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12화 (113/400)

Ep. 112

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는 암석 행성이나 바다 행성처럼 생태계가 극단적이지 않고 다양한 환경 요소가 고루고루 분배된 곳을 지구형 행성으로 분류한다.

PH-101은 지구형 행성답게 다량의 물, 다양하면서도 풍부한 동식물 등이 존재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 살기 좋아 보이지만 함정이 있다.

PH-101은 살기 좋은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지만 행성 전체에 거주하는 생물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개체는 약하지만 수백, 수천 마리가 무리를 형성하는 플랜트리자드라든가, 육체 스펙이 웬만한 상위급 플레이어에 버금가는 혼드 기간트라든가.

어느 하나 상대하기 쉬운 생물이 없는 데다가 이 행성에서는 인간이 생존하기 어렵게 만드는 여러 환경적 요소와 이벤트들이 존재한다.

드문 확률로 행성 전역에 자기장 폭풍이 몰아친다거나, 내가 있는 대륙과 다른 대륙인 세인토피아01에 있는 초대형 화산의 분화 이벤트 등등.

지금 내가 있는 이곳, 세인토피아02 대륙의 늪지대 역시 이 행성에서 가장 위험한 환경 요소를 꼽으라고 하면 열 손가락 안에 들만한 곳이다.

무시무시한 독성 포자를 쉴 새 없이 뿜어내는 버섯들, 중독되어 죽은 동물들이 부패하면서 생긴 유독성 가스, 늪지대에 서식하는 동물들이 그 독을 흡수해서 더 강한 독성을 띠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방호복을 입고 들어와도 5분을 채 못 버티는 마경이 되어 버렸다.

‘게임이었다면 준성체가 된 다음 왔겠지만.’

현실에서는 반대로 준성체가 되어 나가게 생겼다.

“끼익!”

4m 크기의 식인 노래기가 내 촉수에 붙잡힌 채 버둥댄다.

녀석의 이름은 스모그패드. 늪지대의 먹이사슬 중에서는 하위에 위치하지만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위험 생물이다.

스모그패드는 산성 체액을 안개처럼 뿌릴 수 있는 특성을 가졌다. 녀석이 뿌리는 산성 안개는 방독면을 녹일 수 있어서 공기에 독이 가득한 늪지대에서 높은 시너지를 낸다.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침식 촉수가 여섯 개의 부속지로 붙잡고 있던 스모그패드를 강하게 흡입했다. 녀석의 등에 덮여 있던 단단한 갑각이 깨지고, 길게 뻗은 몸이 우그러지며 내 촉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놈의 몸에서 독성이 가득한 피와 체액이 흘러내렸지만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촉수가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받아마셨다.

촉수가 식사하는 동안에도 몸은 부지런히 일했다. 전투용 팔과 꼬리로 나를 향해 달려드는 벌레들을 쳐 냈다.

‘악몽의 지평선이 있으니까 이건 편하네.’

에이모프가 팔이 많긴 하지만 입은 하나다 보니 포식 활동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입이 일곱 개나 되다 보니 먹는 게 사냥하는 것보다 빠를 지경이었다.

「감염 강화 타입(7/8), 특수방어 강화 타입(4/4), 둥지 강화 타입(6/4)」

「특성화 가능한 ‘타입’ 2개가 존재합니다.」

늪지대에 진입한 이후 다량의 특성을 확보한 덕에 특성화 가능한 타입이 2개로 늘어났다.

‘앞으로 감염 관련 특성 1개와 둥지 관련 특성 2개만 더 모으면 진화에 필요한 타입 개수를 전부 채울 수 있어.’

에이모프는 타입 하나를 획득하면 다른 타입 획득에 필요한 개수가 2배로 증가한다.

그렇기에 원래는 제일 먼저 감염 강화 타입을 얻고, 특수방어 강화 타입을 얻을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둥지 관련 특성들이 많이 떴기 때문에 선 감염 강화 타입, 후 둥지 강화 타입 획득으로 방향을 바꿨다.

중간에 텍스트박스를 한 차례 점검한 나는 늪지대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만 얻을 수 있는 희귀 특성을 얻으러가기 위해서다.

늪의 수위가 깊어짐과 동시에 주변에 보이는 생물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거대한 대형 생물의 뼈가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늪 위에 깔린 안개의 독성은 한층 더 짙어져서 공기보고 맹독 자체라고 해도 좋을 수준이 되었다.

사냥의 표상과 특성으로 강화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에 중독되어서 죽었겠지.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어느새 늪지대의 수위가 내 가슴팍에 닿을 정도로 올라왔다. 그런데도 내 몸은 마치 육지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는데 여기서 얻은 새로운 특성 덕분이었다.

‘물갈퀴와 지느러미를 여기서 얻을 줄이야.’

이름 그대로 손과 발에 갈퀴가 생겼고, 전투용 팔의 팔목 부근과 꼬리에 얇지만 넓은 지느러미가 돋아났다.

평소 육지에서는 바짝 접혀져 있어서 비활성화된 상태이지만 물에 들어가면 지금처럼 활짝 펴져서 수중 활동을 돕는다.

‘이 상태로 수영은 힘들겠지만.’

내 몸의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다 보니 깊은 수심에서의 수영은 불가능하고 지금처럼 늪 속에서 빠르게 이동할 때만 쓸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늪지대를 반쯤 헤엄치면서 이동하던 도중, 내 보조기관이 늪 속에서 어떤 존재가 움직이는 것을 감지했다.

고요한 늪 한가운데서 작은 초롱불이 튀어나왔다. 창백하게 빛나는 초롱불이 살랑살랑 흔들리다가 나를 발견하더니 멈칫했다.

‘온다.’

초롱불, 아니 늪 아래에 숨어 있는 거대한 생물의 눈이 도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물결이 크게 요동치면서 놈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먼저 거미와 비슷한 형태의 길쭉한 다리 10개가 늪에서 솟아났다. 각각의 다리들은 단단한 갑각으로 덮여 있었으며, 길이만 거의 10m에 달했다.

이어서 2개의 집게발이 다리와 함께 수면으로 올라왔다.

아니, 저걸 과연 집게라고 할 수 있을까.

집게 하나당 크기가 무려 2m에 달할 정도여서 저것에 맞으면 나라고 해도 쉽게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흉악스러워 보였다.

다리와 집게발만 해도 어마어마한 크기인데 몸통은 다리에 비해 훨씬 크고 넓었다. 다리가 거미의 것과 비슷한 반면, 몸통은 게와 비슷하게 타원형에 두꺼운 배갑을 두르고 있었다.

물론 배갑의 너비가 15m나 되는 놈을 보고 게를 떠올릴 만한 사람은 없겠지만.

배갑의 위에는 성인 팔뚝만 한 가시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고, 아랫부분에는 손바닥만 한 구멍들이 곳곳에 뚫려 있었다.

배갑 정면에는 칠성장어의 입처럼 소용돌이 형태로 이빨들이 돋아난 놈의 입과 초롱불을 닮은 눈 4개가 보였다.

게와 거미를 합쳐 놓은 것처럼 생긴 놈의 이름은 ‘스웜프킹’.

세인토피아02 대륙의 늪지대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이다.

초롱불을 닮은 눈 4개가 나를 향한다.

놈의 시선을 느낀 순간, 2개의 집게발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내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보조기관으로 공격의 전조를 미리 감지한 나는 무릎을 굽혀 늪 속으로 잠수했다. 왕관을 닮은 나의 머리 갑각 위로 육중한 집게발이 스쳤다.

놈의 공격이 이어지기 전, 나는 늪 바닥에 깔린 진흙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바닥이라기보다는 수렁에 가까운 곳이라 높이 뛰어오를 수 없었지만, 놈의 위에 올라탈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놈 위에 올라탄 나는 내가 가진 무기들을 활용해 배갑을 공격했다.

입을 크게 벌려 딱딱한 놈의 눈을 물어뜯고, 전투용 팔로 놈을 할퀴고, 뼈 도끼로 배갑을 내리쳐 으깼다. 배갑 위에 솟아 있는 가시들이 내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우수수 잘려 나갔다.

「기이이이이이」

놈이 짜증스럽다는 듯 몸을 흔들었다. 로데오 머신을 탄 듯 내 몸이 크게 흔들렸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등 위에 돋은 뼈 칼날 팔로 놈의 배갑을 내리꽂았다.

흔들어도 내가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자 놈은 나를 직접 쳐 내기 위해 집게발과 다리 중 일부의 관절을 역으로 꺾었다.

목표는 배갑 위에 있는 나.

놈의 다리 끝에 난 발톱은 집게만큼 단단하면서도 관통력이 무지막지하게 높아 내 머리 갑각도 가볍게 뚫어버릴 수 있다.

다리 끝의 발톱이 나를 찌르기 전 나는 재빨리 놈의 배갑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워낙 빠른 속도로 날아온 공격이라 내 침식 촉수 한쪽이 놈의 공격에 찢겨나갔다.

「고통 경감 발동!」

누가 등을 회초리로 때린 것 같은 날카로운 통증이 나의 머리에 꽂혔다.

「기이?」

공격이 실패한 놈은 의외라는 듯 짧은 울음소리를 냈다.

‘강하네.’

늪지대 생태계의 정점에 위치한 생물이라 그런지 만만치 않다.

놈은 독, 기생충, 바이러스 등의 공격 수단에 완전 면역이다. 그러므로 내가 늪지대에 들어와서 새로 얻은 감염 계열 특성은 전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놈의 갑각은 모든 종류의 사이킥 파워에 저항력을 갖는다.

좀 전에 놈의 배갑을 전투용 팔로 할퀼 때도 유령 발톱을 쓰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써봤자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사이킥 브레스를 쏜다고 해도 금이 가는 정도밖에 피해를 입히지 못할 거다.

즉, 녀석을 공략하는 방법은 하나.

‘오로지 힘으로만 제압해야 하지.’

놈은 공격 속도가 매우 빠르고 힘도 상당히 강력하다.

그 위에 두터운 배갑에 높은 초능력 저항, 독과 바이러스 면역까지.

이렇게만 보면 완벽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길 수 있어.’

한차례의 공방 끝에 저쪽은 배갑이 손상된 것에 그친 반면, 나는 침식 촉수 하나를 잃었다.

이것만 봤을 때는 내가 크게 손해를 본 것 같지만 나는 오히려 안심했다.

‘예상대로야. 지금의 나라면 배갑을 뚫을 수 있어.’

의외일지 모르나 저 단단하고 두꺼워 보이는 배갑이 놈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늪지대에 서식하는 생물들은 변칙적이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적들을 사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스웜프킹도 마찬가지다.

게와 비슷하게 생긴 외형, 거미처럼 얇은 다리를 봤을 때, 다리나 집게발 같은 부위를 먼저 무력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놈의 다리와 집게발은 플라즈마 열선을 맞아도 흠집 하나 안 날 정도로 단단하다.

거의 파괴 불가 판정이 걸려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단단해서 집게와 다리를 노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면, 배갑은 다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단단한 편이다. 강한 물리력만 있다면 배갑을 깨부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나는 강한 물리력을 갖고 있다.

「기이이이」

놈은 나를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는지 으르렁거리기만 하고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나 또한 틈을 노리기 위해 놈의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그렇게 짧은 대치가 이어지던 중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놈이었다.

「기익, 기이, 기이」

놈의 배갑 아래쪽의 구멍들로부터 하얀색 뱀 같은 것들이 꾸물거리며 삐져나왔다. 예전에 내가 우주 도시의 하수도에서 봤던 시체메기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의 강화판이지만.’

스웜프킹의 몸에서 나온 시체메기들은 하수도에서 봤던 징그러운 생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임에서 스웜프킹이 소환한 시체메기는 플레이어의 방어력을 무시하며 고정 피해를 입힌다. 아무리 단단한 물질이라도 녹일 수 있는 소화액을 분비한다는 설정 덕분이다.

여기는 현실이니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일부러 맞아줄 생각은 없어.’

시체메기 떼거리들이 나를 뜯어먹기 위해 헤엄쳐 온다.

나는 늪 아래에 잠겨 있는 긴 꼬리를 크게 휘둘러서 시체메기들을 후려쳤다. 홍해가 갈라지듯 물결이 크게 갈라지고 내 꼬리에 맞아 박살이 난 시체메기들의 파편에 공중에 휘날렸다.

늪의 물결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전, 나는 몸을 엎드려서 앞으로 돌진했다.

4개의 팔과 2개의 다리가 진흙 바닥을 박차고 내 몸이 앞으로 빠르게 튀어 나간다.

「기이이이익!」

스웜프킹이 포효하며 두 집게발을 휘둘러 나를 으깨버리려고 한다.

집게발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지려는 순간, 뼈 칼날이 달린 팔이 놈의 집게발에 맞섰다.

살아 있는 생물의 신체 부위가 격돌했다고는 믿기 힘든 파열음이 늪지대 위에 울려 퍼졌다.

‘큭!’

뼈 칼날이 제법 단단하긴 하지만 집게발을 오래 붙들고 있을 정도는 아니다.

칼날에 금이 가는 것으로 모자라 등의 팔 전체가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등의 팔은 금세 무력화되었지만, 덕분에 집게발의 궤도를 수정하는데 성공했다. 두 집게발이 나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서 바닥을 크게 내리찍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무방비해진 스웜프킹.

나는 돌진하던 힘을 머리에 집중해서 놈의 배갑 아랫부분 부분을 들이받았다. 내 머리에 있는 두 개의 뿔이 놈의 배갑을 꿰뚫었다.

「끾, 끼익!」

이건 예상 못했는지 놈이 크게 당황한다. 놈의 상처 부위에서 극산성의 소화액이 쏟아진다.

‘버틸 수 있어!’

머리 갑각은 내 몸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 지금은 그걸 믿고 버틸 시간이다.

나는 오히려 두 다리에 힘을 줘서 뿔을 깊이 쑤셔 넣었다. 놈의 적갈색 피가 소화액과 섞여서 내 몸을 적셨다.

「끼이익!」

놈은 내가 꼼짝도 하지 않자 두 집게를 펼쳐서 내 허리와 다리를 붙잡았다.

2m짜리의 프레스기가 나의 몸을 조여 온다.

한쪽 다리는 순식간에 부러졌고, 허리는 놈의 무지막지한 힘에 천천히 으스러져갔다.

만약 내가 일반 사람이었으면 고통 이전에 숨을 못 쉬어서 죽었겠지.

나는 놈과 거리를 벌리는 대신 침식 촉수로 놈의 배갑을 휘감고 내 몸을 배갑 쪽에 바짝 붙였다. 덕분에 놈의 몸속에 박혀 있던 뿔이 한층 깊숙이 파고들며 놈의 장기를 헤집었다.

「기리리릭!」

내장이 찢기는 통증에 놈이 괴성을 지른다.

나를 압박해 오던 집게발에 힘이 조금씩 풀리고, 나는 아래쪽 전투용 팔로 집게를 붙잡아 밀어냈다.

시체메기들이 주인을 지키기 위해 내 몸에 달라붙었지만 나는 흔들리지도 물러나지도 않았다.

나는 위쪽 전투용 팔로 부서진 놈의 배갑 안쪽에 집어넣었다.

단단한 갑각과 달리 부드러운 내장과 살점이 느껴진다.

나는 그것들을 붙잡아 밖으로 끄집어냈다.

「기이이이!」

놈의 다리 중 일부가 나를 찌르기 위해 움직인다.

나는 배갑을 휘감던 침식 촉수를 풀어서 놈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래도 놈의 다리에 담긴 힘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놈은 얽혀 있는 촉수를 뜯어내고 다리 끝 발톱으로 내 등을 찔렀다.

「끽, 끼긱!」

「그르르르르」

지금부터는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싸움이다.

혹여나 내게 재생력 특성이 없었다면.

타입과 사냥의 표상, 악몽의 지평선 효과로 인해 극도로 강화된 신체가 없었다면.

최후에 서 있는 자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기이이….」

스웜프킹이 단말마를 흘리고 옆으로 쓰러졌다. 놈은 입으로 적갈색 피거품을 몇 번 내뱉은 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놈의 머리 위에 발을 올리고 크게 포효했다.

늪지대의 주인이 내 손에 의해 죽었음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놈의 시체는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공표하기 위해.

얻어먹을 것이 있나 다가오던 늪지대의 거주민들이 화들짝 놀라며 흩어진다.

도둑들을 전부 쫓아낸 나는 스웜프킹의 배 안에 머리를 처박았다.

침식 촉수로도 먹을 수 있지만 기껏 힘들게 잡은 놈인데 맛도 좀 봐야 하지 않겠는가.

배갑 안쪽의 야들야들한 살을 이빨로 물어서 뜯어낸 뒤, 살짝 씹었다.

‘오.’

입안에 넣었을 뿐인데 벌써 느낌이 심상치 않다. 스웜프킹의 살이 혀 위에서 녹아버리기 전에 서둘러 목구멍으로 넘겼다.

‘음.’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먹이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대상은 시현 유진으로, 그동안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대량의 유전자 정수가 고르게 잘 조율된 대상일수록 맛이 훌륭할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틀렸다.

솔직히 먹기 전에는 일단 게를 닮았으니까 게맛살 같은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몹시도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런 불경한 생각을 갖고 감히 평가했던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스웜프킹의 맛은 훌륭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시현 유진은 맛이 참 좋았지만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쨌든 사람 사이즈니까.

그런데 내 앞에 있는 놈은 15m짜리 초호화 킹크랩이다.

‘인간일 때 게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여기 와서 다 먹어보네.’

만약 내가 사냥의 표상으로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날 잡고 며칠 동안 느긋하게 먹었을 거다.

‘쩝. 애들이 있었으면 참 좋아했을 텐데.’

나중에 26호와 아드하이랑 다시 만나면 그때 다시 늪지대로 오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다. 유전자 정수를 노리는 걸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식도락의 차원에서 말이다.

나는 서둘러 킹크랩, 아니 스웜프킹의 배갑 안쪽에 붙은 살과 내장들을 전부 긁어먹었다.

다리 부분은 갑각을 내가 부술 수 없으므로 침식 촉수와 흡혈 촉수를 안쪽에 집어넣어서 살만 빼먹었다.

마지막으로 초롱불을 닮은 놈의 눈까지 깔끔히 먹어 치우자 다른 생물을 잡아먹었을 때처럼 포식 효과를 알리는 창이 떠올랐다.

‘좋았어.’

진화가 멀지 않았다.

스웜프킹의 유전자 정수까지 획득한 나는 그 이후로도 늪지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생물들을 해치웠다.

부상이 얕은 것은 아니지만 나머지 생물 중에 나를 위협할 수 있는 놈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타입 2개를 무사히 획득한 나는 사냥의 표상 효과가 3분쯤 남았을 때 늪지대 밖으로 빠져나왔다.

내 전투용 팔과 침식 촉수 5개에는 여러 생물들의 시체가 들려 있었다.

나는 전에 미리 확인해 뒀던 동굴 안에다가 먹이들을 쌓아 놓았다.

‘이걸로 부작용 때문에 밖으로 싸돌아다닐 일은 없겠지.’

그 후 표상이 끝나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아까 늪지대에서 봤던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성체’->‘준성체’ 진화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진화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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