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15화 (116/400)

Ep.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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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교대 시간이야.”

“휴, 지루해 죽는 줄 알았네.”

“임시 선장이 부르더라. 자기 전에 갔다 와.”

“씹, 나랑 교대하는 새끼는 자기개발 중인가. 왜 안 와?”

함선 밖에서 경계를 서던 해적은 짜증을 내며 흙을 발로 찼다.

교대해서 경계를 서게 된 해적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달랬다.

“딱히 부러워할 거 없어. 쟤는 며칠 전에 보낸 화물에 관한 보고서를 써야 하니까.”

“아, 그거? 그 뭐냐 잡은 볼프 노예들을 밀림 쪽 대형 캠프로 보내는 거였지?”

“그래. 보낸 인원이 수십 명이라 아마 쟤는 잠도 못 잘걸.”

“큭큭, 병신, 진작 좀 쓰지. 제대로 좆됐구먼.”

그들은 잔업에 시달릴 동료를 비웃으며 노가리를 까기 시작했다.

3교대로 이루어지는 이 지루한 경계 업무다. 수다라도 떨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담배라도 하나 빨자고.”

“교대하는 놈 금방 올 것 같은데.”

“어차피 전자담배인데 뭔 상관이야.”

“그렇긴 하지.”

먼저 말을 꺼낸 해적은 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작은 스위치를 눌렀다. 담배에 담긴 진한 합성마약을 한 차례 깊게 빨아들인 그는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후 씨발, 이게 섹스지.”

“한 대 빨고 나도 좀…응?”

그들 머리 위에 있는 임시 가로등이 갑자기 깜빡이다가 뚝 꺼져 버렸다.

컴컴한 어둠이 내리깔리자 그들은 헬멧에 달린 헤드라이트를 켰다.

“어떻게 된 거야?”

“다른 곳은 멀쩡한데?”

“거기 무슨 일이야?”

“여기 가로등이 나갔어!”

멀리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동료에게 그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손을 흔들었다. 멀리 있는 동료들의 머리 위에 있는 가로등은 멀쩡히 빛을 뿌리는 중이었다.

“전기가 나갔나? 갑자기 왜…씹!”

“왜 그래?”

“애미 모기가 귀에 들어갔어!”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해적은 신경질적으로 귓가를 털고 헤드라이트를 가로등에 향했다.

“응?”

“이게 뭐지?”

가로등을 살펴보고 있는 둘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땅속에 묻힌 가로등 밑동으로부터 은색 이끼 같은 것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끼는 가로등 위쪽까지 퍼진 상태였다.

“이거 이끼 맞지?”

“갑자기 웬 이끼? 그리고 비도 안 왔는데 바닥이 왜 이리 축축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젖은 흙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화려한 색깔을 띤 식물이 흙더미를 뚫고 밖으로 올라왔다.

식물은 화사한 붉은색을 띤 넝쿨처럼 생겼는데 겉면에 갈퀴 같은 형상의 작은 줄기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버섯이야? 뭐야?”

“…….”

전자담배를 든 해적은 수수께끼의 식물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깔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껄끄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통신기를 빼 들고, 멍하니 식물을 쳐다보는 동료를 불렀다.

“야, 이거 위에다 알려야겠어.”

“…아름다워.”

“뭐라고?”

“아름다워 미치겠어!”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해적은 황홀한 표정으로 식물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넝쿨이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들어 그의 얼굴을 휘감았다.

“이런 씹!”

“헤, 헤헤, 헤헤헤.”

무릎을 꿇고 넝쿨에 얼굴을 처박은 동료를 보며 해적이 기겁했다. 그는 급히 통신기를 활성화하고 순양함 내부에 연락하려고 했다.

멀리서 그를 부른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여자?”

분명 그의 귀에 들리는 저 소리는 여성의 달뜬 신음 소리였다. 동굴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웅웅 울렸지만 틀림없었다.

그는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매우 좋아했으니까.

“잘됐네. 오랜만에 물도 빼고.”

해적은 핏발 선 눈으로 목소리를 따라갔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그는 자기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씨발년 넌 이제 뒈졌다.”

목소리를 따라가던 그는 수풀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함께 그의 귀로 달칵 하고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주변에 묻혀 있는 지뢰가 작동하는 소리였다. 초고열의 화염이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며 그를 집어삼켰다.

-

‘시작인가.’

깊은 지하에 설치된 둥지가 나에게 보고한다. 지표면에서 연달아 크고 작은 규모의 진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둥지에 느긋하게 누워서 둥지에 링크한 나는 지상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전부 관조할 수 있었다.

‘환청벌레’에 감염된 해적들이 지뢰 위로 뛰어들면서 순양함 주변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됐다. 환청벌레의 기습을 피한 해적들이라고 해도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땅에서 자라난 ‘끈끈이주걱’에서 뿜어지는 유혹 페로몬들이 그들을 옭아매고 있기에.

끈끈이주걱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둥지에 접근한 희생자들을 먹어 치우는 식인식물이다. 직접적인 전투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특유의 유혹 페로몬을 내뿜어 적을 붙들어 둔다.

설정상 끈끈이주걱이 내뿜는 유혹 페로몬은 마약과 비슷하게 먹이에게 환상적인 쾌락을 준다.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처럼 육신이 기계로 대체된 적들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인간 같은 종족들에게는 아주 잘 먹힌다.

‘아마 이 냄새를 맡은 애들은 흙을 몽땅 퍼먹고 싶을 걸.’

게다가 지금 나는 페로몬 강화 특성도 보유한 상태. 둥지에는 내가 가진 육체 관련 특성도 일부 적용되기 때문에 아마 저들 중 끈끈이주걱이 뿜는 페로몬을 견뎌 내기 쉽지 않을 거다.

예전에 이 특성을 많이 써서 다른 사람들을 낚았기에 커뮤니티의 어떤 플레이어는 나보고 약쟁이모프라 불렀다.

‘걸리는 놈이 잘못이지.’

아무튼 동료들이 갑자기 미쳐 날뛰니까 같이 경계를 서던 헤비 워커는 엄청 당황스러울 거다.

전방위적으로 발생하는 습격에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하겠지만 과연 쉬울까.

워커 내부에 장착된 생물 감지기에서는 순양함 주변에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육안으로 살펴보기에는 주변에 잔뜩 낀 안개 때문에 파악이 불가능할 거다. 둥지에서 생겨난 ‘스모그 탑’이 지속해서 순양함 주변에 독성 안개를 뿜어대고 있으니까.

늪지대에 퍼져 있는 안개보다는 훨씬 떨어지지만 이 안개 또한 꽤 치명적이다. 멋모르고 안개 속에 오래 있으면 폐가 오염되어 죽는다.

실제로 워커의 조종사들 중 일부는 원래부터 폐가 약했는지 움직임을 멈췄다. 다른 워커들은 동료들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니까 공포에 질린 것 같았다.

이렇게 밖에서 난리가 났는데 배 안쪽에서는 뭘 하고 있을까?

‘아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려들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임시 가로등에 연결된 카메라는 ‘그렘린 이끼’에 의해 죄다 먹통이 됐기 때문이다. 같은 기계인 스톰건도 마찬가지.

그렘린 이끼는 하이재킹, 전파 교란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계의 카운터 특성이다.

특유의 진동파로 기계를 조종, 무력화시키는 하이재킹, 전파 교란과 달리, 그렘린 이끼는 기계에 이끼를 직접 감염시켜야 한다. 감염된 기계는 이끼의 생존시간인 20분이 지나기 전까지는 완전히 무력화된다.

한 번 이끼에 감염된 기계는 두 번 다시 감염시킬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처럼 둥지에서 적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점, 한 번에 한 기계만 조종 가능한 하이재킹과 달리 여러 기계들을 망가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워커처럼 수시로 움직이는 적이나 순양함처럼 덩치 큰 기계는 감염시키기 힘들지만.’

아직 워커가 남아 있긴 하지만 적들의 방어선을 어느 정도 무력화시킨 것 같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다.

나는 둥지와 링크를 해제하고 내 머리 바로 윗부분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대로 쭉 올라가면 순양함의 바로 밑이다.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였지만 길이 25m나 되는 내 덩치로 땅굴을 파기 시작하니 금방 지상에 도달했다.

지상에 고개를 살짝 내밀자 코앞에 랜딩기어가 있었다.

이제 4개로 늘어난 턱 아래의 보조기관을 통해 순양함의 전체 외형이 감지된다.

컬트 특유의 길쭉한 다이아몬드 형태의 순양함이다.

외장갑은 메가콥, 스타유니언처럼 투박하기 보다는 달걀처럼 매끈한 재질에 아이보리색을 띠고 있었다.

‘누가 컬트 군함이 아니랄까 봐 문실버로 만들었네.’

사이킥 파워를 약화시키는 금속인 블랙실버와 반대로 ‘문실버’는 사이킥 파워의 작용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순양함부터 습격해서 다행이네.’

해적 두목의 종족은 컬트. 문실버의 강화 효과 대상이다.

‘이젠 아니지만.’

근처에서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워커들의 금속음이 들린다. 내가 순양함 바로 밑에 있다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려서 순양함 아래에 바짝 붙였다. 내 식도 부근에 위치한 산성 진균샘이 나의 의도에 따라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진균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산성 진균샘은 내가 유체 특성을 받았던 산성피 특성을 재료로 삼아 만든 융합 특성이다.

이전에는 상처를 내야만 산성피 특성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는 때에 맞춰 강산성의 물질을 원하는 적에게 내뱉을 수 있다.

이윽고 순식간에 생성 완료된 산성 진균이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순양함 밑바닥에 옮겨붙은 연녹색 산성 진균은 아이보리색의 문실버를 순식간에 녹였다.

진균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나는 이빨요정 둥지를 활성화했다. 등허리 안쪽에 있던 이빨요정 둥지가 팍팍 터지면서 식인벼룩들을 뱉어냈다.

타입으로 강화되었기 때문에 이빨요정들의 외형은 전과 달라졌다. 크기는 이전과 동일하게 어린이 손바닥만 했지만 머리와 몸에 갑각이 자라났다.

‘벼룩이 투구를 쓴 것 같네.’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이빨요정들이 경례를 했다.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배 안으로 들어가서 각종 중요 설비와 연결된 전선들을 물어뜯어. 필요하면 선원들을 먹어도 좋아.’

수십 마리의 이빨요정들이 녹아내린 구멍을 통해 배 안으로 들어갔다.

식인벼룩들이 선내 여러 곳으로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구멍이 넓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배 안에 있는 해적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밖에서 발생한 전방위적 습격, 배 밑바닥에 갑자기 발생한 손상. 모두 그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뿐일 테니까.

보조기관으로 내부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데, 배 안에서 구멍 쪽으로 접근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슬슬 들어가도 되겠지?’

나는 여전히 녹아내리는 중인 구멍을 전투용 팔들로 붙잡았다. 팔 4개로 잡아서 사방으로 늘리자 내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넓어졌다.

“헉!”

“씨발! 모두 쏴!”

바닥의 구멍을 비집고 올라간 순간, 강화복을 입고 있는 컬트와 인간 해적들이 나를 발견했다.

확실히 순양함을 지키던 이들이라 그런지 그들은 침착하게 들고 있던 퍼플스프레이건으로 사격했다.

‘침착하긴 한데.’

문제는 내게 초능력 반사 장갑이 있다는 것.

‘사이킥 파워 공격의 일부를 반사하지.’

초능력 반사 장갑은 사이킥 파워 기술 중 ‘리플렉션’의 열화판, 혹은 초능력 버전이라 보면 된다. 초능력 공격에 피해를 입으면 그 피해 중 30%를 자동으로 반사하기 때문이다.

사이킥 파워로 이루어진 불길이 내 외피를 휘감는다. 준성체가 되면서 외피들도 업그레이드가 된 덕분인지 이제는 크게 고통스럽지 않다.

‘고통 경감도 안 뜨고.’

나에게는 불쾌한 느낌을 줄 정도의 뜨거움에 불과하지만 저쪽은 어떨까?

나를 집어삼키던 화염 중 일부가 반대 방향으로 역류했다.

그 끝에 있는 것은 퍼플스프레이건을 들고 있는 해적들. 보라색 화염줄기가 자기들한테 날아오자 그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어어?”

“모두 피…끄아아악!”

나야 장갑이 튼튼하다 보니 퍼플스프레이건에 당해도 큰 피해가 없지만 저들은 아니다.

강화복을 입은 해적들이 꺼지지 않는 불을 어떻게든 진화(鎭火)해 보려고 애썼지만, 그게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은 그들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거다.

‘상황실이 이쪽이었나.’

한둘씩 쓰러지는 해적들을 무시한 나는 걸음을 옮겼다.

이 위로 올라가면 상황실이다.

-

순양함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설치된 방어진지.

세인토피아02 대륙은 잊힌 대지의 사원이 위치한 중앙 부근의 밀림에 가까워질수록 전파 장애가 심해진다. 사원이 발산하는 특유의 에너지 때문이다.

그래서 뮤리엘은 순양함과 사원 사이에 교두보 역할이자 예상 모를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임시 사령부 역할을 할 요새를 구축해 놨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겠습니다.”

사원 쪽 캠프를 철거하고 돌아오던 뮤리엘과 부하들은 이곳에서 밤을 지내기로 했다. 내일 아침 일찍 수송선을 타고 순양함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적 플레이어의 습격이 반쯤 확실시된 상황인데도 뮤리엘이 서둘러 귀환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 근처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전파 장애 때문도 있지만, 하늘의 어머니로부터 에이모프 플레이어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끄아아아악! 쿨럭! 쿨럭!」

“오빠. 어차피 안 죽으니까 팍팍 당겨.”

“넵.”

야밤인데도 방어진지의 공터에서는 하늘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하는 고문이 한창이었다. 바퀴가 돌아가며 철사에 묶인 내장이 찢어지자 하늘의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그 모습을 뮤리엘은 따분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거 엄청 아플 텐데. 이쯤 되면 슬슬 말해주면 안 될까?”

「엿같은 년! 내가 말해 봐야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그건 내가 판단할 일이고. 내가 확신하는데, 너는 놈하고 싸워 본 적이 있어.”

뮤리엘이 생각을 바꾼 것은 하늘의 어머니가 보여줬던 태도에 의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분명 놈하고 만난 적이 있어.’

랭킹 5위의 에이모프 플레이어가 외국에까지 악명을 떨친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하늘의 어머니의 태도는 명백히 비정상적이었다.

그녀도 뮤리엘과 같은 랭커다. 심지어 뮤리엘보다 높은 15위의 볼프 랭커.

상대가 과거에 랭킹이 더 높았다고 해도 지금은 아성체에 불과하지 않는가?

게다가 뮤리엘이 이곳에서 본 하늘의 어머니는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신격화까지 배웠으니까.’

‘신격화(神格化)’는 볼프의 상위 기술로 배우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뮤리엘이 알기로 하늘의 어머니는 다른 플레이어와 달리 향상심이 높지 않았다. 다른 이들과 달리 현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택한 그녀가 그 와중에 신격화까지 배운 것을 보면 확실히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 장비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이길 수 없었겠지.’

원래는 대지의 아버지를 제압하기 위해 챙겨온 ‘무기’ 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뮤리엘은 그런 대단한 하늘의 어머니가 이처럼 두려워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신격화를 습득한 볼프, 그런 볼프를 제압한 뮤리엘이 놈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역시 둘은 과거 게임 속에서 만나서 싸웠던 것이 분명해.’

저건 놈을 만나고 뭔가 안 좋은 일을 겪은 사람만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아마 하늘의 어머니는 처참하게 패배했을 터.’

그 기억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리라고 뮤리엘은 생각했다.

“놈이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면 너도 무사하지 않을 텐데. 죽고 싶지 않다면….”

「퉤! 네놈은 나의 가족을 죽였어. 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에이모프에게 내 영혼을 팔아도 좋아!」

“흐응. 그러셔?”

저 고문이 엄청 고통스럽다는 것은 설계자인 뮤리엘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늘의 어머니는 꺾이지 않았다.

뮤리엘은 해적에게 손짓해 바퀴를 돌리는 일을 멈추게 했다.

“그럼 너가 좋아하는 가족들하고 얘기해볼까?”

「뭐?」

그녀가 손을 튕기자 다른 해적들이 볼프 포로들을 데리고 왔다. 목에 쇠줄을 찬 볼프들은 전부 어린 남자아이들이었다.

「너 이 씨발년!」

“자, 오빠들. 바퀴 가져와.”

「그만둬!」

해적들이 하늘의 어머니를 고문하는 도구와 비슷한 바퀴를 들고 왔다. 살벌한 고문 도구를 본 어린 볼프들이 애처롭게 떨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묻겠어. 대답하지 않으면 여기 볼프 친구들은 모두 장기자랑을 하게 될 거야.”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년! 너도 나와 같은 사람이야! 그런데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아아, 시끄럽고. 자 빨리 말해주세요. 안 그러면 오빠들이 나쁜 짓을 할지도?”

하늘의 어머니는 뮤리엘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악랄한 해적 두목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았다.

「…말하겠어. 다 말할 테니 저들은 건드리지 마.」

“그건 네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뭐가 궁금하지?」

“너 놈하고 싸운 적 있지? 어떻게 된 건지 그것부터 말해 줘.”

결국 뮤리엘의 협박에 굴복한 하늘의 어머니는 순종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년도 그건 알고 있지? 쉐퍼드 행성 전투.」

“그 밀림 행성에서 4개의 클랜들이 모여서 싸운 전투 말이야? 그때 플레이어 하나 잡겠다고 난리…아. 설마?”

「그래. 그건 저 에이모프 플레이어를 잡으려고 모인 거야. 나는 그때 참여한 클랜 중 하나였던 세비지 클랜의 리더였고.」

하늘의 어머니가 한때 클랜 리더였다는 사실은 뮤리엘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의 어머니는 게임에서도 유명 클랜들의 가입 제의를 전부 거절한 것으로 유명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녀석은 랭커가 아니었지. 진화 단계도 준성체에 불과했고. 그래서 우리는 쉽게 이길 거로 생각했어. 하지만….」

“하지만?”

「놈은 우리가 행성에 들어온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우리의 함선을 파괴했다. 행성 외부의 함선과 연락을 담당하는 통신탑도 하나만 남기고 싸그리 없앴고.」

“…뭐?”

「퇴로를 차단하려는 계획이었겠지. 그 이후 우리는 놈에게 밀림에서 한두 명씩 사냥 당했다. 놈은 마치 우리 계획을 훤히 아는 것처럼 행동했기에 무슨 계획을 세워도 소용없었어.」

“…….”

「가죽 벗긴 시체? 그건 약과야. 놈은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우리를 농락했어. 놈 때문에 우리는 분열했고, 서로 다퉜어. 뭐, 그것도 놈의 의도였겠지만.」

하늘의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감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통신탑 하나 남았다며? 외부에 연락해서 지원을 부르면 되잖아.”

「큭큭큭, 그랬지. 4개의 클랜 중 하나의 통신탑만 남아 있어서 처음 우리는 그들이 배신한 줄 알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서로 의지할 수 있었어. 그 클랜이 부른 지원군을 기다리면서 말이지.」

씁쓸하게 말하는 하늘의 어머니.

그녀의 태도를 보면 그 후 미래가 어떻게 됐는지는 뮤리엘도 예측할 수 있었다.

아마도 지원군은 오지 않았을 터.

하지만 하늘의 어머니 입에서 나온 진실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통신탑이 남은 이유가 있었어.」

“뭔데?”

「놈이 일부러 남겼더군.」

“뭐?”

「통신탑의 클랜원은 이미 죽었고, 그동안 놈이 클랜원 흉내를 내고 있었어. 놈은 우리가 회의하는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고, 외부에 거짓 보고를 했었던 거야.」

“…….”

「그 이후 놈은 여러 차례 우리를 기만했다. 우리는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고, 내 클랜은 완전히 쪼개졌어. 놈에게 워낙 많이 속아서 서로를 못 믿게 됐거든.」

그 말을 들은 뮤리엘은 생각했다.

그 에이모프 플레이어는 제대로 미친놈이라고.

그리고 그녀가 제대로 좆된 상황에 처했음을.

“어, 어차피 게임….”

「그래. 게임이지. 그런데 여긴 현실이야. 놈이 현실에 나왔다고. 놈이 얼마나 끔찍한 전술을 쓸지 감도 안 잡히는 데 너는 어찌 그리 태평할 수 있지?」

“…그래 봐야 겨우 아성체야!”

「네가 여기서 여유를 부리는 동안!」

하늘의 어머니의 고함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 순간의 기백만큼은 실로 무시무시했기에 뮤리엘은 움찔했다.

「놈은 너를 조질 모든 준비를 끝내놨을 거다. 순양함도 지금쯤이면 놈의 손에 들어갔을 걸?」

그 말을 듣자 뮤리엘은 급속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며 통신을 담당하는 부하를 불렀다. 순양함에 연락하기 위해서였다.

밀림에 깔린 전파 장애 때문에 특수한 설비로만 통신이 가능했기에 순양함과 통신을 연결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잠시 후 부하가 활성화된 통신기를 가져 왔다. 통신기를 받아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순양함 쪽에 물었다.

“오빠들, 그쪽에 아무 일도 없지?”

「치지지지직」

대답 대신 돌아오는 소리는 잡음뿐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부하에게 향하자, 부하는 이미 연결된 상태라고 눈짓을 보냈다.

“아무나 살아 있으면 대답해!”

「치직, 너·구·나? 치지지직」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에.

그녀는 공포와 전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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