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11화 (112/400)

Ep.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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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릭이 누군지 알지?”

“떠벌이 릭? 당연히 알지. 걔가 왜?”

“걔네 야영지에서 연락이 끊겼다더라.”

“뭐?”

대낮인데도 야영지의 해적들은 엄중히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순양함으로부터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최근 다른 야영지도 연락이 끊긴다는데 또?”

“그것 때문에 우리도 이 시간에 경계를 서는 거겠지.”

“…하, 이 주변 지역은 안전한 거 아니었냐고.”

경비를 서고 있던 해적은 동료의 불길한 소리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자 동료가 안심하라는 듯 이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위에서 그러는데 두목이 내일모레쯤 순양함에 돌아올 거라더라.”

“그래? 그건 다행이네. 근데 뭐 한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나갔데?”

“그건 안 가르쳐 주더라. 얼마 전에 잡은 포로 때문에 그런 거라는 얘기가 있던데.”

“나·좀·더·듣·고·싶·어·”

“나도 더 얘기해주고 싶지만 아는 게 없…응?”

“엉?”

잡담을 나누던 해적들은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서로를 쳐다봤다.

이 자리에 경계를 서고 있는 인원은 그들 둘 뿐이다.

그들 둘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 해적의 목소리를 흉내 낸 「그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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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토피아02에 온 지 오늘로 일주일이 된다.

그동안 나는 플레이어의 정보를 얻기 위해 숲속에 있는 여러 야영지들을 털었다.

야영지의 어느 해적이 말하길 내가 가진 불굴의 가면은 원래 해적 두목이 부두목에게 하사한 물건이라고 한다.

즉 내가 전에 죽였던 컬트 해적은 휴머니티 카르텔의 부두목이었다는 것.

이후 정보를 얻기 위해 습격했던 야영지 중 다수의 해적들이 주둔하는 대형 야영지가 있었다. 그곳에서 불굴의 가면 주인과 비슷하게 컬트의 퀘스트 보상 장비를 착용한 자를 만났다.

그걸로 나는 반쯤 확신할 수 있었다.

휴머니티 카르텔의 두목은 플레이어거나 혹은 플레이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라고.

이는 즉 내가 매우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해적들을 심문해서 두목에 대한 정보도 추가로 얻어냈다.

해적들이 말한 말들을 종합해보면 두목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종족이 컬트라는 것, 성별이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특이한 유물들을 계속 가져온다는 것.

해적인 만큼 상대는 결코 선량하다고 할 수 없는 존재인데다가 순양함과 각종 장비를 보유했다.

따라서 지금의 나와 해적 두목 간에 힘의 격차는 결코 작지 않다.

‘내가 아무리 밀림에서 잘 싸운다고 해도 이 정도로 격차가 심하면 쉽지 않아.’

그리고 해적 두목이 정말 플레이어라면 나에 대해 알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내가 가진 전술 중 상당수는 저쪽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뭐 하지만 내가 밀림에서 써먹은 전략들, 예를 들어 시체 폭탄이라든가 가죽 벗긴 시체 같은 것들은 게임을 오래 한 유저들 대부분이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목이 여기 없다는 거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부하들 말로는 두목이 멀리 떠난 상태고, 이틀 후 순양함에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순양함 측에서도 두목이 온 다음 나를 잡으려 하는지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방금 전 해적들이 말한 것처럼, 야영지에 내가 습격하고 다닌다고 경고만 해 뒀을 뿐이다.

‘내 정보를 수집해 두려는 의도일 거야.’

야영지를 미끼로 던져서 두목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정보를 얻고, 두목이 오면 나를 잡기 위해 총공세에 나서려는 의도일 터.

물론 상황이 나한테만 전적으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두목이 오기 전까지 시간이 있어.’

보통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다.

‘지금부터 이틀 안에 준성체로 진화해야 해.’

나는 야영지에서 얻은 전리품을 씹으며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활성화했다.

「‘아성체->준성체’ 진화 조건 중 일부가 충족되었습니다.

「변신이 가능한 종족 20/20(달성완료)

인간형 종족 20/20(달성완료)

사이킥 파워를 사용하는 종족 20/20(달성완료)

보유한 타입 2/4(미달성)」

‘플레이어블 종족을 잡아먹어야 하는 조건은 완료되었어.’

남은 것은 타입 개수다.

준성체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타입이 총 4개가 필요하다. 나는 육체 강화 타입과 초능력 강화 타입을 이미 획득한 상태고, 향후 획득 가능한 타입이 총 3개가 존재한다.

「특성화 가능 타입(3개)

감염 강화 타입(6/8), 특수방어 강화 타입(4/4), 둥지 강화 타입(1/4)」

「특성화 가능한 ‘타입’ 1개가 존재합니다.」

「‘특수방어 강화 타입’을 해금하시겠습니까?」

일주일 동안 나는 해적들 말고도 틈틈이 다른 야생 동물들도 잡아먹었기 때문에 새로운 특성도 두 종류 확보했다.

나이트스토커로부터 확보한 특수방어 관련 특성인 ‘질병 내성’, 버섯과 비슷한 육식 동물 ‘레드클라운’으로부터 얻은 감염 관련 특성인 ‘환청벌레’다.

덕분에 특수방어 강화 타입도 이틀 전부터 해금 가능한 상태가 됐지만 아직 미루는 중이다.

‘타입을 획득해 버리면 다른 타입 획득에 필요한 특성 개수가 늘어나니까.’

예를 들어 내가 지금 감염 강화 타입을 얻으면 다른 특수방어 강화 타입과 둥지 강화 타입을 얻을 때 필요한 특성 개수가 각각 8개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니 감염 강화 타입부터 먼저 획득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는 이득이다.

‘이것만 보면 아직 진화까지 까마득해 보이지만.’

내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오늘은 침식 촉수로 우주선을 지배한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즉, 사냥의 표상을 쓸 수 있다는 것.

‘20분 동안 최대한 많이 포식 효과를 띄워야 해.’

만약 이곳이 다른 행성이었거나 다른 대륙이었다면 진화에 필요한 유전자 정수를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곳은 세인토피아02 대륙. 희귀한 유전자 정수를 보유한 생물들이 들끓는 곳이다.

‘마침 사냥의 표상을 쓰기 적당한 곳이 있지.’

이 숲에 내가 갈 만한 곳이 있다.

솔직히 지금의 나에게는 매우 위험한 지역이지만 내가 필요하는 특성들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는 곳.

‘늪지대.’

여기서 강가를 따라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어마어마한 넓이의 늪지대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무시무시한 생물들이 대량으로 서식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 마리, 한 마리가 강하다기 보다는 주변 환경과 상성 때문이지만.’

늪지대에 있는 괴물들은 공통적으로 엄청나게 강력한 독과 바이러스를 품고 있다.

숙련된 플레이어라고 해도 독과 바이러스 방어에 많은 준비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공략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 역시 게임이었다면 준성체나 성체가 된 이후에나 공략하려 하지, 아성체 상태로 늪지대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원래라면 그랬겠지.’

해적 시체들을 다 먹은 나는 야영지를 나섰다.

지금 나에게는 늪지대를 공략할 때 필요한 것들이 전부 갖춰진 상태다.

일단 나는 모든 종류의 병에 내성 효과를 부여하는 질병 내성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게임이었다면 절대로 안 받았을 거야.’

준성체가 되면 진화 특전으로 모든 생화학적 공격에 자동으로 면역이 된다.

그렇다 보니 질병 내성이 효용 있는 특성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지금 나처럼 당장 늪지대에 진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매우 유용한 특성이다.

여기서 사냥의 표상을 쓴다면 특성 효과가 강화되니 늪지대에 진입한다고 해도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을 터.

그리고 사냥의 표상 자체가 나의 신체 능력을 전부 강화시켜 주니 늪지대의 괴물들과 싸우는 데도 큰 무리는 없을 거다. 놈들이 강하긴 하지만 직접적인 전투력은 혼드 기간트 같은 놈들에 비하면 떨어지는 편이니까.

‘그리고 이것.’

가슴팍에 있는 작은 손에 반쯤 깨진 불굴의 가면이 들려 있다. 이 은색의 데스마스크는 착용자에게 독과 정신 공격에 대한 면역, 은신 대상 탐지 효과를 부여한다.

중요한 것은 이 가면이 금속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즉, 금속 흡수의 대상이 된다.

‘유일급 장비 말고는 금속 재질이라면 모두 흡수할 수 있으니까.’

가면의 독 면역 효과까지 얻는다면 늪지대 공략에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오늘에 이르러서야 나는 늪지대 공략에 도전한다.

‘거의 다 왔어.’

넓고 푸른 강가가 점점 좁아지고, 물 위에 누런 이끼와 수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썩고 부러진 고목과 독성 안개를 내뿜는 버섯 포자, 알록달록한 색깔을 빛내는 벌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공기에서는 역한 냄새가 스멀스멀 밀려오고, 독기가 두꺼운 외피를 뚫고 스며들어왔다.

‘언제 봐도 쇼킹한 공간이야.’

나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따끔따끔한 통증을 참아 내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 늪지대에는 수백m에 달하는 위압감 넘치는 거목들은 없지만, 대신 5m에서 10m 사이에 이르는 버섯들, 그리고 성인 남성 크기의 거머리, 버스 크기만 한 노린재 등이 돌아다닌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영화 중 거대 유인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를 보면 탐험가들이 어떤 계곡에 조난당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흉측한 벌레들이 탐험가들을 습격한다.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얘기에 따르면, 세인트포이02 대륙의 늪지대는 그 장면에 등장하는 계곡 지역을 모티브했다고 한다.

즉, 독성과 바이러스를 몸에 품은 기괴한 해충들이 온갖 공간에서 다 튀어나온다고 보면 된다.

덕분에 상위 플레이어들 중에는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혐오스러운 비주얼 때문에 이곳을 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매우 좋지.’

그야말로 유전자 정수의 보고라고 해도 좋으니까.

나는 금속 흡수를 활성화한 뒤, 불굴의 가면을 한입 베어 물었다.

외피 부근에 간지러운 느낌이 한차례 흐르더니 곧 따끔따끔하던 통증이 싹 사라졌다.

혹여 내가 착각했을 수도 있으니 나는 한 번 더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나는 옆에 기어 다니는 사람 머리만한 꼽등이를 붙잡아서 꿀꺽 삼켰다.

이 꼽등이의 정식 명칭은 개구쟁이 벌레. 몸에 간지럼증을 유발시키는 독이 있어서 피해자에게 디버프를 주는 생물이다.

개구쟁이 벌레를 먹었음에도 속은 멀쩡했다.

‘독 면역은 적용됐고.’

확인을 완료한 나는 불굴의 가면을 내려놓고 사냥의 표상을 활성화했다.

악몽의 지평선으로 이미 한차례 진화한 내 육신이 훨씬 완벽한 포식자의 형태로 변한다.

두껍고 무겁던 내 등에서 새로운 두 개의 팔이 튀어나온다. 그 끝에 달린 뼈 칼날은 극도로 단단하고 또한 예리하여 아무리 단단한 금속이라도 쉽게 잘라낼 수 있다.

이어서 등 안쪽에 숨겨져 있던 침식 촉수 6개가 전부 밖으로 빠져나왔다.

촉수는 크기만 커지고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신 끝에 있는 6개의 부속지가 내 전투용 팔에 달린 손톱처럼 변해서 그 자체로도 흉악스러운 무기가 되었다.

뼈 칼날 팔과 침식 촉수를 전부 내보낸 등은 급격히 쪼그라들더니 이전에 비하면 날렵한 몸매로 변했다.

물론 허리 부근에는 귀여운 이빨 요정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둥지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몸매 자체는 악몽의 지평선이 적용되었을 때보다 날렵한 이미지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덩치는 훨씬 커졌다.

지금 내 높이는 12m. 아파트로 치면 거의 4층 높이에 육박하는 크기다.

꼬리의 길이도 크게 증가해서 지금 내 몸 전체의 길이는 20m에 살짝 못 미칠 정도다. 사이즈만 봤을 때는 혼드 기간트와 거의 대등하다고 봐도 좋으리라.

이외에 세부적인 부분들은 늘 그렇듯이 전투용 팔과 다리에 붙은 갑각들도 강화되었다.

팔과 다리의 갑각에 뾰족한 가시들이 생겨서 적을 후려쳐도 충분히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형태로 변화했다.

마지막으로 머리의 갑각이 내 눈을 덮으면서 모든 변화가 완료되었다.

「그르르르」

악몽의 지평선 위에 사냥의 표상이라.

아파트 4층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 안에 엄청난 힘이 가득 차 있다.

그야말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

나는 가볍게 꼬리를 휘둘러 뒤에 있던 고목을 후려쳤다.

썩긴 했어도 지름만 5m나 되는 고목이 나뭇가지 부러지듯 산산조각이 났다. 안에서 둥지를 틀고 있던 대형 지네들이 깜짝 놀라 밖으로 후다닥 도망쳐 나왔다.

‘좋아.’

나는 침식 촉수들을 휘둘러서 도망치는 벌레들을 붙잡았다. 갈고리 형태의 부속지가 벌레들의 몸을 절단 냈다.

침식 촉수가 먹이들을 빨아들이며 연신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띄운다.

그것을 지켜보며 나는 숨을 들이마신 뒤 크게 포효했다.

「■---------!」

공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가고 내 앞에 있던 오염된 물이 일순간 갈라진다. 내 앞 늪지 위를 날고 있던 고양이만한 모기들이 내 포효에 맞고 그대로 공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 시작해볼까.’

목표는 20분 동안 진화할 수 있을 정도의 정수를 얻는 것.

오랜만에 포식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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