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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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빌어먹을!”
딜런은 연신 욕설을 뇌까렸다. 옆에서 다른 부하들이 불안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내가 적을 너무 얕봤어!’
한참을 도망치던 그들은 바위 뒤에서 몸을 숨긴 채 잠깐 쉬고 있는 중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딜런을 포함해 6명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부하들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른다.
다만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멀리서 들려오던 총소리가 완전히 멎은 것을 보면 그들이 어떤 최후를 맞았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젠장!’
그와 부보좌관까지 포함해서 32명, 거기다 헤비 워커 5체까지 들고 왔는데 남은 사람은 겨우 여섯.
설령 무사히 도망친다고 해도 두목이 이 정도로 개판을 친 그를 가만놔둘 리가 없다.
‘…순양함에 연락하자.’
그런데도 딜런이 순양함에 연락하는 길을 택한 것은 그쪽이 그나마 그가 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딜런은 죽는 것보다 고문당하더라도 살아남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었으니까.
딜런은 팔목에 부착된 단말기로부터 전선을 뽑아 데스마스크를 닮은 가면 모퉁이에 있는 단자에 연결했다.
그리고 단말기의 버튼을 누르자 곧 순양함과 통신이 연결되었다. 짧은 연결음이 단말기로부터 흘러나오고 통신병이 그의 통신을 받았다.
“딜런이다. 두목님은?”
「오늘 아침 대륙 안쪽으로 떠나셨습니다. 얼마 전에 붙잡은 하늘의 어머니? 그 짐승으로부터 보물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셔서요.」
“그래?”
통신병의 말에 딜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숨죽이며 듣고 있던 해적들도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두목이 없다면 휴머니티 카르텔 중 최상급자는 딜런이 된다.
두목이 돌아오기 전에 순양함의 병력과 함께 괴물을 잡아서 바친다면 그들에 대한 처벌의 강도도 약해질 터.
“이곳에 최고 등급의 위험 생물이 있다. 정보를 전송할 테니 함선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해 두도록.”
「어, 알겠습니다!」
딜런이 단말기를 조작하자 그의 가면이 기록한 괴물에 대한 영상 정보가 그대로 순양함의 컴퓨터로 전달되었다.
「모든 정보가 전달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우리도 목숨이 위험하니까 당장….”
「치지지직」
딜런은 지원을 요청하려 했지만 갑자기 잡음이 끼더니 단말기가 먹통이 됐다.
“이 새끼야! 당장 순양함을 끌고 이쪽으로 와!”
「치지지지직」
“씹!”
분노에 찬 그가 단말기를 내려치려고 할 때, 근처에서 나무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짐승이 움직일 때 나는 그 소리는 이 자리의 해적들에게 몹시도 익숙한 소리였다.
“…….”
다들 덜덜 떨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들이 가진 무기 중 놈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워커로부터 분리한 유탄발사기, 딜런이 들고 있는 퍼플스프레이건과 오토 플라즈마 건.
문제는 놈에게 피해를 줄 수는 있지만, 죽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
죽지 않은 놈이 반격했을 때 다른 해적들이 어떤 꼴이 났는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맞서 싸우는 것보다 숨고 버티는 것을 택했다.
놈이 그들이 숨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지나가기를 바라며.
쿵, 쿵, 쿵.
놈의 무거운 발이 움직일 때마다 젖은 땅바닥이 들썩거리며 진동한다.
발자국 소리가 커질수록 딜런은 들려오는 소리가 놈의 발소리인지 자기 심장 소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발자국 소리가 멎었다. 반면 딜런의 심장 박동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르르르르」
놈이 으르렁거린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것을 보니 놈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놈은 그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바위 뒤에 있다.
‘젠장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씨발, 지금이라도 덤벼야 하나? 아니야. 그러다가 잘못되면? 빌어먹을! 난 죽고 싶지 않아!’
딜런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 처해서 그런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옆에 있는 부하들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는지 팔다리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렸다.
「그르르」
그렇게 해적들을 공포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발끝에서 느껴지던 울림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제야 해적들이 안심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해적은 너무 긴장했는지 헬멧을 벗고 그 자리에서 토하기까지 했다.
역한 냄새가 밀려왔지만 딜런은 부하를 탓하지 않았다.
컬트답게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그도 토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고 있었기에.
바위 뒤에 숨어 있던 해적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 주변을 살펴보고, 딜런도 심호흡을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멀리 떠난 것인지 놈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기지개를 펴려고 고개를 위로 쳐든 순간.
“…….”
딜런은 심장이 얼어붙는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실감했다.
바위 옆에 있는 고목 위에서 보라색 덩어리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찾·았·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딜런은 어깨에서 강한 통증을 느꼈다.
놈의 꼬리로부터 웬만한 과도(果刀) 크기의 가시가 날아와 그의 어깨에 박힌 것이다.
어깨 위에 장착된 오토 플라즈마 건에도 가시가 박혀서 작동을 정지했다.
“억!”
“큭!”
가시는 그 혼자만 맞은 것이 아닌지 옆에 있던 해적들 또한 짧은 비명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들은 맥없이 뒤로 자빠졌다.
‘독!’
「어·라·」
이건 예상 못했는지 놈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불굴의 가면 덕에 독에 중독되지 않은 딜런은 급히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그가 도망치는 순간 등 뒤로 가시들이 다시 날아와 땅에 박혔다.
딜런은 강화복에 있는 강화제까지 투여한 다음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뛰었다.
그 부작용 때문에 한 번도 쓴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부작용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가 살면서 이처럼 현실화된 공포를 목격한 적이 없다.
그의 두목을 처음 만났을 때, 두목이 무수히 많은 인명을 웃으면서 학살할 때도 이 정도로 무섭지는 않았다.
놈에게는 괴물이라는 표현도 아깝다.
놈은 모든 지성체가 갖는 원초적인 두려움 그 자체다.
“헉, 헉, 헉, 헉….”
숨 가쁘게 달리던 딜런은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뒤를 흘낏 쳐다봤다.
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딜런은 멈추지 않았다.
미친 듯이 달리는 그의 귀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공기를 진동시키는 그 소리는 함재기라기보다는 소리가 너무 작았고, 익룡이라고 보기에는 펄럭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안 들렸다.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향한 딜런은 마침내 놈의 형태를 목도할 수 있었다.
4개의 팔, 굵은 다리, 그리고 몸보다 훨씬 긴 꼬리를 가진 그것이 나무 사이를 활공하고 있었다.
팔 사이와 꼬리 중간까지 연결된 피막을 이용해서 말이다.
“니미, 날아다니기도 하네.”
딜런은 도주를 포기했다.
멍하니 서서 욕설을 내뱉은 그에게 놈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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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때문이었구나.’
나는 손에 쥔 가면을 살펴봤다. 허리가 뒤로 접혀 죽은 해적 리더로부터 얻은 장비다.
인간의 데스마스크를 닮은 형태의 은색 가면. 나는 이 가면의 정체가 뭔지 알고 있다.
‘컬트 퀘스트 보상인데 이걸 어떻게 챙겼지?’
불굴의 가면이라고 착용자에게 독과 정신 공격에 대한 면역, 은신한 대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장비다.
유일급까지는 아니지만 컬트가 퀘스트 클리어로 얻는 보상이라서 마냥 흔한 장비는 아니다.
불굴의 가면도 나름 복잡한 던전을 클리어해야만 얻을 수 있는 장비기 때문이다.
‘나 말고 다른 플레이어가 있나?’
플레이어라면 퀘스트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곳은 현실이다.
눈앞에 있는 해적이 퀘스트라고 하는 시스템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 장비를 얻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만약 나 말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들어온 거지?’
지금까지 나만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지, 다른 유저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중대한 문제가 생긴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무수히 많은 사람을 잡아먹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 대상이 플레이어라면 얘기가 다른 문제다.
그들은 나와 같은 세계에서 자라고 살아왔던 자들.
까놓고 말해 이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 있는 자들보다 더 나와 가까운 존재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 그들이 나를 적대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들을 상대로 기꺼이 싸울 수 있을까?
내가 왜 이 고민을 하느냐면 내가 에이모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게임을 오래 즐긴 플레이어라면 나를 죽이려 할 가능성이 높고, 나 또한 승천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플레이어들과 적대할 수밖에 없다.
‘승천의 조건이 그러하니까.’
에이모프의 승천과 마찬가지로 다른 종족들도 최종 목표는 자기 종족 외에 다른 종족의 타도가 포함되어 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승천을 목표로 한다면, 그들과 조우했을 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넘어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니. 아직 정보가 너무 부족해.’
다른 플레이어를 어떻게 할 지, 벌써 판단해서 결정하기에는 이르다.
정보를 충분히 얻고 마음을 정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
아무래도 좀 전에 마비시켰던 해적들에게 물어봐야겠다. 불굴의 가면을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 혹시 약탈을 한 것이라면 누구에게서 얻은 것인지 등등 말이다.
나는 가면을 챙기고, 컬트 리더의 시체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다른 사람들이라.’
이 세계 어딘가에 플레이어가 존재한다면 내가 최대한 강해진 뒤에 만나야 한다. 내가 그들을 적대하지 않기로 결정한다고 해도 그들이 나를 적대할 수 있으니까.
약한 상태로 만나면 다른 플레이어의 노예가 되거나 사냥감이 될 뿐.
누군가의 노예, 먹이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 당장 내가, 에이모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사냥과 포식, 그리고 진화 말이다.
‘누구보다 강력해져야 선택의 순간에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
그렇게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마비된 해적들은 지금도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해적들이 아니었다.
“크르르르르.”
놈들을 본 나는 재빨리 몸을 웅크렸다. 보호색 효과가 발동되며 내 몸의 색이 옆에 있는 적색 고목과 비슷한 색깔로 바뀌었다.
“크렁?”
머리에 뿔이 난 대형 수각류(獸脚類)가 해적을 뜯어먹다 말고 내 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몸길이 20m에 골반까지의 높이가 9m에 달하는 위험 생물, 혼드 기간트였다.
이 숲의 먹이사슬 중 상위권에 위치하는 놈들 두 마리가 마비된 해적들을 씹어 먹고 있었다.
“크르르르?”
놈은 내가 보이지 않지만 내 쪽에서 뭔가 다른 냄새가 난다는 것을 인지했다.
다만 내 몸에서 나는 컬트의 피 냄새가 이곳 해적들의 피 냄새에 뒤섞여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한 마리가 숨어 있는 나를 찾기 위해 집중하는 사이, 다른 한 마리가 해적을 몰래 빼먹으려 했다.
“크르르르.”
“크아아아아!”
“크렁….”
내 쪽을 쳐다보던 녀석은 그제야 신경을 끄고 다른 한 마리에게 넘보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포효했다.
놈들은 바위 주변에 있던 해적 다섯 명을 전부 잡아 먹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이런.’
놈들이 떠난 것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드 기간트가 여기까지 올 줄이야.’
한번 붙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지금 내 수준으로는 상대하기 어렵다.
‘한 마리 정도야 어떻게든 죽일 수 있지만….’
혼드 기간트는 그 자체로도 강력한 포식자지만 무시무시한 고유 특수 능력이 있다.
‘광화(狂化) 모드는 힘들어.’
혼드 기간트는 늘 두 마리가 짝지어 다니는데 이 중 동족이 죽으면 남은 한 마리의 스펙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진다.
기존에 단단하던 외피가 더 단단해져서 나의 사이킥 브레스로는 타격을 줄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해지고, 턱 힘은 내 머리 갑각도 그대로 두 동강 낼 정도로 강력해진다.
싸워서 어떻게든 이긴다고 하더라도 부상이 너무 심해지면 오히려 손해다. 왜냐하면 내게는 아직 남은 적들이 있으니까.
‘녀석들이 돌아가면 다시 움직여야겠어.’
애초에 혼드 기간트의 서식지는 이곳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아마 내가 해적들을 잡으면서 쓴 폭탄 때문에 관심이 생겨서 온 것이리라.
적당히 배가 차면 자기들의 서식지로 돌아가겠지.
‘그나저나 진짜 하나도 안 남기고 다 쳐 먹었네?’
혼드 기간트들이 해적들을 다 잡아먹은 탓에 가면의 출처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주변 야영지가 수십 개니까.’
돌아다니면서 해적들을 잡아다 물어보면 어떻게든 정보가 나올 거다. 혹여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순양함을 노리는 수밖에.
‘혼드 기간트가 떠나기 전까지 좀 쉴까.’
내가 해치운 해적들이 휴머니티 카르텔에서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전멸한 상태다.
적들이 다시금 나를 찾아올 때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터.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간 나는 몸을 웅크렸다.
보호색이 발동한 것을 확인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대륙에 들어오자마자 애들과 헤어졌고, 요상한 이름의 해적들을 사냥했고, 예상하지 못했던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머리 안에서 뒤죽박죽 섞인 생각들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혼자 잠드는 것은 오랜만이네.’
그동안 항상 26호가 곁에 있었는데 오랜만에 홀로 남아 눈을 감는다.
나는 왠지 모르게 쓸쓸하다는 감정을 느끼며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