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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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끝났습니다.”
“오냐.”
부보좌관의 보고에 딜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그는 몸에는 개량된 상급 강화복을 걸치고, 얼굴에는 특이한 외형의 가면을 썼다.
은색에 사람의 얼굴을 본 딴 데스마스크처럼 생긴 가면의 이름은 ‘불굴의 가면’.
두목이 딜런에게 특별히 하사한 장비로 착용자에게 은폐 대상 탐지 능력, 독과 정신에 영향을 주는 사이킥 파워에 대한 면역 효과를 부여한다.
게다가 불굴의 가면은 어떠한 장비와도 호환이 된다는 어마어마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현재 그의 어깨에 장착된 오토 플라즈마 건.
가면과 연결된 덕분에 기존 탐지 장비로는 발견할 수 없는 적들에게도 자동 사격을 가할 수 있다.
그가 걸친 것들 중 어느 하나 저렴한 것이 없지만 딜런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딜런이 천막에서 나오자 야영지의 공터에서 중무장한 30명의 해적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전원이 상급 강화복을 입고 있었고, 각각 무기로 가우스 소총을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추가로 보병지원화기로 휴대용 플라즈마 로켓 발사기와 퍼플스프레이건까지 챙겼다.
“헤비 워커는?”
“이미 승선 완료한 상태입니다.”
거기에 두꺼운 중장갑을 두르고 스톰건과 플라즈마 런처로 무장한 헤비 워커까지.
스페이스독 전체에서도 이 정도로 수준 높은 장비를 동원할 수 있는 카르텔은 그리 많지 않다.
“좋아. 늘 하던 대로 포위하는 전술로 간다.”
“알겠습니다.”
딜런은 부하들과 사냥할 때 늘 팀을 셋으로 나눈다.
사냥감을 수색하기 위한 정찰팀, 사냥감을 몰거나 혹은 역으로 유인하는 역할을 하는 몰이팀, 마지막으로 타격을 가할 타격팀.
정찰팀에는 부보좌관을 포함해 6명, 몰이팀에 10명, 타격팀에 딜런과 워커를 포함해 16명, 합쳐서 32명이 함께 사냥 작전을 수행한다.
해적들이 입고 있는 강화복과 무기들 또한 소속된 팀과 역할에 맞춘 상태였다.
예를 들어 정찰팀은 가볍고 은신 기능이 있는 강화복을 착용했고, 몰이팀과 타격팀은 방어력을 높인 강화복으로 무장했다.
“그럼 가보자고.”
“넵. 모두 승선!”
딜런을 따라 해적들이 차례대로 대형 수송선에 탑승했다.
워커와 해적들을 태운 대형 수송선이 새벽의 안개 속을 뚫고 날아올랐다.
수송선 안에 밀림 특유의 축축한 공기가 순식간에 차올랐다.
해적들은 모두 말없이 자기가 들고 온 장비들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그들 모두 전투를 앞둔 긴장으로 인해 얼굴이 굳어 있었지만, 두려움만큼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휴머니티 카르텔의 해적들은 강적과 맞서 싸워왔다.
때때로 패배하기도 했지만 최후까지 살아남은 건 언제나 그들이었다.
“미지의 괴물? 괴물이고 나발이고 진짜 괴물이 누군지 보여주자고.”
“옙!”
딜런의 말에 해적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빠르게 날아가던 대형 수송선은 곧 착륙 지점 상공에 도달했다.
“부두목, 곧 도착입니다.”
“좋아. 내리면 모두 17캠프 주변부터 수색한다.”
대형 수송선이 넓은 공터 위에 착륙을 준비하는 동안, 해적들이 무기를 장전하거나 워커에 탑승하거나 하며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막 수송선의 랜딩 기어가 땅에 닿는 순간, 딜런은 뭔가 소리를 들었다.
“응?”
그것이 지뢰가 작동할 때 나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거대한 화마가 수송선에 탑승한 이들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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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됐네.’
저 멀리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는 게 보인다.
내가 미리 심어뒀던 지뢰가 터진 것이다.
나는 놈들이 도착하기 전에 붙잡은 해적들을 심문해서 적의 수송선의 착륙 예정 지역을 미리 알아냈다.
그리고 야영지에서 보관하고 있던 방어용 지뢰들을 깡그리 모아서 놈들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공터마다 잔뜩 심어 놨다.
‘아마 강화복을 입고 있을 테니까 저걸로는 죽지 않겠지.’
많아봐야 둘에서 셋 정도?
사상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적의 퇴각 수단을 차단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다.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나는 거목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다음은….’
나는 안개가 자욱한 숲속을 내달렸다. 내가 작은 나무들을 부수면서 달리자 작은 생물들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피했다.
공기 중에 느껴지는 습기가 한층 더 짙어질 때쯤 나무들이 확 줄어들고 넓은 강가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스테고사우루스처럼 생긴 생물 수백 마리가 모여 있었다.
예전에 내가 우주 도시에서 잡아먹었던 플랜트리자드다. 녀석들은 생긴 것은 초식공룡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식물형 생물로 분류된다.
생태도 그에 맞춰서 낮에는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영양분을 얻고, 밤에는 이렇게 물가에 와서 수분을 섭취한다.
‘여유롭게 쉬는데 미안하지만.’
지금 내게는 숲속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그들을 향해 힘차게 포효했다.
「■-----------!」
꼬리 길이까지 합치면 12m에 육박하는 몸체에서 나온 거대한 울음소리가 숲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무 위에서 자고 있던 익룡 무리가 깜짝 놀라 숲 위로 뛰어오르고, 숲 안쪽에서 나를 경계하는 다른 포식자들의 포효가 들렸다.
나의 포효를 들은 플랜트리자드 무리는 전부 잠에서 깨어났다.
“쿠엉?”
“커엉! 커엉!”
10m로 가장 덩치가 큰 수컷이 나를 보더니 짧게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은 무리가 전부 나를 피해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좋아.’
나는 그들의 뒤를 쫓아가며 꼬리를 휘두르거나 포효하는 등 위협을 가했다.
수컷은 무리를 지키기 위해 중간에 몇 번씩 제자리에 서서 나를 쫓아내려고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수컷에게 덤비지 않고 후방에 있는 다른 플랜트리자드를 공격하는 척했다.
수컷이 가족을 지키려 하면 또 다른 녀석을 위협하고. 수컷이 움직이면 또 다른 녀석을 노리고.
이게 계속 반복되자 플랜트리자드 무리는 어떻게든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계속 도망쳤다.
‘이대로만 가자.’
내 의도는 무리가 도망치던 중에 해적들을 덮치도록 만드는 것.
플랜트리자드는 꼬리에 달린 가시 말고는 딱히 공격 수단이 없지만, 무리가 모이면 다르다.
5m에서 10m 사이에 이르는 거대한 스테고사우루스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덮쳐 온다고 생각해 보라.
중무장한 워커라고 해도 이들 무리에 깔리면 절대로 무사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 틈에 적들을 노리면 돼.’
저쪽도 프로일 테니까 금방 수습하겠지만, 내 전략도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아직 내게는 놈들을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이 수십 가지 이상 남아 있으니까.
‘거의 다 왔어.’
턱 아래에 있는 보조기관이 내게 속삭인다.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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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팀 2명 전사, 몰이팀 1명 부상, 워커 1체 이동 불능입니다.”
“…이 씨발 새끼야, 수송선하고 조종사는 포함 안 하냐? 일 똑바로 안 할래?”
“죄, 죄송합니다!”
전투에 돌입하기 전부터 딜런의 일행이 받은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다.
특히 주 화력 담당인 헤비 워커가 하나 손상된 것은 치명적이었다. 덕분에 남은 헤비 워커는 4체뿐.
‘빌어먹을…!’
가죽을 벗긴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는 놈이다. 해적들이 가진 폭탄이나 무기를 역이용할 것이라고 미리 예상했어야 했다.
위험한 맹수와 싸운다고만 생각했기에 저지른 실책이었다.
“정찰팀은 해체하고 남은 인원은 전부 몰이팀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부두목, 부상자는 어떻게 할까요?”
다른 해적의 말을 들은 딜런은 부상당한 몰이팀원에게 다가갔다. 다리가 기형적으로 뒤틀린 것을 보니 한동안 걷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딜런은 망설임 없이 어깨에 장착된 오토 플라즈마 건으로 그를 쏴 죽였다.
“우리 카르텔에 부상자는 필요 없다.”
딜런의 행동에 부하들 중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지옥 같은 숲에서 부상당한 상태로 혼자 있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해적들은 수송선의 잔해에서 필요한 도구와 탄약 등을 챙기고 17캠프를 향해 이동했다.
캠프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선두에 선 부보좌관이 수신호를 보냈다.
“…….”
그 신호에 해적들 전원이 정지했다. 다른 해적들이 강화복 헬멧에 내장된 야간투시경으로 주위를 경계하는 동안, 딜런은 불굴의 가면의 은폐 탐지 기능을 활성화했다.
가면의 눈 부분에 보라색 불꽃이 일렁이고, 숲에 숨어 있던 생물들의 모습들이 남김없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칙, 11시 방향입니다.」
부보좌관의 말을 들은 해적들의 총구가 일제히 11시 방향으로 쏠렸다. 딜런의 어깨에 달린 오토 플라즈마 건도 주인의 시야에 따라 움직였다.
“크엉!”
“커엉!”
멀리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하나 다른 점이 없어 보이는 주변 풍경, 자욱한 안개, 그리고 알 수 없는 동물의 소리까지.
몹시도 스산한 분위기에 해적들은 목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오자 딜런은 곧 나타날 적을 요격하기 위해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때 그는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지진?’
발아래로부터 진동이 무릎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안 그는 바닥에 손바닥을 대봤다. 처음에는 잔잔하게 떨리던 것이 점점 크게 흔들렸다.
“설마? 이런 씹! 모두 산개!”
딜런이 외치는 순간, 자욱이 깔린 안개에서 어두운 녹색 빛의 대형 파충류들이 튀어나왔다.
등에 인상적인 모양의 골판을 달고 있는 플랜트리자드 무리가 대기하고 있던 해적들을 덮쳤다.
“으아아악!”
“이런 병신 새끼들아! 흩어져서 나무 뒤로 엄폐해! 맞사격하지 말고!”
딜런이 악을 쓰자 해적들이 재빨리 나무나 바위 뒤로 뛰어들었다. 플랜트리자드들은 해적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어어어?”
하지만 덩치가 크고 느린 헤비 워커는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4체 중 하나가 플라즈마 런처로 플랜트리자드를 사격하다가 몸을 피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 결과 헤비 워커는 돌진하는 플랜트리자드 무리에게 깔리고 말았다.
한 마리당 10t을 넘는 무거운 생물 수백 마리가 밟고 지나가니 제아무리 중장갑을 걸친 헤비 워커라고 해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두꺼운 장갑으로 보호받던 조종석이 으스러지면서 안에 있던 조종사는 저항 한번 못해보고 압사당했다.
“이런 개씹…!”
그러나 그들에게 닥친 시련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새까만 외피를 가진 무언가가 플랜트리자드 무리들 사이에서 튀어나오더니 남아 있던 워커 중 하나를 향해 달려든 것이었다.
놈은 돌진하던 속도에 몸을 실어서 헤비 워커를 들이받았다. 그와 함께 머리에 있는 두꺼운 뿔 2개가 워커 조종석의 강화유리를 관통했다.
“놈이 나타났다!”
“사격 개시!”
해적들이 워커에 붙어 있는 괴물을 향해 즉각 사격했다. 가우스 소총으로부터 발사된 관통탄이 화망을 형성하고, 퍼플스프레이건으로부터 보라색 화염이 뿜어져나왔다.
놈은 뿔을 뽑자마자 해적들의 공세를 피해 반대편 숲속으로 사라졌다.
“워커 조종사는? 빨리 확인해!”
몰이팀과 타격팀이 괴물을 향해 사격하는 동안, 정찰팀의 해적 한 명이 워커 내부를 확인했다.
“어떻게 됐어?”
“…놈이 조종사의 흉부를 정확히 관통했습니다.”
부하의 보고를 들은 딜런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전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귀한 헤비 워커를 3체나 잃은 것이다.
“으, 으아아아악!”
딜런이 지른 비명과도 같은 고함이 숲속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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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꽤 열 받았겠지.’
놈들의 대장이 꽥꽥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질 지경이다.
적들이 이성을 잃고 막 나갈수록 내게 유리해지니까.
‘예상이야 했지만, 다들 좋은 장비를 들고 왔어.’
휴머니티 카르텔이 돈이 많을 것이라 짐작하긴 했지만 저들의 무장은 일반 해적의 범주를 넘어섰다.
놈들이 들고 온 헤비 워커만 해도 양팔에 플라즈마 런처를 달고 있으므로 사냥의 표상 상태가 아닌 나를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최우선 목표로 헤비 워커를 먼저 노렸다.
안타까운 점은 워커를 둘밖에 제거하지 못했다는 사실.
원래라면 혼란을 틈타 다른 워커도 기습해서 정리하려고 했지만, 뜻밖에도 적의 공세가 매서웠다.
‘퍼플스프레이건을 챙겨 왔어.’
퍼플스프레이건은 일종의 초능력 화염발사기다.
내가 쓰는 사이킥 브레스의 위력을 반으로 낮춘 뒤, 넓게 퍼뜨리는 형식으로 바꿨다고 보면 된다.
내게 초능력 내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막 맞으면서 싸울 만한 수준의 무기는 절대 아니다.
현재 남은 워커는 2체. 퍼플스프레이건을 든 해적들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다.
이 다음 준비한 함정으로 어떻게든 워커를 끝내야 한다. 그래야 퍼플스프레이건을 든 해적을 처리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좋아. 그럼 가볼…어라?’
다음 함정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려는데 보조기관이 내게 경고했다.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감지된다고 말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
내 뛰어난 시각에 따로 잡히는 것은 없었다. 하나 보조기관이 내게 거짓말할 리가 없기에 나는 잠시 서서 정신을 집중했다.
바닥에 깔린 흙냄새, 바위에 낀 이끼 냄새, 안개를 구성하는 물기, 나무가 물을 빨아들이고 호흡하는 소리, 땀 냄새….
‘잠깐, 땀 냄새?’
이질적인 냄새가 공기 중에 섞여 있다. 아주 얕아서 집중하지 않으면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했지만, 그것은 분명 인간이 긴장했을 때 풍기는 냄새였다.
나는 땀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꼬리 끝을 살짝 털었다. 가시털이 날아가 투명한 무언가에 그대로 꽂혔다.
마비되어 바닥에 털썩 쓰러진 그것은 강화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헬멧의 반투명 바이저 너머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뜬 눈이 보였다.
‘은신 장비?’
예전에 우주 도시에서 싸웠던 저격수가 입었던 은신 강화복과 유사한 외형이었다.
‘마침 잘됐네.’
원래는 이 뒤에 다른 함정을 준비해놨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물건이 손에 들어올 줄이야. 덕분에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너는 귀하게 쓰일 몸이란다.’
나는 은신 강화복을 입은 남자를 집어 들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 숲에 들어온 해적들.
그들에게 보여 줄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