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06화 (107/400)

Ep. 106

‘소규모 야영지라더니.’

죽은 조종사 말대로 야영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돌아다니는 인원과 보조기관으로 감지되는 인원을 합치면 10명 정도밖에 안 됐으니까.

문제는 인원이 아니었다.

‘워커가 있어.’

6미터 높이의 개방형 이족보행 병기가 야영지의 천막 옆에 잠들어 있었다.

워커는 스타유니언에서 사용하는 로봇 병기다.

지금 야영지에 있는 모델은 그중에서도 정찰이나 보병지원용으로 쓰이는 라이트 워커.

개방형 워커이기 때문에 방어력은 형편없지만 대신 양손에 스톰건이 장착되어 있어서 화력 하나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야영지에는 사이보그가 없는데.’

워커는 사이보그가 탑승해서 브레인 커넥터라는 특수 기기로 기계와 정신을 연결해야만 조종할 수 있다.

주변에 사이보그 특유의 미약한 전자파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저 워커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손을 댄 듯싶었다.

게다가 야영지의 워커는 왼손에만 스톰건이 있고 오른팔은 크레인 같은 기계로 대체되어 있었다. 아마 자원 수집 및 물건 운반용으로 개조한 거겠지.

‘어째 막 공격하더니 자신이 있었나 보네.’

컬트 순양함에 개조 워커까지 굴리는 해적이라니.

소규모 야영지에 워커를 굴릴 정도라면 두목이나 부두목이 있는 사령부 쪽에는 훨씬 많은 워커들이 있을 터.

게다가 이것말고도 얼마나 더 많은 병기들을 갖고 있을지 아직 모른다.

‘확실히 자신감이 넘칠 만하네.’

이 정도 무력이면 게임에서도 상위권 카르텔로 분류된다.

비록 적이긴 하지만 강적이라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그렇다고 못 이길 내가 아니지만.’

나는 이빨요정 무리를 불러낸 다음, 조용히 나무에서 내려왔다.

야영지 주변으로 접근하니 해적이 눈에 불을 켜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빨요정 무리를 해적 반대편에 보낸 나는 소음을 내도록 시켰다.

“음?”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

“웁?!”

나는 침식 촉수로 그의 머리를 붙잡은 뒤 확 끌어당겼다.

그가 들고 있던 총만 주인을 잃고 외롭게 그 자리에 남았다.

“뭐야? 이 새끼 어디 갔어?”

“야! 오줌 싸러 갔냐?”

잠시 후 다른 해적 두 명이 다가왔다. 나는 둘 중 뒤에 서 있는 자를 향해 가시털을 쐈다.

“억?”

해적이 목덜미를 붙잡고 쓰러지는 사이, 나는 다른 해적에게 다가갔다.

“응? 어?”

발소리에 그가 돌아본 순간, 뼈 도끼가 그의 어깨를 내리쳤다. 뼈 도끼에 맞은 그는 그대로 두 쪽이 났다.

바닥에 쏟아진 내장으로부터 피어오르는 뜨끈한 열기를 뒤로하고 나는 야영지 내로 발을 들였다.

야영지 가운데에 있는 모닥불에서 해적 한 명이 앉아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그는 뒤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바로 뒤까지 접근한 나는 입을 크게 벌려 그의 머리를 통째로 물었다.

당황한 해적이 버둥댔지만 저항은 길지 않았다. 턱에 힘을 줘서 해적의 머리를 산 채로 으스러트렸을 때, 천막 밖으로 컬트 해적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어?”

「그르르르」

염소 뿔의 컬트는 지금 자기가 본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나는 해적의 상반신까지 집어삼키면서 꼬리를 휘둘렀다.

“크허어어….”

목에 가시침이 박힌 그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으, 으아아악!”

그때 비명과 함께 다른 천막에서 해적 한 명이 피투성이가 된 채 튀어나왔다.

내가 해적들을 정리하는 동안, 다른 천막 안으로 기어들어간 이빨요정들이 안에 있던 해적들을 공격한 것이다.

피를 흘리던 해적은 나를 보고 기겁하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빨요정들은 그를 놓치지 않았다.

식인벼룩들이 통통 거리며 튀어 올라 그의 등에 달라붙었다. 수십 마리의 벌레들이 달려들자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아아아악!”

“어떤 새끼가 이렇게 시끄…으헉?!”

동료의 비명을 들은 해적들이 일제히 천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내가 만든 살육판을 보고 경악했다.

나는 요리사 해적을 마저 삼키고 천막 속 해적을 향해 돌진했다.

5미터의 덩치에 실린 힘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천막은 볼링공에 맞은 핀 마냥 산산조각이 났고 안에 있던 해적들은 삽시간에 곤죽이 됐다.

동료들이 찢겨나가는 동안, 몰래 움직이던 해적은 워커에 탑승하는데 성공했다.

“이 씹새끼! 넌 이제 뒈졌다!”

워커에 올라탄 해적은 특이한 장비를 몸에 걸쳤다. 강화복과 비슷하지만 머리와 흉부만 감싸는 구조였고, 목 뒷부분에 콘센트 같은 장치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저걸로 브레인 커넥터랑 연결하는가 보네.’

저 장비는 게임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꽤 흥미로운 장비지만 그건 좀 이따 확인하도록 하고.

6미터 워커가 몸을 일으키며 스톰건을 나에게 겨냥했다.

워커를 조종하는 해적은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스톰건에 장전된 열화우라늄탄이 나를 찢어발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겠지.

하지만 그의 희망이 현실화될 일은 없을 거다.

내 등에 있던 골판으로부터 나온 전파가 워커의 전기 신호를 끊어 버리고 작동을 중지시켰기에.

“어? 뭐, 뭐야?”

잘 움직이던 워커가 주저앉자 해적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파 교란의 효과는 그리 길지 않기에 나는 전투용 팔을 뻗어 조종석에 앉아 있던 그를 끄집어냈다.

“켁!”

내 손에 의해 맥없이 땅에 내동댕이쳐진 그가 피를 토했다.

그가 착용한 옷을 느긋하게 살펴보고 싶었기에 가시침으로 그를 마비시켰다.

“…….”

이제 혼자 남은 해적이 덜덜 떨며 총으로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누가 부자 해적 아니랄까 봐 들고 있는 무기도 가우스 소총이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텅스텐탄이 매섭게 공기를 가르며 내 갑각에 충돌했다.

해적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텅스텐탄으로는 내 외피에 흠집조차 낼 수 없다. 텅스텐탄이 찌그러져서 바닥에 툭 떨어지자 해적도 입을 쩍 벌렸다.

내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그가 뒷걸음질 치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뼈 도끼를 높이 들었다.

“잠…!”

머리가 쪼개지고도 살아 있는 사람은 드물다. 마지막 해적까지 처리한 나는 이빨요정 무리를 도로 불러들였다.

‘생포한 사람은 셋.’

나머지는 전부 죽였다.

나는 생포한 해적들과 죽은 해적들을 모두 야영장 가운데에 모았다.

본진에 연락을 취할 사람이 없으니 저쪽에서도 동료들이 당했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거다. 이 밤이 지나기 전, 찾아오겠지.

‘기껏 힘들게 이곳까지 오는데 선물을 줘야겠지.’

공포라고 하는 이름의 선물을.

-

본래 스페이스독들 사이에서는 계급, 왕 등의 개념이 없다.

온갖 종족들이 다 모여 있는 데다가 각 카르텔의 두목들은 곧 죽어도 자존심은 챙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누가 누구를 섬긴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다만 카르텔 간에 우열이 존재하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기에 왕 혹은 귀족에 근접할 정도로 강력한 카르텔이 존재한다.

P-101 행성의 세인토피아02 대륙에 온 카르텔, 휴머니티 또한 그러한 강대한 카르텔 중 하나였다.

스페이스독의 여러 카르텔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평가받는 휴머니티 카르텔은 이름만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부두목.”

“왜?”

“21캠프랑 17캠프에서 연락이 안 되는데요?”

반쯤 누워서 고기 꼬치를 먹고 있던 부두목 딜런은 부보좌관의 말에 잘생긴 눈매를 찡그렸다.

“21하고 17?”

“네.”

“그 뭐시냐, 전자 퐁퐁? 뭐 있잖아. 그거 때문인 거 아냐?”

“전자기 폭풍을 말씀하시는 거면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서….”

“씨발놈아 내 앞에서 머리 좋다고 자랑하는 거니?”

“아, 아니요.”

가녀린 인상의 미남 컬트 부두목의 입에서 바로 욕설이 튀어나오자, 보좌관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딜런은 들고 있던 꼬치로 부하의 머리를 찌를지 말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21번하고 17번이라. 그거 다 밀림 외곽 쪽에 있는 캠프잖아.”

“마, 맞습니다.”

“거기에는 위험한 동물이 없는데. 혹시 오늘 낮에 격추시킨 애들 잔당 아니야?”

“그건 저도 잘….”

딜러는 고기 꼬치를 마저 삼킨 다음 손을 휘저었다.

“적당한 애들 시켜서 확인하라 그래.”

“혀,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나도 알아 임마.”

보좌관은 고개를 숙인 뒤 천막 밖으로 나왔다.

거대한 화마가 내뿜는 불빛이 부두목이 지내는 천막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그 불의 정체는 모닥불이 아니었다. 세인토피아02 대륙에 수백 년간 존속해왔던 볼프의 마을 중 하나가 해적들로 인해 불타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컬트와 인간으로 구성된 해적들이 돌아다니면서 전통가옥에 불을 지르거나 혹은 안에 있던 볼프들을 끄집어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약탈하는 해적들 전부가 패악질과 어울리지 않게 잘생긴 미남들이라는 점이었다.

“잘생긴 놈들은 두목에게 데려가야 하니까 살려 둬라!”

“옙!”

“여자는 알아서 하고!”

누군가가 외친 것처럼 해적들은 잘생긴 남성 볼프나 어린아이는 목에 전기 목걸이를 채우고 생포했다.

“흑흑, 수호신이여!”

“크윽! 제발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볼프들은 전기 목걸이에 고통받으면서도 애타게 신을 부르짖었다.

본래 이런 수모를 당할만큼 약한 마을이 아니었다. 이 마을은 ‘만물의 부모’라고 하는 두 수호신들의 가호를 받는 마을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만물의 부모’가 며칠 전부터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쟤네 또 저러네.”

“큭큭, 병신들. 지들이 신이라고 말하는 암캐는 이미 두목한테 털렸는데.”

포로를 지키는 해적들은 볼프들을 비웃었다.

그들 말대로 마을을 지키던 수호신들은 휴머니티 카르텔에게 패배했다.

대지의 아버지라는 남성신은 해적 두목에게 참수당했고, 하늘의 어머니라는 여성신은 현재 포로로 잡힌 상태였다.

그러나 해적들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볼프들이 헛된 것에 기대며 절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캠프를 나와 약탈 현장을 둘러보고 있던 부보좌관에게 해적 한명이 다가왔다. 부하는 여성 볼프와 어린 볼프를 붙잡고 있었다.

“이 볼프 새끼는 어떻게 할까요?”

“제발 이 아이만은 살려주세요!”

“두목 취향 아니야. 처리해.”

“기, 기다…꺄아아악!”

해적이 어린 볼프를 죽이고 그 어미를 끌고 갔다.

휴머니티 카르텔의 두목은 여성이지만 같은 여자, 그리고 못생긴 남성을 매우 혐오하므로 아주 잔인하게 죽인다.

이곳에서 부하 해적들에게 능욕당하고 불에 타죽는 것이 차라리 자비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실제로 포로로 잡힌 하늘의 어머니는 해적들도 진저리를 칠 만큼 무서운 고문을 받고 있었다.

물론 자식을 잃은 볼프에게 그 사실을 얘기해봐야 설득력이 없겠지만.

나름 자비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부보좌관 곁으로 다른 부하가 다가왔다.

“부두목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애들 몇몇 보내래. 할 일 없는 애들 적당히 보내.”

“넵.”

부하가 떠나고 부보좌관도 다시 일하러 갔다.

두목에게 상납할 포로들을 찾기 위해서는 이 밤이 끝나기 전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니까.

부보좌관이 딜런을 만난 지 한 시간 후.

중무장한 해적들 10명이 수송선을 타고 17번 캠프로 향했다.

10명 중 8명이 중급 강화복을 입고 있었고, 2명은 워커에 탑승한 상태였다. 워커는 플라즈마 런처를 장착했고, 8명은 전원이 가우스 소총으로 무장했다.

캠프 주변에 해적들이 예상한 것보다 강력한 적이 나타나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무장 수준이었다.

“갔다 오면 우리가 먹을 만한 애들은 안 남겠죠?”

“그렇겠지. 아니면 다른 애들과 돌려먹던가.”

“하씹, 그러면 시체 같아서 느낌 별론데.”

10명 모두 반강제적으로 차출되었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의 두목, 부두목은 매우 잔혹한 성정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17번 캠프 근처 상공에 도착한 수송선이 해적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공터에 착륙했다.

“주변에 생물 반응 체크.”

“특별히 이상 없음.”

그들의 수송선에는 군함에서나 쓸 법한 바이오 스캐너가 달려 있었다.

휴머니티 카르텔은 이 행성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위험 생물의 유전자 정보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해적들을 위험할 동물이 있는지 없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바이오 스캐너를 한 차례 돌린 그들은 주변이 안전한다고 판단, 하선(下船)해서 17번 캠프로 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캠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기계 고장으로 인한 통신 장애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통신 장애따위가 아니었다.

따뜻한 모닥불, 시끄러운 해적들의 노랫소리 대신 차가운 어둠과 정적이 17번 캠프를 채우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다들 어디 갔어?”

그제야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한 해적들은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헬멧에 달린 라이트로 캠프를 살펴보던 해적 중 한 명이 불길한 흔적을 발견했다.

“이것 봐!”

“뭐, 헉?!”

그것은 대량의 혈흔이었다.

야영지 가운데에 뿌려져 있던 혈흔은 숲속까지 이어져 있었다.

“모두 전투 준비!”

극도로 긴장한 해적들이 무기를 들었다. 그들은 워커를 앞장세우고 숲 안으로 진입했다.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던 핏자국은 점점 줄어들다가 어떤 고목 앞에서 끊겼다.

“하늘로 날아갔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곳 주변에는 육식 익룡은 안 내려와.”

“그렇긴 한데…응?”

해적 중 한 명의 어깨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인가 싶어 닦아내 보니 물이 아니었다.

헬멧에 달린 라이트에 비춰진 손바닥은 피범벅이었다.

“…….”

모두의 시선이 그의 손바닥에 꽂혔다. 그는 침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위로 향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들이 찾던 ‘동료’들이 있었다.

“다, 당장 부두목께 연락해!”

“그, 그보다 수송선! 수송선부터 준비시켜!”

“수송선! 응답하라! 긴급 사태다! 당장 이곳으로 날아와!”

잔혹 무도한 해적들조차도 공포에 질리게 만든 그것.

가죽이 벗겨진 해적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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