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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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습니다.”
“가자.”
수송선에서 헤비 워커 6체와 짐승 1마리가 내렸다.
그들은 뮤리엘의 명에 따라 뇌신의 벼락이 떨어진 곳에 생존자가 없는지 조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몇 시간 전까지 생명이 넘치던 풍요로운 대지가 지금은 불과 모래, 죽음만이 남은 황폐한 공간이 되었다.
그들은 여러 탐지 장비를 활성화한 상태로 말라비틀어진 황야를 돌아다녔다.
“응? 이봐! 이쪽에 뭔가 있어!”
그러던 중 워커 하나가 바닥에 남은 흔적을 발견하고 동료들을 불렀다. 금속음을 내며 다른 워커가 다가오는 사이, 그는 워커에 달린 영상 카메라로 흔적을 촬영했다.
“두목, 보셨습니까? 질질 끌린 자국이 있습니다.”
「하씨, 그 미친 괴물 새끼. 안 죽었어?」
“그런 것 같습니다.”
「하늘의 어머니한테 물어봐. 놈의 상태가 어떤지.」
“옙.”
워커 하나가 손에 들고 있던 대형 사슬을 확 끌어당겼다. 목에 사슬이 묶여 있던 하늘의 어머니가 맥없이 끌려왔다.
「큭!」
“이봐, 이거 놈의 흔적 맞지.”
“우리가 아는 바로 놈은 이족보행하는데 여기 보면 몸이 질질 끌린 자국이 남아 있어. 어떻게 된 거지?”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너의 ‘가족’들이 죽는 꼴을 보기 싫으면.」
「…칫, 기다려.」
하늘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흔적을 자세히 살펴봤다. 첨단기계를 능가하는 뛰어난 감각으로 흔적을 남긴 대상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한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는 몸을 반쯤 끌고 간 상태야. 패인 자국 사이에 떨어진 외피 조각과 바닥에 산성 반응이 일어난 흔적을 보면 부상도 당했고. 방향을 보면 저기 숲속으로 들어갔어.」
「거짓말은 아니겠지?」
「파악할 수 있잖아? 확인해 보던지?」
현재 하늘의 어머니 뒤통수에는 뮤리엘이 심은 특수한 칩이 박혀 있었다.
착용자의 뇌파 흐름을 읽어서 거짓말을 하거나 불순한 생각을 하는지 판별하는 장치다. 이 칩이 머리에 박혀 있는 한 하늘의 어머니는 거짓을 말할 수 없다.
「흐응? 뭐 좋아. 역시 뇌신을 맞고 무사할 리가 없지.」
“어떻게 할까요?”
「부상당했으니 얼마 못 갔을 거야. 찾아서 죽여. 하늘의 어머니라면 죽일 수 있을 거야. 그렇지?」
「부상당한 아성체라면 죽일 수 있다.」
「후후, 오빠들 들었지?」
“넵!”
통신이 종료되고 헤비 워커들은 떨어진 외피 조각을 수거하고 숲까지 이어진 흔적을 쫓았다.
그들 머리 위에는 수송선이 비행하며 불타는 밀림 안쪽에 흔적이 이어져 있는지 확인했다.
뮤리엘의 부하들은 이 흔적을 남긴 괴물을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을 것이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분명 하늘의 어머니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뮤리엘이 질문한 것에만 정확히 대답했을 뿐.
그들이 가는 반대 방향에 워커들이 발견하지 못한 흔적이 있었다.
그것은 반쯤 무너진 구덩이였다.
주변에 땅에 박혀 있던 레드우드나 바위들이 통째로 뽑혀지면서 생긴 구덩이가 많았다. 그래서 해적들은 다른 흔적과 비슷한 경우일 것이라고 착각했지만, 비상한 초감각을 지닌 하늘의 어머니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게 뱀처럼 몸이 긴 생물이 판 구멍이라는 것을.
‘하, 그 모프박이. 기어코 준성체로 진화했구나.’
하늘의 어머니는 자기만 알고 있는 사실을 감췄다.
해적에게 목줄이 채워진 그녀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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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냥을 개시할 때 먼저 확인하는 요소가 있다.
정보, 시간, 위치.
먼저 정보.
적이 누구인지, 어떠한 장비, 특성, 기술을 지녔는지,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지, 적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등에 대해 알아 둬야 전투를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
에이모프는 진화에 성공할수록 매우 강력해지는 종족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매우 험난하다. 나 말고 전원이 적이니까. 그러니 정보를 얼마나 습득하냐가 중요할 수밖에.
다음은 시간이다.
낮과 밤 중 언제 나설지, 적이 나의 습격을 인지하고 있는지, 혹은 인지하게 된다면 언제쯤 인지할지 등을 따져 보고 사냥에 나서기 적합한 시기를 고르고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위치.
적의 위치, 지형, 그리고 어디로 유인할 것이고, 어디서 결판을 낼지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나는 적을 공략하는데 얼마만큼의 이점을 지니고 있는가?
정보 부분부터 보면 나와 그녀는 서로 알고 있는 바가 많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그녀보다 이점이 있는 상태다.
‘뮤리엘은 나를 아성체로 착각하고 있어.’
그녀가 뇌신을 쓴 것은 내가 아성체였다면 필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무리 빨리 도망쳐도 뇌신의 범위를 벗어나기 쉽지 않으니까.
‘그래도 확인하려 들 거야.’
자기가 타는 순양함이 탈취될 것을 대비해 폭탄까지 설치하는 여자다. 내가 죽었는지 아닌지 확인하려 들겠지. 폭발 지역을 조사하다 보면 머지 않아 나의 생존을 알아차릴 거고.
‘여기부터가 중요한 지점이야.’
그녀는 내가 뇌신의 공격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할 터.
실제로도 나는 뇌신과 순양함의 폭발로 경미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부상을 입었다. 외피가 열로 달아오르고 갑각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내가 숲으로 기어들어간 흔적에는 떨어진 외피 조각들이 남아 있다.
그것들은 모두 일부러 남긴 것들이다.
적들이 내 상태가 좋지 않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나의 진화 단계를 숨기고, 내 상태를 숨겨서 적이 나를 상태를 오판하도록.
내가 지하에서 나와 밀림으로 숨어들었을 때부터 정보전은 시작된 것이다.
‘저쪽은 흔적을 따라 나를 쫓으려 하겠지만….’
이곳 밀림에서는 탐지 기계가 종종 오류를 일으킨다. 그렇다고 놈들이 나를 놓치는 일은 없겠지만, 나를 발견할 때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릴 거다.
적들이 나를 천천히 쫓아오는 동안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뮤리엘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전장을 내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는 일.
다행스럽게도 순양함이 날아가기 전, 함선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들을 열람해 뒀다.
덕분에 그녀가 어디 있을지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대형 야영지는 총 2곳.
대륙 중심부부터 펼쳐져 있는 광활한 밀림 지역과 볼프 원주민 마을이 있는 협곡 지역이다.
나는 뮤리엘이 밀림 지역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륙 중심에 잊힌 대지의 사원이 있으니까.’
‘잊힌 대지의 사원’은 다른 게임으로 치면 일종의 던전으로 강력한 유일급 장비가 보관되어 있다.
대신 입장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고 내부에 있는 볼프 석상들도 강력하기에 공략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사원 주변에 있는 특수한 에너지장을 꼽을 수 있다.
원거리에서 탐지하려고 해도 에너지장 때문에 감지가 안 되며, 사원에 가까워질수록 통신 장비가 자주 고장이 난다. 재수가 없으면 이동 중인 수송선이 작동을 멈추는 바람에 추락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사원을 공략하려는 플레이어들은 사원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보급캠프를 세우곤 했다. 뮤리엘도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사원 공략을 위해 밀림 내부에 대형 야영지를 설치했을 터.
‘이송된 물품 내역을 확인했을 때도 무기들밖에 없었어.’
그리고 주기적으로 이송된 내역이 있던 것을 보면 전부 사원 공략에 쓴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쯤이면 이미 공략을 끝내고 보상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보상이 제사장의 황금창이었나?’
지성체를 죽이면 공격력이 올라가는 장비다. 한 명 죽일 때 오르는 공격력은 매우 낮지만 공격력 증가의 한계점이 없어서 지성체를 많이 죽일수록 한없이 강력해진다.
내가 살았다는 것을 알면 부하나 노예들을 전부 죽여서라도 공격력을 올리려 할 거다.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해야 확실해질 것 같네.’
작업 때문에 땅속에 반쯤 파묻혀 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30분전, 나는 뮤리엘이 있는 대형 야영지 근처에 도착한 상태였다.
이곳까지 오는데 한 번도 쉬지 않고 전력을 다해 질주했기에 하루하고도 한나절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야영지로부터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
그곳에서 나는 내게 유리한 ‘전장’을 준비 중이었다.
내 시선이 닿는 곳까지 검은색 점액질로 뒤덮여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싱그러운 풀들은 죄다 뒤틀리고, 그 자리에는 피처럼 붉은 덩굴들이 대신 자라났다. 덩굴들 사이에는 쉴 새 없이 독성 안개를 뿜어내는 포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타락한 대지 위에 서 있는 거목 레드우드들도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썩어들어가는 중이었다. 두꺼운 나무껍질이 벗겨지면 안쪽에서부터 검은 점액과 벌레들이 튀어나왔다.
손톱 크기만 한 날벌레, 환청벌레가 주변에 감염시킬 사람이 없는지 날아다닌다.
둥지가 알아서 착착 잘 성장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링크를 해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걸로 세 번째.’
나는 야영지를 둘러싸는 형식으로 둥지를 만드는 중이었다. 육체 강화 타입이나 초능력 강화 타입이 각각 관련된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특전이 있는 것처럼 둥지 강화 타입에도 특전이 존재한다.
바로 여러 개의 둥지가 하나로 합쳐지면 특성 효과가 배로 증폭된다는 것.
그렇게 되면 뮤리엘이 있는 야영지는 세인토피아02 대륙의 늪지대 안쪽보다 지독한 독성 안개의 습격을 받게 될 거다.
‘거기서 싸우면 인신공양 특성이 빛을 발할 거야.’
준성체로 진화 전, 늪지대에서 얻은 특성 중 ‘인신공양’이라는 특성이 있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지만 둥지에 시체가 생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신공양 특성을 보유하고 있으면 둥지가 시체를 흡수해서 둥지의 주인에게 시체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팔들이 잘린다고 해도 인신공양으로 흡수한 에너지가 내 회복력을 촉진, 수 분 안에 원상태로 회복시킨다.
즉 시체만 계속 공급된다면 나는 살아 있는 좀비나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
‘게다가 황금창에 대한 카운터도 되지.’
나는 새로 둥지를 설치할 곳을 찾아 이동했다.
둥지를 만드는 일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기에 틈틈이 에너지를 보급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꾸억?!”
나는 개미 머리를 가진 고릴라를 침식 촉수로 집어삼켰다.
‘앤드릴’이라는 이름을 가진 육식 동물로 나이트스토커 이상의 스펙을 지닌 생물이지만 준성체가 된 나의 상대는 못 된다.
‘여유가 있다면 맛이라도 보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앤드릴 몇 마리를 추가로 더 잡아먹은 나는 둥지를 심기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고 몸을 뉘었다.
내 몸에서 점액질이 쏟아지고 둥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때, 머리 위에서 강한 소음이 들렸다.
‘음?’
그것은 수송선이 날아다니는 소리였다.
수송선은 뒤덮인 나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공비행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덩치 큰 물체 일곱 개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벌써 나를 찾았나?’
바이오 스캐너를 쓴다고 해도 이곳 밀림에서 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중간에 탐지 기기가 먹통이 되거나 초기화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어라?’
멀리서 착륙한 적들은 바이오 스캐너로 나를 찾은 것이 아닌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여기까지 기어 온 흔적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둥지가 걸리기 전에 정리해야겠다. 내가 걸리는 것보다 둥지가 걸리는 것이 더 손해니까.
나는 네 번째로 만든 둥지와의 링크를 해제하고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소리 없이 적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몸이 길어진 덕분에 나무 사이의 거리가 길지 않으면 그냥 몸을 뻗어서 이동하고, 거리가 좀 된다 싶으면 활공피막을 활용했다.
적들과의 거리를 좁혀진 뒤 나는 그들이 어떻게 나를 쫓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구성은 6체의 헤비 워커와 1마리의 짐승이었다.
선두에 선 저 짐승은 나도 게임에서 몇 번 봤다.
‘신격화를 배운 볼프?’
독수리의 머리, 사자의 몸통을 가진 짐승, 신화에 등장하는 그리폰을 닮은 저 존재는 분명 볼프였다.
끝없는 진화를 목표로 하는 에이모프와 달리 볼프는 자기 몸 안에 있는 신성을 되찾아가는 여정이 스토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볼프의 변신 능력도 이러한 설정과 관련이 깊은데, 신성에 가까워질수록 일반 동물이 아니라 그리폰이나 유니콘 같은 신성한 짐승으로 변신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리폰으로 변신한 저 볼프는 에이모프로 치면 아성체와 준성체 사이의 단계쯤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폰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긴 한데 이상하네.’
그리폰의 눈은 에이모프의 초감각급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높은 상공에서도 내가 남긴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수송선을 타고선 어떻게 나를 쫓아왔는지는 이해가 됐지만 근본적인 의문이 남아 있다.
‘네임드인 것 같은데 왜 해적들과 같이…응?’
보호색을 발동시킨 상태로 해적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순간 고개를 돌린 그리폰과 눈이 마주쳤다.
놈은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에이모프 특유의 초감각을 지닌 나는 알 수 있었다.
놈은 나를 인지했으나 모른 척했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한 정보는 직접 잡아서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나는 헤비 워커들의 위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