락날락거릴 수 있다고 했다. 게임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현실이다 보니 생긴 변수였다.

‘게다가 두목이 컬트 지배계급과 커넥션이 있다고 했어.’

그 말은 즉 휴머니티의 두목이 최소 야크 뿔 컬트 이상의 고위 컬트라는 뜻.

그런 자가 왜 해적질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까지 내가 알 필요는 없다.

‘덕분에 유전자 정수도 모으고 진화 조건도 채우고 일석이조야.’

나는 남은 컬트의 잔해를 마저 삼키고 이빨요정들을 회수했다.

조종사의 말을 들어 보면 휴머니티는 밀수업 때문에 주기적으로 이 행성을 떠난다고 했다.

‘배가 있다면 내가 나가는 것도 수월해지지.’

해적들이 떠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14일.

그들이 나가기 전에 배를 탈취해야 한다.

‘그 전에.’

나는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활성화했다.

「종족: 미확인 적대적 우주생물

상태: 아성체(초월 1단계)

목표: 생존하라(진화 2회 성공).

보유 특성(육체계열 14개/초능력계열 7개/감염계열 5개/특수방어계열 3개/둥지계열 1개)

① 육체 관련(타입 적용 중): 산성피, 금속 흡수, 완전한 유기체(유일), 페로몬 강화, 가사 상태, 뼈 도끼, 활공 피막, 전파 교란, 강화 흡반

-육체 관련 융합 특성: 재생력, 신경독샘, 의태 기관(사용불가), 흡혈 촉수, 가시털 발사 꼬리

② 초능력 관련(타입 적용 중): 인간성, 초능력 내성, 통찰

-초능력 관련 융합 특성: 포식자 감각, 괴물의 촉수, 유령 발톱, 공포의 주시자

③ 감염 관련: 우주 박테리아, 전염 강화

-감염 관련 융합 특성: 기생 군체, 부패 곰팡이 기관, 이빨요정 둥지

④ 특수방어 관련: 고통 경감, 저항력

-특수방어 관련 융합 특성: 보호색

⑤ 둥지 관련: 악몽의 지평선(유일)

보유타입(2개)

육체 강화 타입, 초능력 강화 타입

특성화 가능 타입(3개)

감염 강화 타입(5/8), 특수방어 강화 타입(3/4), 둥지 강화 타입(1/4)

* 불완전 특성(5개)

에너지 흡수, 강인한 생명력, 왜소화, 아가미, 지느러미

캘빈호의 헐크 뮤턴트, I-97 섹터의 메탈릭 그렘린들을 잡으면서 유용한 특성들을 다수 확보했다.

그 예로 코뿔소 헐크 뮤턴트와 메탈릭 그렘린으로부터 얻은 특성을 합쳐서 만든 ‘보호색’ 특성이 있다.

현재 내 외피와 갑각은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비늘로 덮여 있다. 10초 동안 몸을 웅크리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이 비늘이 자동으로 움직여서 몸의 색깔을 바꾼다.

어떻게 변하냐 하면 주변 환경과 비슷한 모습으로 바뀐다. 추락하고 거목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 함재기가 날 발견하지 못한 것도 이 보호색 덕분이다.

‘몸을 바꾸는 게 아니라 탐지 장비에는 걸리지만….’

지금 나에게는 전파 교란 특성이 있다. 전파 교란 효과가 닿지 않는 먼 거리에서 탐지하면 모를까 가까이에 있는 적들이 나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거다.

이외에 고릴라를 닮은 헐크 뮤턴트로부터 얻은 뼈 칼과 전염 강화 특성, 메탈릭 그렘린으로부터 얻은 강화 흡반이 있다.

나는 전투용 팔 중 위쪽 오른팔에 힘을 줬다. 원래라면 손바닥 안쪽에서 흡혈 촉수가 튀어나와야 하지만, 그 대신 기묘한 형태로 휜 칼날 뼈가 튀어나왔다.

사냥의 표상을 쓸 때 생기는 등의 팔과 비슷한 형태지만 차이점도 있었다.

등의 팔에 달린 뼈 칼날은 얇지만 날카로워서 베고 찌르는데 유리하지만, 뼈 도끼는 굵고 무거워서 쿠크리나 도끼처럼 적을 내려쳐 부수는데 특화되었다.

‘늘 말하는 거지만.’

새로운 무기는 언제나 환영이다.

뼈 도끼를 회수한 나는 전투용 팔과 발을 이용해 거목 위를 올라갔다.

원래도 에이모프에게는 곤충이 벽에 붙을 때 쓰는 욕반(褥盤) 같은 기관들이 발 안쪽에 붙어 있다.

다만 악몽의 지평선 효과로 몸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벽을 타고 다니기 어려워진 상태였는데, 마침 좋은 특성이 나왔다.

손과 발에 생긴 미세한 흡반들이 내가 나무에 쉽게 기어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라고 하는 레드우드보다 훨씬 거대한 나무들이 이 대륙에 즐비하므로 내가 오르고 있는 이 나무도 내 무게를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나무 꼭대기까지 오르자 끝이 보이지 않는 밀림이 펼쳐졌다.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에서는 익룡 비슷한 생물이 날아다녔고, 발아래 정글 속에서는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푸른 하늘과 녹색 밀림이 맞닿은 곳에 움푹 파인 부분이 있는 것을 보니 주포를 쏜 순양함은 저쪽에 위치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리니 지평선 끝에 푸른색이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바닷속에 26호와 아드하이가 있을 거다.

‘…애들은 안전해진 다음 데리러가자.’

강적을 상대하는데 굳이 녀석들을 데리러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곳 PH-101에는 위험한 생물들이 다수 존재하므로 나와 함께 다니면 부상을 당하기 쉽다.

해적과 위험 생물들과 싸우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데 녀석들을 보호하려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예전 같았으면 녀석들을 미끼로 썼겠지만….’

지금은 나 또한 녀석들과 정이 든 상황.

만약 26호와 아드하이가 심한 부상을 당하거나 죽는다면 솔직히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겠다.

‘정글에서 싸울 때는 인내심이 높은 자가 승리해.’

감정의 동요는 패배와 직결된다.

‘바다는 26호의 홈그라운드니까 여기보다는 안전할 거야.’

아드하이도 비행하는 데 장애물이 많은 밀림보다는 탁 트인 해변이나 섬 부근이 훨씬 지내기 편할 거다.

‘…둘 다 똑똑한 녀석이니까.’

해적들을 다 정리하면 데리러가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꼭대기에서 내려왔다.

이 근처에 해적들의 소규모 야영지가 있다.

나무 중간까지 내려온 나는 침식 촉수를 뻗어 다른 나무로 건너갔다.

침식 촉수와 강화 흡반을 활용해 거목들 사이를 이동하는데 아래쪽에서 생물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강아지만한 크기의 곤충형 생물부터 수십 미터가 넘는 거대한 공룡형 생물까지 온갖 괴물들이 숲을 활보하고 있다.

괴물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이곳 PH-101에서는 갓난아기만한 작은 생물도 무장한 군인을 손쉽게 죽일 수 있다.

‘저것들을 먹으면 다음 진화까지는 문제없겠지.’

물론 나는 게임에서도 이곳에 뻔질나게 들락날락거렸기 때문에 무슨 생물이 사는지, 어떻게 공략하면 되는지 전부 알고 있다.

나무 사이를 이동하는 중, 원숭이와 박쥐를 섞은 것처럼 생긴 생물이 위에서 나를 덮쳤다.

우드데블이라고 하는 생물로 지금처럼 고목 위에 은신하고 있다가 아래를 지나가는 생물을 덮쳐서 잡아먹곤 한다.

이 행성 먹이사슬 중에는 하위권에 위치한 생물이지만, 빠른 몸놀림에 강력한 근력, 그리고 나름 높은 지능 덕분에 뉴비 학살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문제는 내가 뉴비가 아니라는 거지만.’

놈이 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꼬리를 털어서 가시침을 날렸다.

“끽?!”

뛰어내리던 자세 그대로 몸이 굳은 놈이 바닥으로 떨어지려고 한다. 내 등에서 침식 촉수가 튀어나와 떨어지던 놈을 낚아챘다.

이어서 나는 전투용 팔에서 흡혈 촉수를 뽑아 건너편 나무 위로 휘둘렀다.

“끼이익!”

나뭇잎으로 위장하고 있던 우드데블이 흡혈 촉수에 붙잡힌 채 발버둥 쳤다. 촉수에 힘을 주자 놈의 뼈들이 부러지면서 몸 전체가 기형적으로 으스러졌다.

한 마리는 침식 촉수로 느긋하게 삼키고, 다른 하나는 흡혈 촉수로 피를 빨아먹는 중에도 나는 경계심을 잃지 않았다.

‘한 마리가 더 있을 텐데.’

우드데블은 항상 세 마리가 같이 다니며 사냥을 한다. 내 예상대로 대각선 부근 나무 위에 있던 우드데블이 도망치는 모습이 보인다.

“끼끽!”

나는 두 마리를 붙잡은 채 나무를 박찼다. 내 몸이 거목 사이를 활공하며 도망치는 놈에게 날아들었다.

“끼이익?!”

빠르게 날아오는 나를 보며 자지러지는 우드데블.

내 위쪽 오른손에서 나온 도끼 뼈가 놈의 머리를 박살냈다. 머리를 잃고 떨어지려는 놈을 나는 재빨리 꼬리로 감쌌다.

‘쉽네.’

나는 입을 크게 벌려서 머리 없는 우드데블을 씹었다.

치악력 특성을 재료로 써버렸기 때문에 내 턱 힘은 예전보다 떨어지지만 우드데블 정도는 충분히 뜯어먹을 수 있었다.

‘…건강한 맛이 나네.’

우드데블의 고기에서는 싸구려 콩고기 맛이 났다.

우주 도시에서 플랜트리자드를 먹었을 때도 그렇고, 이름에 풀이나 나무가 들어가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이런 느낌이다.

‘우드데블은 육식성 생물인걸로 아는데 왜 콩고기 맛이 날까.’

콩고기는 이름만 고기지 재료상 육류는 전혀 안 들어가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남은 시체를 뜯어먹었다.

다 먹어 치우고 흡혈 촉수에 달린 놈을 먹으려는데, 피 냄새를 맡고 또 다른 포식자가 나타났다.

흑표범의 몸에 거미의 다리가 달린 놈의 이름은 나이트스토커.

가시털 발사 꼬리 특성의 재료 특성을 가진 놈이다.

놈이 8개의 다리를 빠르게 놀리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놈에게는 독이 통하지 않아.’

가시털로 무력화시켰던 우드데블과는 다른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순식간에 달려든 놈이 두꺼운 독니를 드러내며 내 목을 물었다.

아니, 물려고 했다.

내 외피가 단단하지 않았다면 녀석의 독니에 물려 사경을 헤맸겠지.

나이트스토커의 독은 내가 가진 신경독 이상으로 치명적이다. 워낙 퍼지는 속도가 빨라서 해독약도 사용하기 힘들다.

독 자체에 면역이 아닌 이상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고 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그런 강력한 독도 상대의 몸에 들어가야 쓸모가 있지.’

나이트스토커의 이빨은 함선 외벽 이상으로 튼튼한 나의 외피를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지 않다.

“크엉?”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린 놈이 물러나려고 했지만 너무 늦었다. 내가 가진 4개의 전투용 팔이 놈의 몸을 붙잡고 있었으니까.

나는 붙잡은 상태로 4개의 팔에 힘을 줬다. 강력한 내 힘에 의해 나이트스토커는 내용물이 빈 패트병마냥 구겨졌다.

놈의 꽁무니에서 내장들이 주르륵 흘러나왔지만 나는 침식 촉수를 이용해 그 내장들을 남김없이 빨아먹었다.

‘확실히 이곳에 오니까 쉴 틈이 없네.’

침식 촉수가 내장을 빨아먹고 있는 동안, 내 입은 나이트스토커 본체를 씹었다.

흥미롭게도 이쪽은 크로아상 맛이 났다.

침식 촉수의 입에는 미각이 없어서 내장이 어떤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라면 크로아상 샌드위치 같은 맛 아니었을까.

나무에 튄 피까지 말끔하게 핥아먹은 나는 다시 출발했다.

그 이후, 몇 번의 습격을 뚫고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해적 야영지가 눈앞이었다.

때마침 밀림에 해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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